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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어도 과학책은 문장 때문에 고민하지 않도록"

 

“물리학의 구약성서.”

 

아이작 뉴턴이 1687년 발표한 ‘자연철학의 수학적 원리(Philosophiae Naturalis Princip-ia Mathematica)’를 이르는 말이다. 줄여서 ‘프린키피아’라고 불리는 이 책에서 뉴턴은 자신의 운동법칙 세 가지와 만유인력의 법칙을 정리했다. 그리고 이 법칙들로 대포알이 떨어지는 궤적부터 달과 태양계 행성들의 움직임까지, 당시 밝혀진 자연계의 운동 대부분을 설명해낸다. 뉴턴의 머릿속에서 탄생한 고전역학의 바탕이 이 책에 고스란히 남아있다. 

 

뉴턴이 프린키피아를 발표하고부터 300여년이 지난 올해 4월, 프린키피아 한국어 번역본이 출간됐다. 번역을 맡은 박병철 박사가 남긴 역자 후기 서두가 인상깊다. “나는 기독교인이 아니지만, 내가 알기로 성서의 번역본에는 역자 후기라는 것이 없다. 그런 엄청난 책에 어느 누가 감히 흔적을 남기려 하겠는가. 물리학의 구약성서로 통하는 ‘프린키피아’의 번역을 간신히 마친 지금, 불현듯 위와 같은 생각이 뇌리를 스친다.” 물리학의 구햑성서와 정면으로 마주하며 3년을 보낸 그를 6월 30일 경기도 군포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톱스타 가수의 데뷔무대가 궁금하다면”

 

책의 저자나 번역가를 인터뷰할 때는 그 책을 다 읽는 게 보통이다. 하지만 프린키피아는 960쪽에 달하는 ‘벽돌’이었다. 멋쩍게 웃으며 박 박사에게 “책을 다 읽진 못했다”고 고백했다. 그는 “당연히 그럴 수 있다”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오늘날 우리는 뉴턴의 운동법칙과 만유인력의 법칙을 깔끔하게 정리된 상태로 배운다. 하지만 프린키피아는 이 내용이 세상에 처음 등장한 그 모습 그대로 남아있다. “고색창연한 언어로 돼 있다”는 것이 박 박사의 표현이다. 

 

그러면서도 단순하다. 박 박사는 ‘면적 속도 일정의 법칙’을 예로 들어 설명했다. 행성이 태양을 공전할 때, 태양과 행성 사이를 이은 선분이 같은 시간동안 쓸고 지나간 부채꼴의 넓이가 항상 똑같다는 법칙이다. ‘케플러의 제2법칙’이라고도 불리는 이 법칙은 요하네스 케플러가 스승인 티코 브라헤의 자료를 분석해 알아냈다. 박 박사는 “케플러와 티코 브라헤 두 사람이 60년 동안 알아낸 것을 뉴턴은 한 챕터만에 정리한다”고 했다. “뉴턴의 매력입니다. 그 모든 내용을 기하학과 실험으로 정리한 건 괴물입니다. 인간이 아니예요.” 

 

그래서 프린키피아를 읽을 때에는 고전역학을 공부한다는 마음보다, 이 학문을 시작한 뉴턴을 만난다는 마음을 가지는 게 좋다. 박 박사는 “톱스타가 된 가수의 데뷔무대도 보고 싶지 않겠어요?”라면서 “프린키피아를 읽는 이유도 마찬가지”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프린키피아를 구매한 사람들이 쓴 글을 보니까 ‘이 책은 내가 읽는다는 보장은 없고, 읽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는데, 이런 책은 옆에 둬야 안전하다’고 썼더라”고 했다. 세월이 흘러 유명해지고 또 세련되게 정리된 뉴턴의 고전역학이 막 데뷔했을 때 모습을 찾는 ‘팬심’이 300년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사람들을 프린키피아로 이끈다.

 

 

“물리나 수학 같은 분야는

그 분야 과학자가 직접 번역을”

 

박 박사는 이론물리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뒤, 30년 가까이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친 과학자다. 그런 그가 ‘파인만의 물리학 강의’ ‘엘러건트 유니버스’ ‘신의 입자’ 등 100여 권의 책을 번역하게 된 원동력은 ‘의무감’이었다. 

 

“대학에 다니던 시절, 학과 교재의 번역본을 봤는데 너무 어려웠습니다. 당시엔 그 이유가 제게 문제가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번역이 엉터리인 거더라고요. 한국어로 옮겨놓은 문장으로 고민하는 일은 없어야 하잖아요. 번역만 제대로 됐어도 공부시간을 3분의 1은 줄였을 거란 생각이 들었죠. 그 시간을 줄여주자는 의무감이 있었습니다.”

 

여기에 물리나 수학과 같은 분야는 될 수 있으면 그 분야 과학자가 직접 번역해야 한다는 생각도 더해졌다. 박 박사의 ‘버킷 리스트’에 들어있었던 프린키피아 번역의 경우 특히나 그렇다. 뉴턴이 자신의 이론 중에서도 정수만 정리해 적어, 읽는 이들이 “일부러 어렵게 썼다는 느낌을 받을 정도로” 까다로운 책이다. 

 

박 박사는 “반드시 이해하고 번역하려고 노력했다”면서 “생략된 부분을 증명해가며 이해하면 증명만 다섯 페이지가 넘는 경우도 부지기수”였다고 회상했다.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생략된 증명 중 반드시 필요한 부분은 각주로 정리해뒀다. 학자가 아니라면 하기 어려운 일이다. 

 

그에게 마지막으로 프린키피아에 도전하는 독자들에게 해 줄 조언을 물었다. “뉴턴을 매우 존경하지만, 나중에는 미운털이 박혔습니다. 한두줄만 더 쓰면 쉬워질텐데 억하심정이 있나 싶었죠. 그 탓에 보통 4~5개월이면 끝나는 책 번역 과정이 3년이 걸렸고요. 하지만 번역하는 3년 내내 감탄의 순간이 이어졌습니다. 뉴턴이 20대 젊은 나이에 이 내용을 혼자 알아냈다는 건데, 제가 보기에 그건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독자 여러분이 그 증명 과정을 모두 다 따라갈 필요는 없어요. 명제만 읽어도 됩니다. 그러면 이 책이 10분의 1로 쉬워지고 정신건강에도 좋습니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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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08월 과학동아 정보

  • 김소연 기자 기자
  • 디자인

    박주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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