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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한 알 먹으면 집중력이 쑥쑥? ‘공부 잘 하는 약’의 진실

“기억력 상승 집중력 강화 메가 ADHD.”

 

4월 4일, 서울 강남의 학원가에서 학생들에게 기억력과 집중력 향상에 도움을 주는 약이라며 나눠준 음료수에 써 있던 문구입니다. 음료수 안엔 마약이 들어있었죠. 서울 한복판에서 미성년자에게 마약을 나눠준 이번 일은 사람들에게 큰 충격과 분노를 안겨줬습니다. 한편 사건을 조금 다른 시각으로 보는 이들도 있습니다. 약에 크게 적혀 있는 ‘ADHD(주의력결핍 과다행동장애)’란 글자에 주목해보자는 겁니다. 범인들이 약에 이 글자를 적은 이유는 ADHD 치료제를 ‘공부 잘 하는 약’으로 생각하던 사람들의 인식을 이용하기 위한 것 아니냐고요.

 

최근 들어 연예인이나 유명인들이 자신이 ADHD(주의력결핍 과다행동장애)를 앓고 있다고 밝히는 일이 잦습니다. ADHD는 주의력이 부족하여 산만하고 과다활동, 충동성을 보이는 질환을 말합니다. ADHD는 더이상 낯설기만 한 질병이 아닙니다. 인터넷에선 성인ADHD 자가진단 체크리스트를 손쉽게 접할 수 있습니다. “어떤 일의 어려운 부분은 끝내놓고, 그 일을 마무리 짓지 못해 곤란을 겪은 적이 있다”거나 “약속이나 해야 할 일을 잊어버려 곤란을 겪은 적이 있다” 같은 항목에 자신이 해당하는지 살펴보는 식입니다.

 

기자도 이런 자가진단을 해 본 적이 있습니다. 무척 큰 충격을 받았죠. 여섯 문항 중 네 문항에 ‘그렇다’고 체크하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했거든요. 그러고 나니 SNS에서 성인 ADHD를 진단받고 치료를 시작한 사람들의 후기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ADHD치료제를 복용하자 주의집중력이 이전에 비해 눈에 띄게 좋아졌고, 계획을 훨씬 잘 지킬 수 있게 됐다는 이야기였습니다. “머릿속에 안개가 걷힌 것 같다”면서요.

 

솔직히 솔깃했습니다. 더 집중해서, 시간을 잘 지켜가며 할 일을 해치우고 싶다는 생각, 누군들 안 해봤을까요. 이 고민이 약 한 알로 해결될 수 있다니 마음이 놓일 정도였습니다. 4월 7일, 교수실에서 만난 신윤미 아주대병원 의과대학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기자의 이런 고백을 듣자 익숙하단 듯 웃었습니다.

 

신 교수는 “의대 강의를 다녀오는 길에도 학생들이 그렇게 몇 명씩 쫓아 나오곤 한다”며 “‘저 (ADHD에) 해당하는 것 같아요!’라는 말을 꼭 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성인 ADHD는 자가진단 체크리스트도 흔하고, 책이나 매스컴에서 자주 접하니 더 그런 것 같다”며 “하지만 ADHD 진단에서 자가진단보다 더 중요한 건 병력 청취를 통해 질병의 양상을 살펴보고 보조적인 진단검사를 활용해 병의 유무를 확실히 밝히는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뇌를 ‘치료’하기 위해 먹는 약, ADHD치료제

ADHD 환자들이 치료제를 먹고 눈에 띄는 변화를 느끼는 이유는 ADHD가 약이 아주 잘 듣는 병이기 때문입니다. 신 교수는 “다양한 정신과 질환 중에서도 ADHD는 약에 대한 반응이 가장 좋은 편”이라며 “10명의 환자에게 약을 처방했을 때 약이 잘 듣는 환자가 7~8명일 정도”라고 말합니다. 이어 “정신과 질환에는 사회심리학적 요인과 생물학적 요인이 함께 작용하는데, ADHD는 외부 환경보다는 뇌의 기질, 즉 생물학적 원인에 의해 더 많이 결정되는 질환”이라고 했습니다.

 

정신과 질환의 경우 원인을 한두 개로 설명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습니다. ADHD도 마찬가지입니다. 대표적인 이론은 있습니다. 신 교수는 “도파민을 많이 분비하는 뇌의 부분들, 즉 선조체나 전두엽 등의 기능에 문제가 생겨 ADHD를 유발한다는 ‘도파민 이론’이 있다”며 “현재 대부분 약이 도파민이나 노르에피네프린 수치를 높이는 약인 이유가 여기 있다”고 했습니다.

도파민은 주의집중력을 올리거나, 장기 계획을 세우고 실행하도록 도와주는 등 다양한 역할을 하는 신경전달물질입니다. 신경전달물질은 신경세포 사이의 틈(시냅스)에서 신호를 전달하는 화학물질입니다. 신경세포에서 분비한 신경전달물질이 시냅스 뒤의 다른 신경세포의 막에 있는 수용체에 가서 붙는 식으로 전달됩니다. 이어달리기를 할 때 바톤을 넘기는 것처럼요. 이렇게 쓰인 신경전달물질은 효소에 의해 분해되거나 신경세포 속으로 재흡수됩니다.

 

ADHD환자들은 도파민 농도가 낮습니다. 이 때문에 주의력이 약하거나 계획을 세우기 어려워하고, 충동적인 행동을 하는 등 어려움을 겪는 겁니다. 현재 가장 많이 처방되는 ADHD치료제는 주의력개선제의 일종인 메틸페니데이트입니다. 페니드, 콘서타, 메디키넷 등 제품에 들어있죠. 메틸페니데이트는 신경세포가 도파민을 재흡수하지 못하도록 막는 역할을 합니다. 그러면 시냅스 속 도파민의 농도가 높아지면서 도파민이 강하게 작용하게 되는 거죠.

 

공부를 잘 하게 해 주는 묘약이 없는 이유

 

도파민의 농도를 높여 주의집중력을 높이고, 계획을 세우고 지키도록 도와주는 약. 여기까지만 알고 ADHD치료제를 공부를 잘 하게 해주는 ‘묘약’으로 여기면 곤란합니다. 도파민의 농도를 높일 때 나타나는 효과들이 생각처럼 단순하지만은 않거든요. 반건호 경희대 의과대학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ADHD 치료제로 높아진 도파민 농도가 ADHD에만 관여해주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다”고 했습니다.

 

도파민은 수용체만 해도 D1부터 D5까지 5가지 종류가 밝혀져 있고, 현재 연구를 통해 이 외에도 더 많은 종류의 수용체가 있을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각 수용체마다 작용기전, 즉 뇌에서 관여하는 역할이 다르죠. 여전히 설명하지 못하는 부분이 많다는 겁니다.

 

반 교수는 “예를 들어 심장박동이 강하게 뛰는 부작용이 보고되곤 하는데, 이는 약이 우리가 원하는 수용체에 작용하지 않은 경우”라며 “아직 ADHD와 관련 있는 수용체에만 작용하는 약은 개발되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최삼욱 진심 정신건강의학과의원 원장(서울아산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외래교수)은 “보통 ADHD약의 부작용으로 식욕저하, 소화불량, 두근거림, 예민, 불안 등 도파민 작용이 과도해져서 생기는 변화를 꼽는다”며 “하지만 부작용은 도파민이 많고 적고에만 결정되는 문제가 아니며, 도파민의 농도가 같더라도 이를 받아들이는 수용체의 민감성, 수용체 자체의 유전적 차이 등 다양한 요인이 작용한다”고 했습니다.

 

환자들 사이에서도 부작용이 이 중 어떤 양상으로, 어떤 강도로 나타날지는 약을 쓰기 전에 모릅니다. 이 때문에 ADHD치료제를 처방할 때는 환자의 상태와 주변 환경, 그리고 약이 미치는 영향을 면밀히 살펴가며 약의 종류와 용량을 정합니다.

 

정상인이 ADHD치료제를 복용했을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도파민 농도가 정상적으로 잘 유지되던 중에 갑자기 농도를 높이는 약을 먹은 거니까요. 도파민 작용이 과도해짐에 따라 부작용을 겪게 될 겁니다.

 

ADHD환자가 아닌 사람이 ADHD 치료제를 먹었을 때 학습능력이 좋아진다고 장담할 수도 없습니다. 관련 연구도 결과가 갈리는데요. 미국 예일대 의대와 코네티컷대 의대 공동연구팀이 2014년 발표한 리뷰 논문에 따르면 ADHD가 없는 12~25세 사이의 학생들에게 ADHD 치료제를 투여한 연구 14건을 분석한 결과, 메틸페니데이트는 처음 보는 과제나 주의력을 기반으로 한 과제의 수행능력을 높임과 동시에 복잡한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계획을 세우는 시간을 줄였다고 했습니다. doi: 10.1111/add.12460

 

연구팀은 ADHD 치료에 쓰이는 다른 약물인 모다피닐이 반응시간과 논리적 추론능력, 그리고 문제풀이능력을 향상시켰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암페타민의 경우 정보 습득 능력을 강화시켜, 회상 능력을 키웠다는 분석입니다.

 

한편 정반대 결론을 내린 연구결과도 있습니다. 미국 로드아일랜드대 심리학과와 브라운대 알코올 및 중독연구센터 등 공동연구팀이 ADHD가 없는 대학생 13명을 대상으로 파일럿 연구를 진행해 2018년 발표한 연구결과입니다. 실험군에게 애더럴(암페타민이 함유된 ADHD 치료제의 일종)을 투여한 결과, 애더럴이 인지기능에 거의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doi: 10.3390/pharmacy6030058

 

부작용을 감수하면서, 효과가 있을지 확신할 수 없는 약을 먹는 건 좋은 선택이 아니겠죠.

 

ADHD 치료제로 ‘갓생’을 얻은 사람들

 

공부를 잘 하게 해 주는 약이 언젠가 개발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ADHD치료제가 그 주인공은 아닙니다. 약 한 알로 공부를 잘 하게 되는 건 현재로선 불가능이란 뜻이죠. 신 교수는 “공부를 잘 하려면 잠을 안 자고 공부해선 안되고, 아침에 일어나서 빛을 보고 움직이는 기본적인 삶의 루틴을 지키는 게 중요하다”고 했습니다.

 

교수실에 앉아 이 이야기를 듣자 하니, 어딘가 기운이 빠지는 건 사실이었습니다. 쉬운 길이란 없단 뜻이니까요.

 

그러다 옆을 돌아보니 그간 신 교수에게 진료를 받은 아이들이 그려준 감사카드가 눈에 띕니다. 신 교수는 “어떤 아이들은 도파민 수치를 높이는 약을 먹고 나서 ‘삶이 원래 이런 거였어? 마법같아!’라고 말하기도 한다”며 “같은 지능에 같은 성향을 가진 아이더라도 집중을 할 수 있는 아이와 그렇지 못한 아이는 시간에 따라 격차가 크게 벌어지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ADHD약이 환자들에겐 분명히 긍정적인 변화를 만들어낸다는 말입니다.

기자가 만난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들은 모두 입을 모아 같은 말을 했습니다. 최 원장은 “대부분 환자에게 ADHD치료제는 정말 인생이 바뀌는 경험을 준다”며 “어떤 환자에게 이 약은 단순히 성적을 올리는 약이란 의미로는 모자라다”고 했습니다.

 

반 교수는 인터뷰를 끝내며 자녀의 권유로 60대에 들어서 처음 ADHD약을 먹게 된 할머니의 이야기를 소개했습니다.

 

“할머니가 약을 드시고는 ‘나는 평생 머릿속이 오리무중처럼 뿌옇게 정리정돈이 안 된 채로 살았는데, 약을 쓰면서 안개가 걷혔다’면서 ‘머릿속이 개운할 수 있다는 걸 왜 내가 몰랐나’라고 하셨죠. 이렇게 ADHD 치료제를 먹고 나서 더 나은 삶을 살게 된 케이스가 많습니다. 이런 경우야말로 ADHD치료제로 진정한 ‘갓생’을 이룬 예라고 볼 수 있겠네요.”

 

2023년 05월 과학동아 정보

  • 김소연 기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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