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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동키즈] "과학의 미래까지 생각해보세요"

이이봉 화학무기금지기구(OPCW) 정보지식관리담당관

▲이이봉 화학무기금지기구(OPCW) 정보지식관리담당관

2001~2002년, 한성과학고

2013~2011년, KAIST 생명과학과 학사

2007~2010년, 파라과이 미시오네스주 중고등학교 과학교사(한국국제협력단 단원)

2011~2013년, 미국 매사추세츠공대 기술정책 석사

2013~2017년, 미주개발은행 기술 협력사업 컨설턴트, 세계은행 정보통신기술 협력사업 컨설턴트

2017~2020년, 자동차 세계여행

2021년~현재, 화학무기금지기구 정보지식관리담당관

 

 

표면적으로는 저는 어려서부터 ‘학교 공부’를 잘하고 말 잘 듣는 아이였지만, 저를 면밀히 들여다보면 세상에 대한 호기심이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과학과 수학의 ‘언어’가 제게 썩 잘 맞아서 학교 성적이 잘 나오는 즐거움에 공부를 열심히 한 것도 있었겠지만, 과학의 본질적인 특성에서도 매력을 느꼈다고 기억합니다. 예컨대 과학은 다윈의 진화론처럼 세상의 수많은 단편적인 현상을 압축할 수 있는 설득력 있는 통찰을 제공해주고, mRNA 백신의 예에서 보듯 이론을 현실에 적용해서 기존에 존재하지 않던 해결책을 만들어내기도 합니다. ‘늘 새로운 것을 보여주는’ 과학의 이런 특성이 저를 설레게 했고, 막연하게 ‘커서 과학자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했습니다.

 

국제개발과 과학기술정책에 관심을 갖다

그런 까닭에 과학고에 진학한 것은, 그저 성적이 가능해서만은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돌이켜보면 2년의 과학고 생활은 학업과 경쟁에 대한 부담 아래서 긴장을 놓지 못한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KAIST에 진학해서 학부 전공은 가장 흥미를 느낀 분야였던 생명과학을 선택했습니다. 어떤 전공을 택해야 나중에 잘될지와 같은 고민은 거의 하지 않았는데, 미래의 불확실성이란 제가 조정할 수 있는 영역을 아득히 압도하는 차원의 문제라고 봤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제 마음이 가는 쪽에 걸어보는 게 현명하다고 생각했습니다.

 

KAIST 재학 당시에 저는 과학 이외의 두 분야에도 관심이 있었습니다. 하나는 과학 이외의 학문들이었고, 다른 하나는 국제개발(International Development)이란 분야였습니다. 저 스스로를 선한 존재로 규정한 것은 아니었으나(오히려 그 반대였습니다) 제가 감당 가능한 범위 내에서 커리어 개발과 ‘타인들에게도 이로운 일을 하는 것’을 조화시키며 살아야 하지 않을지 자문하기 시작했던 까닭입니다.

 

이런 연유로 외교부 산하의 한국국제협력단(KOICA)이 운영하는 프로그램의 협력단원으로 파라과이의 중고등학교에서 과학교사로 2년 2개월간 근무했습니다. 국제개발이라는 분야가 저에게 잘 맞을지 경험을 통해 알아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표면적으로는 봉사단원이었지만, 제가 이곳에서 얻은 경험과 영감은 평생 감사히 여길 정도로 대단했으며 세계관을 크게 확장시켜주는 계기가 됐습니다.

 

귀국 후 국제개발 분야에서 일하고 싶다는 생각이 확고히 자리잡았습니다. 순수과학 밖의 학문을 접하고 싶다는 동기도 있었기에 미국 매사추세츠 공대의 기술정책 석사과정에 진학했습니다. 많은 학부 동기는 치의학전문대학원에 진학했지만, 과학 문해력을 갖춘 사람으로서 국제개발 분야에 종사하겠다는 제 동기가 확고했기에 혼자 위험한 모험을 한다는 불안감은 거의 없었습니다. 석사과정 동안에는 수업 이외에도 국제적인 환경에서 학문적, 사교적인 언어로 소통하는 역량을 키우고, 미국 소재 국제기구 종사자들과도 이따금 교류하며 국제무대에서 제 자신을 객관화하는 기회를 가졌습니다.

 

석사 졸업 후에는 미국에 소재한 미주개발은행과 세계은행에서 총 4년간 근무했습니다. 주로 중저소득 국가들의 에너지효율증진 프로그램과 정보통신기술(ICT)을 활용한 개발협력 프로젝트의 운영 업무를 담당했습니다. 석사 과정까지는 생명과학과 연관된 주제를 전문 영역으로 고수해왔지만, 이때부터는 ICT에 관심을 갖고 이 분야로 업무영역을 옮겨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세계와 나를 돌아본 시간들

 

국제기구들에서 일한 지 4년이 지났을 때, 퇴직하고 생애 첫 자동차를 구입해 2년반 동안 60여 개국으로 세계여행을 했습니다. 이 여행의 동기를 많은 분이 질문했고, 그때마다 여러 가지로 솔직히 답해왔지만 지금 돌아보면 저는 ‘제가 인식하는 세계를 확장’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세계의 크기는 모두에게 동일한 것 같지만 그 주관적 크기는 개인의 인식만큼만 깊고, 넓으며 살아있습니다. 저는 제 세상을 확장시킴으로써 ‘부자’가 되고 싶었고, 이 과정 속의 예상치 못한 만남과 영감들이 제 다음 행보를 어떻게 결정할지도 상당히 궁금했습니다.

 

결론적으로 ‘여행에서 얻은 대단한 깨달음은 이것이다’라고 말할 것은 없습니다만, 그렇게 표현 가능한 건 어떤 의미에서는 대단한 깨달음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짧게나마 공유할 수 있는 몇 가지는 때때로 낯설고 불편했던 상황들에서 마주했던 제 여러 가지 민낯, 다양한 환경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지키며 살아가던 사람들의 모습, 나는 어떤 공간에서 어떤 내면의 에너지를 유지하며 살고 싶은지 자문했던 기억 등입니다.

 

정보와 지식에 대한 긴 탐구의 시작

현재 저는 네덜란드에 있는 국제기구인  화학무기금지기구(OPCW)의 정보지식관리담당관으로 근무하고 있습니다. 표면적으론 과학자를 꿈꾸던 소년이 여러 경험을 거쳐 ICT와 지식관리라는 분야에 정착한 이야기로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과학의 의의를 더 정확히 알기 위해 과학사와 철학에 오랫동안 관심을 가져왔습니다. 역사적으로 과학혁명은 지식혁명으로도 볼 수 있는데, 사실 과학혁명 전에도 인류는 여러 지식혁명을 경험했습니다. 인간이란 종이 적절한 발성기관을 타고났기에 한 구성원의 지식이 다른 구성원에게 구전, 계승된 것도 다른 종과의 격차를 만든 지식혁명이었고, 이후 문자가 만들어져 지식의 보급, 축적을 크게 개선한 것도 지식혁명이었으며, 형이상학적인 논의를 버리고 계측과 검증가능한 것만 논의하기로 합의한 과학적 방법론 또한 그랬습니다. 인간의 애매모호한 언어를 버리고 수학이라는 언어로 지식을 엄밀히 검증해 쌓아올린 현대의 과학도 지식혁명을 일으켰습니다.

 

이런 인식 아래, 제가 정보통신기술의 중요성에 관심을 가진 건 자연스러운 다음 단계였다고 생각하며, 현재 담당한 지식과 정보관리라는 업무 분야도 제 관심사와 잘 맞는 편입니다. 추후에 인류의 역사를 정보처리와 지식생성이라는 관점에서 조망하는 학술적인 작업을 하고 싶은 바람도 있습니다.

 

끝으로 독자 여러분 중 학생이 계시다면 과학을 전공하며 미래를 설계할 때 과거의 제가 그랬듯 지나친 환상이나 긍정적 인식 속에서 과학자의 정체성을 낭만적으로 간직하기보단, 인류사에서 과학이 갖는 의미를 좀 더 숙고하시길 권하고 싶습니다. 토마스 쿤의 ‘과학혁명의 구조’가 독자들에게 충격을 줬던 것처럼, 과학이란 ‘패러다임’도 미래의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대체될 가능성이 있다고 짐작합니다.

 

일례로 현 시대의 과학은 수학을 포함한 인간의 언어로 설명, 기술돼야만 학계에서 인정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기존에 해결하지 못했던 많은 문제를 해결한 인공지능의 해답들은 이미 인간의 언어로 기술이 불가능한 형태입니다. 구글이 개발한 인공지능인 알파폴드의 단백질 구조 예측이 그런 예입니다.

 

과학은 인간 언어를 기반으로 한 가장 믿을 만한 지식생성 도구였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우리는 인간 언어에 의존하지 않고서도 ‘제3의 지식’이 생성되는 상황을 보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변화해가는 지식혁명의 맥락 안에서 과학의 의의를 재정의해야하는 시대가 머지않아 올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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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0월 과학동아 정보

  • 이이봉 화학무기금지기구(OPCW) 정보·지식관리담당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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