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시간 동안 토착민 사회의 이야기는 가려져 왔습니다. 너무도 오랫동안 억압된 우리의 목소리를 들어주세요. 모든 해안이 그 지역의 영웅을 가질 수 있도록.”
아샤 드 보스는 스리랑카의 해양생물학자다. 그녀는 “여섯 살부터 해양 포유류를 살리려는 노력을 해왔다”며 “내가 특히 애정을 가지던 스리랑카 바다의 대왕고래는 제각기 다양한 사투리를 구사하는 소중한 존재들”이라고 했다.
나태주 시인이 시 ‘풀꽃’에 썼듯,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그래서 세계 각지가 가진 고유한 가치는 그 지역 사람들이 가장 잘 발견할 수 있다. 그런데 그간 세상의 아름다움을 말할 마이크는 공평하게 주어지지 않았다. 서양 사람들이 동양의 자연을 보고 독특하다고 평했다. 북반구 사람들이 남반구에 방문해 토착민들의 생활상을 소개했다. 드 보스는 “스리랑카의 대왕고래를 지키는 여정에서 얻은 교훈은 나처럼 그간 주목받지 못했던 지역의 탐험가들이 제 목소리를 내도록 도와야 한다는 것이었다”고 했다.
그간 쉽게 들을 수 없었던 아시아 탐험가들의 이야기를 한 곳에서 들어볼 수 있는 행사가 열렸다. 내셔널 지오그래픽 소사이어티 아시아는 지난 6월 6일부터 9일까지 4일간 제주도에서 ‘내셔널 지오그래픽 탐험가 스포트라이트 아시아’를 개최했다. 동아시아에서는 최초로 개최된 이번 행사에 내셔널지오그래픽 아시아 탐험가 18인이 참가했다. 행사는 미국 워싱턴 D.C. 에서 개최되는 탐험가 페스티벌과 동시에 열렸다.
새우를 살피며 등산하는 법
아시아 각국의 탐험가들은 행사 첫째 날인 6일 워크샵을 진행한 뒤, 7일 제주도의 람사르 습지 네 곳 중 하나인 동백동산을 탐험했다. 람사르 습지는 보호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판단돼 ‘람사르 협약’에 의해 지정된 습지다. 행사를 기획한 안재하 내셔널 지오그래픽 소사이어티 아시아 연구원은 “동백동산의 곶자왈에 방문했는데, 운 좋게 인근 해안에서 해녀들을 만났다”며 “제주의 해녀는 이미 전 세계에 알려져 있어 탐험가들은 제주 해녀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고 했다. 이어 “탐험가들이 해녀가 물질하는 모습을 직접 보게 돼 굉장히 인상 깊어 했다”고 말했다.
8일과 9일 진행된 탐험가 발표대회는 탐험가들이 자신들의 경험을 세상에 알리는 자리였다. 제주 지역 중학교 학생들과 환경단체, 국회의원, 내셔널 지오그래픽 관계자 등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모였다. 국적도, 하는 일도 다른 이들을 묶어주는 건 아름다운 자연환경을 만난 경험이었다.
태국의 생물학자 와차라퐁 홍잠라실릅은 “제주도의 자연환경을 보고 반했다”며 “태국에도 제주도처럼 자연환경을 보기 위해 찾는 관광지가 있다”고 소개했다. 홍잠라실릅의 주요 연구대상은 태국 우본 랏차타니 지역의 강에 사는 민물새우, 마크로브라키움 디엔비엔푸엔스(Macrobrachium dienbienphuense)다.
이 새우는 매년 우기마다 강에서 나와 산으로 올라가는 습성이 있다. 지역 주민들은 새우가 신을 숭배하기 위해 산 정상으로 향하는 것이라며 축제를 벌인다. 그러나 관광객들이 몰리면서 새우는 멸종의 위협을 받고 있다. 홍잠라실릅은 “새우의 멸종은 단순히 종 하나가 사라지는 문제가 아니다”라며 “그 지역 문화 전체의 멸종으로도 연결된다”고 했다. 이어 “현재 새우를 보호하기 위한 활동을 하고 있다”며 “제주도와 같은 자연을 보러 갈 때는 자연보호를 항상 염두에 두며 에코투어리즘을 실천해달라”고 했다. 에코투어리즘은 친환경 관광을 통해 도시와 지역사회 모두에게 도움이 되는 새로운 관광 형태다. 여행으로 인한 환경파괴를 최대한 막고, 환경보호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데 중점을 둔다.
인도네시아에서 해양생태계를 연구하는 어구스틴 캐프리아티도 “인도네시아에는 독이 없는 해파리가 사는 호수가 20여 곳 있다”며 “독 없는 해파리가 탄생한 배경을 정부와 대학 등의 공조를 통해 연구하고 있으나, 관광객들로 인해 이런 해파리가 큰 피해를 입고 있다”고 했다. 이어 “어딜 가든, 환경을 생각하는 여행자가 돼달라”고 당부했다.
탐험가의 시작은 동네 한 바퀴부터
‘탐험가’라고 하면 배낭을 들쳐 메고 다른 대륙으로 떠나야 할 것 같다. 필리핀의 고고학자 엘리 드 카스트로는 “보통 모험은 우리가 알고 있는 세상 밖에서 이루어진다고 생각한다. 산이나 바다처럼”이라며 “하지만 우리 동네에서도 모험은 할 수 있다”고 했다. 카스트로는 현재 ‘익스플로어 마이 일리(Explore My Ili)’라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프로젝트에 참가하는 학생들은 직접 자신의 마을을 탐험하며 인류학 연구를 해볼 수 있다. 카스트로는 “익스플로어 마이 일리 프로젝트에 참가한 학생들은 지역 낚시꾼을 인터뷰해 그 마을에서 낚이는 물고기의 종류에 대해 알아보거나,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마을의 설화에 대해 들어볼 수 있다”며 “이렇게 모인 데이터는 실제 대학에서 이뤄지는 연구에 활용된다”고 말했다. 이어 “여러분이 학교생활을 통해 배우는 걸 실제로 해볼 수 있다”며 “모험은 여러분 옆에 있다.”라고 했다.
발표대회에 참가한 남승민(충남 금산 별무리학교 3학년) 군은 “평소에 내셔널 지오그래픽 채널을 통해 접하던 탐험가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 좋았다”며 “우리 주변의 자연환경에 더 관심을 가지게 됐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