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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라비토나 [천선란 저, 2023년 6월호]

 

“망할 영감이 저기 박제돼버렸지 뭐야? 나는 못 봐. 영감이랑 나이 차이 더 나면 창피해서 못 다녀. 이러다 반백 살 차이 나겠어.”

제니가 굽은 허리를 꼿꼿이 펴며 역정을 내자, 주변에 모여 있던 아이들이 웃음과 염려를 동시에 터트렸다. 제니 주변에 모여 있는 이들을 ‘아이들’로 묶기에는 20대 후반부터 60대 중반까지 다양해 억지스러운 면이 있었지만 제니만은 가능했다. “이놈들아, 늙은이 떠드는 게 재미있냐?”라고 꾸짖다가 60대 중반의, 흰 머리가 듬성듬성 섞인 노인에게는 머리에 흰 털 난 것들은 웃지 말라고 외치기도 했다. 

100세를 넘기는 인간이야 많고 많았지만 그중에서도 제니는 고령자에 속했다. 제니는 올해 135살이었다. 최상의 수명을 의미하는 상수上壽에 이립而立을 합하고도 5년을 더해야 하는 나이란 말이다. 더 가혹하게 말해보자면 한 세기를 실컷 구경하고서도 새로운 세기의 1/3을 산 셈이다.

더욱이 제니는 건강한 신체의 소유자였다. 누구는 그를 정정하다고 표현했지만 정정하다는 단어는 제니를 온전히 소개해주지 못했다. 외모 나이 칠순. 신체 나이 환갑. 한 마디로 제니는 나이를 반토막 내어 살고 있었고, 불혹의 햇병아리들보다도 훨씬 활기차고 팔팔했다. 사람들은 135살이나 된 제니가 2라운드쯤 포기할 거라고 예측했지만, 제니는 단 한 번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참가자들은 다양한 이유로 중도 포기를 외쳤다. 10대는 끈기가 부족했고, 2, 30대는 생각이 너무 많았으며, 그 뒤부터는 각종 질병과 체력적 한계, 가족 간의 타협 등등의 다채로운 이유로 중도 포기했다. 

그러니 최고령 참가자인 제니가 최종 선발대에 오른 것이 ‘할머니의 도전’이라며, 세간에서 제니의 삶을 멋대로 톺아보는 영상으로 호들갑 떨며 조회수를 쪽쪽 뽑아먹는 것도 이해 못할 바는 아니었다. 세상은 언제나 그런 식으로 타인의 삶을 전시하며 돌아갔으니까. 이 나이 먹고 제니의 차례가 온 것을 반갑게 여겨야 할까. 시선과 평가의 시대에 한 번쯤 도마 위에 올라야 화끈하게 산 삶 아니냐며, 인생 말년에 대운이든 악재든 일단 무언가가 몰려온 게 무료하지 않고 얼마나 좋으냐고, 어쨌거나 둘 다 운이 아니냐며 시샘 섞인 말로 떠들어대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제니의 생각은 달랐다. 원래 창창할 때 주목받는 것이 제일 어려운 법이다. 아이거나 노인이어야 사람들은 기꺼이 시선을 하사한다. 마흔 중반까지 사용하다 멈춘 SNS 계정의 팔로워가 며칠 만에 몇십만 팔로워가 되며 할머니를 응원한다는 각종 댓글이 달린 것도 벌써 몇 달 전 이야기이다. 이 관심은 최종 선발이 완료된 뒤 몇 달 뒤면 아마도 다 사그라들 테지만, 사람들은 그런 것 따위 관심 없다는 듯 혹은 이 재미가 곧 끝날 걸 알기에 마지막 한 올까지 태우겠다는 듯 열렬히 제니를 응원했다. 

이렇듯 세상은 제니로 떠들썩했으나, 그러거나 말거나 제니에게는 이 모든 것이 그저 순리일 뿐이었다. 애당초 목표는 오로지 우승 하나였기 때문이었다.

“몇 살이나 차이 나는데요?”

휴게실 의자 끄트머리에 간신히 걸터앉은 형석이 혹시나 제 질문을 못 들을까 싶어 선생님을 부르듯 손을 높이 들고 물었다. 그게 꼭 선생님께 짓궂은 장난을 하는 초등학생처럼 보였다면, 역시나 제니여서 가능한 생각이었으리라. 형석은 다음 주 퇴소 예정자였다. 올해로 27살인 형석은 최종결승까지는 올라왔지만 진짜로 선발될 마음은 애당초 없다고 했다. 이력서에 워낙 기상천외한 것을 적어야 하는 시대이니, 이제 하다하다 목숨 걸어야하는 지원대에도 일단 이력서부터 낸다고 제니는 혀를 내둘렀다. 제니도 한때 이력서를 끄적이긴 했지만 그 이력서로 회사에 지원한 적은 없었다. 

어쨌거나 형석이 나가면 H조는 이제 채 10명이 남지 않았다. 아홉 명이 남던가. 제니는 앞에 앉은 사람들의 머릿수를 헤아렸다. 제니까지 합해 아홉. 하지만 이 자리에 없는 한 명까지 합하면 열. 여기서 다시 형석을 빼면 아홉이었다. 한 조당 50명으로 시작해 이제 한 자릿수가 됐다. 그마저도 단 한 명을 빼면 전부 퇴소 신청하거나, 이길 가망이 없는 녀석들뿐이었다. 현재 H조에서 제니의 경쟁 상대는 딱 한 명인 셈이었다. 

“23살 어린가, 25살 어린가.”

그 영감이 몇 살이었더라. 자신보다 어리다는 것 외에 사람 나이를 기억하지 않은 지 너무 오래된 탓에, 수십 년을 산 영감의 나이마저 까먹었다. 하긴 그게 뭐가 중요하겠는가. 세상에는 영감 나이 말고 외울 것이 천지인데. 

“윽. 할머니 징그러워요.”

형석이 인상을 찌푸렸다.

“제가 지금 바로 태어난 애랑 만나는 거잖아요.”

“네가 지금 그러면 범죄고. 걔가 20살, 내가 40살에 만났음 징그러웠겠지만 걔가 환갑이고 내가 팔순 때 만났다, 이놈아. 내가 더 어려 보였어.”

둘러앉은 참가자들이 웃음을 터트렸다. 이 말을 들으면 영감이 퍽 억울하겠지만, 저 안에 갇혀 버린 놈이 뭘 할 수 있겠는가. 더욱이 제니의 말은 거짓이 아니었다. 정말로, 제니는 저 영감이 자신보다 반백 살 어려져 젊음을 떵떵거리는 모습은 꼴도 보기 싫었다.

시야가 침침해지는 걸 보니 잘 시간이 된 모양이었다. 생체 시간은 스마트 워치에 버금가는 수준이었다. 자리에서 일어나던 제니는 앞에 앉은 노인, 그렇지만 제니에 비해서는 새파랗게 젊은 남자에게 넌지시 물었다.

“선재는 어디 있어? 밥은 먹었대?”

제니의 질문에 남자가 머리를 긁적이다가 “글쎄요뀉.” 하고 말을 흐렸다. 

“니들 배에 집어넣을 때 남 뱃속에 들어가는지도 좀 봐라, 이것들아.”

허벅지 힘을 준다, 고 생각하며 제니가 걸음을 내디뎠다. 의식 없이 걸을 때도 있었지만 이제 제니는 걷는다, 눕는다, 일어선다, 허리를 수그린다, 물건을 든다, 따위의 명령어를 행동 전에 입력해야만 했다. 그래야만 멈춰있던 부위에 전원을 켜듯 근육이 움직였다. 제니는 이런 몸에 익숙해진지 오래되었고 행동하기 전에 이미지를 상상하는 버릇 덕에 창창한 체력들 사이에서 여태 살아남았다고 생각했다. 젊음에는 도전과 우발성이 포함되어있고, 이것들은 평소에 고체처럼 박혀있다가 이따금 젊음이 요동칠 때 액체로 혼합되는데, 그때 죽음의 무늬가 생긴다. 실제로 도전자 대부분이 훈련 도중 무리하게 도전했다가 다쳐 퇴소했다. 그에 비해 제니는 느리지만 신중했고, 허투루 딛는 걸음이 없었다. 제니는 걷는다. 넓디넓은 훈련소 가장 구석에 있는 숙소에, 그중에서도 가장 끝 방인 선재의 방에.

이곳에 온 후 제니는 우승해야만 하는 동기가 추가되었다. 바로 선재를 떨어트리는 것이었다. 그 말은 제니가 우승해야 한다는 것과 같은 뜻이었다.

선재는 입소식 때부터 신경 쓰이게 만든 아이였다. 처음에는 서글서글하게 웃는 게 참 예뻐서 시선이 자꾸만 닿았다. 목덜미가 훤히 드러나도록 짧게 자른 머리가 비죽비죽 뻗친 것도, 뺨에만 살구색 블러셔를 옅게 바른 것도, 운동화 뒤꿈치를 살짝 구겨 신은 것도 전부 사랑스러웠다. 저 아이는 어쩌다 여기에 왔을까. 아마 재미있어 보여서겠지. 본인 홍보를 노린 인플루언서일지도 모른다. 선재는 그런 것과 잘 어울렸다. 보기만 해도 사람을 기분 좋게 만드는 힘이 있었으니까. 젊었더라면 친구가 되었을 것이다. 물론 선재는 친구에 나이가 어디 있느냐고 제니의 머리를 묶어주며 말했지만, 제니는 선재를 만난 이후 선재 나이일 때의 자신을 자주 떠올렸다. 너무 순식간에 지나가버린 시절이어서 책갈피조차 꽂아놓지 못했는데 선재는 그 페이지를 단번에 펼치게 했다. 25살의 제니가 선재 옆에 서는 꿈을 꿨다. 선재는 잊었던 감각을, 제니 안에 갇혀있던 시절을 끄집어낼 수 있는 아이였다. 

그런 선재의 목표가 우승이었다. H조 최후의 1인. 제니는 그 말을 듣자마자 심장이 쿵, 떨어졌다. 그게 무슨 말을 뜻하는지 알고서 하는 말일까? 그리하여 각자 자신을 소개하는 시간이 끝나고 부랴부랴 다리를 움직여 선재의 빠른 걸음을 쫓았다. 간신히 명이 다하기 전에 선재를 붙잡아, 아가 지금 네가 한 말이 무슨 뜻이냐고 물으면서도 굳이 그 뜻을 선재의 입으로 확인받아야 할까, 그냥 묻지 않고 돌아가라고 타이르는 게 맞지 않을까 생각했다. 선재의 대답은 그 아이가 풍기던 분위기만큼이나 산뜻했다. 

“눈치챘어요? 어떻게 알았어요?”

“내가 평생 물살이 잡기만 해서 뭐든 눈만 보면 알아.”

“우와, 할머니 수영 잘해요? 저는 물에 뜨지도 못하는데.”

선재에게 말한 것처럼 제니는 물살이를 팔아 살아왔다. 외계 운석이 떨어졌다는 실시간 특보가 흘러나올 때도 제니는 제주도 ‘오봉리 횟집’의 캄캄한 앞바다를 헤엄치고 있었다. 더 어렸을 때는 배를 탔었지만 바다에 뛰어든 건, 바다에 사는 물살이 수가 급격히 줄어들며 바다에 들어가야만 그나마 건질 게 있어서였다. 서울살이에 대한 꿈은 일찍 사라졌다. 수학여행으로 간 서울 관광지의 기억이 더러운 거리와 예쁜 건물 뒤에 쌓인 쓰레기봉투가 다였기 때문이었다. 서울은 쓰레기 도시였다. 낮에는 화려했다가 해가 지면 스멀스멀 밀려 나오는 쓰레기가 징그러웠다. 그래서 제니는 서울에 가겠다는 마음을 일찍 접었다. 그렇다고 제니가 나고 자란 제주도에 쓰레기가 없던 건 또 아니지만 바다가 있지 않은가. 육지에 쓰레기가 발 디딜 틈 없이 쌓이면 바다에 뛰어들면 그만이지 않은가.

언제든 바다에 뛰어들기 위해 수영을 배웠다. 실내 수영장을 가려면 버스를 타고 시내까지 가야했기에 제니는 옆집 친구였던 로아에게 바다 수영을 배웠다. 물을 가로지를 때마다 손에 쓰레기가 잡혔다. 수영할 때마다 기념 삼아 하나씩 주웠다. 그렇게 모은 쓰레기로 언덕 하나쯤 만들었을 때부터 제니는 바다를 업으로 삼았다. 그 어떤 까탈스러운 성격도 바다에 비하면 순하디순했다. 바다 밖의 날씨도 예측하기 어려운 시대였지만, 바다는 예측 불가의 영역이었고 제니와 로아는 그곳에서 죽지 않기 위해 서로의 눈을 읽었다. 눈은 많은 걸 말했다. 그렇기에 선재의 눈이 ‘그라비토나’ 지대에 대해 궁금증과 모험심이 아닌 다른 것을 품고 있다는 걸, 제니는 바로 알았다.

선재는 문틈으로 얼굴만 내밀었다. 표정에는 제니를 상대하기 싫다는 귀찮음이 가득했다.

“또 잔소리하려고.”

“아니, 산책하자고. 오늘 걸어야 하는 걸음 수를 아직 다 못 채워서.”

“근데 하필 왜 나를뀉. 알겠어요, 기다려요.”

제니는 선재를 기다리며 주머니에 있던 손바닥만 한 봉을 꺼내 크기를 늘려서 지팡이로 만들었다. 선재는 검은색 캡모자를 눌러쓰고 나왔다. 모자를 쓰지 않으면 더 좋았으련만. 선재가 눈을 가린 것이 내심 아쉬웠지만, 제니는 내색하지 않고 자리를 떴다.

그라비토나 지대는 한반도 철원 부근의 군사분계선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반지름 80km의 구역으로 시공간이 뒤틀린 고중력의 공간이다. 그 가운데에는 어느 날 이 모든 재앙을 이끌고 우주에서 떨어진 ‘에그’가 있다. 그것은 달걀와 똑같은 형태와 크기로, 유성의 잔재처럼 지구 대기권을 통과했다. 땅에 닿기 전에 불타 먼지처럼 쪼개질 거라는 예측을 깨고 그것은, 쇠를 달궈 만든 것 같은 에그는 대기권에서 불타 사라지지 않고 그대로 한반도 정중앙에 꽂혔다. 왜 하필 넓디넓은 대륙 중 이 좁은 한반도 정중앙이었는가? 그 위치 선정은 단군 할아버지만이 이해하겠으나, 어찌 됐건 그것은 철원 위 군사분계선에 떨어졌고 그 즉시 반경 160km 내의 모든 것을 묶었다. 그것은 묶었다고 표현하는 게 맞았다. 탁, 깨진 달걀. 원을 그리며 퍼지는 흰자. 흰자의 올가미에 걸려버린 사람들, 그리고 제니의 애인.

정확히 제니보다 21살 어린 한희는 등산에 빠져 있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산자락에 있는 각종 산나물을 버무려 무치고, 부치고, 비빈 음식들이었지만. 한희는 20년 동안 다녔던 회사를 명예퇴직하고 홀로 제주도를 찾았다. 한라산을 비롯하여 각종 오름 오르기에 흠뻑 빠졌다가, ‘오봉리 횟집’에 온 것은 제주도에 온 지 16일이 지났을 때였다. 그때쯤 한희는 이미 제주도에서 먹어야 할 음식은 죄다 먹은 뒤였고, 이제 슬슬 남은 인생을 무엇으로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으로 속이 답답해지기 시작했다. 학업을 다시 시작하는 친구들도 많았고, 60대를 기점으로 중장년층만 취업할 수 있는 회사들도 꽤 많았지만 한희는 조금 더 색다른 일을 하고 싶었다. 이전의 삶과는 형태가 전혀 다른 일. 한때 꿈틀거렸으나 지금은 잠들어버린 한희의 예술성을 깨울 수 있는 그런 일. 한희는 그런 생각에 골몰한 채 오봉리 횟집에 들어가자마자 소주 한 병을 시키며 핸드폰만 붙잡았다. 

식사는요?

대충 잘 나가는 거 아무거나 주세요.

회 드실 건가요, 찌개 드실 건가요? 아니면 둘 다? 방금 해삼 따왔는데, 그건? 

한희는 그제야 핸드폰에서 시선을 떼, 주문받는 직원이 해녀복을 입고 있다는 걸 알았다. 그 순간 한희는 제 안에서 꿈틀거리는, 아니, 그보다 더하게 요동치는 덩어리를 느꼈다. 맛보게 될 해삼에 대한 기대감이었는지, 미식을 따라 모험하는 두 번째 인생을 얼핏 느꼈는지, 아니면 바다를 헤엄치는 존재에 대한 경이감이었는지는 모르겠다. 그 셋이 합쳐졌을 수도 있다. 제일 확실한 건 한희가 제 앞에 서있는, 백발의 단발머리를 한 제니에게 반했다는 것이다. 그 상태로 제주도에 붙어살았다. 제니는 살아오며 총 12번의 연애, 한 번의 결혼과 사별을 겪었고 한희는 두 번의 연애와 한 번의 결혼, 이혼을 거쳤다. 생활 동반자 등록해놓고 동거하듯 살았다. 서로에 대한 들끓는 욕망이나 아집이 소거된 애정은 가만 틀어놓다 이따금 웃게 하는 한낮의 라디오처럼 소소하고 평온했다. 한희는 젊음이 흘러넘쳤고, 무언가에 도전하기 좋아했으며, 동시에 시시콜콜한 것까지 사장님께 보고하듯 제니에게 말했다. 

“사랑한다고 한 번은 말해줄 수 있지 않나? 그게 나이 든 사람의 자애심 아니냐고.”

“입술이 옹송그려졌잖아. 사랑한다는 단어에 안 어울려.”

“나이 먹고 그렇게 속이 좁으면 어떡해?”

“불만 있으면 붙어있지 말고 가든가, 그냥.”

“아이, 이제 이별은 죽었을 때만 해. 살아있는 사람이랑 헤어지는 건 그만 해. 그리고 당신 몫의 사랑은 내가 대신 말할게.”

“징그러운 소리 하기는.”

“어디서든, 언제든 사랑한다고 말하는 건 내가 할게.”

그리고 한희는 에그에 묶이고도 그 말을 지켰다. 에그에 묶인 것은 전부 멈춰 버린 줄 알았으나 아니었다. 엄청난 중력으로 시간이 느려졌다느니 전 세계 학자들이 매일 떠들어댔지만, 제니에게 중요한 건 어쨌거나 에그에 묶인 사람들이 죽지는 않았다는 것이고, 그저 그들의 시간이 이곳과 비교도 안 되게 느리게 흐른다는 것이며 에그를 파괴한다면 모든 것이 일상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시간의 간극이 너무 멀어지지 않도록 서둘러야 한다고들 말했다. 자칫 잘못하면 저 안에 있던 이들이 다시 세상의 흐름에 들어왔을 때는, 모두가 이미 사라진 후일 수 있다고. 

에그가 앞으로도 크기를 부풀리지 않을 거라는 거시적인 예측이 나왔을 때부터, 그곳은 관광지가 되었다. 사람들은 바리케이드 앞에 서서 망원경으로, 일그러지고 뒤틀린 공간과 그 안에서 박제된 듯한 사람들을 보았다. 그나마 경계 부근에 있던 사람만 보일 뿐, 중심부가 어떤 모습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전문가들 의견에 따르면 중심부는 시공간의 왜곡이 훨씬 심하여, 형체를 알아볼 수 없게 뒤틀렸을 거라는데 다행인지 불행인지 한희는 그라비토나 경계 부근에 있었다. 천연덕스럽게 웃고 있는 그 얼굴이, 제니가 구역 안으로 들어가는 인력에 지원한 이유였다.

훈련소는 그라비토나와 멀지 않았다. 걸어서 40분 거리. 산 지형에 있어 오르막이 심하지만 적당히 땀이 날 정도였다. 노을 질 때야 느낄 수 있는 가을의 서늘한 바람. 시간이 되어 버린 계절이 송골송골 맺힌 제니의 땀과 붉은 뺨을 식혀주었다. 제니는 아직 제 몸이 이런 사소한 것을 느낄 수 있다는 점이 좋았다. 아주 미약한 온도 차이로 느껴지는 바람, 열린 창문 틈으로 꺾여 들어오는 빛, 앉아있던 새가 날아가며 미약하게 흔들리는 나뭇잎, 걸을 때마다 느껴지는 끈적한 콘크리트, 시멘트의 냉기와 그곳에 묻은 흔적으로 세월을 가늠하는 마음의 여유가 아직 자신에게 남아있어서 다행이었다. 그와 동시에 선재는 묵묵히 걷고 있지만 의무적인 행위 외에 어떤 것에도 관심을 두지 않았다. 피부가 바람을 느끼지 못한다. 어제와 오늘을 헤아리고 내일을 떠올릴 마음이 죽어버렸으니 피부가 바람을 느낄 리가.

“거기 가족이나 친구가 없다고 하지 않았나?”

“네, 없어요.”

“가족이나 친구들이 참가를 말리지는 않았고?”

“네, 안 말렸어요.”

선재는 언제나처럼 무심하지만 성의껏 응했다.

“다들 네가 중도 포기할 거라 믿고 있어.”

“그렇겠죠, 아무래도.”

“기를 쓰고 노인을 이기려 들다니, 너는 공경도 모르냐?”

“어떻게든 애를 이기려고 하는 할머니는요? 자애심 몰라요?”

“우리 영감이랑 똑같은 소리 내뱉네. 이놈들이 툭하면 자애심, 자애심 거리네. 나는 나를 향한 자애自愛가 더 높았어! 그걸로 살아왔는데, 참 나.”

간만에 배에 힘을 주어 말하니 기침이 몰려왔다. 제니보다 먼저 선재가 걸음을 멈췄다.

“잠깐 쉬죠. 다리 아픈데.”

25kg 군장 메고 왕복 40km 걷기 시합을 1등으로 통과한 주제에 아프기는. 하지만 제니는 속아 넘어가는 척 옆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하늘에는 각종 비행체가 대낮에 뜬 별처럼 반짝였다. 그날 이후로 하늘에는 빛이 많아졌다.

에그가 떨어지던 그 순간 제니도 하늘을 보고 있었다. 발암물질 없는 맑은 하늘이 간만이라 보지 않을 수 없었다. 금학산에 있는 담터계곡에 간다고 했던 한희가 잘 도착했으려나, 계곡이 다 메말랐을 텐데, 그래도 하늘이 맑으니 덜 서럽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던 도중 떨어지는 에그를 보았다. 불붙은 새 같기도 했고 선명한 유성 같기도 했으며 우주에서 떨어진 비행체의 부품 같기도 했다. 하늘을 쪼개듯 선명한 선을 남기며 날아가는 에그를 볼 때만 해도 제니는 그것이 재수 없게 한희의 머리 위로 떨어질 거라 생각하지 못했다. 한반도 군사분계선에 떨어졌다는 속보를 들었을 때도 한희가 간 곳은 철원이지 북한은 아니니까, 하고 안일하게 생각했다. 

이상한 낌새를 느낀 건 에그가 떨어졌다는 속보가 전해진 지 한 시간이 지났을 무렵이었다. 이쯤이면 한희에게 연락이 왔어야 했다. 세상만사를 즐거운 단막극 정도로 소비하는 한희의 소감이 오지 않았다. 실로 오랜만에 불안을 느낀 제니는 인천항으로 가는 선박표를 구했다. 에그 때문에 비행기가 전부 결항된 탓이었다. 

첫 사별을 겪었을 때 제니는 맨발로 차도를 달렸다. 목에는 벗지 못한 호흡기가 덜렁덜렁 흔들렸고, 젖은 머리카락은 이마에 멋대로 붙어서 찬 바람에 꽁꽁 얼어갔다. 쉰하나의 12월 15일. 가물가물한 연대기에서 유일하게 선명히 기억하는 나이. 제니의 동갑내기 남편이 작업장에서 사고사事故死한 날이었다. 차가운 아스팔트가 뿜어내던 죽음의 온도. 다시는 그런 절망을 느끼지 않겠다고, 절망의 조짐이 보이는 것은 모두 싹을 자르고 일찌감치 태워버리겠다고 다짐했건만. 기력을 끌어모아 달리며, 제니는 사랑에 속절없이 무너졌음을 깨달았다. 죽음은 견고하고 차가웠지만 사랑은 미끄럽고 따끈했다. 언제나 미끄러운 것이 견고한 것을 감싼다. 따끈한 것이, 차가운 것을 녹인다.

“너, 철새가 어떻게 때가 되면 같은 장소에 찾아오는 줄 아냐?”

하늘 좀 쳐다보았다고 등이 뻣뻣하게 당겼다. 제니가 목을 천천히 풀며 선재에게 물었다. 

“모르는데요.”

“산란기 때 바다거북이나 연어가 태어난 곳에 어떻게 다시 찾아오는지도 모르지?”

“네, 몰라요.”

“타임머신이 가능하다는 이론적 가설은?”

선재가 한숨을 쉬었다. 제니는 아랑곳하지 않고 보챘다.

“아냐고 모르냐고.”

“모르죠.”

퉁명스럽게 대답하면서도 선재는 내심 제니가 답을 줄 줄 알았는지 기대에 찬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런 것도 모르면서 저길 왜 들어가려고 해?”

“그래서 뭔데요?”

“궁금하냐?”

선재가 뜸 들이다 고개를 끄덕였다. 

“궁금해할 기력은 남아있구나. 다행이다.”

“그래서 뭐냐니까요?”

“몰라. 네가 알아봐. 내가 그걸 어떻게 알아?”

선재의 표정이 일그러지는 걸 보며 제니가 크게 웃었다. 제니는 선재의 손을 잡고 손가락을 하나씩 천천히 굽혔다.

“진중하고 위대한 거 말고, 쓸데없는 거 궁금해하면서 살아. 파도는 왜 하얀색인가, 해가 뜨지 않아도 무지개는 뜨는가, 이런 거.” 

“저 포기 안 해요, 할머니.”

제니의 마음을 읽고 있다는 듯, 선재가 단번에 대답했다. 선재의 다섯 손가락을 모두 굽힌 뒤, 제니가 선재의 손을 감싸 잡았다.

“너도 내가 저 안으로 죽으러 들어가려는 사람처럼 보이냐?”

“맞잖아요.”

“아니야, 이것아. 내가 저길 왜 죽으러 기어들어가? 미쳤냐? 다 늙어서 곱게 누워만 있어도 죽을 것을. 구하러 간다, 구하러 가. 우리 영감!”

인천항에 도착하자 그곳은 국내외 취재기자와 그라비토나에 묶인 이들의 가족을 찾으려는 단체들로 인산인해였다. 제니는 사람들의 안내를 받으며, 물질을 하러 갈 때와 별반 다르지 않은 보호 장비를 입고 그라비토나 앞에 섰다. 비눗방울 표면에 퍼지는 오로라 빛과 유사한 것이 한희 주변에 있었고 한희는 하늘을 올려다본 채 멈췄다. 그렇게 박제되었다. 모두가 죽었다고 생각하여, 죽었는데 왜 썩거나 눈감지 않는가는 고민하지도 않은 채 여기저기서 추모 행렬이 끊이질 않았다. 그 가운데서 제니는 지팡이를 쥐고 서서 영감을 노려보았다. 매일, 하루도 빠짐없이. 그러길 3개월이 지났을 무렵, 제니는 영감의 눈동자가 미묘하게 움직이는 것을 보았다. 동시에 연구자들도 이 사람들은 죽거나 멈춘 것이 아니라 느리게, 이곳과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느린 시간 속에 갇힌 거라는 사실을 알아냈다.

“내가 그 앞에 온종일 서 있으니까 저 안에서 영감도 나를 본 거지. 영감에게는 내가 아주 찰나에 귀신처럼 나타났다 사라진 거겠지만, 어쨌든 본 거라고. 그리고 4년 동안 영감이 나를 향해 외친 말이 뭔 줄 아냐?”

사랑한다는 말이었다. 여태 살면서 제니가 가장 골 때린 순간이었다. 

에그를 없애는 민간 부대에 지원서를 넣겠다고 결심한 것도 다 영감의 이 어처구니없는 말 때문이었다. 삶의 마지막 도전으로 꽤 괜찮은 것 같기도 했다. 

“아가, 네가 양보해. 나는 이 세계 정복이 다 끝났다고. 모험이 끝났어. 내가 바다의 전사였잖아. 저기가 재미있어 보이는 건 공감하지마는, 저길 가려면 여길 좀 더 즐기고 와야지. 여기서 능력치를 쌓아야 한다고, 내 말은.”

들어갔다 나올 수 있을지 미지수였고, 에그를 없앨 수 있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그러니 그라비토나로 들어간다는 것은 바깥의 사람들에게 영정 사진으로 남는다는 의미나 마찬가지였다. 아주 천천히 저승을 향해 떠나는 누군가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것. 그라비토나에 들어간 이들에게는 지금의 삶과 똑같을지라도, 적어도 바깥의 사람들은 억겁의 시간으로 향하는 그들을 지켜보아야 했다.

“근데 왜 저한테는 얼마나 힘들었는지, 어떤 일이 있었는지, 왜 그런 생각을 하는지 안 물어봐요?”

가만 듣고 있던 선재가 억울하다는 듯 물었다.

“아가, 그건 네가 나처럼 늙었을 때 너처럼 젊고 어린 아가한테 해주면 된다. 너보다 훨씬 어린아이한테, 네 세상은 그랬다고 말해주면 된다.”

선재가 고개를 숙였다. 짜증난다고 중얼거렸지만 본심은 그래 보이지 않았다. 다행이었다. 아직 선재가 짜증이 무엇인지 알아서.

“내가 저기서 임무를 수행하고 나왔을 때 너랑 내 나이가 똑같아질지. 그럼 그땐 내가 흔쾌히 친구가 돼주마. 세상이 개인전이라는 말은 믿지 마, 아가. 지구는 단체전이다. 혼자가 되고 싶어도 혼자일 수 없다 이 말이야. 너는 널 필요로 하는 팀원들이 너무 많잖아. 나는, 저 안에 딱 하나야. 바보처럼 사랑한다고 지껄이는 영감 딱 하나라고.”

선재는 그로부터 한참동안 입을 열지 않았다. 훌쩍거렸다가, 손으로 눈을 벅벅 비볐다가 아주 잠깐 소리 내 울었다. 그리고는 제니의 손을 끌고 가 자기 뺨에 맞대며 대답했다.

“그럴게요. 친구 해요.”

제니가 자신의 어리석음에 고개를 저었다. 

“또다시 이곳으로 와야 하다니. 거, 참뀉. 아직 죽으려면 한참 멀었구먼.” 

 

 

 

  천선란

2019년 ‘무너진 다리’를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어떤 물질의 사랑’ ‘노랜드’, 장편소설 ‘무너진 다리’ ‘천 개의 파랑’ ‘밤에 찾아오는 구원자’ ‘나인’, 중편소설 ‘랑과 나의 사막’ 등이 있다. 한국과학문학상 장편 부문 대상, SF어워드 장편 부문 우수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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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06월 과학동아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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