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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신 이슈] 우리 집 외동 식물 산세베리아, 반려식물병원에 가다

 

7월 24일 서울 서초구에 위치한 서울시 농업기술센터 1층, 전형적인 ‘병원 인테리어’를 한 서울반려식물병원을 찾았다. ‘반려식물’이라는 용어 자체는 낯설지 않았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으로 집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식집사’가 된 사람들이 키우는 식물에 ‘반려’란 이름을 붙이게 된 것이다.

 

그러나 아픈 반려식물을 다시 살려내는 반려식물병원은 생소했다. 4월 개원 이래 900명의 식집사가 다녀갔다는 그곳의 하루를 지켜봤다.

 

오전 10시, 첫 식집사가 내원했다. 두 손으로 잡은 커다란 장바구니 안에는 3개의 화분이 들어있었다. 서울반려식물병원은 최대 화분 3개까지 검진 및 치료를 받을 수 있다.

 

군자란과 두 개의 선인장이 이날 병원의 첫 번째 환자였다. 군자란은 3년 전, 직사광선이 비치는 유리창 곁에 뒀는데 이파리 중 2개가 창에 닿아 화상을 입었다. 잎이 탄 것이다. 식집사는 “이후로 3년이 지났는데 한 번도 꽃이 안 폈다. 죽은 건지 궁금하다”고 말했다. 작은 선인장 환자는 어느 날 줄기에서 새로운 잎이 자라기 시작했다. 그런데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빼내는 것처럼 새로 자란 잎은 무럭무럭 자라는 반면 기존의 잎들은 쪼글쪼글해졌다. 마지막 밍크 선인장 환자는 흙에 파묻힌 줄기가 노랗게 변하고 있었다.

식집사의 고민, 뚝딱 해결하는 진료실

 

식집사의 설명과 고민을 쭉 듣던 주재천 서울반려식물병원 원장(서울시 농업기술센터 환경농업팀장)이 화분을 하나씩 살펴봤다. “군자란 생육 상태가 나쁘진 않아요. 그런데 집 안에서만 키우는 거죠?” 식집사가 “맞다”며 고개를 끄덕이자, 주 원장이 말을 이었다. “군자란은 추워야 꽃이 펴요. 5~10℃ 정도 되는 기온에서 30일 이상 있어야 하거든요. 그런데 집에서는 겨울에도 난방을 하기 때문에 그 정도 기온까지 안 떨어지잖아요.”

 

문제는 기온이었다. 화상과는 별개의 이유였다. 군자란의 꽃을 보고 싶다면 추운 공간에 두고 강하게(?) 키웠어야 했다. 주 원장은 “지금은 물 빠짐이 너무 잘 되는 흙이라 영양제를 주고 싶으면 액체형보다는 고체형 알비료가 더 좋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타버린 이파리는 왜 그대로인 건가요?” 옆에서 진료 과정을 지켜보며 의문이 생겼다. 3년 전에 화상을 입었다고 했는데, 오려내듯 잘린 이파리는 그대로였기 때문이다. 기자의 질문에 주 원장이 웃으며 대답했다. “식물은 회복이 원래 안 돼요. 새순이 돋아나며 계속해서 살아가는 거죠.”

 

두 번째 선인장은 과거 접목(접붙이기)을 한 적이 있었다. 접목은 줄기 혹은 뿌리에 서로 다른 식물 개체를 접착시켜 새로운 식물체로 가꾸는 방식이다. 새로 자란 잎을 잘라내서 새로 심으면 된다는 간단한 처방이 내려졌다.

 

수술이냐 자연치유냐, 그것이 문제로다

 

문제는 마지막 환자, 밍크 선인장이었다. “온실로 올라가서 뿌리를 한 번 봅시다.” 농업기술센터 건물 뒤편, 밖으로 나가 계단을 오르자 야트막한 언덕 위로 약 300㎡ 규모의 온실이 있었다. 이곳은 집중관리가 필요한 식물을 치료하는 서울반려병원 ‘입원실’이었다. 주 원장은 밍크 선인장을 화분에서 꺼냈다. 뿌리는 문제가 없었다. 주 원장은 커터칼을 꺼내 노랗게 변한 뿌리 부분 줄기를 얇게 떼냈다.

 

“고민이네요.” 한참 밍크 선인장을 들여다보던 주 원장이 입을 뗐다. “선인장이 세균에 감염된 건데, 이 병이 계속 진전돼 줄기를 타고 올라갈지, 아니면 스스로 회복하면서 멈출 건지에 따라 처방이 달라지거든요.” 식물이 성숙해지면 줄기와 뿌리 부분이 단단해지는데, 이를 목질화라고 한다. 밍크 선인장은 약 3달 전부터 세균에 감염된 것으로 보였음에도, 감염된 부분을 제외한 뿌리와 줄기에서는 정상적으로 목질화가 이뤄지고 있었다. 무조건 감염된 부분을 잘라내는 ‘수술’을 결정하기 어려운 이유였다. 찬찬히 설명을 듣던 식집사도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입원시키는 걸로 합시다.” 온실의 가장 안쪽에 ‘관계자 외 출입금지’ 팻말이 달린 입원실로 향했다. 입원실은 실제 병동처럼 운영됐다. 집중치료, 살균치료, 살충치료 등 입원한 반려식물들이 각자의 병명에 따라 모여있었다. 주 원장은 밍크 선인장에 살균제를 한 번 도포한 뒤 살균치료 테이블에 올렸다.

이날 식물병원을 찾은 반려식물 환자는 총 8개. 그중 2개의 식물에 입원 결정이 내려졌다. 김진희 서울반려식물병원 실장은 “평소보다 입원이 많은 편”이라 말했다. 반려식물병원은 식집사들이 식물의 문제와 해결 방안을 알아가, 직접 식물의 회복까지 이뤄내는 것을 목표로 한다. 한 예로 식물에 필요 이상으로 물을 주는 ‘과습’은 내원하는 식물들의 가장 대표적인 문제다. 시들어 가는 식물을 화분에서 꺼내 보면 과습으로 흙과 뿌리가 썩어가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때 처방은 당연히 물을 주는 방법을 바꾸는 것이다. 주 원장은 “많은 분들이 주기적으로 물을 줘야한다고 생각하는데, 물이 필요한 때는 계절별로 또 기온별로 다르다”고 설명했다. 같은 식물이더라도 건조하고 더운 환경에서는 물을 많이 먹고, 습하고 시원한 환경에서는 적게 먹는다는 것이다. 따라서 화분의 흙을 손으로 조금 파본 뒤 물이 묻어나지 않을 때 물을 줘야 한다. 그때가 내 반려식물이 갈증을 느끼는 때다.

 

기자의 산세베리아는 ‘어쩌다’ 살았다

 

“이 친구가 제 유일한 반려식물, 산세베리아예요.” 오전 11시 내원 예약이 잠깐 빈 시간, 기자도 가방에 든 산세베리아를 조심스럽게 꺼냈다. 올해 초, 기자의 언니 집에서 시들어 가던 것이었다. 그전까지는 반려식물을 따로 키우지 않았음에도 ‘이걸 내가 가져가서 한번 살려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산세베리아는 그렇게 우리 집 외동 반려식물이 됐다.

 

산세베리아는 병원에 데려오기 전부터 회복 조짐을 보였다. 이파리는 두 배 이상 자랐고, 색도 초록빛을 띠었다. 그런데 궁금했다. 어떻게 해서 살아난 걸까. 한 가지 짐작이 가는 부분은 계란 흰자였다. 기자는 계란 요리를 하고 나면 반드시 계란 껍질을 으깨서 화분에 올려 뒀다. 껍질 안쪽에 묻어있는 흰자를 섭취하게(?) 하기 위해서다. 과연 유효했을까.

 

“별로 도움은 안 됐을 거예요.” 주 원장은 웃으며 대답했다. “계란 껍질에는 칼슘이 굉장히 많아요. 껍질을 믹서기로 곱게 갈아 흙이랑 섞어주면 미생물이 분해하며 식물이 흡수를 할 수 있게 돼요. 아니면 현미 식초에 껍질 간 것을 녹여 칼슘을 빼낸 다음 물과 희석해 비료로 만들 수 있고요. 이 두 가지 방법 말고는 식물에 의미가 없어요.” 한 마디로 산세베리아는 계란 흰자를 그냥 먹을 수 없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산세베리아는 어떻게 살아난 걸까. 혼란스러운 기자의 표정을 보며 주 원장은 보통 물을 언제 주는지 물었다. 더 혼란스러웠다. 보통이랄 게 없었다. 마지막으로 물을 줬던 때가 언제였는지 기억이 나지도 않았다. 주 원장은 화분에 올려둔 계란 껍질을 하나씩 꺼내며 말했다. “지금 계란 껍질이 바삭바삭 말랐어요. 물을 거의 안 주셨던 거죠. 그게 좋았던 거예요. 아마 그 전에 죽어갔다고 했던 건 과습 때문이었을 거예요.” 순간 ‘소가 뒷걸음질 치다가 쥐를 잡는다’는 속담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식물, 사랑하는 만큼 행복해진다

 

서울반려식물병원은 서울 외곽에 위치해 접근성은 좋은 편이 아니다. 또 식물을 직접 들고 와야하는 만큼 차를 몰고 오지 않으면 방문하기가 힘들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4월 10일 반려식물병원이 개원한 뒤, 지금까지 900여 명의 식집사가 찾아왔다. 그중 52.8%가 20~30대다. 주 원장은 “식물을 기르는 연령층이 많이 낮아졌음은 물론이고, 식물에 애정과 정성을 담는 사람들이 많아졌다는 것을 체감한다”고 말했다.

 

2003년 카렌 미든 미국 서던일리노이대 농업과학대 교수팀은 원예 활동이 심리 건강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doi: 10.21273/HORTTECH.13.1.0081 미든 교수팀은 두 개의  장기요양시설에 노인들을 각각 31명씩 모았다. 하나의 시설에서는 노인들이 7주 동안 주기적으로 원예 활동을 했고, 다른 시설에서는 일상적인 생활만 했다. 7주가 지난 뒤 실험군과 대조군의 심리 건강 그래프는 각각 우상향, 우하향을 그렸다.

 

앞으로 반려식물병원은 상급의료기관으로 운영될 예정이다. 현재는 서울시 25개 구 중에 4개의 자치구(동대문구, 양천구, 은평구, 종로구)에서 반려식물 클리닉을 운영하고 있다. 앞으로는 25개 구 모두에 클리닉을 설치해 동네 의원처럼 1차 의료기관으로 운영하려 한다. 그리고 반려식물병원은 특별히 수술 혹은 입원이 필요한 위급 식물이 이송될 수 있게 할 예정이다. 더 많은 식집사들이 쉽고 편하게 반려식물과 더불어 살 수 있게 하기 위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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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09월 과학동아 정보

  • 김태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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