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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일론 발명가 캐로더스

너무나 순수했던 비운의 과학자

 

나일론 방명가 캐로더스


나일론을 발명한 캐로더스가 화학회사 듀폰의 실험실에서 나일론을 잡아당기고 있는 장면이다.나일론은 인간이 만든 최초의 합성섬유였다.사진에서 캐로더스가 보여주는 자신감에 찬 모습에서 드러나듯이 실로 나일론은 세계를 변화시킨 20세기의 위대한 발명 가운데 하나였다.

나일론의 개발, 상품화, 판매과정은 성공의 연속이었다. 1934년 처음으로 합성에 성공한 뒤, 1938년 나일론은 ‘석탄과 공기와 물을 합성해 만든, 거미줄같이 가늘면서도 강철보다도 강한 실’이라는 설명과 함께 세상에 공표됐다. 일반에게 첫 선을 보인 1939년 뉴욕의 세계박람회에서는 나일론의 소문을 확인하려는 사람들로 듀폰의 전시관이 북새통을 이뤘다. 이어 1940년 나일론은 시판되자마자 날개 돋힌 듯이 팔렸다.

때마침 태평양전쟁이 터지면서 일본에서 수입하던 실크가 더이상 들어오지 못했는데, 나일론은 이 틈을 타고 여성고급의류시장을 잠식시켰다. 애초에 나일론은 비단과 닮은 섬유를 만드는 목적으로 개발됐다. 듀폰의 초기 상품화전략도 여성용 블라우스에 사용되던 값비싼 비단을 대체하려는 것이었다. 이런 점들이 시대적 요구와 절묘하게 맞아떨어진 것이다.

그러나 이런 성공의 행진 속에서 정작 캐로더스는 나일론을 개발한 뒤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 캐로더스는 듀폰사의 기초연구조직에 소속돼 있었고, 나일론도 자유로운 기초연구과정에서 발명된 것이었다. 돈은 캐로더스에게 1차적인 목적이 아니었다. 따라서 단지 돈을 벌기 위해 나일론 개발을 강하게 요구하는 연구관리책임자와 빈번하게 갈등이 있었다.

회사는 실용적인 목적 이외의 ‘기초적’ 연구에 대해서는 지원을 하지 않았다. 캐로더스는 결국 신경쇠약과 우울증에 빠지게 된다. 1936년부터 심한 정신분열증에 시달리다가 나일론의 공정개발이 한창 진행중이던 1937년에는 순수과학자로서 겪는 좌절감을 못이겨 그만 극약을 먹고 자살하고 만다. 당시 나이 41세.

미국의 많은 과학자들은 '노벨상후보를 잃어버렸다'며 안타까워했다.그리고 너무나도 허무한 이 죽음을 떠올리며 '허무'(nihil)라는 단어를 따서 그가 발명한 물질에 '나일론'(nylon)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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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02월 과학동아 정보

  • 동아일보사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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