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어벤져스’에서 아이언맨은 골칫덩어리 핵미사일을 우주로 가져가 버린다. 여기서 이런 생각을 해볼 수 있다. 지구에서 골칫덩어리인 사용후핵연료도 그렇게 우주에 버릴 순 없을까.
우리 말고도 이미 그런 생각을 한 사람들이 있다. 우주, 바다, 빙하 등이 핵폐기물 처분 장소 후보로 제시됐다. 각 후보지에 정말 핵폐기물을 버릴 수 있을지 가능성을 따져봤다.
1 | 지구 저궤도 가능성있음
1973년 미국항공우주국(NASA)은 반감기*가 큰 악티늄족 원소만 분류한 핵폐기물을 지구 저궤도로 보내 영구적으로 격리하는 우주처분 기술 제안서를 발표했다. 우주왕복선에 핵폐기물을 실어 지구 저궤도로 보낸 다음, 다시 0.85AU(천문단위는 태양과 지구 평균 거리 1억 4960만 km)의 태양중심궤도 영역으로 핵폐기물을 보내 영구적으로 처분하는 방식이다. 지구 저궤도로 보내면 대기 저항으로 인한 궤도 수명으로 지구로 조금씩 떨어진다. 따라서 일단 지구 저궤도에 둔 다음에, 더 멀리 보내는 방법을 고려했다. 고도 약 3만 5780km의 ‘정지궤도’를 조금만 벗어나게 돼도 지구로 떨어지는 데는 수백~수천 년이 걸리기 때문이다. 이듬해인 1974년 NASA가 발간한 기술 제안서 ‘방사성핵폐기물 우주처분 실현가능성’에 따르면 이 제안은 공학적으로 가능했다.
그럼에도 이 방법을 쓰지 못한 건 발사 비용 때문이었다. 당시 화물을 270km 근방의 지구 저궤도로 올리는 데 드는 비용은 kg당 2만 달러(약 2500만 원)였다. 사용후핵연료에서 반감기가 큰 물질만을 화학적으로 추출해 무게를 줄이는 습식재처리(PUREX)의 비용도 많이 들었다. 결정적으로 당시에는 지상 저장고에 남은 용량이 충분해 처분이 급하지 않았다. 이런 이유로 우주처분 계획은 수용되지 않았다.
발사체가 우주로 진입하는 순간 사고가 발생할 위험도 있었다. 1978년, 원자력발전으로 가동하던 러시아의 ‘코스모스 954’ 정찰 위성이 캐나다에 떨어져서, 약 50kg의 우라늄(U)-235가 땅에 흩뿌려지는 피해가 남았다. doi: 10.1038/271497c0
하지만 지금은 우주과학 기술이 훨씬 발전했고 발사 비용도 많이 낮아졌다. 미국 스페이스X의 재사용 발사체 팰컨9 기준으로 계산해 보자. 발사 비용은 6700만 달러(약 820억 원), 지구 저궤도에 한 번 쏘아 올릴 때 22.8t(톤)을 보낼 수 있다. 화물 1kg당 약 3000달러(약 370만 원)가 드는 셈이다. 현재 한국 경수로 원전(일반적인 물인 ‘경수’를 사용하는 원전)에서만 고준위 방사성폐기물이 연간 16t 정도 나온다. 안전성과 별개로 비용만 고려하면 지구 저궤도에 핵폐기물을 버릴 만한 것이다.
강경인 한국과학기술원(KAIST) 인공위성연구소 책임연구원은 “궤도 수명을 고려하면 저궤도에 폐기물을 처리하는 방법이 비용 면에서 현실적인 대안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2 | 라그랑주 점 가능성있음
2014년 박철 KAIST 초빙교수로 이뤄진 연구팀은 라그랑주 점 폐기를 제안했다. 라그랑주 점은 두 천체의 큰 중력 때문에 그 주위에서 중력이 0이 되는 5개의 지점이다.
강 책임연구원은 “다섯 개 지점 중 L5 지점이 안전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L5 지점은 지구 공전 방향 뒤쪽에 있기 때문이다. 운석 충돌 등 사고가 발생해도 지구에 파편이 떨어지기까지 수개월이 걸려 대비할 수 있다. 게다가 L5는 지구 정지궤도보다도 먼 곳에 있다. 따라서 파편이 지구로 다가오더라도 대기권에서 다 타버릴 확률이 높다.
라그랑주 점이 먼 건 단점이 되기도 한다. 거리가 먼 만큼 폐기물을 보내는 데 드는 비용이 매우 비싸다. 라그랑주 점 L4와 L5는 지구에서 무려 약 1AU 떨어져 있다. 강 책임연구원은 “L5까지 보내는 발사 비용이 지구 저궤도로 보내는 비용의 20배 이상 들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비용 문제가 있어도 라그랑주 점은 여전히 가능성 있는 곳으로 꼽힌다. 실제로 권오준 KAIST 교수가 이끄는 연구팀은 서태평양에서 우주선을 발사해서 인간 생활권에 핵폐기물이 떨어질 확률을 낮추는 방안을 연구했다. 이와 함께 L4, L5에 핵폐기물을 둔 뒤 보조 운송 수단으로 핵폐기물을 움직여 운석 충돌을 예방하는 개념 연구가 2016년 국제학술지 ‘에너지’에 실렸다. doi: 10.1016/j.energy.2016.09.012 보조 운송 수단을 통해 L4와 L5에 둔 핵폐기물을 움직여서 운석 충돌 등으로 일어날 수 있는 위협까지 없애는 연구이다.
권세진 KAIST 인공위성연구소장도 “결국 평화적인 목적으로 핵폐기물을 우주에 버리는데 얼마나 큰 비용을 감수할 수 있냐 하는 경제성 문제”라고 설명했다. 이어서 “핵폐기물 문제에 관해 답을 찾아야만 하는 시기가 온다면 심지층으로 갈지 심우주로 갈지 논의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 지난 4월 8일, 미국 케네디 우주센터에서 민간 우주탐사 기업 스페이스X의 ‘팰컨9’ 재사용 발사체가 NASA의 ‘크루드래건’을 싣고 이륙하고 있다.
3 | 바다 불가능
1980년대까진 중저준위 방사성폐기물(핵폐기물 중 방사능 함유량이 낮은 작업복 등)을 바다에 버리기도 했다. 1946년 미국이 처음 바다에 핵폐기물을 버렸고, 1950년대부터 프랑스, 스웨덴, 러시아 등도 해양투기로 핵폐기물을 처분했다.
그런데 1958년 제네바 해양법 협약에서 원자력발전소를 가동하지 않는 국가를 중심으로 핵폐기물 투기로 바다가 오염되지 않게 예방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이후 미국은 1972년부터 핵폐기물을 바다에 투기하는 것을 금지했다.
바다에 직접 투기할 수 없게 되자 해저 지반에 핵폐기물을 저장하는 방법이 생겨났다. 첫 번째로 제시된 해저처분 개념은 미사일 모양의 관통용기에 핵폐기물을 담아 해저에 떨어뜨리는 방법이다. 자체 중량 때문에 관통용기가 해저 표면을 뚫고 약 70m 깊이의 지반에 자리를 잡는 식이다. 이는 당시 현장 시험을 통해 실현 가능한 것으로 밝혀졌다.
두 번째는 800m 깊이의 미리 뚫어 놓은 시추공을 통해 폐기물을 내리는 방법이다. 폐기물 처리 후 위쪽 200m는 누수 방지용으로 사용되는 그라우트 또는 시멘트로 봉인한다. 두 방법은 심지층처분을 대체할 수 있는 유망한 방법으로 여겨졌다. doi: 10.1007/978-94-024-2106-4_10
그러나 해저처분법은 결국 법적으로 금지됐다. 해저처분의 이상적인 장소를 찾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지반이 안정적이고, 인간 생활권과 먼 곳을 찾는다 해도, 방사성핵종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파악(거동 분석)하기 힘든 게 문제였다. 임만성 KAIST 원자력및양자공학과 교수는 “심해저처분 부지에서 처분용기와 핵종 거동 분석의 불확실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결국 1973년부터 1982년까지 열린 제3차 UN해양법회의를 통해 해저 아래 토양에 핵폐기물을 처분하는 방안은 1994년부로 법적으로 금지되며 공식적으로 종료됐다.
4 | 빙하 가능성있음
빙하에 핵폐기물을 버리는 빙하처분법도 논의됐다. 케이블을 연결한 핵폐기물을 빙하에 던지면, 핵폐기물의 열기로 빙하가 녹으면서 아래로 파고 들어간다. 그 뒤 핵폐기물은 기반암을 만나 멈추고, 이동한 길목은 다시 얼어붙어 핵폐기물을 봉인한다. 2012년 미국 아이오와주립대, 뉴멕시코 광산공과대 공동연구팀은 핵폐기물을 버릴 만한 장소를 물색하기 위해 빙상의 침식, 변형 등 지형학적 움직임과 물의 특성을 연구하기도 했다. doi: 10.1111/j.1468-8123.2011.00355.x
그런데 빙하도 변형될 수 있다. 빙하의 지각변동이 주된 원인이고, 빙하의 작은 구멍 속에 들어 있는 액체가 압력을 받으면 변형이 더 커지기도 한다. 이 때문에 빙하는 최대 300m 깊이까지 변형이 일어날 수 있다. 만약 핵폐기물이 묻힌 빙하에서 변형이 크게 일어난다면, 핵폐기물이 빙하 밖으로 노출돼 방사성핵종이 누출될 수 있어 문제가 된다. 임 교수는 “폐기물에서 방출되는 열로 빙하가 녹아 거대한 빙하가 움직이는 윤활유 역할이 될 수 있다”며 안정성 문제를 지적했다.
심지층처분과 함께 논의할 수 있는 핵폐기물 처분 방법을 살펴봤다. 현재로선 우주가 가장 유력한 후보로 보인다. 권 소장은 우주처분에 관해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일”이라며 “언젠가는 이런 아이디어가 다시 빛을 발할 수 있다”고 했다. 과연 미래에는 인간 생활권 너머로 쓰레기를 버리는 이른바 핵폐기물의 ‘지구 월담’이 가능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