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로노우스키는 20세기의 르네상스인으로 불리는 과학자다. ‘인간을 인간으로 존재하게하는 독특함은 어디에서 나오는가’ 라는 질문의 해답을 찾기 위해 노력했던 그는 자연과학뿐만 아니라 인문∙사회과학의 다양한 분야를 넘나들며 연구에 몰두했다.
‘인간 등정의 발자취’ (The Ascent of Man)는 브로노우스키의 대표작으로, 원시 인류의 진화에서부터 현대 핵물리학에 이르기까지 인간의 위대한 정신적 흐름을 보여준다. 책의 제목에 있어서나 내용에 있어서나 이 책은 종종 다윈이 쓴‘ 인간의 유래’ (The Descent of Man)에 비견된다. 다윈이 원시인에서 현대 인간으로 ‘내려온’ 인류의 생물학적 진화 과정을 그렸다면, 브로노우스키는 인간이 상상력과 이성의 힘으로 ‘상승시켜온’ 인류의 문화적 진화 과정을 그렸기 때문이다.
‘인간 등정의 발자취’ 는 원래 BBC 다큐멘터리 시리즈로 기획∙방영됐다가 책으로 출간된 작품이다. 브로노우스키는 자신의 연구를 시각화해서 대중들에게 전달하고 대화할 수 있는 매체인 TV를 즐겨 이용했는데, 특히 이 시리즈에는 자기 자신을 송두리째 바칠 각오를 할만큼 애정을 가졌다고 한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의 두개골을 통해 인류의 기원을 추적하는 것에서 시작되는 이 책은 고대 예리코의 오아시스에서 잡종밀의 개량이 가져다준 농업혁명과 말의 가축화가 유목경제에 미친 영향, 연금술로부터 시작된 현대과학의 발전과 아랍인들이 기여한 천문학과 수학, 프톨레마이오스의 천체 모형과 코페르니쿠스가 가져온 혁명적인 발상의 전환, 갈릴레이와 뉴턴의 시대를 지나 시간의개념을 근본적으로 뒤흔든 아인슈타인, 그리고 인간에 의해 발달된 과학이 인류의 미래에 어둠을드리우게 된 아우슈비츠와 히로시마에 이르기까지 인간의 역사를 총망라하고 있다. 그러니까 이책에서 다루고 있는 과학사는 자연과학에 한정되지 않고 인류 문화의 큰 흐름을 모두 섭렵하고 있는 셈이다.
브로노우스키는 인간이 자신의 지평을 끊임없이 확대하고 또 반대로 파괴하는 현장을 살펴봄으로써 궁극적으로 20세기의 ‘자연철학’ 을 도출해내고 싶었다고 한다. 그는 “자연의 이해는 인간 본성의 이해를, 그리고 자연 안에서의 인간 조건의 이해를 목적으로 한다” 고 생각했다. 나아가 인간성 없이는 철학이 있을 수 없고, 올바른 과학도 존재할 수 없다고 믿었다. ‘인간을 위한 과학만이 인류의 미래’ 라는 브로노우스키의 생각은 1973년에 나온 이 책이 30년이 지난 지금까지 빛을 잃지 않는 이유를 말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