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유럽의 작은 나라 에스토니아, 선거의 미래를 보이다
핀란드 위에 위치한 작은 나라, 에스토니아는 ‘전자정부’로 유명하다. 모든 행정 시스템이 블록체인 기반으로 구축돼 있다. ID 카드를 발급 받은 에스토니아의 시민권자들은 세계 어느 곳에서 행정 업무를 처리할 수 있다. 여기엔 투표도 포함된다.
에스토니아는 2005년부터 각종 선거에 블록체인을 활용하고 있으며, 2014년 유럽 의회 선거와 2015년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투표자의 3분의 1 가량이 전자 투표를 활용해 선거에 참여했다.
조작 불가능한 것이 블록체인의 가장 중요한 특성이기는 하나, 간단하고 편리한 선거 절차가 먼저 눈에 띈다. 에스토니아가 공개한 투표 영상(오른쪽)을 보면 마치 미래의 세상처럼 컴퓨터에 ID 카드를 인식시키고 선거 시스템에서 후보자를 선택하면 끝이다. 시간에도, 장소에도 구애 받지 않는다. 새벽부터 몇 안 되는 투표장에 줄을 서서 투표하는 우리의 모습을 생각하면, 실로 엄청난 변화다.
에스토니아뿐만이 아니다. 스페인의 신생정당인 포데모스는 2014년 블록체인 전자 투표를 통해 26명의 집행부를 선출했고, 덴마크의 자유동맹당은 내부 합의를 위해 전자 투표를 적극 도입했다. 미국에서는 2016년 텍사스 주 자유당과 유타 주 공화당이 각각 대선후보를 뽑는 데 블록체인을 활용했다.

블록체인은 어떻게 신뢰성을 확보했을까
블록체인을 적용한 선거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가 없다. ‘선관위가 없으면 투표는 어떻게 하고, 개표는 누가 하지?’ 벌써 머릿속에 수많은 질문들이 오고 갈 것이다. 블록체인은 중개기관 없이 참여자가 서로의 신원이나 거래 내역과 같은 중요한 정보들을 보증하게 돼있다. 좀 더 구체적인 사례로 왜 블록체인을 믿어도 되는지를 살펴보자.
가상화폐인 비트코인은 블록체인을 활용한 대표적인 사례다. 10명의 사람이 비트코인 거래를 위한 네트워크에 참여하고 있다고 해보자. 이들이 거래한 내역은 10분에 하나씩 만들어지는 정보 덩어리(블록)에 기록된다. 블록이 하나 생성될 때마다 아주 복잡한 연산 문제가 하나씩 발생하는데, 이 문제를 푼 사람(채굴꾼)만이 블록을 생성할 권리를 얻고, 그에 합당한 가상화폐, 비트코인을 얻는다(채굴 과정). 즉, 복잡한 연산을 푸는 데 투입된 노동과 자본의 대가로 비트코인을 받고 이를 종이 화폐처럼 사용할 수 있다. 이것이 가상화폐가 존재할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원리다.
그럼 비트코인은 어떻게 신뢰성을 확보할까. 거래 내역이 담긴 블록이 만들어지면, 이 블록의 정보(해시 값)는 그 다음에 만들어지는 블록에 저장된다. 마치 레고를 쌓아 올리는 것처럼 모든 블록이 서로 연결된다. 만약 쌓아 올린 네모난 레고 중 하나를 빼서 동그란 레고로 바꾼다면, 그 위에 쌓아 올린 레고는 모두 무너져버릴 것이다. 이전처럼 제대로 쌓기 위해서는 이후에 올려진 모든 레고 조각들을 동그랗게 바꿔야 한다.

블록체인도 마찬가지다. 하나의 블록을 수정하려면 그 이후에 연결된 모든 블록을 동시에 수정해야 한다. 참여자가 늘어나 블록이 많아질수록, 정보를 조작하는 데에 더 많은 컴퓨팅 파워가 필요하다. 이런 이유로, 현재 비트코인 조작은 수학적으로 절대 불가능하다. 이를 ‘비잔티움 장군 문제 허용’이라고 한다(위 그림).
블록체인 법제화 미흡, 사회적 합의가 필요해
이를 선거에 적용해보자. 이 시스템은 마치, 유권자들에게 일정 금액의 비트코인을 주고 지지하는 후보자의 계좌에 이를 송금하게 하는 과정과 유사하다. 가장 많은 금액을 가진 후보자가 당선되고, 이 거래 내역은 모두 블록에 저장된다. 실제 선거에서는 가상 화폐가 필요하지 않기 때문에 채굴 과정이 필요 없고, 그만큼 투입되는 자본 역시 절약된다.
올해 2월, 경기도에서는 ‘따복공동체 주민제안 공모사업’에 블록체인을 활용했다. 경기도는 각 공동체 당 한 명씩만 오프라인 사업 발표에 참여하고, 다른 구성원들은 모바일로 생중계되는 사업 발표를 보고 온라인으로 투표할 수 있게 했다. 당시 블록체인 플랫폼을 제공한 IT 솔루션 기업 블로코의 김종환 대표는 “투표자들을 한 군데에 모아서 진행했다면 어마어마한 비용이 들었을 것”이라며 “비용 측면에서나 공공성, 투명성의 측면에서도 블록체인은 선거에 많은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에스토니아보다 5배나 인구가 많은 우리나라에서 블록체인으로 대규모 선거를 치르기에는 아직 갖춰야 할 것들이 많다. 김 대표는 “사회적 합의나 법 체계가 전혀 구축돼 있지 않다”며 “가장 활성화된 비트코인조차도 기존의 금융관련 법들이 적용되지 않아 피해가 종종 발생한다”고 말했다. 예컨대 비트코인 거래 시 누군가 사기 행위를 하거나 거래 분쟁이 생기는 경우, 그 책임을 누구에게 물어야 할지 정의돼 있지 않다. 민경식 한국인터넷진흥원(KISA) 블록체인확산팀장은 “올해부터 블록체인과 관련해 어떤 법적 수요가 있는지를 발굴하고 있다”며 “내년쯤에는 관련 법안을 입법 제안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 가지 문제점이 더 있다. 비트코인의 경우 참여자 모두의 컴퓨터에 거래 장부를 저장하는 ‘퍼블릭 블록체인’ 형식이라 비용 부담이 너무 크다. 암호화돼 있기는 하지만 자신의 정보가 공개된다는 것에 거부감을 느끼는 이들이 많은 것도 걸림돌이다. 이런 경우 선택하는 방법이 일부 참여자에게 관리자 권한을 부여하는 ‘프라이빗(컨소시엄) 블록체인’이다. 중개기관이 모든 거래에 관여하는 현행 시스템과 퍼블릭 블록체인의 특성을 모두 가진 시스템이라고 볼 수 있다. 실제 골드만삭스, JP모건 등 굵직한 글로벌 금융사들이 속해있는 국제 블록체인 컨소시엄(R3CEV)은 프라이빗 블록체인을 사용한다. 만약 블록에 저장된 계약서에 수정사항이 생기면 참여 금융사들의 합의 하에 변경이 가능하다.
그렇다면 선거에서도 관리자 권한을 가진 국가기관들이 합심해 투표 결과를 조작할 수 있지 않을까. 이에 대해 민 팀장은 “투표에 참여한 모든 참여자(대중)에게 열람 권리를 부여하면 문제없다”며 “만약 열람할 권리를 제한한다면 국민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감시자 역할을 할 수 있는 비정부기구(NGO)를 관리자로 지정하는 등의 대안이 있다”고 말했다. 기술이 성숙해지고 블록체인에 대한 법 체계가 구축돼 가고 있는 지금이야 말로, 블록체인을 활용한 선거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때다.
블록체인 법제화 미흡, 사회적 합의가 필요해
이를 선거에 적용해보자. 이 시스템은 마치, 유권자들에게 일정 금액의 비트코인을 주고 지지하는 후보자의 계좌에 이를 송금하게 하는 과정과 유사하다. 가장 많은 금액을 가진 후보자가 당선되고, 이 거래 내역은 모두 블록에 저장된다. 실제 선거에서는 가상 화폐가 필요하지 않기 때문에 채굴 과정이 필요 없고, 그만큼 투입되는 자본 역시 절약된다.
올해 2월, 경기도에서는 ‘따복공동체 주민제안 공모사업’에 블록체인을 활용했다. 경기도는 각 공동체 당 한 명씩만 오프라인 사업 발표에 참여하고, 다른 구성원들은 모바일로 생중계되는 사업 발표를 보고 온라인으로 투표할 수 있게 했다. 당시 블록체인 플랫폼을 제공한 IT 솔루션 기업 블로코의 김종환 대표는 “투표자들을 한 군데에 모아서 진행했다면 어마어마한 비용이 들었을 것”이라며 “비용 측면에서나 공공성, 투명성의 측면에서도 블록체인은 선거에 많은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에스토니아보다 5배나 인구가 많은 우리나라에서 블록체인으로 대규모 선거를 치르기에는 아직 갖춰야 할 것들이 많다. 김 대표는 “사회적 합의나 법 체계가 전혀 구축돼 있지 않다”며 “가장 활성화된 비트코인조차도 기존의 금융관련 법들이 적용되지 않아 피해가 종종 발생한다”고 말했다. 예컨대 비트코인 거래 시 누군가 사기 행위를 하거나 거래 분쟁이 생기는 경우, 그 책임을 누구에게 물어야 할지 정의돼 있지 않다. 민경식 한국인터넷진흥원(KISA) 블록체인확산팀장은 “올해부터 블록체인과 관련해 어떤 법적 수요가 있는지를 발굴하고 있다”며 “내년쯤에는 관련 법안을 입법 제안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 가지 문제점이 더 있다. 비트코인의 경우 참여자 모두의 컴퓨터에 거래 장부를 저장하는 ‘퍼블릭 블록체인’ 형식이라 비용 부담이 너무 크다. 암호화돼 있기는 하지만 자신의 정보가 공개된다는 것에 거부감을 느끼는 이들이 많은 것도 걸림돌이다. 이런 경우 선택하는 방법이 일부 참여자에게 관리자 권한을 부여하는 ‘프라이빗(컨소시엄) 블록체인’이다. 중개기관이 모든 거래에 관여하는 현행 시스템과 퍼블릭 블록체인의 특성을 모두 가진 시스템이라고 볼 수 있다. 실제 골드만삭스, JP모건 등 굵직한 글로벌 금융사들이 속해있는 국제 블록체인 컨소시엄(R3CEV)은 프라이빗 블록체인을 사용한다. 만약 블록에 저장된 계약서에 수정사항이 생기면 참여 금융사들의 합의 하에 변경이 가능하다.
그렇다면 선거에서도 관리자 권한을 가진 국가기관들이 합심해 투표 결과를 조작할 수 있지 않을까. 이에 대해 민 팀장은 “투표에 참여한 모든 참여자(대중)에게 열람 권리를 부여하면 문제없다”며 “만약 열람할 권리를 제한한다면 국민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감시자 역할을 할 수 있는 비정부기구(NGO)를 관리자로 지정하는 등의 대안이 있다”고 말했다. 기술이 성숙해지고 블록체인에 대한 법 체계가 구축돼 가고 있는 지금이야 말로, 블록체인을 활용한 선거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