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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기술대 첫 졸업생들의 얘기

내가 보낸 4년

□참석자
오영환(과기대 교무 처장·전자전산학부 교수)
조수정(자연과학부 4년·생물전공/서울 영파여고 3년졸업)
김진혁(기계재료공학부 4년·전자재료전공/경기과학고 3년졸업)
전정렬(전자전산학부 4년·회로시스템전공/대전과학고 2년졸업)
정종민(전자전산학부 4년·정보통신전공/전남과학고 2년졸업)

□사회
김두희 기자

□때
1989년 10월 12일

□곳
한국과학기술대학 교무처장실

과학기술 영재교육기관으로 출발한 한국과학기술대학이 내년 초에 첫졸업생을 배출한다. 졸업예정자들의 입을 통해 과기대의 현재와 미래의 위상을 알아본다.

사─졸업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과기대가 첫발을 내디딘지 4년 동안 국민들의 관심은 매우 컸습니다. 첫졸업생으로서 과기대 4년 생활을 정리해 보지요.

조─대학 4년 생활을 말하기 전에 먼저 과기대를 선택하게 된 동기부터 이야기하겠습니다. 저는 과기대가 생겼다는 것을 원서교부(9월) 때야 알았어요. 과기대로 가는 것에 대해 선생님을 비롯해 주위의 반대가 많았습니다. 정권이 바뀌면 어떻게 될지 모르는 대학, 선배가 없는 대학, 또는 여학생을 객지에 보낸다는 것 등 이유가 많았지요. 하지만 어렸을 때부터 과학자를 동경했고 공부를 하고 싶은 만큼 할 수 있을 것 같아 고심 끝에 결정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실제로 후회하지 않을 만큼 공부를 한 것 같습니다.
 

과학기술대 첫 졸업생들의 간담회


●─프런티어 정신으로

김─저는 과학고 출신이라서 그런지 별 고민없이 과기대를 선택했습니다. 실험으로 충만된 고등학교 생활이 괜찮았기 때문에 과기대에 대한 기대가 많았지요. 선배들이 없는 제약이 있긴 하지만 남들 따라가는 것보다 새로 시작하는 마음으로 선택했습니다.

전─저도 마찬가지입니다. 대전과학고를 다녀서인지 지역적인 유대감도 있고 해서 부담없이 선택했습니다. 문제는 2학년 마치고 가느냐, 아니면 3학년을 다하느냐는 고민을 했는데, 기질상 교과서적인 판에 박힌 교육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에 2학년만 마치고 들어왔습니다. 대학 4년 동안 가장 마음에 드는 일은 학교의 기자재를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었던 것이지요. 언제고 밤새워서 실험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즐거운지는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잘 모를 것입니다.

정─실험이야기가 나왔으니까 생각이 나는군요. 중학교 다닐 때 암모니아를 태우는 실험을 했는데 줄을 서서 한번 지나가고 그만이었습니다. 실험을 하기 위해 과학고에 진학했고 과기대에 들어왔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지요. 과기대 입시를 준비하기 위해 실험 시간을 없애고 수학 영어시간을 대폭 늘릴 때는 정말 모든 게 싫어질 때도 있었습니다.

오─교수들도 학생들 못지 않게 과기대 선택의 고민이 많았지요. 그러나 무엇보다도 우수한 학생들을 마음껏 가르칠 수 있다는 매력이 젊고 의욕에 찬 교수들을 모이게 했습니다. 많은 분들이 과기대가 첫직장인지라 무리라고 생각할 정도로 수준 높게 가르쳤지요.

조─학생들에 대한 교수님들의 기대치는 매우 높았던 것 같습니다. 사실 저는 맨처음에 적응하기 힘들었어요. 지금 생각해봐도 어떻게 따라왔는지 모를 정도니까요.

전─3학년 때 로보틱스과목을 수강하는데 '영문으로 논문을 써오라'고 해서 무척 당황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이 경험을 통해 자료 찾는 법, 논문 쓰는 법을 제대로 배웠던 것 같아요. 어느 교수님 한분이 '과기대 학생들 능력은 무한하다. 학생들은 시키면 열심히 한다. 고로 무지하게 가르치자'는 농담 반 진담 반의 삼단논법을 펴는 것을 보았는데 그 당시에는 정말 잔인하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정─87년 가을학기 그러니까 2학년 때죠. 스탠퍼드대학의 비디오강의 재료를 그대로 틀어놓고 수업을 했는데, 하나도 알아들을 수가 없었습니다. 나중에 질문을 하라고 하는데 뭘 조금이라도 알아야 질문을 하죠. 사실 지금 생각해보면 비디오로 본 그 교수가 참 강의를 잘했다는 생각이 드는데…

●─ 개별연구와 세미나

김─역시 대학생활 4년 동안 가장 자신을 몰입할 수 있었던 것은 '세미나'과목과 '개별연구'였던 것 같습니다. 전공별로 반드시 세미나과목을 운영하게 돼 있는데, 저는 스스로 연구한 것을 발표하면서 공부의 참재미를 맛보았습니다.

전─저도 동감입니다. 3학년 여름방학부터 석사과정에서 다루는 분야를 욕심을 내 개별연구과제로 선택했는데, 이를 통해 교수님과 대화하는 시간도 많이 확보했고 자신의 능력에 대한 가능성도 확인했습니다. 과학원 입시공부를 하는 지금도 개별연구를 계속하고 싶어 안달이 날 정도니까요. 또 이와는 조금 성격이 다르지만 서울공대 제어계측과에서 매년 개최하는 마이크로마우스 경진대회에 출품하려고, 학과공부는 뒷전으로 밀어놓고 스텝모터 대신에 직류모터를 사용한 로봇을 제작했던 일이 생각납니다. 결국 입상도 못했고 학점도 떨어졌지만 성과는 많았다고 생각합니다.

조─실험과 개별연구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니 제가 처음에 과기대에 입학했을 때 생각이 나는군요. 저는 과학고 출신이 아니어서 실험에 익숙치 않았습니다. 전기기구 한번 제대로 만져보지 못한 정도니까 오죽 했겠습니까. 지금은 많이 변했지만은 처음엔 실험실에 정이 가질 않았어요.

사─이왕 얘기가 나온김에 자신들의 적성이 과학기술 분야에 맞는다고 생각하는지 이야기를 해보죠. 혹시 동료들 중에 적성이 맞지 않아 고민하는 학생은 없습니까.

전─제 개인적인 생각은 입학시험 자체가 일반대학과 다르니까 대체로 과학분야에 적성이 맞는 사람이 들어온다고 봐요. 다만 전공학과 선택이 어려운데 저희 학교가 저학년 때는 무학과제도를 택하고 있으니까 별 무리가 없죠.

오─우리 학교 분위기에 견디기 어려워하는 학생이 있습니다. 중간에 다른 대학으로 옮긴 학생들이 약 3∼4% 정도 되고 휴학생도 적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이는 타대학 탈락률에 비해 지극히 적은 수치입니다. 문제는 중간중간에 대다수의 학생들이 겪는 상대적인 열등감을 어떻게 극복하느냐는 것이지요. 특히 여기 있는 학생들은 선배가 전혀 없기 때문에 교수들이 선배 역할까지 도맡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김─고등학교 때는 모두 잘한다는 소리를 들었기 때문에 순간순간 상대적인 열등의식을 안가져본 학생들은 없을 것입니다. 전공에 대한 애착도 있고 잘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너무 잘하는 학생들이 많아 흥이 안나는 경우도 있지요. 우스개소리지만 과기대학생들의 성적분포는 정규분포가 아니라 '쌍봉낙타'분포라는 말이 있을 정도니까요. 개인적인 일이지만 저는 기숙사생활에 적응하지 못해 초반에 고전했습니다. 야행성 동료들이 있어 서로 생활리듬이 맞지 않아서지요. 개성들이 워낙 강하니까…

김─과기대생들 중 전공을 확정해놓고 오는 사람은 흔치 않은데 저는 애초부터 전공을 택해갖고 왔습니다. 형상기억합금으로 자동차를 만들면 부서진 자동차도 금방 재생시킬 수 있다는 어렸을 때의 막연한 생각이 전공을 통해 점점 구체화되고 있습니다. 제가 택한 기계재료공학부는 과학과 공학을 연결해 주는 다리이며 응용과 이론을 겸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전공에 대해 대체로 만족하고 있습니다. 성적도 괜찮은 편이구요. 다만 같이 수업을 받다가 '퍼뜩이는 머리'를 가진 동료 학생들을 보노라면 순간적으로 부러움 내지는 열등의식을 느낄 때도 있지만.

정─저는 과학고 시절 성적이 하위에 밑돌아 식음을 전폐하고 고민한 적이 많았지요. 지금에 와서는 '적성이라는 것이 뭐 특별한 것이 있느냐. 남들보다 관심이 많고 열심히 하면 생기는 것 아니냐'고 결론짓고 있습니다.

오─맞습니다. 정군의 경우 건강하게 고민을 극복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 학생들 중에는 주위에서 '과학영재'라고 추켜세우니까 쓸 데 없는 자만심에 빠지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절대금물입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정말 과학영재는 입학시험에서 떨어지고 중간에 탈락했는지도 모릅니다.

●─ 과학자의 윤리의식

사─학과수업 이외의 대학 일상활동에 대해 이야기해보지요. 일부에서는 과기대에서는 전공 이외의 대학생활은 거의 없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김─저는 서클활동을 통해 학생들과 교류를 많이 가졌던 편입니다. 역사연구서클인 '뿌리'에서 많은 이야기를 했지요. 또한 '둘리'라는 농구서클을 만들어 교외로 원정경기를 다니기도 했습니다.

정─저희가 처음 입학했을 때는 사회과학서클이라고는 눈을 씻고 봐도 찾을 수 없었습니다. 87년도에 후배들이 들어오면서 욕(?)을 많이 했지요. 과학 과학기술자가 세계관이라든가 입장의 차이에 초연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지요. 3학년이 되면서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모여 '청년과학회'를 만들었습니다. 과학기술의 문제점이라든가 핵문제 공해문제 등을 주요 주제로 하여 과학적세계관을 갖추려고 노력했습니다. 전공공부하다 사회과학서적을 읽으면 헛갈리는 때도 있고 실제로 학사경고도 한차례 맞은 적이 있지만, '아무리 과학기술자운동을 하고 싶어도 과학기술자가 되지 않으면 불가능하다'는 너무나도 당연한 얘기들을 주고받으면서 고비를 넘겼습니다.

오─과학자가 역사인식이 없고 윤리의식이 결여돼 있다면 그것처럼 위험한 일은 없지요. 정신병자에게 총기를 맡기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학교는 학교 나름대로 교양과정이라든가 금요강좌를 통해 방법을 강구하고 있습니다만 학생들은 학생들대로 노력을 해야겠지요.

조─처음에는 학과공부에 쫓겨 엄두도 못냈으나 2학년이 되면서 사회과학공부에 대한 욕구가 자연스럽게 분출되었습니다. 아마도 과학이 가치중립적인 학문이 될 수 없다는 나름대로의 반성이었을 겁니다. 한때 학생회 간부를 맡은 적이 있는데 과기대 학생회내부에서도 타대학 학생회처럼 여러가지 내부갈등이 많습니다. 과기대인들의 대중적 지지를 받을 수 있는 학생활동 방향을 찾는 것이 문제지요.

전─과기대의 특징 중의 하나는 학술서클이 많다는 것 아닙니까. 저같은 경우 '유니콘'이라는 컴퓨터서클에서 활동했는데, 모인 친구들이 모두 해커(hacker)기질이 있어서 학교의 SSM-16시스템을 다운시키는 재미에 도취된 적도 있었지요. 고학년이 되면서 후배들을 지도하면서는 그런 몰상식한 행동은 안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후배들이 그런 짓을 하게 되고 저희들은 방해하고 컴퓨터시스템 내에서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는 것이 다반사입니다.

●─ 과학원 진학이 주류

사─졸업은 이제 또다른 출발인데 자신의 진로를 중심으로 이야기해보죠.

정─주된 관심분야인 광통신에 대해 더욱 공부를 해보고 싶어서 과학원 진학을 택했습니다. 4학년 2학기 동안은 이제까지 공부했던 것을 정리하는 기간으로 삼고 진학시험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김─유학을 가려고 했는데 병역문제 때문에 과학원을 선택했습니다. 이왕 국내에서 공부할 바에야 빠른 시간내에 박사학위를 획득하려고 합니다. 앞으로 꿈은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연구를 계속하고 싶습니다.

조─저도 과학원을 선택했지만 전공이 생물학이라 생물공학과만 있는 과학원에 진학하는 것이 반드시 옳은 선택인지 확신이 서지 않습니다. 시험과목도 생소한 부분이 있고…. 그보다 더욱 근본적인 문제는 여학생의 취업 문제입니다. 공부가 하고 싶어 계속하기는 하지만 장래 직업에 대해서는 저도 불안합니다.

오─이번에 4백여명이 졸업하는데 2백60여명이 대학원 진학을 원했고(서울대와 포항공대쪽의 진학은 7명, 나머지는 과학원) 35명이 유학을 가며 취업은 70여명 정도로 파악됩니다. 취업인원 중에는 공고출신자를 우대한 기술공학부 학생이 다수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순수취업률은 5% 미만이지요. 결국 대다수 학생이 한학교로 통합되는 과학원을 진학해 계속 공부하는 셈이지요.

김─지금까지는 입시에 얽매이지 않는 교육을 받아왔는데 진학시험공부를 한다는 것이 조금은 불만입니다. 입시문제를 보니 현대적 감각에도 안맞고…. 일부 학과에서는 과기대생들만으로도 이미 과학원 입학정원을 넘어버린 경우도 있어 더욱 큰 문제이지요.

전─이왕 불만이 나왔으니까 저도 한마디 하겠습니다. 앞으로 과기대가 발전하려면 지역적인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즉 대학에 필수적인 왁자지껄하고도 젊고 발랄한 문화시설이 주변에 있어야 하는데 연구단지 안에 있다보니까 대학이라기보다는 연구소라는 느낌밖에 안들거든요.

정─연구단지 안에 있으니까 교수와 같이 연구소를 방문해 현장감을 높이는 학습 등을 할 수 있어 좋긴 한데 대학문화를 만들고 가꾸어 나가기엔 좀 황량한 편이지요.

오─학교측에서도 나름대로 해결책을 찾으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과학기술이 흉기가 아닌 이기가 되게 하기 위해서는 인간적인 따스함이 있는 유연한 사고방식이 매우 중요하죠. 그러한 인성은 다양하면서 자율적인 대학문화 속에서 싹틀 수 있다고 봅니다. 아무튼 학교에 대한 평가는 졸업생이 사회에 나가 어떠한 평가를 받느냐에 따라 결정됩니다. 이제 여러분들의 어깨에 과기대의 모든 것이 달려 있다고 생각하고 열심히 생활하기를 바랍니다.

조─괜히 어깨만 무거워지는 것 같군요. 특혜 속에서만 생활하다 거친 세상에 적응하는 것이 걱정되지만 책임감을 갖고 겸손하게 노력한다면 따가운 시선도 부드러워질 때가 있겠지요.

김─저는 후배들에게 한마디 하겠습니다. 과기대는 공부를 하고 싶은 만큼 할 수 있는 곳이라고 생각합니다. 상투적인 불만을 갖지 말고 좋은 조건을 최대한 이용해서 발전을 위한 디딤돌을 만들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전─과기대생은 사람을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적다고 하는데 저는 그렇게 생각치 않습니다. 밖에서 보면 미친놈 취급을 하는 개성이 강한 학생이 많으므로 질적으로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습니다. 자만심이 아닌 자긍심을 갖고 생활하면 과기대인의 긍지를 지킬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정─저 자신을 비롯 함께 졸업하는 동료 또는 후배들에게 '알라딘의 램프'에 나오는 거인이 되지 말자고 말하고 싶습니다. 과학기술자가 주인이 시키는대로만 하는 거인이 된다면 이 나라의 장래, 아니 세계의 장래는 불을 보듯 뻔하다고 생각합니다. 자기가 이루어놓은 결과에 대해 책임을 질 줄 아는 과학기술인이 되도록 다같이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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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 11월 과학동아 정보

  • 사진

    전민조 기자
  • 김두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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