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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육체와 잘못 짝지어진 성 소년은 울지 않는다

영화에 그려진 비극적인 성정체성

‘나의 장미빛 인생’에 등장하는 루도빅의 깜찍한 모습에서‘소년은 울지 않는다’에 나오는 브렌든의 비극까지 영화 속에는 자신의 성정체성을 찾는 다양한 모습이 그려져 있다. 트렌스젠더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에 대한 단서를 제공하는 영화들을 감상해보자.

1993년 12월 30일 미 중서부 네브라스카주에 위치한 작은 마을 폴즈에서 티나 브렌든이라는 21살의 젊은 여성이 두명의 사내에게 성폭행 당한 후 총에 맞아 죽은 사건이 발생했다. 티나는 죽기 전 수년 동안 남성으로 성전환하기 위해 남성호르몬 치료를 받고 있었으며, 그 사이 그녀는 브렌든 티나라는 이름의 남자로 살아왔다. 그를 단순히 ‘예쁘장하게 생긴 남자 녀석’으로만 여겨오던 동네 친구인 존과 탐은 브렌든이 실제 여자라는 사실을 알게 된 후 광폭하게 돌변했다. 보수적인 마을에서 자란 그들은 성적 소수자에 대해 심한 사회적 편견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브렌든을 그의 여자친구 앞에서 발가벗겨 모멸감을 주고, 변두리 농장으로 끌고 가 번갈아가며 강간했다. 경찰의 수사가 진행되자 존과 탐은 성전환자에 대한 혐오와 증거 인멸의 차원에서 브렌든을 총으로 쏴 죽였다. ‘티나 브렌든 사건’은 성전환자에 대한 사회적 편견이 얼마나 끔찍한 비극을 초래할 수 있는가를 드러낸 사건으로, 한동안 미국 전역을 떠들썩하게 했다.

여배우가 남우주연상감
 

‘소년은 울지 않는다’에서 힐러리 스왱크(오른쪽)는 남성이 되고 싶은 여성인 티나 브렌든 역할을 완벽히 소화해 2000년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그로부터 6년이 지난 후 이 사건은 킴벌리 피어스라는 신예 여성 감독에 의해 3백만달러의 저예산 독립영화로 만들어졌는데, 그것이 바로 영화 ‘소년은 울지 않는다’(Boys don't cry, 1999)이다. 이 영화에서 힐러리 스왱크는 남장 여자인 브렌든 역을 완벽하게 소화해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미국의 한 영화 평론가는 힐러리의 연기를 칭찬하면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감이라는 농담을 던질 정도였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성전환자는 할리우드의 보수적 전통으로 인해 영화 속에 자주 등장하지 못하거나 ‘여장 남자’ 또는 ‘변태 성욕자’와 같은 부정적 이미지로 그려지곤 했다. ‘성전환자’ 하면 떠오르는 대표적인 영화로 컬트적 분위기의 SF영화 ‘록키 호러 픽쳐쇼’(The Rocky horror picture show, 1968)가 있다. 그러나 실제로 이 영화에 등장하는 여장 남자인 프랭크 퍼터 박사는 성전환자가 아니라 남녀의 성기를 모두 지닌 양성인이다.

방금 결혼식을 마친 신혼 부부 브래드와 자넷은 그들의 스승을 찾아 나섰다가 폭풍우를 만나 외딴 성에 갇히게 된다. 그들은 그곳에서 트랜실배니아 은하계 소속 트랜섹슈얼 행성에서 온 과학자 프랭크 퍼터 박사를 만나 엽기적인 파티에 초대받는다. 프랭크는 신혼 부부인 자넷과 브래드의 잠자리에 번갈아 들며, 자넷에겐 브래드로, 브래드에겐 자넷으로 변장해 관계를 갖는 등 여장 남자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를 관객에게 드러낸다.

영화 ‘크라잉게임’(Crying game, 1992)에서는 여성인 줄 알았던 흑인 가수가 남자라는 사실이 드러나자 주인공이 노골적으로 구역질하는 장면이 등장하기도 한다. 영국의 식민 정치에 저항하는 아일랜드의 정치단체 IRA의 요원 퍼거스는 포로로 잡혀있던 영국인 흑인병사의 애인을 찾아 나선다. 그는 클럽에서 ‘크라잉게임’을 노래하는 미모의 흑인여가수에게 매료되지만, 이 여인의 알몸을 보는 순간 구토를 일으킨다. 이 장면은 영화 개봉 당시 우리 나라에서도 논란이 됐었다. 특히 여장 남자 가수로 잘 알려진 ‘컬쳐 클럽’의 보이 조지가 영화의 주제곡을 불러 화제가 되기도 했다.

조물주 실수로 바뀌었다?

트랜스젠더는 오랫동안 비정상적 성적 소수자로 간주돼 왔으며 정신의학에서는 최근까지 ‘성정체성 장애’(gender identity disorder)라는 이름의 정신질환자로 여겨지고 있다. 성정체성 장애 환자들은 자신의 생물학적 성과 성 역할에 대해 지속적으로 불편함을 느끼고 다른 성에 대한 정체성을 강하게 가지고 있어서 반대의 성이 되기를 꾸준히 희망한다. 그래서 다른 성으로 외모를 치장하거나 호르몬 치료를 받기도 하며 성전환 수술을 받기 원한다.

성전환자는 크라잉게임의 흑인여가수처럼 여장 남자의 모습을 하고 있거나 소년은 울지 않는다의 브렌든처럼 남장 여자의 모습을 하고 있어서 종종 이성복장증(transvestism) 환자들과 혼동된다. 의상도착증 환자들이 이성의 옷을 입는 이유는 이성의 옷을 입음으로써 성적 흥분을 느끼기 때문이다. 그러나 소년은 울지 않는다의 브랜든이 남장을 하는 것은 성적 흥분을 느끼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이 남자라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성전환증 환자는 자신의 육체가 가지는 생물학적 성이 영혼의 성과 잘못 짝지어졌다고 믿는다. 그들의 주장대로라면, 브랜든은 조물주가 실수로 여성의 육체에 남자의 영혼을 담아 지상에 내려보낸 것이다.

‘나의 장미빛 인생’(Ma Vie En Rose, 1997)에는 자신이 여자라고 믿는 소년 루도빅의 깜찍한 상상이 그려져 있다. 자신이 태어나자 하나님이 자신의 집에 염색체를 던져준다. 그러나 하늘에서 떨어진 염색체 중, X염색체 하나가 미처 굴뚝을 통과하지 못해 자신이 XY 염색체를 갖고 태어났다는 것이다.

루도빅은 자신이 조물주의 실수로 남자의 모습을 하고 태어났지만 본성은 여자라고 믿는다. 그래서 파티에 여장을 하고 나타나는가 하면, 같은 반 남자아이인 제롬을 좋아하고 그와 결혼식 놀이를 한다. 학예회 때 제롬과 키스하기 위해 백설공주 역을 맡은 여학생을 창고에 가둬놓고 자신이 대신 공주 역을 하다가 발각되는 장면은 관객들의 폭소를 자아낸다.

실제로 아동의 경우 성정체성 혼란을 겪는 환자는 나의 장미빛 인생처럼 남자아동이 여아에 비해 약 5배 정도 많으며, 그 증상도 루도빅의 행동과 매우 유사하다. 이 영화는 성 정체성의 혼란을 경험하고 있는 어린이의 심리 상태를 섬세하고 유쾌하게 그리고 있어, 성전환증에 대한 편견을 없애는데 좋은 교재가 된다. 특히 가정 내에서 남자 또는 여자로 길러지는 과정에서 혼란을 겪는 루도빅의 모습은 사회적으로 교육받은 남성성 또는 여성성에 강한 의문을 제기한다.

배후에서 작용한 성호르몬

그렇다면 과연 루도빅의 상상은 사실일까. 정신적으로 느끼는 성과 육체적으로 부여받은 성이 잘못 짝지어졌다는 트랜스젠더의 주장은 사실일까, 아니면 그저 정신 착란에 불과한 것일까.

불과 30년 전까지만 해도 성정체성 혼란 장애는 심각한 정신질환으로 여겨졌다. 원인을 명확히 규명하진 못했지만, 정신과 의사들은 그들이 이성의 부모에게 과도한 동일시를 할 경우 자신의 성 정체성에 혼란을 갖게 됐다고 믿었다. 특히 아이들에게 있어 어머니의 영향력은 굉장히 강하기 때문에 특히 남자아이들이 자신을 어머니에 동일시해 여장을 하거나 자신을 여자로 착각하는 경향이 강하다고 여겼다. 실제로 유럽 국가의 통계자료에 따르면, 성전환수술을 받은 사람 중 성인 남성은 3만명당 1명이고 성인 여성은 10만명당 1명 꼴로, 남자가 3배 이상 많다.

그러나 최근에는 성정체성 장애 환자들의 주장을 지지하는 의학적 연구결과들이 계속 발표되고 있다. 지난 5월 ‘임상내분비학 및 신진대사 저널’에 발표된 프랑크 크루버 박사팀의 연구도 그 중 하나다. 네덜란드 뇌 연구소에서 일하는 그들은 남성과 여성, 동성애자, 그리고 성전환자의 사체를 부검한 뒤 두개골을 절개해 대뇌를 조사했다. 크루버 박사팀은 그들의 뇌 중에서 감정을 담당하는 변연계를 염색한 다음, 성장억제호르몬 ‘소마토스태틴’(somatostatin)을 분비하는 신경세포의 수를 셌다.

그 결과, 여성의 뇌보다 남성의 뇌에 약 71% 정도 신경세포 수가 많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리고 자신이 여성이라고 주장하는 남자 성전환자의 신경세포 수는 남성보다는 여성 뇌의 신경세포 수와 비슷하다는 사실도 알아냈다. 다시 말해 자신을 여성이라고 주장하는 남자 성전환자들은 여성의 뇌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크루버 박사팀은 이같은 결과에 대해 ‘성호르몬에 의한 효과’ 때문이라고 해석했다. 성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이 부족한 경우 변연계의 신경세포 수가 줄어든다는 선행 연구 결과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 외에도 성전환자는 생물학적으로는 남자라도 여자의 뇌를 가지고 있으며 그 반대의 경우도 같은 양상이라는 보고가 성호르몬과 관계없는 뇌영역에서도 발표되고 있다. 뇌 변연계의 한 부분인 BSTc(Bed nucleus of the stria terminals, 감정을 조절하는 아미그달라와 연결된 영역)는 성적 행동에 관여하는 영역이긴 하지만 성호르몬의 영향을 받지 않는 영역으로 알려져 있다. 1997년 ‘국제 성전환증 저널’에 발표된 스왑 교수 연구팀의 논문에 따르면, BSTc 역시 보통의 경우 남성이 여성에 비해 더 크지만, 자신이 여성이라고 믿는 남성은 그 크기가 여성의 BSTc와 비슷하다고 한다. ‘신의 실수’로 인해 남자로 태어났다고 믿는 루도빅의 주장이 일리가 있다는 얘기다.

풍부한 인간의 성 중 하나

성 정체성 혼란 장애를 겪고 있는 사람들이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방법에는 대표적으로 정신과적 치료, 호르몬 치료, 그리고 성전환 수술이 있다. 정신과적 치료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생물학적 성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조언을 한다거나 역할 모델을 제시해 주는 방법이 있는데 그다지 치료율이 좋진 않다.

호르몬 치료는 호르몬을 통해 그들이 믿고 있는 자신의 성에 가까이 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방법이다. 남자환자에게는 여성호르몬인 에스트로겐을, 여자 환자에게는 남성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을 투여한다. 호르몬 치료는 성기의 모양이나 임신과 월경 등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해주진 못하지만, 외적인 효과가 뚜렷하고 단기적으로 현저한 효과를 볼 수 있어 성전환자들이 선호하는 치료법이다.

호르몬 투여만으로는 만족하지 못하는 경우, 성전환자들은 그들이 원하는 성기를 갖기 위해 성전환수술을 받는다. 그러나 이 수술은 매우 신중해야 한다. 우선 반대의 성으로 바꾼 상태에서 적어도 3개월 이상 만족스럽게 지내본 경험이 있어야 한다. 실생활을 접하다 보면 오히려 불편함을 느끼는 경우가 종종 있기 때문이다. 남성 환자는 70%, 여성 환자는 80%가 수술 후 만족을 보인다고 하니 좋은 치료법이라 할 수 있지만, 수술 후 약 2% 정도는 자살하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어 신중을 기해야 한다.

성에 대한 도덕적 판단은 사회적, 시대적, 문화적인 측면이 강하며 절대적인 기준이 없다. 예전에는 비도덕적이라고 믿었던 자위행위나 오럴 섹스가 킨제이 보고서 이후 정상적인 성행위 범주 안으로 들어왔으며, 변태적 성행위로 간주되던 동성애 역시 1973년 미국정신의학회(American Psychiatric Association)가 정신과적인 질병의 범주에서 제외시킴으로서 새로운 ‘성적 취향’의 일종으로 인정받았다.

성행위를 ‘대다수의 사람들이 사용하는 방법’이라는 기준으로 ‘정상과 비정상’으로 나눈다면 멀쩡한 사람을 환자로 만들 수 있다. 수적으로만 따지면, 70대 노인이 성행위를 하면 무조건 비정상이 돼 버리는 불합리한 결과가 생기기 때문이다.

현대의학은 동성애나 성전환자 같은 성적소수자들이 비도덕적이거나 변태적인 성행위를 즐기는 자가 아니라, 인간의 성이 가지는 풍부한 특성 중 하나를 드러낸 것뿐이며, 그들이 결코 치료의 대상이 아니라는 사실을 뒷받침하는 증거를 계속 내놓고 있다.

최근 들어 트랜스젠더 연예인 하리수의 등장으로 성전환자에 대한 편견이 많이 누그러들긴 했지만, 여전히 그녀의 외모에 집착하거나 그녀를 눈요깃거리로만 여기는 풍토는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 성전환자들의 인격을 강간하고 그들의 삶에 편견의 총부리를 겨누는 ‘티나 브렌든 사건’의 비극이 한국에서는 일어나지 않아야 할 것이다.

성정체성을 소재로 만든 영화들

|소년은 울지 않는다 (Boys don't cry, 1999)

킴벌리 피어스 감독. 힐러리 스왱크, 클로에 세비니 주연. 1993년 실제 있었던 살인 사건을 소재로 만든 저예산 독립 영화. 힐러리 스왱크의 연기와 여성 감독 킴벌리 피어스의 연출이 돋보이는 수작. 네브라스카 주의 작은 마을에 사는 티나 브랜던은 남자가 되고 싶은 여성이다. 머리를 자르고 남장을 한 후 술집에 들른 그녀는 치한에게 놀림을 당하던 캔디스를 도와 준 인연으로 캔디스의 집에 머문다. 티나는 그곳에서 지금까지 그녀가 살아왔던 것과는 전혀 다른 ‘남자로서의 새로운 삶’을 경험한다. 브랜던 티나로 이름을 바꾼 그녀는 자신과 잘 통하는 여성 라나 티셀과 사랑에 빠지지만 라나에게는 남자 친구 존이 있다. 존은 친구 탐과 함께 강도 짓도 서슴없이 저지르는 동네 건달이다. 브랜던이 운전하던 중 과속으로 경찰의 단속에 걸리고, 위조된 면허증을 제시하다가 발각돼 조사과정에서 그녀가 원래 여성임이 드러난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존과 탐은 라나의 가족들 앞에서 브랜던을 발가벗겨 그녀를 모욕한다. 그리고 잔인하게 성폭행한 뒤 총으로 쏴 죽인다. 성전환자에 대한 사회적 편견이 강간과 살인으로까지 이어진 사건을 통해 성적소수자에 대한 사회적 냉대를 충격적으로 비판한 작품이다. 2000년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수상.

나의 장미빛 인생 (Ma Vie En Rose, 1997)

알랭 베를리네 감독. 조르주 뒤 프레슨, 미셸 라로크 주연. 여자가 되고 싶은 남자 어린이의 성정체성 문제를 동화적이고 환상적인 스타일로 그린 작품. 일곱살 소년 루도빅은 자신이 원래 XX 염색체를 가진 여자였으나, 하나님이 실수로 X염색체 하나를 쓰레기통에 빠뜨려 남자로 태어났다고 믿는다. 어린 꼬마는 파티에 여장을 하고 나타나는가 하면, 남자친구 제롬과 결혼식 놀이를 하다가 들키고, 학예회에서는 제롬과 키스하기 위해 백설공주 역을 맡은 여자애를 감금하고 몰래 공주 역을 하는 등 많은 해프닝을 일으킨다. 루도빅은 마을사람들에 의해 변태로 몰리고, 그의 가족은 마을에서 쫓겨난다. 여자가 되고 싶어하는 루도빅의 모습에 당황해하면서도 포용하려 애쓰는 부모와, 심한 반감을 드러내며 냉대하는이웃들의 시선을 통해 성정체성의 문제를 꼬집는다. 루도빅 역의 조르주 뒤 프레슨의 연기와 알랭 베를리네 감독의 회화적 감수성이 돋보이는 작품. 동구권 영화제 카를로비 바리 영화제 대상 수상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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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08월 과학동아 정보

  • 정재승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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