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상에는 수많은 종의 생명체가 존재합니다. 육지는 물론이고 에베레스트산 높이보다 더 깊고 어두운 바닷속에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많은 생명체가 각자 다양한 모습으로 살아갑니다. 하지만 우리는 어떤 생명체가 고등하다 혹은 하등하다고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대신 복잡한 혹은 간단한 구조를 가진 생명체라고 표현하죠. 이는 모든 생명체가 자신만의 전략으로 생존해온 방식을 인간의 기준으로만 판단해선 안 된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어류 vs. 파충류 vs. 포유류, 배아 구조가 다르다
생명은 하나의 수정란으로부터 시작해 일정 시간이 지난 후 하나의 개체가 됩니다. 명확한 정의는 아니지만, 일반적으로 세포의 운명이 완전히 결정되지 않은 초기 상태의 수정란을 ‘배아(embryo)’라고 부르고, 특정 기능을 하는 조직과 기관을 갖추기 시작하는 단계부터는 ‘태아(fetus)’라고 부릅니다.
신기하게도, 하나의 수정란이 각기 다른 기능을 가진 수많은 조직으로 분화돼 배아와 태아를 만드는 과정은 단순히 한 개체의 발생 과정뿐만 아니라, 좁게는 각 세포와 조직의 형성 과정, 넓게는 여러 생물종의 진화 과정을 엿볼 수 있게 합니다. 척추동물의 수정 직후 초기 배아는 종을 막론하고 구조가 비슷하지만, 발달 과정 중에 주어진 환경에 적응하기 위한, 다른 종과는 차별화되는 자신만의 독특한 구조를 만들어내기 때문입니다. 하나씩 살펴볼까요.
약 35억~38억 년 전 최초의 생명체가 바다에서 출현한 이래 셀 수 없이 많은 수중 생물이 생겨났습니다. 수중 생물들은 바다의 깊이, 조석간만의 차이, 열수 분출, 조류 등 다양한 환경에 다양한 전략으로 적응해 왔습니다. 비슷한 구석이 전혀 없어 보이는 이들에게도 몇 가지 공통점이 있는데요. 가장 큰 공통점 중 하나는 바로 스스로의 생명 유지를 위한 영양분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점입니다. 하지만 물고기 배아의 경우, 엄마의 몸 밖에서 정자와 난자가 수정되기 때문에 엄마로부터 영양분을 받을 수 없습니다. 몸의 구조가 완벽하게 갖춰지지 않았기에 (당연하게도) 직접 음식을 섭취할 수도 없죠. 때문에 물고기 배아는 자신의 발달 과정에 필요한 영양분을 미리 난자에 축적해두는 전략을 고안했습니다. 난황 주머니를 갖게 된 겁니다.
한편 바다에 사는 생명체들은 엄청난 생존 경쟁에 시달립니다. 한정된 공간과 먹이, 호흡 등 여러 가지 이유로 일부 종들은 바다를 떠나 육지 적응을 시도했습니다. 약 4억 3000만 년 전, 육지 착륙에 결국 성공한 이들이 양서류입니다. 물(바다)과 뭍(육지) 양쪽에서 서식할 수 있는 종이죠. 하지만 양서류는 물에서 완전히 독립하지 못해, 태아는 물에서만 자랄 수 있었고 성체가 돼서야 육지에 진출할 수 있었습니다.
파충류는 이런 한계를 극복해냈습니다. 건조한 뭍에서 태아를 보호할 ‘양막(amnion)’이라는 기관을 만들어낸 덕분입니다. 파충류는 양막으로 태아를 물과 함께 감쌌습니다. 여러분들이 한 번쯤 들어봤을 양수가 바로 양막에서 태아를 둘러싸고 있는 물입니다. 양수는 태아의 탈수를 방지할 뿐만 아니라 물리적 충격을 완화시키는 효과도 있죠.
그렇다면 인간이 속한 포유류는 어떤 전략을 찾았을까요? 포유류의 배아는 스스로 영양분을 갖는 대신 엄마의 자궁에 착상하고 태반으로부터 양분을 얻는 방향으로 진화했습니다. 배아가 발달을 위해 배아 내에 영양분을 비축하는 것은 모체의 생존에 이익이 되지 않기 때문에, 어류나 양서류 등의 배아에서 영양분이 있던 자리는 빈 공간으로 남겨두고요.
대신 엄마로부터 보호를 받기 위한 특별한 장치가 필요해졌는데요. 영양분을 채우지 않고 비워둔 공간을 감싸고 있는 단일층의 세포, ‘영양막세포(trophoblast)’가 바로 그 역할을 합니다. 영양막세포는 태아의 몸을 구성하지는 않지만 태아가 엄마 자궁에 착상하고 태반으로부터 영양분을 받아 성장할 수 있게끔 돕도록 진화했습니다.
인공 생명체를 만드는 재료, 줄기세포
우리 인간을 포함한 포유류가 엄마의 배 속에서 만들어지고 커가는 과정은 생명의 기원과 진화과정을 고스란히 담고 있고, 생명 탄생이라는 근원적인 질문의 해답을 갖고 있습니다. 하지만 포유류 배아와 태아의 발달을 연구하는 데는 제약이 많습니다. 먼저 배아와 태아가 굉장히 작고 자궁에 파묻혀 있기 때문에 접근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또 배아나 태아의 세포분열, 분화 속도는 엄청나게 빨라 이를 추적하기가 힘듭니다. 마지막으로 배아나 태아는 원하는 시기에 원하는 위치의 유전자를 조작할 수 없습니다. 윤리적인 이유 때문이죠(한때 유전자 조작으로 ‘맞춤형 아기’를 탄생시키는 일이 가능할지 모른다는 논란이 있었는데, 분명한 건 현재 과학자들은 인간을 만들 필요나 의지가 전혀 없습니다).
이런 수많은 제약을 극복하기 위해 과학자들은 수십 년간 실제 생체가 아닌 실험대 위에서 인위적으로 행해지는 정교한 ‘체외배양(in vitro)’ 모델을 꾸준히 제안해왔습니다. 특정 환경이 주어졌을 때 여러 형태의 세포로 분화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줄기세포(stem cell)’ 연구는 체외배양 모델의 핵심입니다.
정자와 난자의 융합으로 만들어진 수정란은 세포분열 후 상실배가 되며, 이것은 태아와 태반 모두를 만들 수 있는 ‘전분화능’의 줄기세포를 가집니다. 이후 엄마 자궁에 착상하기 전인 초기 배아(배반포墎lastocyst) 시기, 전분화능의 줄기세포는 ‘배아줄기세포(embryonic stem cell)’와 ‘영양막줄기세포(trophoblast stem cell)’로 분화합니다. 배아줄기세포는 모든 장기를 새로이 만들어 낼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습니다. 손상된 조직을 재생하거나 인공 장기를 제작하기 위해서는 배아줄기세포 배양이 절대적입니다.
하지만 몇몇 인체 장기를 넘어 하나의 개체 전체를 만들고 우리 몸 밖에서 인공배양하기 위해서는 필요한 줄기세포가 하나 더 있습니다. 바로 영양막줄기세포입니다. 영양막줄기세포는 우리 인간 배아가 대리모 자궁에 착상하고 태반을 만들 수 있게 역할을 합니다. 배아줄기세포와 영양막줄기세포를 어떻게 체외배양해야 우리를 닮은 인공 생명체를 만들 수 있을까요? 2월호에서 계속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필자소개
성진우. 서울대 생명과학부에서 포유류 임신 시 유선줄기세포 발달과 유방암을 연구해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오스트리아 분자생명공학연구소(IMBA)에서 줄기세포를 이용한 포유류 배아 인공 제작 및 합성을 연구하고 있다. 2022년 한국줄기세포생물학회(KSSCR)와 Kbio-X 가 주관하는 글로벌 젊은 과학자상(Global Young Scientist Award) 대상을 수상했다. 세포신호전달과 분자이동을 바탕으로 줄기세포를 이해함으로써 고등 생명체 합성 가능성을 높이고 있으며, 생명 탄생에 필요한 모든 과정을 이해하는 것을 궁극적 목표로 삼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