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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취라 불리는 통증의 해결사

호흡을 인위적으로 조절하기도

우리 몸의 체온을 15℃ 이하로 낮추기도 하고 심장을 정지시켜 놓기도 한다.

최초의 마취의는 여호와

인간의 질병치료와 진단에 있어서 육체적 고통을 경감시키기 위해 행해지는 마취를 가장 먼저 경험한 사람은 아담이다. 구약성서 창세기 2장 21절에 따르면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신 뒤에 그의 갈빗대 하나를 취하고'라는 구절이 있다. 이렇게 늑골 하나를 취하기 전에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한 것은 마취과의사의 눈으로 볼 때 전신마취에 해당되는 것이다. 이것이 마취 역사의 시작으로 간주되고 있는데 하나님이 마취의의 시조라는 점을 마취과의사들은 크게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다.

사실 오랜 옛날부터 수술을 할 때 통증을 제거할 목적으로 알코올 아편 혹은 대마초 등을 널리 사용했다. 그런가 하면 물리적으로 냉각 질식 뇌진탕을 일으키는 위험한 방법까지 동원하기도 했다. 그러나 효과적인 진통법이 없어 힘센 장정들이 환지를 붙잡고 수술을 감행했던 때를 생각하면 몸서리쳐지고 한편 우스운 생각도 든다.

마취가 비교적 과학적으로 이용된 것은 아산화질소와 에테르를 개발해내면서부터다. 사실 이 둘은 마취작용이 있음이 밝혀진 후에도 오랫동안 관심을 끌지 못했다. 웃음을 일으킨다는 이유로 소기(笑氣)라고도 하는 아산화질소는 1844년에 처음으로 마취에 활용됐다. 한 치과의사가 이를 이용한 무통발치(無痛拔齒)에 성공한 것이다. 그러나 미국의 종합병원에서 실시한 공개 시범 때 실패, 사용을 중단 당하는 수난을 겪기도 했다. 그러다가 1863년에 가서야 다시 사용하게 되었으며 그후 산소와 아산화질소를 혼합 투여하는 방법이 개발돼 현재까지도 널리 쓰이고 있다.

마취의 역사중 매우 흥미로운 마취제는 클로로포름이다. 이 약은 처음에 동물실험을 통해 마취효과가 있다는 것이 알려졌다. 그후 사람에게도 마취효과가 있음이 밝혀져 무통분만에 도입됐다. 그러나 교회의 강력한 반대에 부딪쳐 이용되지 못하다가 1857년 영국 빅토리아 여왕의 여덟번째 아들인 레오폴드왕자를 무통으로 분만하는데 적용된 후 널리 사용됐다는 극적인 역사를 갖고 있다.

현대 마취에서 가장 많이 시용하는 방법 중 하나인 기관내 관(管)을 넣어 기도를 유지하는 전신마취는 세계1차대전 직후에 비로소 시작됐다.

그후 이 분야는 급속적으로, 그야말로 의학에서는 가장 빠른 속도로 발전을 거듭했다. 그 결과 이제는 마취의 방법과 사용약제 및 기기들을 일일이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로 놀라운 기술축적이 이루어졌다.

「마술 주머니」를 가지고

흔히 수술시작 직전에 행하는 마취유도제 투여가 마취의 전부인 것으로 생각하고 있으나 이는 잘못된 상식이다. 사실 마취는 수술 전에 환자를 방문, 마취에 대한 충분한 설명을 해주고, 수술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주고, 심신 상태를 점검하고, 안정시켜 주는 일부터 시작된다. 그로부터 통증이 없는 처치를 행하고, 수술중인 환자의 전신상태에 대한 주의깊은 관찰과 조치를 취하고, 아울러 수술이 끝난 뒤에 환자가 완전히 의식을 회복하고 신체상태가 마취전 건강상태로 돌아올 때까지의 전 과정이 모두 마취의 영역이라 볼 수 있다.

특히 마취를 유도한 뒤 수술이 시작되면서 환자의 전신상태의 관리는 수술중 환자의 생명을 관장해야 하는 마취과 의사의 책임하에 놓여지게 된다. 따라서 마취과 의사들의 책임은 무겁고도 중요하다. 마취의들은 인간의 생명을 유지하는데 있어 기장 기본이 되는 환자 자신의 호흡을 정지시킨 채 그들을 다른 방법으로 숨쉬게 하고, 없앴던 호흡을 다시 살려 내기도 한다. 이렇듯 환자의 호흡을 인위적으로 조절할 수 있는 주머니를 마취의사들은 '마술 주머니'라고 부른다. 사실 사람의 생명을 죽음과 거의 유사한 상태로 유지하는 일보다 더 큰 마술이 있을 수 있을까.

때로는 체온을 15℃ 이하까지 낮춰서 우리 몸의 대사량을 줄여 심장의 일을 줄이기도 하고, 심장을 정지시켜 놓기도 한다.

이처럼 수술 중 환자의 생명에 가장 직접적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모든 내용을 관장하는 것이 바로 마취다. 물론 방금 거론한 것들은 마취의 영역에서 가장 극적인 내용들이다.
 

수술중 환자의 호흡을 인위적으로 조절할 수 있는 주머니를「마술주머니」라고 한다.
 

의식은 있고, 아픔은 없고

마취약의 다양함 만큼이나 마취의 방법도 다채롭다. 큰 수술일 때는 환자의 의식과 호흡까지도 억제시킨 채 기관내에 넣은 관을 통해 인공적으로 호흡하게 하는 전신마취가 많이 이용된다. 그런가 하면 팔다리 등의 수술을 할 때에는 그 부분의 감각만을 없애주는 부분마취도 널리 실시되고 있다. 빅토리여왕도 겁먹었던 분만시의 통증을 없앨 목적으로 배꼽 아래쪽의 감각만을 제거한 채 산모가 힘을 쓸 수 있는 상태를 유지하는 소위 무통분만도 부분마취의 일종이다.

또한 치과에서 이를 뽑거나 조금 찢어진 부위를 몇 바늘 꿰맬 때는 그 부분만 마취약을 주사, 통증을 없애주는 국소마취법이 활용되고 있다.

그리고 일반에는 잘 알려져 있지 않으나 환자와의 대화나 협조가 필요한 수술을 할 때는 의식은 있으면서 아픔만을 느끼지 못하도록 하는 마취도 행해지고 있다. 쉽게 말하면 히로뽕 등을 맞았을 때와 같은 환각상태를 유발하는 정맥마취방법이 짧은 수술에 이용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마취방법은 환자의 상태와 수술의 내용에 따라 선택된다. 마취법마다 각각의 장·단점이 있기 때문에 어떤 것이 더 좋다고 잘라 말할 수는 없다.

마취에 관련된 속설중에는 잘못 알려진 것이 참 많다. 특히 전신마취를 하고 나면 마취의 후유증으로 머리가 나빠진다는 속설이 있는데 이것은 잘못된 속설의 대표적인 예다. 모든 마취제는 일시적인 효과만을 갖고 있으며, 전신마취를 한다 할지라도 환자의 의식만이 없을 뿐이다. 환자가 깨어있을 때와 똑같은 전신상태가 유지되도록 마취의사들이 충분한 조치를 취하고 있으므로 그러한 의심은 괜스런 걱정에 불과하다.

물론 극소수의 경우 치명적인 부작용이 생길 수도 있다. 그러나 이 극히 예외적이고 당황스러운 일은 신이 아닌 인간이 관장하는 모든 일에서 필연적으로 생겨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다시 말해 인간의 한계라 할 수 있지만 교통사고 등 다른 종류의 사고발생률과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낮다.

그러면 인류의 역사와 똑같은 기간의 장구한 역사를 갖고 있는 마취의 '길'이 현재 어디로 뻗어 있는가를 살펴보자. 지금도 마취의 영역이 소아 마취, 노인 마취, 심장 수술시의 마취, 통증 치료 등 몇개의 작은 영역으로 나누어져 있기는 하나 앞으로는 이것이 보다 세분화될 전망이다. 예컨대 간이 나빠 수술을 받는 환자를 위한 마취만을 전문으로 하는 마취의사, 고혈압이 있는 환자 마취만을 전문으로 하는 마취의가 등장할 날도 멀지 않았다. 이와 아울러 인체의 생화학적 생리적 리듬과 완벽하게 일치되는 마취제 및 기기의 개발에 보다 많은 노력이 기울여지게 될 것이다.

요컨대 마취는 수술의 단순 보조 수단이 아니다. 환자의 생명을 직접 관장하고 인류의 가장 큰 멍에 중의 하나인 육체적 통증으로부터 해방되고자 하는 인간의 본능적 욕구를 충족시켜 주는 중차대한 과학인 것이다.

마취는 인류의 기본적인 의·식·주 문제를 포함한 복지문제의 욕구충족이 완벽해질수록 보다 큰 관심을 모으게 되는 분야가 될 게 분명하다. 따라서 밝은 미래가 확실히 보장돼 있다. 지금 세계 여러나라의 마취의는 이상적인 마취약제 및 그에 따른 지식의 개발에 끝없는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

1990년 08월 과학동아 정보

  • 신양식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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