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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스카우트 빌딩 꼭대기 옥상정원에는 10만 마리의 꿀벌이 살고 있다. 이들은 드넓은 자연 대신 빌딩숲 사이를 거닐며 살아간다. 버스 정류장의 화단, 가로수에 만개한 벚꽃, 곳곳에 조성된 공원이 벌들에게 먹이를 제공하고, 벌들은 다시 생태계의 번식을 돕는다. 도시양봉에 앞장선다는 박진 어반비즈서울 대표와 함께 4월 7일 양봉장을 찾았다.

 

 

“윤중로에 핀 꽃 보셨죠? 지금은 벌들이 겨울잠에서 깨어나 가장 활발한 시기입니다.”

 

옥상정원 한 쪽 구석에 다섯 개의 벌통이 눈에 띄었다. 벌통 하나에는 약 2만 마리의 꿀벌이 살고 있었다. 박 대표가 뚜껑을 열자 여러 칸으로 나뉜 벌통 안에 꿀벌이 가득 차 있었다.

 

자세히 들여다 보니 차이가 보였다. 수많은 육각형 안에는 작고 기다란 알이 들어있기도, 꿈틀대는 애벌레가 있기도 했다. 이미 일벌이 바깥에서 가져온 꿀로 가득찬 곳도 있었다.

 

“꿀벌은 사회적인 동물이에요. 일벌(암컷), 수벌, 여왕벌에 따라 하는 역할이 다릅니다. 수벌과 여왕벌은 자손 생산을 담당하죠. 일벌은 태어나고 처음 20일간은 벌통 내부에서 청소, 육아를 담당하고, 이후에는 벌통 바깥으로 나가 꽃과 물을 가져옵니다. 나이가 들어 날개가 망가지면 벌통 앞에서 경비를 섭니다. 이후에는 벌통에 해를 끼치지 않기 위해 바깥으로 나가 생을 마칩니다.”

 

박 대표의 설명을 듣자 벌에 쏘일까 살짝 걱정했던 마음이 누그러지며 네모난 벌통 안의 생태계가 눈에 들어왔다. 다리에 꽃가루를 묻혀 돌아오고, 꿀의 위치를 알리기 위해 와글 댄스를 추며 각자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었다.

 

그들은 왜 옥상 위에서 꿀벌을 키우는가

 

도심 한복판에 양봉장이 있다니 놀라웠다. 박 대표는 “도시는 의외로 양봉의 조건을 고루 갖춘 장소”라고 말했다. 양봉을 하려면 반경 2km 이내에 산이 있어야 하고, 꿀벌에게 먹이를 제공하는 나무(밀원수)가 있어야 한다. 서울을 예로 들면 북한산, 관악산, 청계산처럼 높은 산들이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등 국내 많은 도시가 산을 품고 있다.

 

박 대표는 사람들을 위해 일부러 가꾼 조경이 벌들에게 풍부한 먹이를 제공한다고 설명했다.

 

“농사를 짓는 지역은 벌들의 먹이가 단일화될 수밖에 없어요. 예를 들어 해바라기 농장은 해바라기 꽃이 피는 8~10월을 제외하고는 벌의 먹이가 전무한 상태예요. 저희는 이런 곳을 ‘녹색 사막’이라고 표현하고는 해요. 눈으로 보기에는 푸르른 공간이지만 꽃이 없다면 벌은 굶어 죽죠.”

 

기온에 있어서도 유리한 점이 있다. 박 대표는 “벌은 태생적으로 고온건조한 환경을 좋아하는데, 일반적으로 열섬현상 등으로 도시가 시골보다 따뜻하다”고 말했다.

 

벌이 살아가는 데는 꼭 넓은 공간이 필요한 것도 아니다. 약 4m2의 공간만 있으면 꿀벌, 나비와 같은 수분매개자에게 충분한 서식지를 제공할 수 있다는 것이 영국 서식스대 연구팀에 의해 증명됐다. 연구 결과는 국제학술지 ‘곤충 보존 저널’ 3월 10일자에 발표됐다. doi: 10.1007/s10841-022-00387-2

 

도시양봉은 전 세계적으로 유행처럼 번지기 시작해 뉴욕, 파리, 런던 등의 도시를 중심으로 활성화돼 있다. 특히 런던의 테이트 모던 미술관과 자연사박물관, 파리 오르세 미술관 등 유명 건축물에는 대부분 양봉장이 함께 한다.

 

“인터컨티넨탈, 페어몬트 등 웬만한 유명 호텔 프랜차이즈에서는 모두 양봉을 하고 있어요. 호텔 옥상은 도심에 있으면서도 사람이 닿지 않는 곳이라 도시양봉에 제격이죠.”

 

박 대표는 유럽에서 꿀이 친숙한 식재료라는 점을 도시양봉이 유럽에서 먼저 활성화된 이유로 꼽았다. 꿀 생산량이 줄었을 때 결핍을 먼저 느꼈다는 것이다. 실제 전 세계 꿀 소비량이 많은 나라 열 곳 중 여덟은 유럽에 있다.

 

도시에 벌이 많아지면 무엇이 달라질까. 박 대표는 “꿀벌은 꽃가루의 발아율을 20%가량 증가시키는 효과가 있다”며 “꽃이 풍성해지면 더 많은 곤충과 새들이 유입된다”고 말했다. 꿀벌이 도시 생태계를 더욱 풍부하게 하는 역할을 하는 셈이다.

 

효율 면에서도 이점이 있다. 미국 생물학자이자 양봉업체 ‘베스트 비 컴퍼니’를 운영하는 양봉가 노아 윌슨-리치는 2012년 테드(TED) 강연에서 “시골의 벌이 겨우내 살아남는 비율은 40%에 불과하지만, 도시에서는 62.5%에 달한다”며 “도시양봉의 평균 연간 꿀 생산량은 26.25파운드(약 11.9kg)로 시골(16.75파운드약 7.6kg)보다 많다”고 말했다.

 

 

소규모 도시양봉 규제 전무해

 

일상적으로 활성화된 미국이나 유럽에 비해 국내 도시양봉장은 시작 단계다. 2013년 서울 노들섬 양봉장에서 처음 시작된 이후, 현재 50여 곳이 운영되고 있다. 박 대표는 “도시양봉이 늘어나려면 사람들의 인식을 개선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말했다. 양봉장은 건물 옥상에 있어 사람들이 직접 벌통과 마주칠 일이 거의 없지만, 여전히 ‘벌에 쏘일 수 있다’는 우려가 도시양봉에 장애물로 작용한다.

 

“많은 오해와 달리, 사람의 몸에는 꿀이 나지 않기 때문에 벌을 일부러 방해하지 않는다면 사람을 쏘지 않아요. 그렇지만 혹시 모를 피해를 대비해 양봉장 위치는 주위의 위험성, 주변 민원 상황 등을 따져 보수적으로 선정합니다. 또 주거지역보다는 상업지역을 선호하죠.”

 

다만 법적인 규제가 없어 통제의 어려움이 있다. 2020년 8월부터 양봉산업의 육성 및 지원에 관한 법률(양봉산업법)이 시행되고 있지만, 꿀벌(서양종)의 경우 30봉군, 토종벌의 경우 10봉군 이하의 소규모 양봉장은 등록 의무가 없다.

 

실제 지난해 4월 서울 장안동 주택가에서 벌떼가 편의점을 덮치는 사건이 있었다. 이웃집에서 양봉장을 운영했는데, 관리가 미흡해 벌이 탈출한 것이다. 박 대표는 “도시양봉의 경우 대부분 5봉군 미만의 벌통을 운영하기 때문에 현재 규제 방안이 없는 실정”이라며 “벌을 관리하는 능력을 갖추지 않고 양봉을 시작하면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줄 수 있다”고 말했다.

 

규제를 통해 전체적인 양봉장의 개수를 관리하는 것도 중요하다. 일례로 2010년 도시양봉이 합법화된 뉴욕은 양봉장 수가 급격히 늘었는데, 한정된 지역에서 400~500명이 동시에 키우는 벌이 서로 경쟁해 문제가 되기도 했다. 이에 스위스 연방 산림연구소 연구팀은 논문에서 도시양봉의 지속가능한 밀도를 규제해야 한다고 지적한 바 있다. 벌집 밀도가 증가하면 지역의 자연을 고갈시켜 다른 수분매개자에게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연구 결과는 국제학술지 ‘NPJ 도시 지속가능성’ 1월 12일자에 발표됐다. doi: 10.1038/s42949-021-00046-6

 

박 대표는 “법적으로 규제할 수 없다면 시행규칙이나 조례를 통해 기준점을 제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그래야 도시양봉이 장기적인 성장 동력을 얻을 수 있다”고 말했다.

 

한편 도시양봉이 활성화되려면 벌이 활동할 수 있는 주변 환경을 조성해줄 필요가 있다. 국내에서 생산되는 꿀의 70%는 아까시 나무에 의존한다. 5월 중순경 꽃이 만개하는 아까시 나무에서 꿀을 얻으려면, 꿀벌은 4월 초 활발하게 산란을 해야 한다(알에서 성충이 되기까지 22일이 걸리고, 이후에도 20일간은 벌통 내부에서 생활한다). 만약 이때 산란을 제대로 하지 못하면 연간 꿀 생산량이 급감할 수 있다는 얘기다. 박 대표는 “6월에 피는 꽃, 7월에 피는 꽃을 고루 심어 아까시에만 의존하지 않도록 꿀벌의 먹이를 다양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 가락으로 가리키는 곳에 여왕벌이 있다. 나머지 일벌들은 쉴 새 없이 벌통을 드나들며 각자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7800000000마리의 벌이 사라졌다

 

최근 도시양봉이 더욱 주목받는 이유는 올해 초 벌어진 꿀벌 실종 사건과도 무관하지 않다. 1월부터 남부지방을 시작으로 꿀벌이 사라지는 현상이 벌어졌다. 농촌진흥청과 한국양봉협회가 추산한 결과에 따르면 사라진 꿀벌은 약 78억 마리, 전체 사육 꿀벌의 18%에 해당하는 수치다.

 

 

벌은 인간이 재배하는 1500여 종의 작물의 30%를 책임지는 수분매개자다. 특히 유엔식량농업기구(FAO)의 통계에 따르면 전 세계 식량의 90%를 차지하는 100대 주요 작물 중 71종의 수분을 도울 정도로 식량공급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최용수 농촌진흥청 양봉생태과 연구관은 “벌은 인류가 멸종하는 7가지 요인 중 하나로 꼽힐 정도로 인류의 생존권을 쥔 중요한 존재”라며 “벌이 완전히 멸종한다면 2~3개월 내 양봉 농가가 피해를 입고, 1년 내 식량 위기 등 심각한 사회적 문제로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꿀벌이 사라지는 현상은 전 세계에서 나타나고 있다. 이를 군집붕괴현상(CCD)이라고 한다. 꿀벌응애와 같은 기생충과 이를 제거하기 위한 살충제 사용 등 다양한 원인이 작용했다. 대표적으로 2006년 미국에서 사육하던 꿀벌의 25~50%가 사라졌던 사례가 있다. 이후 유럽과 남아프리카, 아시아 등에서도 CCD가 관찰되고 있다.

 

올해 초 국내 꿀벌 실종의 원인은 지난해 응애류, 말벌류 등에 의한 폐사와 이상기상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했기 때문으로 나타났다. 농촌진흥청이 3월 13일 발표한 보도자료에 따르면 꿀벌 폐사가 발생한 대부분의 봉군에서 꿀벌응애가 관찰됐고, 일부 농가에서는 이를 막기 위해 살충제를 최대 3배 이상 사용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오락가락 하는 기온도 문제가 됐다. 지난해 9~10월 일주일 단위로 날씨가 춥고 따뜻하기를 반복하며 어린 꿀벌이 제대로 발육하지 못했다. 또 11월 중순~12월 중순에는 꿀벌이 동그랗게 뭉쳐 월동에 들어가는데, 순간적으로 날씨가 따뜻해지며 풀어졌고 여왕벌이 산란을 시작하는 현상이 벌어졌다. 최 연구관은 “당시 봄이 온 줄 알고 일부 벌들이 밖으로 나갔다 날씨가 추워져 집으로 복귀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런 현상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7~8월에 꽃이 피는 밀원수를 많이 심어 꿀벌이 지속적으로 꿀을 생산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최 연구관은 “기후변화는 어쩔 수 없지만 꿀벌 해충에 대한 새로운 살충제를 개발하고, 벌통을 관리할 수 있는 디지털 장비를 활용하는 등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도시양봉도 하나의 해결책이 될 수 있다. 최 연구관은 “서울은 산도 많고, 녹화 비율이 높은 도시”라며 “도시는 시골보다 기온이 따뜻하게 유지되기 때문에 날씨 변화에 따른 위험이 적을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단순히 풀과 나무를 심는 것이 아니라 곤충, 벌 등의 서식지를 마련하고 밀원수를 많이 심어 근본적인 도시 생태계를 회복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 대표는 마지막으로 꿀벌을 키우고 꿀을 생산하는 일 이외에도 도시양봉의 역할이 있다고 강조했다.

 

“도시양봉으로 소규모의 벌을 키우는 일이 전체 생태계의 관점으로 봤을 때 큰 영향이 아닐 수 있어요. 하지만 평소 꿀벌을 만날 일이 없는 도시 사람들에게 벌의 문제를 지속적으로 노출시키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생각해요.”

“윤중로에 핀 꽃 보셨죠? 지금은 벌들이 겨울잠에서 깨어나 가장 활발한 시기입니다.”

 

옥상정원 한 쪽 구석에 다섯 개의 벌통이 눈에 띄었다. 벌통 하나에는 약 2만 마리의 꿀벌이 살고 있었다. 박 대표가 뚜껑을 열자 여러 칸으로 나뉜 벌통 안에 꿀벌이 가득 차 있었다.

 

자세히 들여다 보니 차이가 보였다. 수많은 육각형 안에는 작고 기다란 알이 들어있기도, 꿈틀대는 애벌레가 있기도 했다. 이미 일벌이 바깥에서 가져온 꿀로 가득찬 곳도 있었다.

 

“꿀벌은 사회적인 동물이에요. 일벌(암컷), 수벌, 여왕벌에 따라 하는 역할이 다릅니다. 수벌과 여왕벌은 자손 생산을 담당하죠. 일벌은 태어나고 처음 20일간은 벌통 내부에서 청소, 육아를 담당하고, 이후에는 벌통 바깥으로 나가 꽃과 물을 가져옵니다. 나이가 들어 날개가 망가지면 벌통 앞에서 경비를 섭니다. 이후에는 벌통에 해를 끼치지 않기 위해 바깥으로 나가 생을 마칩니다.”

 

박 대표의 설명을 듣자 벌에 쏘일까 살짝 걱정했던 마음이 누그러지며 네모난 벌통 안의 생태계가 눈에 들어왔다. 다리에 꽃가루를 묻혀 돌아오고, 꿀의 위치를 알리기 위해 와글 댄스를 추며 각자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었다.

 

 

2022년 5월 과학동아 정보

  • 이영애 기자 기자
  • 사진

    정운
  • 디자인

    이한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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