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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자 주
이번 호부터 신경과·정신과 전문의 양창순 박사의 ‘심리학 테라피’ 연재를 시작한다. 일상에서 체험하는 다양한 감정이나 행동의 배경이 되는 심리 메커니즘을 관련 임상사례를 들어가며 구체적으로 설명해 나갈 예정이다.

 

인간은 자기가 통제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 본능적인 두려움을 갖고 있다. 이런 대상 가운데 하나가꿈이다. 의식의 세계에서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생각과 감정, 특히 공격성이나 성적인 상황이 꿈의 세계를 휘젓고 다니기 때문이다. 악몽을 꿨을 때 느끼는 불안과 두려움은 말로 표현하기 어렵다.

우리가 일단 잠이 들면 1단계부터 4단계까지 얕은 수면에서부터 깊은 수면에 빠져들게 된다. 꿈수면은 그 다음에 나타난다. 꿈수면의 얕기는 1단계와 같지만 뇌의 활동량이 증가하면서 안구가 급속히 움직이므로 꿈수면을 급속안구수면 또는 렘(REM, RapidEye Movement)수면이라고도 한다.

꿈은 낮 동안에 학습된 정보를 정리해 불필요한 것은 버리면서 우리 뇌를 재정비하는 역할을 한다. 즉 꿈을 꾸지 않는 수면이 낮에 썼던 신체적 에너지를 다시 보충하는 시간이라면 꿈수면은 정신적 에너지를보충하는 시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잠은 재우되 꿈만 못 꾸게 하는 고문 방법이 있다고 한다. 조용히 미쳐가게 만드는 고문이다.


오물 토해내거나 혼자 강 건너는 꿈의 해석은?

오스트리아의 정신분석학자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우리 무의식에 자리잡고 있는 깊은 소망이 꿈이라는 형태를 통해 나타난다고 말했다. 그런데 그냥 나타나면 사람들이 자기 무의식의 세계에 놀라게 되므로 꿈은 뇌 속에서 각색된 스토리를 갖고 나타난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 과정을 ‘꿈작업(dream work)’이라고 불렀다.

필자가 상담한 사람 가운데 주위 사람들에 대한 분노를 마음에 품고 사는 사람이 있었다. 하지만 정작 자신은 그 분노가 어느 정도인지를 알지 못했다. 그래서 표면적으로는 일하기 싫고 무기력하고 살기 싫다는 증상만 나타났다. 상담을 하면서 그는 이윽고 상처를 준 사람들에 대한 분노를 표현하기 시작했다.

그 뒤 그는 오물을 다 토해내는 꿈을 꾸었다. 나는 축하할 꿈이라고 말해 줬다. 부모에게 지나치게 의존하는 문제로 고민하던 사람은 상담을 받는 도중에 혼자서 배를 저어 강을 건너는 꿈을 꾸었다. 역시 축하할 꿈이다. 독립을 추구하려는 그의 욕망과 자신감이 나타난 꿈이기 때문이다.

상담을 받고 있는 중에 꿈을 꾸는 경우가 많은 이유는 무의식의 세계가 흔들리기 때문이다. 흔들린 무의식이 꿈을 통해 좀 더 쉽게 의식의 세계로 나오는 것이다. 또한 꿈은 과거를 깊이 파고들어가서 옛 기억을 소생시킨다. 가끔 꿈에 과거에 살았던 집이 나오고 돌아가신 부모님이 보이는 이유다.

우리의 이중적 속성 역시 꿈을 통해 알 수 있다. 사회적 페르소나를 만들며 살아가는 과정에서 억압하고 회피하는 면이 꿈을 통해 나타나기 때문이다. 스위스의 정신의학자 카를 융의 책에 나오는 한 남자의 사례를 보자. 30대인 이 남자는 몇 명의 여자친구와 성관계를 갖는 꿈을 꾸는데, 현실에서는 아내하고도 성관계를 갖고 있지 않았다. 마음속 깊이 자유로운 성생활을 하고 싶은 욕망이 꿈을 통해 나타난 것이다.

 

페르소나(persona)

타인에게 비치는 외적 성격을 나타내는 심리학 용어로 연극에서 배우들이 쓰던 가면을 뜻하는 그리스어에서 왔다. 카를 융은 사람들이 상황에 맞는 페르소나를 쓰고 살아간다고 주장했다.


꿈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장면이 자위행위가 아닌가 싶다. 거기에 대해서는 독일 재상 오토 비스마르크의 꿈이 기록돼 있다. 그가 채찍으로 바위를 치고 신을 부르자 넓은 길이 나타났다는 내용인데, 프로이트는 그의 꿈을 어린 시절 자위행위의 환상으로 해석했다.

 


꿈으로 히틀러 출현 예견한 걸까



꿈에 대해서 사람들이 궁금해 하는 점 가운데 하나가 과연 꿈에 예시 능력이 있는가 하는 것이다. 프로이트는 인정하지 않았지만 융은 꿈의 예시적 측면을 강조했다. 융의 집단무의식 이론에 따르면, 인류가 지구상에 생겨난 이래로 조상 때부터의 모든 정보는 우리의 무의식에 축적된다. 거기에 더해서 우리는 태어나서 경험한 모든 것들을 뇌의 기억 저장창고에 보관해 오고 있다.

이러한 선험적 정보와 체험한 기억을 토대로 미래의 일들을 어느 정도 미리 유추해 보는 과정은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다만 이와 같은 정보가 무의식의 세계에 들어 있는지라 우린 꿈을 통해서 그런 작업을 할 수 있다는 얘기다. 융은 실제로 자신이 상담한 독일인 환자들이 얘기한 꿈에 입각해서 “금발의 야수가 지하의 감옥에서 뛰어나와 세계를 황폐화시키고자 기회만 노리고 있다”고 예견했다. 그 몇 년 뒤 아돌프 히틀러가 권력을 잡았다.

꿈의 예시적 측면을 가장 많이 강조한 것은 성경이 아닌가 한다. 구약성경에는 꿈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재미있게도 창세기 초반에 등장하는 꿈은 단순하고 직설적이어서 누구나 알 수 있는 내용이 대부분인데 비해 뒤로 갈수록 다양한 상징과 복잡한 구성이 더해져 오로지 특별한 사람만이 그 꿈을 해석할 수 있다. 이것은 짧고 명확하고 이해하기 쉬운 아이들의 꿈이 어른이 되면서 다양한 상징이 등장하는 난해한 꿈으로 바뀌는 상황과 매우 유사하다고 할 수 있다.

이처럼 난해하기에 우린 영원히 꿈의 진실에 대해 명확한 해답을 얻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밤마다 꿈을 통해 일종의 정화가 이뤄지지 않으면 우리의 정신세계가 꽤나 혼란스러우리란 것만은 분명하다. 어찌 됐든 새해도 우리 모두 좋은 꿈만 꿀 수 있으면 좋겠다.

2010년 01월 과학동아 정보

  • 양창순 양창순신경정신과 원장, 대인관계 연구소 소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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