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골 들고 사진을 찍어도 되나요?”
악셀 팀머만 기초과학연구원(IBS) 기후물리 연구단장이 기자에게 물었다. 그에게 ‘고기후연구’는 과거를 비춰 미래를 보는 거울이자 인류의 진화를 이해하는 단서다. 물리학을 인류학과 철학으로 확장하는 열쇠기도 하다. 해골은 바로 그 상징.
기후물리 연구단은 기후 시스템을 수학과 물리 방정식으로 해석하는 일을 한다. 팀머만 단장은 2017년 설립 때부터 7년째 연구단을 이끌고 있다. 4월이 오기도 전에 벚꽃이 져버린 부산대 통합기계관에서 그를 만났다.
석순이 품은 단서로 이상기온의 원인을 찾다
기후는 대기, 해양, 생물, 해빙 등 여러 요소로 이뤄져 있다. 이 각각의 요소들을 수학과 물리를 이용해 하나의 일반적인 공식으로 정리하고, 또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것이 기후물리를 연구하는 길이다.
기후 시스템을 연구하기 위해선 슈퍼컴퓨터가 필수다. 과거부터 현재 그리고 미래까지 기후를 이루는 다양한 요소들이 만들어내는 ‘힘’을 이해하고, 이를 시뮬레이션하기 위해서다. IBS 기후물리 연구단은 2019년 구입한 슈퍼컴퓨터 ‘알레프(Aleph)’를 사용하고 있다. 팀머만 단장은 “지난 300만 년 동안 식생과 기후 변화를 알레프로 시뮬레이션하고 있다”고 말했다.
연구단이 만든 기후 모델은 미래를 예측하는 데도 사용된다. 여기에는 빙상이 녹으며 발생하는 해수면 상승, 육지의 초목이 바꾼 영구동토층, 물고기와 플랑크톤 같은 바다의 유기체가 이루는 먹이사슬에 대한 정보가 포함돼 있다. 그래서 지구온난화가 지역적으로 미치는 영향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팀머만 단장은 “알레프가 없었다면 이렇게 긴 기간 다양한 데이터를 활용해 만드는 모델 실험을 수행할 수 없었을 것”이라 말했다. 슈퍼컴퓨터 알레프는 대전에 설치돼 있다.
팀머만 단장은 “내가 과학수사대 요원이나, 탐정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며 웃었다. 충북 단양에서 발견한 석순은 최초의 단서였다. 석순은 약 1만6000년 전에, 불과 5년 사이 기온이 5~7℃ 가량 급격하게 하강했다는 사실을 알려줬다. 연구단은 이 시기 지구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조사했다. 한국뿐 아니라 중국과 스페인에서도 같은 시기 급격한 기온 변화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연구단은 빙하가 이런 현상을 만들었다는 가설을 세운 뒤, 슈퍼컴퓨터를 통해 시뮬레이션을 거쳐 이 가설이 사실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과거 지구의 내외부적 요인에 따른 기후 변화는 인류의 거주 가능 지역을 재구성했고 이는 현생 인류의 진화에 큰 영향을 미쳤다. 오늘날 지구 온난화가 미래 인류 진화에 미치는 영향도 응당 있을 터. 팀머만 단장은 “뉴질랜드에서는 이미 태평양 저지대 지역의 기후 난민을 받고 있다”며 “기후 난민은 미래 거주 가능 지역의 유전적 다양성을 높일 것”이라 말했다.
우리 행성의 거주 가능성은 이미 극단
팀머만 단장은 제3차 IPCC 평가보고서의 공동 저자이자 제5차 평가보고서의 주저자다. 그는 지난 3월 발표된 제6차 종합 평가보고서에 대해 “기후변화의 위급성을 잘 드러냈다”고 평가했다. 우리가 배출하는 이산화탄소량이 기존보다 50% 늘어, 지구가 훨씬 더워졌다는 사실이 과학적으로 표현됐다는 것이다.
기후변화가 당면한 현실임에도 그 심각성을 잘 모르는 이들이 많은 것 같다는 기자의 이야기에 팀머만 단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해수면은 이미 산업화 이전 대비 30cm 상승했습니다. 세계 인구는 아직도 증가하고 있지만 앞으로 농업생산량은 10~20% 감소할 거고요. 여름 평균기온이 38℃가 될 수 있습니다. 그 더위에 밖에서 일을 해야 하는 사람들이 있겠죠. 우리가 사는 행성의 거주 가능성은 이미 극단에 있습니다. 이산화탄소 배출을 줄이지 않으면 우리가 살고 있는 모든 기반이 악화될 거예요.”
과학동아는 5월 말에서 6월 초 중으로 IBS 기후물리 연구단 랩투어를 계획하고 있다. 팀머만 단장에게 랩투어에 참여하는 독자들이 무엇을 보고 또 어떤 것을 얻어갔으면 좋겠는지 물었다.
팀머만 단장은 “돌에서 어떤 기후정보를 얻을 수 있는지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지구화학실험실에서 과학동아 독자들이 과학수사대 요원이 되길 바란다”며 “기후물리가 단편적인 기후 현상만 다루는 것이 아니라, 지질연구나 유전학 등 전체적이고 종합적인 학문인 만큼 이곳에서 풍부하고 다양한 관점을 얻어 가길 바란다”고 말했다.
단장실 한 편에 놓인 그랜드 피아노로 매일 아침 피아노 연주를 하며 하루를 시작한다는 팀머만 단장은 랩투어 당일 미니 콘서트도 가능하다며 웃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