핀란드의 예술가 데이비드 포파의 작품들은 사라질 것을 전제로 태어난다. 포파는 땅 위에 그림을 그린 대지예술 작품으로 유명하다. 빙하, 산맥, 사막 등 자연이 그의 캔버스다. 그 위에 숯과 물을 섞어 그림을 그린다. 바람이 불거나, 비가 오거나, 빙하가 녹아버리면 그림도 함께 사라진다. 그래서 포파는 자신의 작품을 ‘지구 위에 그린 덧없는 그림’이라고 표현한다. 자연에 존재하는 다른 모든 것처럼, 포파의 그림 또한 잠시도 멈춰 있지 않고 계속해서 변한다.
노르웨이 로포텐 제도의 눈 덮인 해변 위에 그린 ‘변신(Metamorphosis)’은 변화 그 자체가 가진 아름다움을 잘 나타내는 작품이다. 알에서 애벌레로, 나비로, 그리고 흙으로 돌아가는 나비의 변화는 해변에 내린 눈이 녹아 바다로 흘러가는 계절의 흐름과 맞닿아 있다. 봄이 오면, 눈이 녹는다. 그러면 눈 위의 나비 그림은 천천히 바닷물 속으로 사라질 테다. 작품의 제목은 나비와 눈, 그리고 계절 모두에 해당하는 표현인 셈이다.
나비를 그린 숯가루의 운명이 재미있다. 작가는 미국의 예술 잡지 ‘콜로설(Colossal)’과의 인터뷰에서 “(얼음이 녹아) 숯가루가 물속으로 들어가면 물을 정화하는 식으로 환경에 작은 도움이 된다”고 했다. 시간 속에서 덧없이 사라진 그림이 바다에 남겼을 작은 흔적을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