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라이브러리









 

“태양 폭발을 두 눈으로 마주하세요!”

핍은 호객꾼의 외침이 쓸데없다고 생각했다. 좌석은 이미 만석이었다. 특히나 태양을 정면으로 마주한 42-31 소행성에는 사람들이 바글거려 발디딜 틈도 없었다. 우주복 겉에 두른 레이스 장식들이 밀려온 태양풍에 나풀거리고 있었다. 티켓값만 해도 아파트 1채는 살 수 있을 정도였다. 핍은 대체 어디서 저런 돈이 나오는지 궁금했다. 호객꾼은 프로그래밍된 안드로이드처럼 같은 말을 반복해댔다.

“이제 폭발까지 지구 시간으로 3분 57초 남았습니다!”

대우주이주 시대에 바퀴벌레처럼 불어난 인류들은 우주에 있는 모든 골디락스 행성을 차지한 것에서 그치지 않았다. 그들은 그들이 설 수도 없는 가스형 행성과 심지어는 항성까지 증권 형식으로 소유하고 거래했다. 화성과 목성 사이의 소행성 지대를 관람석처럼 만들어버린 것은 놀랄 축에도 끼지 않았다. 이 우주식 그리스 극장은 오직 태양 폭발이라는 한 사건만을 위해서 만들어졌다.

‘100억년을 준비한 쇼라니.’

핍은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물론 어머니 지구, 아버지 태양의 종말이 불쌍해서 그런 것은 아니었다. 저 공간들은 핍의 아주 먼먼먼 따지고 보면, 인간과 아메바와 같은 거리감의 존재들이었다. 지구 탄생부터 인류가 만들어지기까지의 시간보다, 인류가 우주로 나가기 시작한 순간부터 태양이 멸망하는 지금까지의 기간이 더 길었다.

핍은 그저 안드로메다 산 싸구려 썬글라스를 끼고 있어 눈이 시렸을 뿐이었다.

긴 시간 동안 준비한 공연치고는 좌석 상태가 불량했다. 가장 저렴한 스탠딩 구역인 A231 소행성의 경우에는 소행성의 크기에 비해 지나치게 많은 사람들이 서 있었다. 언제라도 목성 중력에 이끌려 추락해도 이상하지 않았다. 핍이 있는 B5569 소행성도 불안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기분 탓일지는 모르겠지만 아까 방송국 카메라가 이곳에 착륙하면서 궤도가 뒤바뀐 것 같았다. 좋은 자리를 구하고 싶었지만 핍은 이번만은 참기로 했다. 조금만 버티면 커다란 보상이 쏟아질 것이라 의심하지 않았다.

불쑥 소행성 아래에서 사람 하나가 튀어올라왔다. 잡상인이었다. 그들은 공중부유장치를 활용하여 소행성 사이를 떠다니며 조악한 기념품이나 먹을 것들을 관광객들에게 팔았다. 환경관리국이 무얼하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국립 공원에 불법으로 평상을 설치하고서 에우로파 심해오징어 초무침을 팔아대는 이들을 때려잡느라 바쁜 모양이었다.

잡상인 하나가 멀리서부터 슬금슬금 핍을 향해 다가왔다. 그의 등에는 제트팩과 더불어 태양으로 보이는 동그란 조명봉 다발들이 보였다. 그는 핍에게 다가와 중세 기사가 칼을 뽑듯이 조명봉 하나를 등에서 뽑아 핍에게 겨눴다.

“기념품 어떠세요?”

핍이 고개를 젓자, 그가 말했다.

“인류는 물론, 모든 생명체의 시작인 태양의 마지막이에요. 이 순간을 기념하시는 게 어떠신가요?”

핍은 조명봉을 받아들고는 아래쪽을 살폈다. 그리고는 허탈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여기 보니까, ‘메이드 인 안드로메다’라 적혀 있는데요?”

핍의 반박에도 그는 전혀 주눅들지 않았다. 조명봉을 핍의 목 쪽을 겨누며 말했다.

“원료는 지구에서 가져온 거예요. 조립만 안드로메다에서 한 거고요.”

핍의 무표정에 그는 능숙하게 말을 덧붙였다.

“더군다나 이 쇼처럼 한정판이에요. 앞으로 영원히 출시될 일이 없어요.”

그가 태양 조명봉을 흔들자 대가리에 달린 태양이 벌겋게 변하며 커지기까지 했다. 핍은 그의 말에 거의 넘어갈 뻔했다. 주머니에 손을 넣어 만지작거리는 핍을 보며 잡상인은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그러나 막상 핍의 주머니에는 돈이 한 푼도 남아 있지 않았다. 핍이 빈 주머니를 보이자마자 잡상인은 핍이 뭐라 말을 하기도 전에 다른 소행성으로 날아가버렸다. 대신 핍은 손에 토지 증서 한 장을 쥐고 있었다. 핍은 허탈하게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토지 증서를 손에 꽉 쥐고서 생각했다.

‘이제 시작이야.’

핍은 화성에 한 평 남짓한 땅을 가지고 있었다.

 

*

 

핍의 조상들은 하나같이 땅에 집착했다. 이 같은 경향은 그의 시조 때부터 시작되었다. 그는 지구의 아주 작은 땅을 가지고 있었다. 대한민국이라는 아주 조그만 나라의 서울, 거기서도 여의도라는 더 작은 섬에 있는 낡아빠진 15평짜리 아파트를 시조는 대출을 내어 샀다. 자그마치 자기 월급을 한 푼도 쓰지 않고 이십 년은 모아야 갚을 수 있는 돈이었다. 그는 자신의 인생을 그 아파트를 위해 바쳤다. 대출금을 갚기 위해 매일 조금 먹고, 조금 자고, 조금 싸면서 일을 많이 했다. 다행히 땅값은 지구의 인구 수에 비례해서 치솟았다. 큰 돈을 벌게 된 그는 자기 생각을 점차 확고히 했다.

‘부동산 불패.’

땅에 있어서는 불패 신화라 믿었다. 주식 시장이 고꾸라지고, 기업이 파산할 때도 땅값은 올랐다. 그는 평생 빚을 갚다가 과로로 죽었다. 그가 가진 자산은 상당했으나, 그의 집 부엌에서는 녹물이 나왔으며 마루는 15도나 기울어져 있었다. 그는 유언으로 ‘화성의 땅을 사라’라는 말을 남겼다. 시조의 유언은 DNA처럼 대를 건너갔다. 그의 증증증손주는 달에 땅을 샀고, 또 그의 먼 후손은 수성, 금성 등 땅이란 닥치는 대로 사들였다. 중간에 소행성 충돌로 행성 하나가 반파하며 많은 돈을 잃기도 했으나, DNA만은 남아 묵묵히 전달됐다. 사람들은 일을 해서 땅을 샀고, 대출을 받아 건물을 올렸다. 선조의 지혜대로 그들의 가문은 이제 큰 부자가 되었다.

우주는 무한했지만, 토지는 유한했으니까.

이제 시대는 핍의 아버지에게 이르렀다. 아버지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땅따먹기와 같은 고전 게임들을 즐기며 부동산 투자에 두각을 보였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아버지는 형제 및 친척들과 나눈 유산으로 투자에 나섰다. 처음에는 투자한 땅에 우주물류센터가 들어서는 등 호재로 돈을 많이 벌었으나, 영혼까지 끌어서 투자한 글리젠 G334 행성이 갑자기 소형 블랙홀에 삼켜지는, 그 예상치 못한 악재 하나로 원금 대부분이 사라지고야 말았다.

핍의 아버지는 형제들에게 어렵게 십시일반 돈을 꾸었다. 그 얼마 안 되는 돈으로 다시 부동산 투자를 시작했다. 그러나 작은 투자금을 가지고서는 큰 돈을 만질 수가 없었다. 결국, 핍의 아버지는 모든 자산을 정리해서 다시 태양계로 돌아왔다. 그리고 시조의 유언에 따라 인생 마지막 배팅을 했다. 그는 화성에 땅을 샀다.

태양 폭발로 화성 자체가 사라질 수 있음에도 말이다.

 

*

 

핍은 토지 증서에 적힌 아버지의 이름을 보며 냉동고에 놓아둔 아버지를 잠깐 떠올렸다.

‘3일만 기다리시지.’

3일 전 사고가 발생했다. ‘구매하려는 물건은 꼭 두 눈으로 본다는’, 가상현실이 현실을 압도하는 요즘 세상에 어울리지 않는, 아버지의 부동산 구매 철칙 때문이었다. 핍의 아버지는 태양계에서 가장 높은 산이라는 화성의 올림푸스 산 정상에 올랐다. 아버지가 살 수 있는 땅은 정상에서 열 걸음 정도 떨어진, 한 사람이 간신히 누울 만한 곳이 전부였다. 그게 어디랴. 이 우주에는 자기 땅을 가지지 못한 사람이 대다수였다. 그나마 아버지가 본 매물도 화성 지각 변동으로 하루 전에 생긴 땅이라 했다. 빨리 채가지 않으면 다른 누군가가 분명 사갈 것이었다.

아버지는 그 자리에서 계약을 진행했다. 사인은 거침 없었고, 만족스러운 거래를 마쳤다. 산 정상에 오른만큼 약간의 반주와 함께 식사를 마친 그는 중개인과 함께 기분 좋게 산을 내려갔다. 그런데 그만 발을 헛디디고 만 것이다. 그렇게 핍의 아버지는 만 킬로가 넘는 곳에서 떨어졌다. 중개인의 증언에 따르면 아버지 당신은 올림푸스 산 한쪽 면을 거의 훑으며 내려갔다고 했다. 마치 19세기 마차로 아메리카 대륙을 내달린만큼 땅을 받던 미국인들처럼 말이다.

슈트를 입고 있어 그런지 시신이 쪼개지는 그런 불상사는 없었다. 핍의 아버지는 지금 슈트를 입은 채로 화석처럼 냉동고 보관되어 있었다. 장례를 치를 틈이 없었다. 화성이 태양에 먹히면 말그대로 핍의 가족은 파산이었다. 장례는 일이 모두 끝나고 치르기로 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에 토지 증서는 핍에게 상속되었다. 형제가 없어 다행이었다. 핍은 토지 증서를 곧장 팔아버릴까 하다가 말았다. 그 아버지의 그 자식이었다. 핍은 아버지가 나름 합리적인 판단을 내린 것이라 여겼다. 정말 만의 하나 화성이 태양 폭발에서 살아남는다면 가치가 사상 최대로 올라갈 것이었다. ‘지구에 가까웠던 행성’으로 불리며 말이다. 아주 먼 과거 일본 도쿄라는 도시가 그랬다는데,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나 핍이 확인할 길이 없었다. 화성 땅값은 아버지와 같은 투기꾼들에 의해 미치도록 치솟았고, 은하연합정부에서는 반복해서 투자에 유의하라 공표했다. 그러나 듣는 사람은 없었다.

“제발!”

우주복이 두꺼운 탓에 사람들은 합장하려 손을 버둥거렸다. 핍도 마찬가지였다. 태양은 풍선처럼 커졌다가 줄어들기를 반복했다. 그에 맞춰 사람들은 울고 웃었다. 아버지와 같은 사람들이 핍 주변에 가득했다. 모두들 태양계 행성 어딘가의 토지 증서를 손에 쥐고서 태양 폭발이 자신의 토지에는 미치지 않기를 빌고 있었다.

“아이고.”

탄식이 들려왔다. 조금씩 윤곽이 드러나는 모양이었다. 수성에 토지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그 자리에 주저 앉았다. 수성의 경우에는 높은 위험성 때문에 정부에서도 매매를 법적으로 금지한 구역이었다. 자업자득이었다. 그들은 속아서 혹은 시기를 놓쳐 토지를 처분하지 못하여 돈을 날려버렸다.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자리에 앉아 울거나, 태양을 향해 화를 내는 것이 전부였다. 핍에게는 크게 와닿지 않았다. 우주 공간이라 전파만 차단하면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버튼 하나만 누르면 우주 공간에서는 타인과 완전히 단절될 수 있었다.

 

*

 

모든 생명체의 출발점.

인류의 어머니이자 근간.

핍이 보는 태양은 이제 이런 표현이 어울리지 않았다. 핍에게 지금 태양은 핍의 재산을 노리는 강도와도 같았다. 이글거리는 불덩이는 막 수성을 완전히 먹어치웠다. 이제는 몸을 늘려 금성까지 노리고 있었다. 화성과 태양의 거리는 서서히 좁혀지고 있었다.

핍은 아주 먼 과거 지구 신화 속 태양의 모습들을 떠올렸다. 아직 대기권 근처에도 가보지 못한 원시 인간들은 태양을 아가리를 크게 벌린 늑대나 눈이 뒤집혀 지구 대기를 내달리는 미치광이 신으로 여겼다고 했다. 거기서부터 수십억 년이 지났음에도, 핍은 태양을 보며 원시 인류들처럼 몸을 떨었다.

‘지금이라도.’

핍은 토지 증서를 팔아버리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만약 태양이 화성을 삼켜버린다면? 핍은 모든 재산을 날려먹고 우주 보이드에 내동댕이처질 것이다. 그곳에는 아무것도 없다. 사람은 말할 것도 없고, 물도, 공기도. 한 줌의 땅도 가지지 못한(더불어 세를 낼 돈도 없는) 이들은 그렇게 모든 것에서 차단되었다. 사실상 토지가 없다는 것은 죽은 것과 다르지 않았다. 핍은 42-99 소행성 뒤편을 힐끔거렸다.

소행성 뒤편에서는 거래가 아직도 활발히 이뤄지고 있었다. 그들은 실시간으로 태양의 상태를 보면서 증서를 사고 팔았다. 어떤 사람들은 지구 쪽 땅을 거래하기도 했는데, 도저히 이해가 안 됐다. 과학 애널리스트들에 따르면 99.9 퍼센트 확률로 지구는 태양에 먹힐 것이었다. 핍은 전파를 맞추어 그들의 대화를 들어보려 했다.

이상한 소문이 나돌고 있었다. 정부가 소유권자에게 보상을 해준다고 했다. 보상 형태는 새로 만들어진 우주 공간 일부를 양도한다는 파격적인 조건이었다. 순간 핍도 마음이 혹했다. 그 말이 사실이라면 핍은 자기가 산 토지 증서와 맞바꿀 용의도 있었다. 그러나 동시에 의심이 갔다. 정부가 굳이 그럴 이유가 없었다. 이미 새로 만들어진 우주 공간마저 정부의 재정 유지를 위해 모두 민간에 분양이 이루어진 상태였다. 보통 국제우주금융인연합과 같은 단체들이 그것들을 사들였다. 핍 같은 일반인들이 건드릴 수 있는 시장은 아니었다. 아마도 최소 500억년까지는 소유자가 예정되어 있을 것이었다.

미래를 끌어다가 현재를 사는 그런 어이 없는 형태였다.

핍은 관심을 끄기로 했다. 투자에 있어서는 오직 자기 자신만을 믿어야 했다. 출처가 불분명한 사탕발림은 낚시바늘에 꿰인 미끼와 같았다. 함부로 물어서는 안 됐다. 누구도 대신 투자를 해주지 않았다.

 

*

 

“포식자 같군.”

핍의 뒷자리에서 발을 쭉 뻗고 앉은 손님은 그리 말했다. 핍의 가랑이 사이에서 그의 발가락은 꼼지락거리고 있었다. 마치 외계인 ‘플랑’ 같았다. 그들은 보이저 호에 묻어 간 플랑크톤이 G-122U 행성에 도착해 진화한 말하자면 지구 출신 생명체이다. 그들 역시 인간들에게 토지를 빼앗기고는 월세를 납부하며 자신들의 행성에서 살아가고 있었다. 뒤 편에 앉은 발가락이 옆자리에 앉은 자기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친구가 발가락에게 물었다.

“누가? 태양이 포식자 같다고?”

“아니, 여기 사람들. 무슨 땅을 종이 클립처럼 사고 팔고 있잖아. 그 위에 살고 있는 생명체 생각은 안 하고.”

“뭐, 저 사람들 돈을 주고 그 땅을 산 거니까.”

발가락은 성을 내기 시작했다.

“그게 이상한 거야. 땅을 사서 정당한 거라면, 태초에 땅을 판 사람은 어디서 산 거야? 누가 그 사람한테 준 건데? 정부야? 그때 정부는 없었는데?”

“우리 같은 사람이 말해봤자 뭐 하겠어? 평생 일해도 땅 한 줌도 못 사는데. ”

둘은 주변을 둘러보고는 한숨을 크게 쉬었다. 발가락이 말했다.

“제길, 내가 아니더라도 내 자식 누울 자리 하나라도 있어도 좋으려만.”

핍은 뒤돌아 보지 않았다. 꼼지락거리는 발가락을 보고서 한 번 씩 웃어 줄 뿐이었다. 핍은 증서를 주머니에 챙겨 넣었다. 조금이지만 우월감이 느껴졌다. 핍에게는 자기 몸을 뉘일 땅이 있었다. 물론 태양에 의해 먹히지만 않는다면 말이다. 발가락은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이상하지 않아? 새로운 공간은 계속해서 생겨나고 있는데, 우리 같은 사람한테는 단 한줌의 땅도 손에 쥐어지지 않는다는 게.”

핍은 그 말을 듣고서는 땅에 집착했다던 자기 조상에게 깊은 감사를 표했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저들처럼 기회도 잡지 못하고 한탄만 하고 있을 테니까.

 

*

 

쇼의 끝에 다가갈수록 관람석은 부산스러워졌다. 달이 태양에 먹혔을 때는 투기꾼 하나가 돈을 돌려달라면서 칼로 다른 이들을 협박했다. 경비원들이 출동하고 대치 상태가 지속됐다. 물론 그에게 도망칠 땅은 없었다.

수세에 몰린 그는 끝내 칼로 자기 우주 슈트에 구멍을 냈다. 구멍에서는 산소가 빠져 나가며 그는 곧장 소행성 지대에서 튕겨나갔다. 그의 궤도는 정해져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아가리를 크게 벌린 저 적색 거성에 의해 삼켜졌다.

그 와중에도 핍은 가만히 태양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겉으로 보아서는 평온했으나, 속은 시끄러웠다. 순간 태양 플레어가 태양을 할퀴었다. 지구에는 크로와상처럼 커다란 주름이 하나 생겼다. 지구에 땅을 산 사람들이 헬멧을 손으로 감싸며 괴로움을 표했다. 핍의 심장도 떨렸다.

그때 42-30 소행성 지대의 맨 앞자리에서 실루엣 하나가 꿈틀거렸다. 얼굴은 보이지 않았으나, 자리로 그가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었다. 핍은 그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우주 팽창 속도와 계좌에 돈이 쌓이는 속도를 비교할 사람이겠지.’

특히나 실루엣 어른거리는 곳은 상석 중에 상석이었다. 자릿값으로만 화성에 있는 올림푸스 산 전체를 살 수 있을 정도였다. 핍 같은 사람들은 그들의 실루엣만 볼 수 있었다.

그는 자리에서 분주하게 움직였다. 무언가를 설치하는 것 같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거대한 역삼각형의 망원경이 우뚝 섰다. 망원경의 렌즈는 정확하게 태양 쪽으로 향했다. 망원경은 실시간으로 안과 밖을 달리하며 모양이 변주했다. 그것은 양자 얽힘을 토대로 정보 지연 없이 태양을 바로 마주하는 듯한 느낌을 사용자에게 주었다. 그들은 이미 그것으로 태양의 탄생 순간부터 멸망까지 모든 것을 보았을 것이다.

정부는 법적으로 양자 망원경으로 예견할 수 있는 시간을 수 분으로 제한했으나, 재벌들은 도저히 들을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들은 망원경을 이용하여 모든 것을 예측했다. 주식 차트부터 부동산까지. 금싸라기 땅은 이미 모두 그들의 소유였다. 그들이 땅을 사면 사람들이 모이더니 주변에 엄청난 시설이 들어섰다. 정경유착은 옛말이었다. 그들은 굳이 정치권에 엎드리지 않고서 양자 망원경 하나로 우주의 모든 부를 거머쥐었다.

핍은 모든 시선을 태양과 상석의 실루엣에만 집중했다. 금싸라기 땅을 살 수가 없다면 그 옆에 붙은 애기 손바닥만한 땅이라도 사야했다. 애기 손바닥만한 땅이 성인 손 크기가 되고, 성인 손 크기의 땅이 한 사람이 누울 수 있는 땅이 되었다. 아버지가 그렇게 땅을 사고 팔았기에 화성에 한 평 남짓한 땅을 살 수가 있었다. (물론 중간에 많이 날려 먹기는 했지만) 기회를 붙잡은 셈이었다.

핍의 아버지에게는 작은 꿈이 있었다. 그는 돈을 많이 벌면 길이 1.7 미터짜리 모르고 디오라마를 제작하고 싶다고 했다. 그것은 아주 작은 미니어쳐들의 집합체로 아버지가 원하는 세상 그 자체였다. 거대하거나 별들이 폭죽처럼 터지는 화려한 세계는 아니었다. 오히려 현실과 지나치게 같았다. (그렇기에 돈이 무지막지하게 들었다. 말 그대로 세계를 창조하는 것이었으니까) 단 한 가지가 달랐다. 그 세계는 온전히 아버지의 것이었다. 아버지는 될 수 있다면 마인드 업로딩을 통해 온전히 자신의 것인 미니어쳐 세상에서 살고 싶어 했다. 물론 너무 좁아서 어떻게 살 것이냐고 핍이 묻자, 아버지는 반대로 우주는 너무 넓어서 싫다고 했다.

그러나 핍은 달랐다. 어떻게든 부동산으로 돈을 모아 행성 전체를 사고 싶었다. 그걸 밑천으로 거물들이 손을 대는 ‘우주의 끝, 그 너머’를 향해 내달리고 싶었다. 너머에는 무엇이 있는지 핍은 알지 못했다. 분명 돈이 그곳에 모이는 데에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핍은 그것을 직접 두 눈으로 보고 싶었다.

그 무한한 공간이 생겨나는 모습을.

 

*

 

“이제 클라이막스!”

호객꾼의 외침과 함께 태양은 급속도로 부풀어 올랐다. 지구는 그 자취를 감추었다. 임계점에 다다라 푸드 파이터의 부푼 배처럼 태양은 그 크기를 잠시 유지하더니 빠르게 수축하기 시작했다. 핍은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싸구려 선글라스를 내던져 버리고는 태양을 마주보았다. 너무 눈이 부셔서 화성이 먹혔는지 아닌지 도저히 알 수가 없었다. 사람들은 태양의 마지막 모습을 보며 탄성을 내질렀다. 그러나 역시 소리를 전달하는 매질이 없어 서로에게 닿지는 않았다. 의미 없는 외침들의 연속이었다.

핍의 손에는 땀이 차 올랐다. 눈들이 빠르게 주위를 훑었다. 붉은 빛을 내던 태양은 급격하게 한 점으로 수축하더니 푸른 빛으로 바뀌었다. 그리곤 터지고야 말았다. 우주 공간이라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갑자기 엄청난 압력의 플레어가 몰려왔다. 사람들은 자기가 앉은 소행성을 꼭 붙잡아야 했다. 소행성이 뒤집히기도 했지만, 주최측이 미리 준비해 놓은 중력 그물 덕분에 위험하지는 않았다. 핍은 그 와중에도 눈을 부릅떴다.

“저기!”

한 사람이 어두운 한 쪽을 가리켰다. 사람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핍은 옆에 사람이 들고 있던 망원경을 뺏어 사람들이 가리키는 곳을 보았다. 반쯤 부서진 화성이 보였다. 그러나 핍이 산 올림푸스 산이 있는 곳은 살아남았다. 핍은 사람들과 함께 환호성을 지르며 서로를 껴안았다. 이제 그는 엄청난 돈방석에 오르게 될 것이었다.

태양은 그렇게 어마무시한 토지를 삼키고는 죽어 버렸다.

 

*

 

죽어버린 태양에게서 과거의 영광이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었다. 작은 점으로 쪼그라든 항성은 자신이 과거에 붙잡아 두었던 다른 행성보다도 볼품 없었다. 사람들은 까치발을 한 번 들었다가 생각보다 초라한 그것의 모습에 입맛을 다시고는 자리을 벗어났다.

100억년에 걸쳐 완성된 쇼는 이렇게 끝이 났다.

소행성 지대에 우주선들이 유성우처럼 쏟아졌다. 관람객들은 일제히 우주선들에 몸을 실었다. 잡상인들은 어떻게든 남은 물건을 팔기 위해 거침 없이 얼굴을 들이밀었다. 핍에게 물건을 들이밀던 잡상인도 열심히 우주선 뒤를 따르며 열심이었다. 대가리에 달린 태양이 커졌다가 작아지기를 반복했다.

핍도 자신이 부른 택시에 올라탔다. 아폴로 18호의 모습을 한 앤티크 택시였다. 앞자리에 탄 기사는 117- HB 행성 억양으로 핍에게 물었다.

“어디로 모실까요?”

토지 증서를 오래 쥐고 있어 손아귀가 저려왔다. 핍은 화성이 살아남은 즉시 토지 증서를 거래소에서 모두 매각해버렸다. 앞으로 태양계에 호재는 없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살아남은 태양계 행성들은 자기 궤도대로 멀리 달아날 테니까. 따지고 보면 태양이 죽은 순간, 태양계도 함께 죽은 것이었다. 다행히 얼마 지나지 않아 상석에 앉은 사람들도 토지를 모두 팔아버렸다는 소식이 들려왔고, 화성의 토지 가치는 순식간에 폭락했다.

핍은 기사에게 말했다.

“일단 백조자리 방향으로 가주세요.”

택시는 미끄럽게 날아올랐다. 핍은 뒷좌석에서 눈을 감고서 앞으로의 일들을 생각했다. 우선 오늘 번 돈으로 부동산을 또다시 사야했다. 물론 근본적인 문제점은 항상 핍의 머릿속을 맴돌았다.

‘언젠가 망할까?’

우주가 팽창하면서 엔트로피는 떨어지는 것은 피할 수 없었다. 일부 과학자들은 엔트로피가 0에 수렴할 경우에 우주 전체가 다시 쪼그라질 수도 있다고 했다. 그때가 되면 토지를 가진 사람은 억울해 죽을 지경일 것이다. 내 토지와 다른 사람의 토지가 한데 붙어버리니 말이다.

‘소송이 이어지겠지.’

그러나 그리 생각하면 어디에든 투자를 할 수가 없었다. 어딘가에서는 돈을 계속 찍어대고 있고, 생명체들은 계속해서 태어나고 있으며, 우리 인간은 언젠가 죽으니 말이다. 핍은 일단 백조자리 쪽 복덕방에 가보기로 했다. 이번에 새로 생긴 우주 공간에 좋은 매물들이 있다고 들었다. 은하들이 오밀조밀 모여 있는 구상성단에 새로운 생명체가 발견되어서 그들에게 토지를 비싸게 팔아먹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제야 핍은 그간 미뤄두었던 아버지의 장례에 대해서 생각했다. 유산을 상속 받은 후 이곳에 오느라 미처 아버지의 장례를 치르지 못했다. 시체가 담긴 슈트를 차마 열어보지도 못했다. 핍은 가만히 생각하다가 기사에게 말했다.

“가르강튀아로.”

돈을 벌었으니, 사람 키만한 우주선에 아버지를 모시고는 온갖 장식을 매달 생각이었다. 지구에서 캐내었다는 구리와 동을 가공해서 화려한 장식을 관 위에 올려 볼까도 했다. 그렇게 화려한 우주선은 우주를 떠돌다가 끝내 은하 중심에 있는 거대 블랙홀의 중력에 이끌려 그곳으로 빨려들어갈 것이다.

우주 상의 모든 존재는 결국 한 점, 블랙홀로 모였다.

0차원의 세계.

좌우도, 높낮이도 없이 오직 한 점으로 존재하는 공간. 그곳에 아버지 같이 죽은 사람들은 한데 모였다. 과거와 같이 한 평의 땅을 쓸데 없이 차지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공간은 산 사람의 것이었다. 핍은 문득 블랙홀을 떠올렸다.

‘없는 공간이라. 그것도 사고 팔 수 있으려나.’

핍을 태운 우주선은 은하 간 아주 짧은 거리를 내달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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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01월 과학동아 정보

  • 김준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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