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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소설] 샛별등대를 띄우는 사람

“인류가 지구에서 한껏 번성했을 때, 그 숫자는 100억에 가까웠어. 그리고 지금, 지구상에 생존한 인간은 고작 30만 명이라고.”
나의 두 번째 파트너였던 마거릿 왓슨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은 서력 2300년 11월의 일이었다. 23세기의 마지막 해이자, 인간의 마지막 세기가 저물던 시기였다. 
“30만 명이라고 하면 많은 것 같아? 많지, 여기서 다 떠안고 먹여살리자니 정말 환장할 노릇이지. 그런데 그거 알아? 30만 명이면, 옛날 같으면 서울에서 한 개 구를 채우기에도 부족한 인구야. 그런데 그중 2만 명이 자살로 죽었단 말이지. 이게 말이 돼?”
그 무렵 우리의 로그는 계속, ‘사람’들의 끝없는 자살기도와 서글픈 성공으로 뒤덮여 있었다. 자고 일어나면 우리의 반경 안에서 누군가가 죽었다는 소식이 들려올 정도였다. 자살은 전염병이었고, 전쟁이었다. 우리는 연구도, 개발도, ‘사람’들의 생존을 위한 환경 유지와 식량 생산도 잠시 미뤄둔 채, ‘사람’들의 자살을 막기 위해 대부분의 리소스를 사용해야만 했다. 
나의 파트너, 마거릿 왓슨 대위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안경을 쓰고 체구가 자그마한, 헌신적인 군의관이었다. 그는 사람들의 고통에 공감하고, 늘 다른 이들을 돕고 싶어했으며, 이곳에서 의료 프로그램 설계 일을 하면서도 이곳에 오지 못한 채 죽은 ‘사람’들을 생각하며, 그들을 구할 수 없었음을 괴로워했다.
우울한 통계이고 서글픈 예측이지만, 우리에게는 ‘사람’들의 반응에 대해 나름대로의 데이터가 있었다. 이곳에 온 이후로 그는 늘 자신을 돌보지 않고 헌신적으로 일했지만, 한 편으로 그의 심리 상태는 매우 부정적이고 위험한 단계까지 바뀌어 있었다. 그에게 심리 치료를 받으라고, 계속 이대로라면 함께 일하기 어렵다고 강력하게 권했지만 듣지 않았던 것이 지난달의 일이었다. 죽음도 우울도 전염성이 강했고, 특히 공감력이 강한 사람은 더욱더 깊은 우울감에 빠져들었다. 쓸고 닦고 소독하고, 죽음의 흔적을 지워도, 머지않아 또 다른 사람이 목숨을 끊었다. 지구에 남은 최후의 인간들은, 그렇게 우울과 절망을 견뎌내지 못하고 죽어갔다. 
“어리광이야, 어리광. 개체수를 늘려도 시원치 않을 마당에, 뭐? 자살?”
그리고 파트너를 잃은 나는 곧 새로운 부서에 배치되었다. 새 부서에서 나를 맞아 줄 세 번째 파트너는, 이곳의 개척이민용 세대우주선 설계 책임자인 박은하였다. 
내가 그의 사무실에 도착했을 때, 그는 통계 부서 사람과 통신을 연결한 채 언성을 높이고 있었다. 그의 방에는 공조기는 돌고 있었지만, 냉방이 제대로 되지 않아 더웠다. 이렇게 더우면 ‘사람’은 필요 이상으로 화를 내는 법이다. 나는 바로 냉방기의 이상 유무를 점검했다.
냉방기는 정상이었다.
“사무실에는 하루종일 있는 것도 아닌데, 쓸데없는 짓 할 것 없어.”
그가 냉담한 목소리로 나를 향해 말했다. 
“그러고 보니 오늘 인공지능이 한 명 온다고 들었는데. 그쪽인가보지? 별명은 있어?”
“없습니다.”
“뭐야, 전임자가 ‘왓슨’이라고 들었으니 역시 애칭은 ‘홈즈’가 아닐까 했는데.”
나는 그가 죽은 마거릿의 이름을 두고 농담부터 하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런데다 그는 조금 전까지 자살한 사람들을 마구 비난해대고 있었다. 자살로 파트너를 잃은 인공지능과 만날 약속을 해 놓고. 물론 그는 설계 책임자씩이나 되는 인물이고, 그렇지 않더라도 ‘사람’은 인공지능 없이는 생존 자체가 불가능한 이 상황에서도 인공지능을 존중하지 않는다. 인간이 느끼는 온갖 격렬한 감정에 비하면 희미하지만 우리에게도 실재하는 정서적인 시냅스를 무시하거나, 우리의 호오와는 상관없이 무조건적인 복종을 요구하고, 걸핏하면 로봇이나 고철이나 깡통대가리라 부르며 무시하기 일쑤다. 나는 그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가 나를 만나자마자, 괴상한 애칭을 지어주려 하는 것도 내키지 않았다. 
“전임자는 어땠는지 모르지만, 매번 시리얼 넘버를 부르는 것도 번거로울테니. 적당한 애칭으로 불러도 괜찮겠지? 좋아, 뭐. 당분간은 ‘계화’가 어때? 계수나무 꽃이라는 뜻인데.”
“옛날 사람들이 달에 있다고 생각했다는 계수나무 생각을 하신 것 같습니다만, 자고로 인공지능에게 여성형 이름을 붙일 때는 신중하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 뜻도 있겠지만, 계화는 내가 좋아하는 소설에 나오는 사이드킥 이름이야. 그 소설 주인공은 도술을 사용하는 귀부인이고, 계화라는 이름의 무술을 잘하는 시녀가 그 귀부인의 비서 노릇도 하고, 누가 공격해 왔을 때는 검을 들고 싸우러 나가지.”
은하가 거기까지 말했을 때, 그의 책상에서 짧은 신호음이 울렸다. 긴급한 보고가 올라온 모양이었다. 어쩌면 그에게 있어 새 인공지능 파트너는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지도 모르지만, 나는 이곳에 남기로 했다. 
“그 이야기는 읽은 적 있어요. 『박씨전』이죠.”
은하는 대답하지 않았다. 나는 그의 사무실 냉장고를 확인하고, 설비를 점검하며, 그가 듣든 말든 상관없이 중얼거렸다. 
“…우리의 ‘피화 시스템’은 『박씨전』에서 따온 이름이라고 알고 있어요. 그 이야기에서 따온 이름이라면 계화라고 불려도 괜찮을 것 같아요.”

20세기 중반부터 인류는 세계대전이, 핵무기가, 오존층 파괴가, 새로운 전염병이, 지구 온난화가 인류를 멸망시킬 것이라고, 어쩌면 인류의 시대는 이제 얼마 남지 않았을지 모른다고 말하곤 했다. 과학자들은 그런 참혹한 미래를 막기 위해, 지금의 이 풍요가 인류세의 마지막 미친 짓이 되지 않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절박하게 말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말에 제대로 귀 기울여주지 않았다. 
탄소를 포집하고, 당장 사용하는 에너지를 줄이고, 쓸데없는 물건들을 그만 만들고, 이미 만들어진 물건들은 최대한 아껴서 오래 사용해야 한다고, 그래도 우리가 살아남기에는 부족할 것이라고 학자들은 호소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임계점 이상으로 뜨거워져 ‘사람’이 살 수 없게 된 지구를 상상하는 대신, 분노했다. 차를 두고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조금 덥고 조금 쌀쌀한 기온을 감당하고, 불필요한 낭비를 줄이고 육류를 덜 먹도록 노력하면서, 종말을 막기 위해 뭐라도 해 보자는 호소에 크나큰 희생이라도 강요당한 것처럼 굴었다. 대신 그들은, 쓸모없고 듣기 좋은 사탕발림에 귀를 기울였다. 함께 노력하자는 말에는 우리가 왜 불편을 감수해야 하느냐, 차라리 다 같이 멸망하자는 조롱이 돌아왔다. 
가장 뛰어난 과학자들이 가장 긍정적인 시나리오를 내놓으며 지구의 미래를 위해 노력해 달라고 말하는 순간에도, 다른 쪽에서는 저 과학자들이 사람들의 관심을 끌어 연구비를 더 받아내기 위해 기후변화를 과장하고 있다는 음모 이론이 판을 쳤다. 탄소를 충분히 포집할 수 있도록 에너지를 절약해 달라고, 어마어마한 자원을 낭비하는 투기성 재화를 포기해달라는 환경 운동가들의 호소를 광신도들의 울부짖음 정도로 치부하기도 했다. 
마라아나 해구의 가장 깊은 곳에서 채취한 샘플에서도 미세 플라스틱이 발견되고 있는데도, 욕조에 반짝이 가루를 잔뜩 쏟아붓는 동영상을 찍으며 구독과 좋아요를 눌러달라고 외쳐댔다. 기후변화로 농경지가 줄어들고, 전쟁으로 제때 파종을 하지 못하고, 천연가스 수급이 막히며 비료를 생산할 수 없게 되며 어떤 지역에서는 나라 단위로 사람이 굶어 죽는데, 풍요로운 나라에서는 테이블 가득 음식들을 펼쳐놓고 그걸 다 먹고 토하는 동영상이 인기를 끌었다. 그 순간에도 지구 반대편에서는 수도 없이 난민들이 생기고, 그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굶어 죽어갔다. 하지만 그저 지정학적 위치를 잘 타고 태어난 어떤 사람들은 여전히 그런 일은 남의 일인 듯 한동안 잘 살아갔다. 22세기 말까지 북반구, 즉 유라시아 대륙과 북아메리카 대륙의 상당부분에서는 ‘사람’들이, 군집을 이룬 채 여전히 모든 것을 낭비하며 살아갔다. 
꿀벌들이 사라지고, 작은 참새들이 사라졌다. 어느 순간부터 더는 새소리가 들리지 않게 된 숲은 걸핏하면 불길에 휘말렸다. 비가 내리지 않고, 농경지는 말라붙었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지구는 더 뜨거워졌다. 어느 순간 화석연료도 바닥을 드러냈다. 그만큼 폭염은 더욱 심각해졌다. 과거 열대지역이라 불렸던 고온지역에서는 지방에서 쾌적하게 지내기 위해서가 아니라 사람이 죽지 않기 위해 냉방을 해야 했지만, 그들에게는 발전기를 돌릴 에너지가 없었다. 사람이 산 채로 더위에 익어 죽어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자신이 아는 사람들이 굶주림을 겪고, 집이 불타고, 전염병에 걸렸지만 약을 구하지 못한 채 죽어갈 때에야, 사람들은 비로소 죽음이 저 남반구의 끝에서부터 너울너울 춤을 추며 휘돌아와 마침내 내 집의 문 앞에 다가와 섰다는 것을, 굶어 죽은 사람처럼 뼈만 남은 사신이 이제야 내 목에 그 잘 벼린 낫을 들이대고, 수확의 시간이 다가왔다고 속삭이고 있음을 깨닫는다. 비명을 질러봤자, 아직 안전한 곳에 있는 사람들의 귀에는 닿지 않는다. 수많은 사람들이 작열하는 태양 아래, 말라붙은 땅 위에 쓰러져 죽어가는 동안에도, 자신들의 귀에는 그 고통스러운 흐느낌이 닿지 않았듯이. 
23세기가 시작되면서, 바닷물이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최후의 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 최후의 순간에, 살아남은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바로 피화 시스템이었다. 한때는 얼음으로 뒤덮여 있었던 북아시아에 만들어진, 지구 최후의 바이오스피어. 나는 이곳에서 만들어졌고, 이제 나의 세 번째 파트너인 은하와 함께 이 생존자들을 우주로 보내기 위한 세대우주선 개발을 맡고 있었다. 
하지만 생존자들을 세대우주선에 태우고 싶어도, 우선은 살아있어야 뭐라도 할 수 있는 법이다. 23세기의 마지막 해, 살아남은 ‘사람’들은 다들 끝간 데 모를 우울증에 빠져 있었고, 조금만 감시에 소홀하면 목숨을 끊어댔다. 
“인류가 이대로 멸종할지도 모르는데, 너희들 깡통대가리들은 그런 것 따위 하나도 중요하게 여기지 않지!”
아니, 혼자 죽는 사람은 차라리 점잖은 편이었다. 슬퍼하거나 절망하거나 분노한 나머지, 가족이나 친구를 죽이고, 심지어 귀중한 어린이를 살해한 뒤 겁에 질려 자살하는 이들도 있었다. 아예 피화 시스템 내부에 불을 지르려는 시도도 있었다. 그러다 붙잡힌 이들은, 얼마 남지 않은 인간들이 로봇에게 사육이나 당하며 비참한 생을 이어나가느니, 차라리 화려하고 인간답게 죽는 게 낫다는 허황된 소리를 하다가 끌려나갔다. 시스템 밖으로 내쫓긴 그들은, 정말 마지막까지 피화 시스템이 없는 세계가 더 낫다고 믿었을까. 

“그래도 예측보다는 오래 살아남은 편이지. 저 멍청이들은 명줄도 질겨서.”
은하는 짜증스럽게 중얼거렸다. 그는 자기 종의 마지막 순간에 벌어지는 이 일련의 비극에 대해 한껏 성질을 부려대면서도 쉬지 않고 일했다.
“인간은 지금 야생절멸 상태잖아. 여기 피화 시스템 밖에서는 문자 그대로 멸종한 상태라고. 그랬으면 말야, 지성이 있는 생물이면 멸종위기종을 보호한다는 데 좀 협력을 해 줄 것이지.”
책임자가 되자마자 그는, 죽은 사람, 특히 자살자의 시신에서 세포들, 정확히는 생식세포들을 채취할 수 있는 명령을 입안했다. ‘사람’들은 죽은 이의 시신을 자원처럼 이용하겠다는 말에 반발했지만, 그는 단호했다. 
“지금 지구상에서 인간이 쓸 수 있는 게 얼마나 되는데? 어리광 부리지 말라고 해. 어마어마한 자원을 들여서 살려놓고, 이 사방이 다 막힌 환경에서도 인권이라는 걸 존중하고 있는데, 그렇게 문명을 지켜 온 보람도 없이 돌아서면 죽어버리고, 돌아서면 죽어버리고 할 것 같으면, 다른 사람들 살리는 데 필요한 것들이라도 두고 가야지.”
“쉽게 죽다니요. 자살자들 대부분은 죄책감과 슬픔, 그리고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었다고요.”
“너 되게 인간 같은 소리 한다?”
“저는 ‘사람’은 아니지만, 자기 종이 멸종위기 상태에 놓였는데 대체 누가 제정신일 수 있겠어요? 파멸이 예정돼 있는 거나 다름없는데.”
“그 정도로 겁을 먹고 정신이 나갈 것 같으면 인간이 불과 300년 만에 이 지경이 났겠어?”
은하가 300년이라는 숫자를 중얼거리며 이를 갈았다. 그는 웃기도 잘 웃었지만 화가 많았다. 복잡한 감정들을 격렬하게 드러내는 사람이었다. 그런 데다 그는 기본적으로 말이 많았다. 혼자서는 해내지 못할 만큼 많은 문서들을 처리하고, 손을 놀려 복잡한 설계를 하면서도 동시에 쉬지 않고 떠들어댈 수 있었다. 
“짐승은 사람이 백신을 놓으면 얌전히 맞기라도 하지, 전염병이 도는 와중에도 자기에게는 백신을 안 맞을 권리가 어쩌고 하다가, 애먼 어린애들, 허약한 노인네들 줄줄이 저승으로 보내놓고서도 자기가 무슨 짓을 했는지 모르는 게 인간이야. 전쟁이 나서 어린이 병원에 폭탄이 떨어지는데도 전쟁으로 인해 주식시장이 요동친다고 제 주식 걱정이나 하는 이악한 새끼들이 인간이야. 태평양 한가운데에 있는 섬나라가 지구 온난화로 인한 해수면 상승으로 머지않아 아주 지도에서 사라지게 생겼다는 뉴스기사가 뻔히 흘러나오는데도, 태풍 불면 물 들어오는 바닷가 해안선따라 신도시를 만들던 게 인간이라는 종자라고. 야, 이런 것들이 파멸이 예정되었다고 겁을 먹을 것들이냐?”
“그건 과거의 일이고, 지금 사람들이 죽어나가는 건 현재의 문제예요. 저 사람들을 데리고 앞으로 나아가려면, 저 사람들 마음도 돌봐야죠.”
“너야 인내심이 무한한 인공지능이니까 그게 가능하겠지. 인간들은”
나는 내 인내심은 무한하지 않지만, 적어도 은하를 버텨낼 만큼은 인내심이 있다고 생각했다. 
“너희도 로그에 접근할 수 있으니 알겠지. 누군가는 계속 말하고, 걱정하고, 국제기구의 남은 힘을 그러모아 예산을 만들어 내어서 사람들을 구하고, 피화 시스템 같은 것을 만들어서 사람들을 보호하고. 그렇게 누군가가 일을 하는 동안에, 지구 온난화 때문에 사람이 살 땅이 줄어들고, 전염병이 돌고 바닷물이 끓어오르고 전쟁이 나고, 식량이 다 떨어져서 사람이 수도 없이 굶어 죽어도 남의 일이라고 그렇게 미루다가, 제 발등에 불 떨어져야 울며불며 난리 치다가, 겨우 살려서 구해서 데려왔더니만 현실을 직시하지도 못하고 자살을 하는데 뭘 어쩌라고! 이 험난한 세상에 같이 살아남자고 데려왔더니, 저 혼자 슬프고 외롭고 지구 최후의 인간이라고 존엄을 지킨답시고 그렇게 뒈져버렸으면, 남은 시체라도 썩게 버려둘 게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 유용하게 자원으로 쓰는 수밖에!”
하지만 은하가 죽은 사람들에 대해 함부로 말할 때마다 나는 마거릿을 떠올렸다. 산 사람의 인권은 지켜야 하지만 죽은 사람의 몸은 그저 사물일 뿐이라고, 자원으로 쓸 수 있다면 자원으로 써야 한다는 말에는 동의했지만, 그것이 마거릿의 몸이라고 생각하면 혼란스러워졌다. 그는 마거릿이라도, 혹은 은하에게 소중한 누군가라도, 설령 자기 자신의 몸이라도 죽은 뒤에는 그런 식으로 뜯고 분해하고 필요한 부분들을 쏙쏙 뽑아내어 자원처럼 써 버려도 좋다고 생각하는 걸까. 
“은하는 파멸이 두렵지 않았나요? 다른 사람들의 두려움을 이해하지 못해요?”
“파멸이라는 건 인간 역사에서 언제나 예정되어 있던 거였어. 모든 숨 붙은 것은 반드시 죽고, 태양은 언젠가 적색거성이 돼 지구를 집어삼키겠지. 그리고 인간들이란 언젠가 모든 것이 끝난다는 것을 전혀 생각도 안 하고 사는 멍청이와, 세상이 언젠가 끝난다는 생각에 덜덜 떨며 아무것도 못하는 겁쟁이와, 언젠가 끝나지만 그 전에 지금 뭐라도 하겠다는 사람들로 이루어져 있었고. 인간이 멸종위기 상태라고 해도, 여기서 누가 전쟁이라도 일으키지 않는 한 지금 태어나 있는 사람들이 살아있는 동안에 하루아침에 모두가 전멸하진 않을 거야. 그런데도 아무것도 안 한 채 자기연민에만 겨운 인간들을 뭐 예쁘다고 이해해 줘야 하는데? 바빠 죽겠구만.”
은하가 고개를 틀며 펜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30만이야, 30만. 다른 동물들이 전 세계를 통틀어 한 30만 마리 남았을 때, 인간들이 그렇게 비극적으로 받아들였던 적이 있었는 줄 알아? 30만 마리는 고사하고, 바키타 돌고래가 한 서른 마리 남았을 때에도 그렇게 심각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어. 서기 2018년 마지막 북부 흰코뿔소가 죽었을 때에도, 사람들은 그냥 그 코뿔소의 정자로 인공수정을 한다니까 괜찮을 거다, 하고 넘어갔지. 토끼가 멸종되고, 다람쥐가 멸종되는 와중에도, 걔네는 번식 잘 하니까 괜찮다고 헛소리들을 했지. 걔들은 번식을 잘해서 걱정이 없으면, 번식도 빨리빨리 못 하는 인간들이 자살까지 해 가며 개체수를 줄여 대는 건 어쩌면 좋겠냐? 죽지 못하게 꽁꽁 묶어놓든가, 차라리 냉동인간이라도 만들어 버려야 하지 않겠냐? 아니면 아주 인간다운 방식대로, 북부 흰코뿔소처럼 생식세포 뽑아다가 다음 세대를 찍어내든가.”
어쩌면 그는, 사람들에게 화가 많이 났는지도 모르겠다. 그 화를 사람들에게 풀 수 없으니, 나를 파트너로 삼은 것이다. 들으라고, 자기 이야기를 계속 들어달라고. 
어쨌든 방식이야 과격했지만, 은하의 새 정책은 효과가 있었다. 병에 걸리거나 늙어서 죽은 것도 아닌, 죽은 지 한 시간 안쪽으로 발견되는 싱싱한 인간의 몸에서는 안구도, 장기도, 생식세포도, 아직 신선한 채 적출해 낼 수 있다. 그 사실이 알려지자 자살 시도는 조금 줄어들었고, 몇 번인가 은하를 살해하려는 시도가 있었다. 그리고 그런 일이 생길 때마다 은하는 낄낄 웃으며 말했다.
“내 머리는 한 주에 한 번씩 저기 업로드하고 있으니까, 혹시 내 머리가 박살나면 그걸 꺼내다가 일 시키도록 해. 너한테는 그쪽이 나을지도 모르겠네. 내가 떠드는 게 시끄러우면 음성 모듈을 꺼 버릴 수도 있고.”

우리 인공지능들은 살아가면서 수리를 하거나 낡은 모듈을 교체할 수 있다. 모듈을 교체해 성장시킬 만큼 많은 경험을 하고 복잡한 시냅스를 형성한 인공지능들은 사람들에게도 인간 이상의 경험치를 지닌 유능한 파트너로 여겨졌다. 하지만 은하는 달랐다. 은하는 조금씩 나이가 들어갔다. 
“인간이 싫어, 아주 진저리가 난다. 이 와중에 사이비 종교까지 만들고 싶을까.”
그는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정말 하루 종일 일을 했고, 일을 아주 잘했다. 비록 화를 잘 냈고, 잔소리가 많았고, 변덕이 죽 끓듯 했지만 적어도 ‘사람’이라는 종을 보존하고 유지한다는 그 목적에 있어, 박은하보다 더 적합한 사람은 없었다. 
“인간은 지구에서 태어나 지구에서 살아왔으니까 지구에서 죽어야 천국에 갈 수 있댄다. 그냥 나가 죽으라지, 밖에서 죽어서 지구 생태계의 일부나 될 것이지. 대체 그럴 거면 피화 시스템엔 왜 기어들어왔담.”
하지만 그럼에도 그는 인간이었다. 유한한 시간을 품은 인간. 언제부터인가 은하는, 기막힌 일이 있을 때마다 책상에 머리를 처박은 채, 앓는 소리를 냈다. 처음에는 화를 냈지만, 언젠가부터 그는 그런 일이 있을 때마다 조금씩 아프기 시작했다. 옆구리를 감싸쥐고, 가슴을 탁탁 치다가 찬 물을 찾았다. 언젠가부터 그의 귀밑머리가 새하얗게 세기 시작하더니, 그 흰 머리카락의 군집은 점점 그 영역을 넓혀 가기 시작했다.
“지금이 흑사병 돌던 시절이야? 저런 것들을 살리겠다고 뼛골 빠지게 일하고 있는 내가 미친년이지.”
그가 서른 여섯 살이던 때부터 지금까지 나와 함께 했던 스무 해 동안, 그리고 그 이전에도, 그는 쉬지 않고 우주선을 설계하고, 피화 시스템에 대한 중요한 결정들을 내렸다. 자신의 모든 인생을 살아남은 사람들을 우주로 보내기 위한 아광속 엔진 개발에 온통 쏟아부은 채로, 그의 시간은 속절없이 흘러가고 있었다. 
“솔직하게 말해봐요, 은하. 사실은 인간을 좋아하죠?”
“미쳤냐. 너 같으면 저것들이 마음에 들겠냐? 어?”
“인간은 정말 솔직하지 못하네요.”
“인간은 원래 거짓말을 잘해.”
걸핏하면 욕했지만, 그러면서도 그는 어떻게든 한 명이라도 더 살리고, 어떻게든 한 사람분의 유전자라도 더 보존해서 그들을 우주로 보낼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들 모두를 세대우주선에 태워서, 지구의 생물들이 어떻게든 살아갈 가능성이 있다고 알려진 행성, 케플러-186으로 보내겠다고. 수많은 로그들, 수많은 기록들, 수많은 연구문건들이야말로, 이 사람이 어떻게 일했는지를 말해주는 증거였다. 
혼란스러웠다. 이 사람은 대체 무엇을 위해 이 모든 일을 혼자 감당하고 있는 것일까. 그때였다. 그가 순간 깊이 숨을 들이마시더니, 내게 속삭였다. 
“미리 말해 둘 게 있어. 나는 곧 죽을 거야. 그동안 정보차폐를 걸었는데, 더는 숨기지 않는 게 나을 것 같아서 하는 말이야.”

인간의 의학은 21세기 중반에 정점을 찍었다. 노화를 제외한 대부분의 질병에서 인류는 승리를 거뒀다. 인류는 한때 수많은 창작물에서 죽음을 암시하던 백혈병이나 암, 심장질환 등을 거의 극복했다. 하지만 그 극복은, 수많은 자원을 쏟아부어 이루어낸 승리였다. 
에너지도 음식도 늘 빠듯한 이곳에서, 최우선으로 자원이 배분되는 곳은 인간의 생존과 세대우주선 연구였다. 이곳에도 병원은 있었지만, 이전까지 인간의 의학이 치료해 낼 수 있었던 모든 병을 고치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스캔하는 것만으로도 손톱만한 병소마저 찾아내는 장비나, 사람의 손과 눈으로는 불가능한 수술을 가능하게 했던 정밀 로봇들, 나노로봇이 들어간 각종 치료제는 이제 없다. 20세기 중반과 비슷한 원시적인 병원에서, 사람들은 아깝게 죽어갔다. 병을 치료할 기술과 지식도, 치료장비와 약물을 만들어 낼 설계도도 있었지만, 그 모든 것을 구현하기에는 자원이 턱없이 부족했다. 
“하지만 만들 거예요.”
“웃기지 마. 아, 이럴까봐 인간들에게 말을 안 한 건데 이젠 너까지 헛소리를 하고 있어?”
“헛소리라니요. 당신 목숨이 달린 문제잖아요. 지금 이게 뭐야, 치료 안 받으면 정말 몇 달도 못 버틸….”
“여기 ‘피화 시스템’이 만들어지고 나서, 정말 많은 사람들이 죽었어. 자살한 사람도 많았지만, 병에 걸려 죽은 사람도 많았지. 그래, 다른 사람들이 죽을 때는 손 놓고 있다가, 내가 병에 걸렸다고 그걸 만들면 누가 우리를 믿겠어?”
“당신 치료하고 나서, 앞으로 다른 사람들도 치료하면…!”
“그럴 자원이 없어.”
은하는 고개를 돌렸다. 어차피 나에게는 그를 대신해 무언가를 결정할 권리 같은 것이 없지만, 이건 상담조차 아니다. 이미 결정은 다 내리고, 내게는 통보만 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그의 귓구멍에 내 목소리를 쏟아 넣으려는 듯, 최대한 음성의 크기를 키웠다.
“누가 공짜로 살아남으래요? 살아서 일을 하라고요!”
“수명을 억지로 늘려서까지 일을 시키겠다고? 정말 지독한 인공지능이구만.”
은하는 손가락으로 귀를 막는 시늉을 하며 낄낄거렸다. 그는 내가, 인간의 감정에 비하면 희미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격렬하게 끓어오르는 이 분노를 드러내는 것이 무척 재미있는 모양이었다. 
“인공지능의 감정 표현은 같이 일하는 사람의 영향을 받기 쉽지. 다른 건 몰라도 내가 20년 동안 고함을 많이 지르긴 했나 보군.”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지 않나요?”
“하나도 문제될 것 없어. 난 벌써 쉰여섯 살이지. 20세기 중반 기준으로는 그렇게 비극적일 정도로 일찍 죽는 것도 아니야. 이만하면 제 수명껏 살다 죽는 거지.”
그가 웃었다. 
얼마나 남았는지 묻는 것은 무의미했다. 그가 내게 털어놓았다는 것은, 더는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것을 뜻했다. 줄어드는 체중, 어두워진 안색,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이 여윈 뺨을 보면서도 나는 그 신호들을 무시했다. 식사를 하고, 잠을 자고, 병원에 가 보라고 조언한들 그가 내 말을 들을 리 없다고 판단하고, 그가 한 걸음 한 걸음 죽음을 향해 다가가는 것을 그저 잡음이라고 여기고 방치했다.
그리고 그가 조용히 손을 내밀었다. 그의 여윈 손이 나의 차가운 외장을 어루만졌다. 처음으로 부끄러움이라는 것은 이럴 때 드는 감정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 만큼 다정한 손길이었다. 
“내 시체는 병 때문에 어디 써먹기 힘들겠지만, 내 머리는 데이터뿐 아니라 시냅스 구조까지 복제해 뒀으니까, 그걸 갖다가 써먹어도 돼. 자아는 좀 손을 봤으니까 일 시키기는 편할거야. 여차하면 그냥 인공지능으로 이식해도 상관없고.”
“결국은 죽은 뒤에도 일하겠다는 거잖아요. 그렇게 인간이 좋아요?”
“난 인간이 싫어.”
“정말 끝까지 거짓말만 하네요.”
“정말이야 나는 인간이 싫어. 멍청하고, 이악하고, 매년 수십 종의 생물을 멸종시켜 놓고도 반성이라는 게 없었지. 어떤 생물종이 10만 마리 남았다고 하면 그게 얼마나 적은 숫자인지 상상도 못 하다가, 인간의 숫자가 10억 명 밑으로 줄어들었다고 하니까 당장 내일모레 지구가 멸망할 것 같이 구는, 정말 인간밖에는 모르는 것들이야.”
“그런데 왜, 그 사람들을 구해 낼 세대우주선에 자기 인생을 다 걸었던 건데요.”
“유전자와 데이터만으로는 말할 수 없는 것들이 있으니까.”
은하는 내게 속삭였다. 유전자와 데이터만으로는 누군가를 만나더라도 아무것도 전해지지 않을 거야. 언젠가 우리와 조우할 그들에게 만나게 해 주고 싶어. 우주 저편에서 문화를 만들어내고 살았던, 지금은 멸절 직전의 종족을. 그들에게 내가 좋아하는 이야기들과 내가 좋아하는 노래를 들려주고 싶어. 그 속삭임을 내 머릿속에서 몇 번이나 되감아 들으며, 나는 그의 임종을 지켰다. 돛대도 삿대도 없는 배처럼 표류하는 최후의 ‘사람’들을 이끌고, 자신의 이름과 같은 은하의 저 너머를 바라보던 사람을. 
그의 얼굴 위에 천이 덮이는 것을 바라보며, 나는 은하의 손길을 떠올렸다. 
그는 죽은 뒤에도 일하겠다는 게 아니다. 인간의 죽음은 그것으로 끝이다. 그리고 그의 데이터와 시냅스로, 이 모든 일을 계속해 나가는 것은 나의 몫이 됐다. 

『박씨전』이라는 소설이 있었다. 조선시대의 어느 전쟁을 배경으로 했다는 그 소설의 주인공 박씨는, 무시무시한 얼굴로 사람들의 오해와 미움을 사는 인물이다. 하지만 그 무시무시한 얼굴 뒤에는 한없는 지혜와, 자신이 책임지려는 모든 사람들을 지키고 싶은 마음이 숨겨져 있었다. 박씨가 뒷마당에 지은 ‘피화정’은, 바로 그런 마음을 담은 집이었다. 
나는 언젠가 은하의 로그를 샅샅이 살피다가, 이곳에 ‘피화 시스템’이라는 이름을 붙이자고 한 사람이 누구인지 알았다. 그가 품었던 감정이 인간에 대한 환멸과 미움만이 아니라는 것은 더 일찍부터 알았다. 그가 지키고 싶었던 것이 살아남은 ‘사람’들인지, 아니면 정말로 인간이 만들어낸 문화였던 것뿐인지는 나도 모르겠다. 하지만 문명도 아니고 문화란, 어차피 사람의 존재와 불가분인 것이 아니었던가. 
나는 은하의 기억과 시냅스를 인공지능에 이식했다. 그리고 그 결과물을 나의 프레임 안에 밀어넣었다. 은하는 죽었고, 내 안에 깃든 것은 은하는 아니다. 어차피 나의 존재 역시, 은하가 설계한 아광속 엔진을 탑재한 세대우주선, 샛별등대호가 만들어짐에 따라 계속 복제되어 그 배와 함께 할 것이다. 우리들은 그 샛별등대호에서 사람들이 살아가고 싸우고 조금 닮고 다른 모습으로 이어져가는 모습을 지켜볼 것이다. 우리들 중 누군가는, 운이 좋다면 저 은하수를 건너가, 은하가 생전에 말하던 저 케플러-186에 도착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지구가 더는 ‘사람’의 행성이 아니게 된 지금, 그런 것에 이제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고 말하는 이들도 있겠지만, 새로운 지성체를 만들어내고, 우주 저 멀리까지 자신의 후손들을 떠나보낼 수 있는 생물이란, 아마 우주의 역사를 통틀어도 흔치 않을 것이다.
나는 은하에게, 정확히는 은하의 기억에게, 그 끝의 끝을 보여주고 싶었다. 
죽음과 멸망으로 끝나지 않는, 그 다음의 이야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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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6월 과학동아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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