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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동키즈] “꿈이 있다면, 자신을 믿고 도전하세요”

물리학자를 꿈꿨고 물리학의 길을 걷고 있다. 내 이름에 ‘물리학자’라는 단어가 붙을 때의 기분은 여전히 어색하지만 그것이 내 정체성을 규정하는 가장 중요한 단어임은 분명하다. 지금 기초과학연구원 희귀 핵 연구단에서 일하기까지의 시간은 지난하면서도 즐겁고 보람됐다. 내 현재와 과거를 돌아보며 쓴 이 글이 독자들께 핵물리학의 세계를 알리는 데 도움이 되길 바란다.

 

과학, 물리학, 핵물리학으로 이어진 관심

 

어렸을 때부터 과학이 흥미로웠다. 과학 서적을 많이 읽었는데 점점 물리학 책의 비중이 높아졌다. 리처드 파인먼을 좋아해서 대학원에서나 배울 ‘양자전기역학(QED)’에 대한 책을 뭣 모르고 읽기도 했다. 중학생 때였다. 지금 생각해도 얼토당토않지만, 그때의 난 물리의 아름다움에 이미 그만큼 매료됐었다. 과학동아를 처음 접한 것도 그때였다. 과학계의 최신 뉴스, 특히 국내 과학계의 동향을 파악할 수 있어 즐겨 읽었고, 물리학자로 진로를 정하는 데에도 많은 영향을 받았다.

 

과학에 대한 열정을 파악하신 부모님의 권유로 과학고 진학을 준비해 서울과학고에 입학했다. 수학, 과학을 좋아하는 친구들과 공부하며 과학에 대한 많은 경험을 쌓은 시간이었다. 당시 학교엔 ‘해외 이공계 체험학습’이라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해외의 대학과 연구소를 방문해 그곳에서 진행 중인 연구와 연구원들의 이야기를 직접 듣는 기회였다.

 

개인적으론 일본 고에너지가속기연구소(KEK)를 방문했던 시간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고에너지가속기연구소는 거대한 입자가속기를 이용해 물리학의 최전선에 속하는 연구를 하고 있었다. 거대한 장비로 책에서만 보던 입자들을 실제로 조작한다는 사실에 신선한 충격을 받았고, 이 경험은 이후에 ‘실험 핵물리’라는 전공을 정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대학은 서울대 물리학부에 진학했다. 학문의 길에서 가장 중요한 공부는 ‘언어’와 ‘역사’에 대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 분야에서 쓰이는 개념들의 올바른 정의부터 파악해야 한층 더 깊은 내용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현재의 연구는 지금까지 쌓인 학문 위에서 이뤄지기에, 먼저 그 축적된 기반을 내 것으로 삼아야한다. 학부 생활은 본격적인 물리학 연구를 위한 언어와 역사 공부의 연속이었다. 졸업 후 대학원에서 비로소 핵물리학 세계에 입문했다.

 

거대한 가속기 연구의 매력

 

핵물리학은 원자핵의 성질을 연구하는 분야다. 원자핵은 원자의 중심에 있고 원자 질량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내가 이 분야를 선택한 이유는 몇 가지가 있다. 먼저 거대한 시설로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작은 입자를 연구한다는 사실이 멋졌다.

 

또 다른 이유는 대학원 진학 직후 발표된 한국형 중이온가속기 건설 계획이었다. 입자를 엄청난 에너지로 가속하는 가속기 시설은 핵물리 실험에 꼭 필요하다. 하지만 한국엔 최신 수준의 연구 시설이 없어서, 해외의 가속기로 실험해야만 했다. 내 박사학위 연구도 일본 이화학연구소(RIKEN) 시설을 이용했다. 이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한국 학자들이 십수 년간 노력하며 정부를 설득해, ‘라온(RAON)’이란 이름의 중이온가속기 건설 계획이 발표됐다. 한국에서도 거대 시설로 연구하리란 기대에 부풀었다.

 

대부분의 핵물리 실험은 가속기 시설에서 진행된다. 핵 등의 입자를 가속해 다른 입자에 충돌시켜서 핵반응이 일어나는 양상을 확인하고, 여기서 핵의 질량이나 구조를 비롯한 다양한 성질을 파악할 수 있다. 실험은 며칠에서 몇 주에 걸쳐 진행된다. 그 전후의 실험 준비와 데이터 분석, 논문 작성 등을 모두 합치면 연구 기간이 보통 한 해를 넘기고, 때에 따라선 수년이 걸리기도 한다.

 

여기서 가장 많은 시간을 쏟는 단계는 ‘실험 준비’다. 실험 제안서 작성, 입자 측정을 위한 검출기 개발 등도 포함된다. 가속기로 실험하려면, 실험 제안서를 제출해 자문 위원회의 평가를 받고 승인돼야한다. 따라서 제안서 작성에도 큰 노력을 기울인다.

 

핵물리 실험을 전공으로 택한 또 다른 이유는 연구가 프로그래밍, 회로 설계, 검출기 제작 등 다양한 영역을 넘나든다는 점이었다. 입자 검출기는 가속기에 들어가는, 가속기만큼 중요한 장비다. 검출하려는 입자의 종류나 에너지에 따라 쓰는 검출기도 다르다. 기성품을 구매할 때도 있지만 연구자가 직접 제작할 때도 많다. 핵반응은 대부분 진공 상태에서 이뤄지므로 진공 펌프 등에 대한 지식도 필요하다. 뭔가를 직접 분해, 조립하길 좋아하고, 적극적으로 도전해보는 것도 즐기는 내겐 매우 잘 맞는 분야다.

 

연구를 지속하는 가장 큰 원동력은 ‘동료들’

 

박사학위를 받고 일본 도쿄대의 핵과학연구센터(CNS)에서 3년간 박사후연구원으로 근무했다. 핵물리 연구의 최전선 중 하나인 이 연구소에서 쌓은 지식과 경험은 연구에 큰 도움이 되고 있다.

 

기초과학연구원(IBS)의 희귀 핵 연구단(CENS)에 새 둥지를 튼 것은 연구단이 출범한 직후인 2020년 초였다. 현재는 차세대 연구리더(YSFYoung Scientist Fellowship)라는 직책으로 연구하고 있다.

 

희귀 핵 연구단의 목표는 자연에 존재하지 않는 희귀 동위원소(RI)의 원자핵에 관한 연구를 중점적으로 수행해, 이런 핵의 구조와 성질을 규명하고 그 근본 원리를 파악하는 것이다. 더 나아가 수소에서 우라늄에 이르는 각 원소의 기원, 우주에 없는 새로운 원소의 발견과 같은 핵물리학의 당면 과제를 해결하려 한다.

 

이를 위해 현재는 검출기 개발과 해외에서의 실험 수행에 주력 중이다. 개인적으론 지르코늄-80이란 희귀동위원소의 핵 구조 연구를 위해 이화학연구소의 중이온가속기를 이용한 실험을 준비 한다. 우선 실험에 쓰일 감마선 검출기를 개발하며 공동 연구를 할 핵과학연구센터의 동료들과도 정기적으로 회의하고 있다.

 

하루하루를 충실히 사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기에, 삶을 아우르는 원대한 목표를 가진 적은 없다. 큰 연구 업적을 남기려는 욕심도 없다. 작아도 학계에 기여하면 충분하다. 다만 좋은 연구자들과 함께 계속 연구할 수 있길 바란다. 협력자이자 경쟁자인 동료들은 내가 연구를 지속하는 가장 큰 원동력이다. 서로 배우며 자연의 탐구라는 같은 목표를 향해 함께 성장해간다. 그들도 연구의 길을 함께한 좋은 동료이자 선후배로 나를 기억하길 바란다.

 

몇 달 전, 한 무리의 고교생이 연구단을 방문했다. 실험실을 견학하고 연구자들과 담소하는 자리에서 핵물리 분야에 관심이 있는 학생들의 질문이 이어졌다. “얼마나 돈을 벌 수 있는지” 같은 현실적인 질문도 있었다. 현장의 기초과학 연구자로서 “꿈이 있다면 도전하라”고 말하고 싶다. 기초과학은 인문학이나 예술에 가깝다. 하지 않아도 먹고 살지만 인류 문화의 다양성과 지적 경계를 넓힌다. 호기심을 해결하려는 시도가 수백 년 후엔 전 인류의 삶을 바꿀 수 있는 일. 그것이 기초과학이다. 우주가 어떻게 존재하는지, 그 기저에 뭐가 있는지 알고 싶다면 도전하자. 여전히 우리를 기다리는 미지의 세계가 있고 우리의 지적 가능성은 무한하다. 그리고, 아마도, 먹고 사는 데 큰 지장은 없을 것이다.

 

2024년 01월 과학동아 정보

  • 글 및 사진

    황종원 기초과학연구원(IBS) 희귀 핵 연구단(CENS) 차세대 연구리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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