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둘째 아이의 예방접종 때문에 소아청소년과에 갔을 때였다. 아이의 가녀린 팔뚝에 주삿바늘이 들어가는 모습을 보다 갑자기 섬뜩한 생각이 들었다. 백신이 각종 부작용을 일으킨다고 주장하는 백신부정론이었다. 내색하지 않았지만, 한순간 가슴이 사정없이 떨렸다가 다시 가라앉았다. ‘음, 괜찮겠지? 어차피 유사과학에 불과하잖아.’
편집자 주
백신, “인류에게 가장 큰 해악”이다?
백신은 병원체의 일부 혹은 약화된 형태를 몸에 주입해 우리 몸이 해당 병원체를 기억하도록 하는 약이다. 병원체를 기억하는 우리 몸은 다음에 같은 병원체가 침입했을 때 더 빠르고 강하게 대응해서 효과적으로 물리친다. 백신이 병원체가 일으키는 질병을 상대할 ‘면역’을 만들어준 것이다.
최초의 백신은 영국의 의사 에드워드 제너가 1798년 개발한 천연두 백신이었다. 제너는 소젖을 짜는 여성들이 소에게 감염되는 바이러스 질환인 우두에 한 번 걸리고 나면 천연두에 걸리지 않는다는 사실에 착안해, 우두 환자의 고름을 뽑아 한 소년에게 주사했다. 다음으로 우두를 앓고 회복된 소년에게 천연두 환자의 고름을 주사했고, 소년이 천연두에 걸리지 않으면서 우두를 이용해 천연두를 예방할 수 있음을 보였다. 제너가 천연두 백신을 공표한 직후부터 백신의 효과에 대한 검증이 이뤄졌고, 제너의 백신은 의학계와 영국 정부의 전폭적인 지지 속에 빠른 속도로 보급됐다.
백신의 효과에 대한 의심과 접종 거부 역시 그 탄생과 동시에 시작됐다. 제너 시대의 백신에 관한 의심은 크게 두 가지 이유에서 비롯됐다. 첫 번째는 천연두 백신의 부작용이다. ‘부작용이 없는 약은 없다’는 말처럼 백신도 부작용이 있다. 제너가 개발한 천연두 백신 역시 접종 후 궤양, 염증, 발진, 호흡곤란 등의 부작용을 겪는 사례들이 나타났다. 또한 백신을 접종했음에도 천연두에 걸리는 운 나쁜 환자들도 있었다. 여기에는 제너의 천연두 백신 자체가 가지고 있는 잠재적인 문제도 있었겠지만, 당시에는 소독과 살균 개념이 부족했고 또한 백신을 저온에 저장하고 이송하는 기술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던 영향도 있었을 것이다.
또 다른 문제는 천연두 백신의 원리가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바이러스와 인체의 면역계에 대한 지식 등 이론적 뒷받침이 마련되지 않은 상황에서 동물로부터 유래한 물질을 인체에 주입한다는 발상은 꺼림칙하게 다가갈 수밖에 없었을지도 모른다. 당시 백신을 반대했던 한 의사는 “우두 접종은 인간의 정맥에 짐승의 혈액을 들이붓는 것과 유사한 사례”라고 말하기도 했다. 세간에는 우두를 접종받으면 소처럼 변한다는 소문이 돌 정도였다. 당시 백신 반대자들은 기존에 시행됐던 ‘검증된 천연두 예방책’인 인두법을 옹호하면서, 새롭게 등장한 신기술인 천연두 백신이 “인류에게 가장 큰 해악”을 끼칠 수 있는 재앙이라고 평가했다.

백신부정론, 과학의 시대에 부활하다
백신의 생산 및 저장 기술이 발전하고 백신의 원리가 자세히 밝혀진 현대에는 백신부정론의 영향력이 줄어들어야 할 것 같다. 하지만 오늘날 백신부정론은 오히려 그 기세를 키우고 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일까?
1998년, 영국의 의사 앤드루 웨이크필드가 의학 저널 ‘랜싯’에 한 논문을 발표했다. 홍역, 볼거리, 풍진을 예방하기 위해 의무적으로 접종하는 MMR 백신이 자폐증을 유발할 수 있다는 충격적인 주장이었다.
이 연구에는 많은 문제가 있었다. 연구 대상은 12명에 불과했고, 무엇보다 웨이크필드는 부모들의 기억에 의존해서 아이가 백신 접종 이후에 자폐 증상이 나타났다고 주장했다. 백신을 맞지 않은 대조군에 대한 비교도 없었다. 제대로 된 과학 연구라 보기 힘들었다. 논문이 발표되고 수년 후에 랜싯은 논문을 철회했고, 웨이크필드의 의사 자격은 박탈됐다. 그러나 그가 던진 충격은 일파만파로 퍼져나갔다. 서구권에서 MMR 백신 접종률이 급락했고 어린이들 사이에서 홍역이 다시 유행하기도 했다. 이때 만들어진 백신과 제약사, 과학계에 대한 불신은 20여 년이 지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 시기까지 이어져 백신 접종과 집단면역 형성에 걸림돌이 됐다.
작은 의심에서 음모론으로
어떻게 생각하면 제너가 백신을 발명했을 당시에 등장했던 백신부정론은 나름의 타당한 이유가 있었다. 그 원리도 제대로 밝히지 않은 채 소의 고름을 인체에 주입하다니! 반면 과학이 발전한 현대에도 백신부정론의 영향력은 사그라들 줄을 모른다. 웨이크필드의 논문이 현대의 백신부정론에 엄청난 영향을 끼쳤음은 말할 나위가 없지만, 그의 논문이 가진 파급력을 고려하더라도 백신부정론의 영향력은 엄청나게 커졌다. 과학학자들은 이에 관해 몇 가지 설명을 제시했다.
첫 번째는 대중이 과학 지식을 취사선택 한다는 것이다. 18세기는 근대과학이 태동하던 시기로, 대중에게 과학은 신비롭고 낯설었다. 대중은 백신을 의심하면서도 정부와 전문가 집단이 인도하는 대로 따랐다. 반면 현대의 과학은 누구나 접하고 배우는 보편 지식이다. 높아진 접근성은 오히려 자신의 의견을 뒷받침하는 정보를 인터넷에서 쉽게 취사선택하는 결과를 낳았다. 과학에 대한 전반적인 신뢰는 높아졌지만, 특정 영역에서는 이념과 정치적 성향에 따라 선택적으로 과학을 거부하는 현상이 생긴 것이다.
백신부정론이 사그라들지 않는 두 번째 이유는 오늘날의 백신부정론이 음모론과 깊이 관련됐기 때문이다. 백신부정론과 결부된 음모론은 종류가 다양하다. 웨이크필드가 제기한 것처럼 백신이 건강을 해친다는 음모론도 있고, 백신을 통해 사람을 통제하고 감시한다는 음모론, 제약회사가 이윤을 위해 질병을 퍼뜨리고 백신을 판매한다는 음모론, 심지어 백신 접종이 악마의 표식이라는 음모론도 있다.
백신부정론이 음모론과 쉽게 결부되는 이유라도 있는 걸까? 백신 접종은 사회적 신뢰에 기반한다. 백신은 질병을 치료하는 약이 아니라, 아직 걸리지 않은 질병을 예방하는 약이다. 그렇기에 백신을 접종하는 개인은 백신의 효과를 체감할 수 없다. 백신의 효과는 사회 전체의 집단면역을 통해서 발휘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백신은 국가와 기업이 개인의 신체에 개입하는 드문 사례다. 개인이 백신의 효과를 체감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국가와 기업에 대한 신뢰가 약해진다면, ‘백신으로 개인의 신체를 통제하려는 진정한 의도는 무엇일까’라는 질문이 힘을 얻게 된다. 이때 음모론은 개인의 정치적 성향에 맞춰, 이 질문에 매력적인 답을 제공하는 세계관으로 작동한다. 음모론을 등에 업은 백신부정론은 SNS와 인터넷을 통해 즉각적으로 전 세계에 퍼진다. 대중의 감정을 자극하는 잘못된 정보는 그것을 정정하는 정보보다 더 빠르게 확산되고 반복적으로 소비되는 경향이 있다. 정보를 넓게 확산시키는 현대의 인프라는 백신부정론을 둘러싼 가짜 정보도 빠르게 퍼뜨린다.
유사과학은 사라지지 않는다, 영영
과학 지식이 축적되고 발전하면 자연스럽게 유사과학도 사라지지 않을까? 백신부정론의 사례는 그렇지 않다고 답한다. 웨이크필드의 논문 같은 역사적 우연에 의해 새로운 생명력을 부여받고 되살아나거나, 영향력을 더욱 키우기도 하는 것이다.
나는 과학을 공부하던 학부 시절부터 유사과학에 큰 관심이 있었다. ‘왜 사람들은 저런 이상한 걸 믿지?’라는 호기심은 이상한 믿음을 이해해 보고 싶다는 욕구로 이어졌고, 유사과학에 대한 연구로 대학원을 졸업했다. 유사과학이라고 다 같지 않다. 나름의 치밀한 논리가 있거나 방대한 조직이 뒷받침하는 것이 있는가 하면, 한때 유행했지만 지금은 사그라든 유사과학도 있다.
그렇게 몇 년 동안 유사과학에 푹 빠져 살았음에도 나는 유사과학자들의 주장에 설득된 적이 없었다. 내가 유사과학을 연구하면서도 적절한 거리를 두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 마음은 아이가 백신을 맞는 그 긴장된 순간에 처음으로 흔들렸다. 나는 백신부정론이 근거가 없는 유사과학임을 알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내 아이가 백신을 맞는 순간에 문득 백신부정론을 떠올렸다. 0에 가까운 확률이라도 그게 내 아이의 문제가 되는 순간 다른 의미로 다가왔다. 아주 잠시, 불안이 이성을 앞선 그 틈을 유사과학이 파고든 것이다.
어쩌면 그것이 백신부정론이 그토록 끈질긴 생명력을 가지고 있는 이유가 아닐까?
용어 설명
음모론 : 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킨 사건의 원인을 명확히 설명할 수 없을 때 그 배후에 거대한 권력이나 비밀스러운 조직이 있다고 여기며 유포되는 소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