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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루하던 과학 과학책을 만나면서 재밌어졌죠"

 

몇년 동안 번역돼 나오기만을 오매불망 기다리던 책이 있었다. 미국 신문 뉴욕타임스의 과학 칼럼니스트인 칼 짐머가 쓴 ‘웃음이 닮았다’이다.

 

멘델의 완두콩부터 최신 유전자 편집 기술인 크리스퍼까지 다룬 방대한 유전의 서사시를 읽으며 이런 두꺼운 책은 어떤 사람이 번역했을지 궁금해졌다. 그래서 무더운 날씨였던 7월 3일, 경기도 일산의 한 카페에서 웃음이 닮았다를 번역한 이민아 번역가를 만났다. 그와 함께 한 저녁은 인터뷰보다는,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 모여서 벌인 수다판에 더 가까웠다.

 

 

“과학자들이 푸는 재미난 이야기에 빠졌죠”

 

“웃음이 닮았다는 유전학이 어떻게 과학으로 인정받고 하나의 학문이 됐는지 보여주는 연대기입니다. 분량은 많지만 내용이 재밌어서 외려 짧은 책보다도 잘 읽혔어요.”

 

이민아 번역가는 책을 소개하며 인터뷰를 시작했다. 웃음이 닮았다는 중세 유럽을 호령했던 합스부르크 왕가의 어두운 비밀에서 시작한다. 합스부르크 왕가의 자손들은 대대로 툭 튀어나온 아랫턱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너무 특이해 ‘합스부르크 턱’이라 불렀다. 지금도 유럽 전역 미술관의 초상화에서 합스부르크 턱을 확인할 수 있다. 합스부르크 턱이 근친 결혼을 선호하던 왕가에서 발생한 유전 질환으로 생겼다는 사실은 시간이 훨씬 지난 후대에야 유전학자들에 의해 밝혀졌다.

 

웃음이 닮았다는 합스부르크 왕가의 어두운 비밀은 물론 우생학이 가져다준 비극, 노예였던 조상의 뿌리를 찾아나선 아프리카계 미국인까지 유전학과 관련된 결정적 순간을 보여준다. 이야기가 중심이 되는 구성이라 실감나게 읽을 수 있다. 이 번역가는 “칼 짐머는 타고난 이야기꾼”이라며, “이렇게 이야기의 매력이 살아있는 과학책을 좋아한다”고 말했다.

 

아무리 잘 읽혀도 분량이 분량이니만큼 번역 작업이 힘들었을 것 같았다. 기자의 질문에 이 번역가는 웃으며 “그래서 이 책을 번역할 때는 간단히 연대표를 만들어 정리했다”고 말했다. 책에서 소개되는 여러 사건들의 시기나 등장인물이 조금씩 겹치는 경우가 있어서, 연대표를 만들어두면 읽기에 훨씬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저는 책을 정확히 번역해야 하니 연대표를 만드는 작업이 꼭 필요했어요. 이 책을 읽는 독자분들도 연대표를 그리며 읽어보시면 훨씬 재미있게 보실 수 있을 겁니다.”

 

 

“인문학도지만 과학책이 가장 재밌어요”

 

이민아 번역가는 이화여대 중어중문학과를 졸업한 “전형적인 문과형 인간”이었다. 책을 좋아하는 마음에 무작정 책 한 권을 통째로 번역해 여러 출판사의 문을 두드린 게 번역가 인생의 시작이었다. 그렇게 연을 맺은 한 출판사에서 번역 제안을 받으면서 처음으로 과학책을 접했다.

 

그후로 문예평론가 수전 손택의 에세이부터 여행기, 소설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책을 번역했지만, 이민아 번역가는 자신의 마음을 홀딱 뺏어간 장르는 단연 과학책이었다고 고백했다. 이 번역가는 영국 태생의 의사인 올리버 색스의 저서와, 브라이언 헤어와 버네사 우즈의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 등 이미 10권 가까운 과학책을 번역한 베테랑이다.

 

“과학책은 제가 생각하지 못하고 지나쳤던 것들을 다시 생각하게 만들어 줘요. 웃음이 닮았다에도 조상과 족보를 유전학과 연관지어 설명하는 장면이 나오잖아요. 과학처럼 우리 삶과 가까운 영역이 없는 것 같아요.”

 

과학 전공이 아닌데 과학책을 번역하는 데 어려움은 없었을까.

 

“과학을 공부하지 않았다보니 당연히 배워야할 내용도 많고 더 힘들죠. 그만큼 누구보다도 더 열심히, 꼼꼼하게 책을 읽어야 합니다.”

 

이 번역가는 “번역은 매력적이지만, 알면 알수록 어려워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영어의 경우 형용사와 부사를 굉장히 다채롭게 쓰는데, 그에 맞는 어휘를 고르는 작업이 정말 어려워요. 선배 번역가인 이희재 선생님이 ‘번역이란 언어의 무게를 재는 일’이라고 했는데, 무게에 더해 언어의 결도 맞추는 일인 셈이죠.”

 

“어렸을 때 과학책을 많이 읽으시길”

 

이야기꾼의 과학책을 좋아한다는 이 번역가에게 특별한 번역 경험으로 남는 책이 있냐고 묻자, 올리버 색스의 ‘색맹의 섬’을 꼽았다.

 

“색맹의 섬은 의사인 올리버 색스가 유전적 색맹이 모여사는 섬을 찾아가는 여행기입니다. 가볍지만 정말 아름다운 책이예요. 읽다 보면 우리가 비장애인의 눈으로 세계를 봐왔다는 깨달음을 주죠.”

 

수없이 많은 책을 읽어온 그이지만, 특히 과학책은 “너무 늦게 만난 친구이자 스승같은 존재”다. “학교에서는 지루하기만 했는데, 과학책을 번역하며 과학의 재미를 느꼈다”며, 과학동아 독자들에게 “좀 더 어렸을 때 과학책을 접하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과학의 세계를 일찍 알았다면, 제 진로는 물론, 인생이 바뀌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여러분도 재미있는 과학책을 많이 읽어 보세요. 세상이 훨씬 재밌게 보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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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08월 과학동아 정보

  • 이창욱 기자 기자
  • 디자인

    박주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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