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18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 중세 건물과 여유로운 사람들로 뒤섞인 아름다운 도시에 전 세계의 천문학계, 항공우주학계 관계자들이 모여들었다. 이들이 향하는 곳은 파리 컨벤션센터, 2022년 국제우주대회(IAC)의 현장이다. IAC는 전 세계에서 가장 큰 우주 행사로, 국제우주연맹(IAF)과 국제우주학회(IAA), 국제우주법협회(IISL)가 함께 주관하고 있다.
이곳에서는 항공우주산업 관계자와 연구자뿐만 아니라 일반 대중들도 공부하고 경험하며 미래 우주산업을 느끼고 체험할 수 있다. 그래서 과학 커뮤니케이터이자 과학 유튜브 ‘지식인 미나니’를 운영하고 있는 필자는 우주에서 펼쳐질 미래를 살펴보기 위해 직접 현장으로 날아왔다.
록히드마틴, 에어버스, 보잉…전 세계 우주선 전시
항공우주산업의 백미는 누가 뭐라하더라도 우주선이다. 전 세계에서 모인 사람들로 북적북적한 IAC 전시장에서도 단연 눈에 띄는 것은 NASA의 아르테미스 프로그램과 관련된 부스, 그 중에서도 우주선들이 전시된 부스였다.
미국 록히드마틴은 아르테미스 프로그램에서 심우주여행을 도와줄 우주선 오리온을, 유럽의 에어버스는 오리온 우주선에 장착되는 서비스 모듈을 전시했다. 이 모듈에는 우주선을 조종할 컴퓨터와 연료, 배터리 등이 탑재돼 있다.
미국의 보잉 부스에서는 재사용 유인우주선 스타라이너를, 이스라엘항공우주산업(IAI) 부스에서는 달 착륙선을 만날 수 있었다. 모두 달 정거장인 루나 게이트웨이를 통해 지구와 달을 잇겠다는 아르테미스 프로그램에서 핵심이 되는 장치들이다.
이런 주요 장치들 만큼이나 필자의 눈을 끈 전시도 있었다. 독일 항공우주센터(DLR) 부스의 마네킹이 입고 있던 멋진 디자인의 옷, 아스트로라드(AstroRad)다.
우주 방사선을 측정하기 위해 개발된 이 옷은 아르테미스 1호에 탑승할 마네킹을 위해 만들어졌다. 무니킨 캄포스 사령관과 헬가, 조하르라 이름 붙여진 3개의 마네킹은 이 옷을 입고 인류 최초로 장기간의 달 궤도 공전이 인체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할 예정이다.
달보다 더 어려웠던 소행성 착륙의 흔적
일본 우주항공연구개발기구(JAXA)의 부스에서는 의외의 전시품도 만날 수 있었다. 큰 돋보기로나 볼 수 있을 정도로 작게 쪼개진 암석 조각이었다. 첨단 기술이 각축하는 현장에서 모래알만큼이나 작은 샘플을 내놓은 JAXA의 자신감은 무엇이었을까.
1960년대 NASA 아폴로 임무 중 하나는 달 토양 샘플을 채취해 지구로 귀환하는 것이었다. 실제로 시커먼 달 토양과 암석 등을 지구로 가져왔고, 전 세계 여러 나라에 기증했다. 한국에는 아폴로 11호와 17호 임무에서 채취한 월석의 일부를 기증했다고 한다.
그런데 달 탐사보다 더 어려운 일을 JAXA에서 해냈다. JAXA의 소행성 탐사선인 하야부사 2호는 인류 최초로 소행성 류구의 샘플을 채취해 2020년 지구로 전달하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이번 IAC의 JAXA 부스에 전시된 샘플이 그 중 일부였다. 부스를 방문하자 현장에 있던 야베 아즈사 JAXA 대변인은 당시 임무의 어려움에 대해 설명했다.
“일본 하야부사 2호의 소행성 탐사 임무는 달 착륙보다 더 어렵습니다. 왜냐면 일단 소행성은 달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멀리 있기 때문입니다. 거기다 소행성은 달보다 엄청 작습니다. 때문에 당연히 중력도 약합니다. 탐사선이 소행성에 착륙하다가 튕겨져 나갈 수 있죠.”
JAXA 부스에도 여느 부스와 다름없이 아르테미스 프로그램과 관련된 여러 기술이 소개됐지만, 이 작은 샘플 하나로 보여줄 수 있는 일본의 항공우주기술력은 무엇보다 강력했다.
세계가 주목한 한국의 항공우주기술
JAXA 부스 옆에는 반가운 글자가 보였다. 여느 해외 부스 못지않게 큰 규모로 한국 기관과 기업의 부스가 마련돼 있었다. NASA와 유럽우주국(ESA) 부스 다음으로 많은 관람객들이 이곳을 찾고 있었다.
한국항공우주연구원(KARI)을 비롯해 나라스페이스, 한화에어로스페이스 등에서 부스를 마련했다. 이중 특히 눈에 띈 곳은 ‘무인탐사연구소(UEL)’였다. 다른 한국 기업이 대부분 위성 기술을 내놓은 것과 달리 UEL은 2031년 달 탐사선에 탑재하는 것을 목표로 개발 중인 탐사차(로버)를 전시했다.
UEL 부스에서는 여러 형태의 탐사차를 볼 수 있었다. 네 개의 바퀴로 움직이는 ‘해태’와 ‘거북이’, 두 바퀴로 움직이는 ‘소똥구리’였다. 하나만 개발하기도 어려운 탐사차를 다양하게 만들고 전시한 이유를 김영섭 UEL 연구원에게 들었다.
“아직 어느 정도 크기와 무게로 탐사차를 보낼지, 어떤 연구 장비들을 탑재하고 보낼지 정해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여러 가지 시제품을 만들어 우리가 가진 달 토양의 모사품(레골리스·Regolith) 환경에서 실험하고 있습니다.”
아폴로 14호가 가져온 달 토양의 모사품과 함께 전시된 로버가 신기한지, 관람객들은 UEL 부스를 계속해서 찾았다. NASA의 한 관계자는 이곳을 찾아 연구원들의 발표를 듣고 앞으로 협업할 것을 찾자고 제안하기도 했다.
기업들의 홍보 전시와 함께 전세계의 대학생과 연구자들이 공부하고, 연구한 내용을 발표하는 자리도 마련됐다. 한국항공우주연구원(KARI)의 지원으로 연구한 한국 학생들도 성과를 발표했다.
서울대와 한양대, UST, 조선대 등에서 ‘달 환경에 맞는 네 개의 바퀴를 가진 로버’ ‘스테레오 비전 카메라 시스템으로 달 탐사 로버에 적합한 길 찾기’ ‘천리안 위성 2호의 장거리 정보 송수신으로 모든 사람들이 통신하는 법’ 등 다양한 주제에 대해 발표했다.
발표장에는 전 세계의 연구자와 학생들이 몰려와 있었다. 발표가 끝나기 무섭게 질문들이 쏟아졌고, 활발하게 질문을 주고받으면서 전시장과는 다른 협력의 장이 펼쳐졌다.
지원받던 나라에서, 이끄는 나라로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IAC는 한국에게 조금은 특별했지 않았을까. 한국이 처음 고속철도(KTX)를 개발하던 시절, 프랑스 테제베(TGV) 기술을 도입했다. 또 초창기 서울 지하철 열차와 종이 티켓을 넣는 개찰구 시스템에도 프랑스 기술이 사용됐다. 한국의 기술력이 해외에 한참 못 미쳤던 탓이다.
기술을 사와야했던 국가인 프랑스에서 열린 IAC에 한국의 기업과 기관이 당당히 참가해 세계 우주 산업계의 관심을 불러일으킨다는 것이 놀랍고도 새롭다. 미국과 일본, 유럽보다 시작이 늦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이제는 뉴스페이스, 새로운 우주 개척 시대가 열리고 있다. 이날 IAC에서 만난 항공우주의 미래에는 기술을 이끌어가는 한국의 모습이 보였다.
※필자소개.
이민환. 과학 유튜브 채널 ‘지식인미나니’ 운영자 및과학커뮤니케이터. 한국예술원 특임 교수도 겸임하고 있으며, 저서로는 ‘알수록 쓸모 있는 요즘 과학 이야기’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