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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는 돌고래' 상괭이에게 무슨 일이?

◇ 보통난이도 |  해양동물 부검

 

 

8월 20일 한국수산자원공단 제주본부, 비릿한 냄새가 가득한 실험실에서 특별한 부검이 진행됐다. 상괭이와 남방큰돌고래, 참돌고래, 바다거북…. 참돌고래를 제외한 모두가 해양보호생물로 지정된 종이다. 평생 자유롭게 바다를 누비던 녀석들이 어떻게 차가운 부검대에 오르게 됐을까.

 

피부부터 골격까지, 
생전 흔적 찾아서

 

우리나라 연안에 사는 고래는 약 7만 마리다. 이 중 매년 2000마리가 사체 또는 구조가 필요한 상태로 발견된다. 파도에 의해 해안가로 떠밀려오거나(좌초), 사체가 수면 위를 떠다니다 발견되거나(표류), 그물에 걸려서 발견되는(혼획) 식이다. 제주도에서 발견되는 해양보호생물을 관리하고 있는 김병엽 제주대 해양과학대학 교수는 “2019년 제주도에서 고래류 56마리, 바다거북류 27마리가 좌초, 표류, 혼획으로 발견됐다”고 설명했다. 


세계자연기금(WWF)과 서울대, 인하대, 제주대 공동 연구팀은 제주에서 사체로 발견된 상괭이, 남방큰돌고래, 참돌고래, 바다거북 등 총 8마리의 부검을 계획했다. 해양보호생물을 연구 목적으로 부검하려면 해양수산부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해양생태계의 보존 및 관리에 관한 법률에 따라 일반인들은 해양보호생물을 훼손, 유통, 보관할 수 없다. 상괭이, 참고래, 남방큰돌고래 등 총 80종이 여기에 속한다. 

 


부검은 전날부터 서서히 해동시킨 사체를 살피는 것부터 시작됐다. 사체를 얼렸다 녹이면 체내에 고여있는 액체가 흉수나 복수와 같은 체액인지 해동 과정에서 생긴 액체인지 구분하기 어렵다. 또한 조직이 얼었다가 녹으면 이전 상태와 달라지기 때문에 조직 검사 결과도 부정확하다는 한계가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해양동물을 부검할 수 있는 인력은 10명 내외라 어쩔 수 없이 냉동이 이뤄진다. 이날 부검대에 오른 생물들도 2019년 11월부터 보관돼있던 것들이다. 


사체가 녹으면 먼저 외관을 꼼꼼하게 살핀다. 이빨에 끼어 있는 먹이, 피부의 상처 등 온몸을 샅샅이 훑으며 사진을 찍는다. 그리고 길이, 너비 등 각 종마다 20가지 정도의 수치를 잰다. 눈부터 귀까지의 거리 등을 기록한 수치만 보고도 개체의 형태를 유추할 수 있도록 꼼꼼히 기록한다. 그 다음 사체의 속을 들여다본다. 고래는 물속에서 추위를 견디기 위해 피부 아래 두꺼운 지방층이 있다. 서식하는 수온에 따라 지방층의 두께가 다른데, 북극해에 사는 흰고래(벨루가)는 지방층 두께가 20cm에 달한다. 지방층이 보이면 두께를 재고 안에 기생충이 있는지 살펴본다. 


기생충은 고래의 생명을 위협하는 요인 중 하나다. 가령 톡소포자충(Toxoplasma gondii)에 감염되면 뇌와 심장, 폐 등에 염증이 생겨 결국 사망에 이른다. 실제로 2009~2012년 캐나다 로렌스강 주변에서 발견된 벨루가 사체 34구 중 44%의 몸속에서 톡소포자충이 발견됐다. doi: 10.3354/dao03262 이영란 WWF 한국지사 해양보전팀장은 “고양이의 배설물이 하수도를 통해 바다까지 흘러가 초래된 결과”라고 설명했다.


지방층 아래에는 근육이 있다. 근육에서는 주로 출혈 흔적을 확인한다. 선박이나 구조물에 부딪혀 죽음에 이르진 않았는지 확인하기 위해서다. 근육 조사가 끝나면 갈비뼈를 제거한 뒤 복강, 흉강 등 각 기관들을 살핀다. 모든 기관에서 조직과 혈액을 채취해 병적인 소견을 알아본다. 염증이나 종양 흔적도 파악한다. 소변 검사와 세균 배양 검사도 진행한다.


이때 해양생물이 생전에 질병을 앓았는지 알 수 있는 중요한 힌트는 림프절이다. 림프절은 면역 반응에 참여하는 림프구를 만들어 병원균으로부터 신체를 방어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림프절의 상태로 면역 반응 여부를 살피는 것이다. 기관에 종양과 같은 심각한 문제가 생기면 림프절이 눈에 띄게 커져 있기도 하다. 림프절 조사가 끝나면 내부의 기관을 다 걷어내고 골격을 확인하며 부검을 마무리한다. 이날 6마리의 고래를 부검하는 데 8시간이  걸렸으며 다음날에 바다거북 2마리와 고래의 기생충 검사를 이어서 진행했다.

 

 

부검을 통해 
밝혀진 비밀은?

 

이번에 부검한 상괭이 두 마리는 임신 중이었다. 한 마리는 새끼의 길이가 65~70cm로 태어나기 직전의 개체였다. 이 팀장은 “부검을 하기 전에도 배가 불룩해 임신 상태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며 “폐에 포말(거품)이 가득찬 것으로 보아 어미 상괭이는 그물에 걸려 질식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고래는 폐로 호흡하며 주기적으로 수면 위로 올라와 산소를 보충한다. 때문에 오랜 시간 산소를 보충하지 못하면 고래도 익사한다. 다만 고래는 공기가 들어오는 분기공을 계속 닫고 있어서 폐에 물이 차지 않고 포말이라는 거품이 생긴다. 포말은 폐에 남아있는 공기로 필사적으로 호흡하려다 생긴 흔적이다. 같은 날 부검한 남방큰돌고래의 폐에서도 포말이 관찰됐다. 남방큰돌고래의 식도와 위에는 오징어류, 참꼴뚜기 등이 가득했다. 죽기 직전까지 활발하게 사냥을 했다는 증거다.


2019년 제주항에서 발견된 참돌고래는 목 부분 근육에서부터 등 부분 근육에까지 출혈이 발견됐다. 어딘가에 세게 부딪혔을 때 나타나는 흔적이다. 이 팀장은 “참돌고래의 죽음이 인간 활동과 관련이 있음을 추측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부검을 통해 밝힌 사인은 해양보호생물의 개체수가 지속적으로 줄어드는 원인을 밝히는 자료가 된다. 


부검 결과는 현재 바다의 상황을 유추할 수 있는 유용한 정보이기도 한다. 공동연구팀은 1월 제주 해상에서 죽은 채 발견된 참고래 공동부검을 진행한 바 있다. 몸길이가 13m인 참고래의 위장과 소장에는 낚시줄과 스티로폼, 어망 조각 등 플라스틱 입자가 가득했다. 이는 참고래가 헤엄치는 동아시아 바다에 플라스틱이 존재한다는 증거다. 연구결과는 8월 해양환경분야 학술지 ‘MPB(Marine Pollution Bulletin)’에  실렸다. doi: 10.1016/j.marpolbul.2020.111514


해양 오염물질을 연구하는 한양대 해양융합학과 연구팀은 부검한 참고래에 축적된 잔류성유기오염물질(POPs)을 연구 중이다. 해양 상위 포식자인 고래의 지방과 근육층에는 농약 성분인 DDT(디클로로디페닐트리클로로에탄)와 PCB(폴리염화비페닐)과 같은 POPs가 축적된다. 


부검 결과는 해양보호생물 생태 연구에도 활용된다. 2018년 이항 서울대 수의대 교수팀은 2006~2015년 부검으로 수집된 상괭이 조직 샘플로 한국과 일본, 중국 해역에 서식하는 상괭이의 유전적 계통을 분석했다. 분석 결과 우리나라 상괭이는 플라이스토세 후기인 약 1만 년 전에 공통조상으로부터 갈라져 나온 것으로 확인됐다.


김상화 서울대 수의대 연구원은 2018년 2월 제주도에서 발견된 큰머리돌고래 부검 결과를 국제학술지에 발표했다. 큰머리돌고래는 제주 해안에서 흔히 발견되는 종이 아니며 부검 결과 위장에선 남해안에 분포하는 살오징어 9마리가 나왔다. 5살 암컷으로 난소 조직에 성성숙의 결과인 난포와 백체를 모두 지니고 있었다. doi: 10.1136/vetreccr-2019-000860


김 연구원은 “큰머리돌고래는 일반적으로 7살이 넘어야 성성숙을 한다고 알려져 있다”며 “큰머리돌고래가 우리나라 남해안에 서식하고, 알려진 것보다 이른 나이에 성성숙이 진행될 가능성을 확인한 연구”라고 설명했다. 이 팀장은 “해양동물을 부검한 자료가 오랜 기간 쌓이면 더 다양한 연구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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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0월 과학동아 정보

  • 박영경 기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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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한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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