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라이브러리









[News & Issue] ‘풀풀’ 여름 하수도 냄새… 문제는 정화조


횡단보도 신호를 기다리다가 ‘윽!’ 코를 쥐어 막은 경험, 누구나 한 번쯤은 있을 것이다. 하수구 맨홀 뚜껑을 통해 진하게 풍겨오는 악취 때문이다. 매년 만 여 건씩 접수되는 악취 민원 중 80%는 요즘 같은 여름철에 집중된다. 반복되는 악취와의 싸움, 해결 방법은 없는 걸까.


중세 유럽에는
공용화장실 문화가 없었다.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의 눈을 피해 건물 구석이나 정원 나무 밑에 ‘볼일’을 봤다. 프랑스 베르사유 궁전과 같은 호화로운 궁전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자신의 궁전에 똥냄새가 가득 차있는 것을 견딜 수 없던 루이 14세가 한 가지 비책을 내놨다. 궁전에 1000그루가 넘는 오렌지 나무를 심는 것. 악취를 직접 제거하는 대신, 강한 오렌지 향으로 악취를 감추는 일종의 ‘마스킹 공법’이었다.



하지만 도시가 점점 커지면서, 오렌지 나무로도 한계가 왔다. 사람들은 악취가 나는 물질을 땅 속으로 숨기는 오늘날의 하수도 시설을 고안했다. 하수도 시설은 크게 합류식과 분류식으로 나뉜다. 합류식은 수세식 화장실에서 발생한 분뇨와 주방폐수(오수), 강우에 의한 빗물(우수)을 큰 하수도관을 이용해 한꺼번에 흘려보내는 시스템이고, 분류식은 오수와 우수를 분류해 보내는 시스템이다. 최근 건설되는 도시는 대부분 분류식을 채택하고 있다. 하지만 과거에 건설된, 서울을 비롯한 우리나라 대도시의 절반 이상은 합류식으로 운용하고 있다.

합류식 하수관은 설계가 간편한 대신, 매설 상태가 불량하거나 시공이 제대로 안 되면 하수가 하천으로 유출되거나 관 내부에 오물이 쌓일 수 있다. 따라서 우리나라는 각 건물마다 분뇨와 오수를 1차로 거르고 처리할 수 있는 분뇨정화조 또는 오수처리시설을 별도로 설치하고 있다(심지어 분류식 하수도관에도 정화조를 설치했다). 그렇게 서울시에만 약 60만 개의 정화조가 설치됐다.

하지만 악취라는 새로운 문제가 생겨났다. 정화조에 쌓인 오물이 썩으면서, 혐기성 미생물이 오물을 분해해 황화수소(H2S), 메탄가스(CH4)와 같은 악취물질을 만들기 시작한 것이다. 오물이 쌓인 뒤 두 시간이 지나면서부터 황화수소가 발생해, 정화조에 쌓인 오물을 퍼 올릴 때쯤인 3~7일 뒤에는 수중 황화수소 농도가 2~3ppm(mg/L)까지 치솟았다(이때 대기 중의 농도는 10~100ppm까지 올라간다). 사람이 악취가 난다고 느끼기 시작하는 농도가 0.002ppm인 걸 감안하면 얼마나 강력한 악취인지 예상할 수 있다. 하수도 악취 원인의 80~90%가 정화조에 쌓인 퇴적물이라고 보는 이유다.

이런 현상은 여름철 특히 더 심각해진다. 하수의 수온이 오르면서 혐기성 미생물의 활동이 활발해지기 때문이다. 보통 수온이 10℃ 올라가면 미생물이 두 배 더 활발하게 움직인다. 같은 양의 오물이라도 발생하는 악취물질의 양이 두 배인 셈이다. 다량의 악취물질은 건강에도 무척 해롭다. 해마다 하수도관 정비 공사를 하거나, 오수처리장을 정기 점검하는 중에 황화수소에 중독돼 사망하는 사람이 생기고 있다.
 



재밌는 건 같은 계절, 같은 위치의 하수도 맨홀이라도 악취가 유독 심한 때가 있다는 점이다. 그럴 땐 맨홀 밑에 오수가 평소보다 격렬하게 흐르고 있다고 이해하면 백발백중이다. 하수도 악취의 발산은 하수도관을 흐르는 오수의 상태에 따라서도 크게 달라진다. 오수가 ‘졸졸’ 흐를 때는 관내 대기 중 황화수소 농도가 2ppm 정도지만, ‘콸콸’ 요동치며 흐를 때는 100ppm 까지 올라간다.

특히 하루 중에 하수관 내 오수가 가장 세게 흐르는 시간은 오전 7~8시와 오후 8~9시다. 출근이나 아침 식사 준비를 하면서, 또는 저녁 식사나 잘 준비를 하면서 물을 많이 사용하는 시간대다. 물 사용량이 많으면 정화조에서 수위를 조절하기 위해 펌프를 가동해 오수를 퍼낸다. 이때 단순히 하수도관으로 흘러 나가는 하수의 양만 늘어나는 것이 아니라, 정화조에 가둬놓은 오수가 한 차례 뒤섞이면서 보다 강력한 악취가 만들어진다.

한편 장마철에는 빗물도 하수도 악취를 돋운다. 장마철의 하수도 악취에는 평소와는 다른 악취 성분이 섞여있다. 냄새를 정확히 설명하긴 어렵지만 기존의 똥냄새에 음식물 쓰레기 냄새, 흙냄새 비슷한 냄새가 섞여서 난다. 정화조에서 퍼 올린 오물 외에 하수도관에 쌓여있는 퇴적물과 관벽에 붙어있는 미생물층에서 악취가 추가로 발생하기 때문이다. 하수관 내벽에는 오물을 썩게 만드는 혐기성 미생물이 0.1mm의 두께로 얇은 층을 이루며 붙어있다. 이것을 ‘슬라임 층’이라고도 하는데 하수도관 전체로 따지면 그 면적이 100만m2 이상이다. 비가 많이 오면 하수도관을 흐르는 하수의 양과 속도가 급격히 증가하면서 하수도관 곳곳에 가라앉아있던 퇴적물을 휘젓고, 이것이 슬라임 층과 만나 악취가 배가된다. 장마철을 앞두고 매년 지방자치단체가 준설차를 동원해 하수도관을 정비한다는 기사가 나오는데, 관 곳곳에 쌓인 퇴적물을 미리 꺼내 악취를 줄여보려는 시도다.

-장마철 하수도 악취는 평상시와 다르다. 물의 양이 급격히 증가하면서 하수도관 아래쪽에 가라앉아 있던 퇴적물을 휘젓기 때문이다().
-하수도 악취를 없애는 가장 좋은 방법은 정화조 단계에서 악취물질을 제거하는 것이다. 정화조에 황산화세균(SOB) 필터 장치를 넣고 오수를 통과시키면 황화수소가 황산염 형태로 걸러진다(
➋→➌).

 


그렇다면 이런 악취에서 벗어날 방법은 없을까. 여름철 길을 걷다보면 종종 빗물받이나 맨홀을 비닐로 덮어놓은 것을 볼 수 있다. 간편하긴 하지만 임시방편일 뿐, 오히려 더 큰 문제를 불러올 수 있다. 첫째는 비가 올 때 배수가 안 돼 도시가 침수될 수 있고, 두 번째는 지하에 갇힌 황화수소가 수분과 만나 황산으로 변하면서 하수도관을 이루는 시멘트를 부식시킬 수 있다.

하수도 악취를 제거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정화조를 폐쇄하는 것이다. 실제로 건물마다 정화조나 오수처리시설을 따로 두고 있는 나라는 전세계에서 한국밖에 없다. 하수관 설계와 정비가 잘 된 외국에서는 합류식이든 분류식이든 정화조를 설치하지 않는다. 그 결과 대기 중 악취물질의 농도가 0.5ppm 정도로 낮게 유지된다. 우리나라도 하수도관 시스템을 분류식으로 바꾸면 정화조를 없앨 수 있다.

하지만 서울시의 모든 하수도관을 분류식 시스템으로 바꾸려면 막대한 비용과 시간이 들어간다. 그래서 고안된 기술이 정화조에 황산화세균(Sulfur-Oxidizing Bacteria, SOB)을 주입해 악취의 주원인인 황화수소(H2S)를 황산염(SO42-)으로 분해하는 방법이다.

이것은 대기 중 황화수소 농도를 1ppm 이하로 줄일 수 있다. 정화조 내부뿐만 아니라 생활하수가 하수관 내부에서 흐를 때의 악취까지 원천적으로 차단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현재 경기 성남, 경기 고양, 서울 등 100개 지점에 설치돼 있는데, 앞으로는 일정 규모 이상의 건물에는 모두 설치할 예정이다.

다른 방법으로는 생활하수를 정화조에서 3~7일 동안 썩히지 않고 즉시 거르는 방법이 있다. 방법은 간단하다. 정화조 초입에 침전조를 붙여서 30분 동안 오물을 가라앉히고, 가라앉힌 오물만 정화조로 넣고 위로 뜬 물은 하수도관으로 흘러가도록 분리한다. 오수의 전체 양이 줄어드는 효과가 있지만 침전조를 1년에 한 번씩 청소해야하기 때문에 완벽한 해결책은 못 된다.



하수도관 안에 안개와 같은 미세한 물을 스프레이로 분사해서 악취를 저감하는 방법도 있다. 황화수소가 맑은 물에 잘 녹는 현상을 이용한 것으로, 미세먼지로 뿌연 하늘에 물을 뿌려 먼지를 가라앉히는 원리와 같다. 이 시설은 토구나 하수관 시작 지점에 특히 효과가 좋다. 오수의 낙차가 생기면서 악취가 위쪽으로 상승하는 것(굴뚝효과라고 한다)을 막아주기 때문이다.

또 이 방법은 전기가 필요 없다. 2~5bar 정도 되는 주변 수도관의 압력을 이용해 물을 분사하기 때문이다. 수도관에 작은 구멍을 내고 태양광 전지를 이용해서 구멍의 밸브만 여닫으면 악취를 50~80%까지 제거할 수 있다. 비용도 한달에 3만~4만 원에 불과해 약품에만 의존할 때보다 비용이 10분의 1로 줄어든다. 현재 서울 광진구와 불광천 등 10여 곳에 적용돼 있다. 향후 확대 보급할 예정이다.




하수도 악취 현장조사를 할 때 가장 큰 어려움은 지독한 악취도, 안전사고에 대한 위험도 아니다. 바로 부족한 시간이다. 서울에만 수천만 개의 맨홀이 있는데, 그중 맨홀 하나를 열고 측정기를 설치해 악취를 재는데 하루에서 이틀이 걸린다. 측정기를 사용하는 비용도 하루에 500만 원으로 고가여서 넓은 지역을 조사하는 데 어려움이 많았다.

한국건설기술연구원에서는 이런 불편을 해소하기 위해 서울시의 하수도 악취를 예측할 수 있는 모델링 기술을 개발했다. 악취에 영향을 줄 수 있는 하수관의 정보, 즉 정화조와의 거리나 하수량, 하수관 경사도, 하수관 지름, 유속 등을 변수로 놓고, 지난 5년간 실제로 측정한 악취 데이터와 비교해 악취를 예측할 수 있는 식을 세웠다. 그리고 이것을 지리정보시스템(GIS)을 이용해 지도로 표시했다.

완성된 악취 지도는 한 도시의 악취 현황을 한눈에 나타낸다. 실제로 측정한 지점의 악취 데이터와, 측정하지 않았지만 예측되는 악취 데이터를 색깔로 표시했다. 맨홀을 일일이 열어보지 않고도 악취가 가장 심한 곳을 찾아 악취 저감 시설을 설치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악취를 연구하는 연구자로서 악취 저감시설을 설치했다고 가정하고, 그 효과가 어떻게 발생할지 예상해 볼 수 있다는 점도 매력적이다. 현재 서울 광진구와 종로구, 은평구와 영등포구의 악취 모델링 지도가 완성됐다. 지긋지긋한 악취와의 전쟁은 지금부터 시작이다.


 

이 기사의 내용이 궁금하신가요?

기사 전문을 보시려면500(500원)이 필요합니다.

2016년 07월 과학동아 정보

  • 송호면 한국건설기술연구원(KICT) 선임연구위원
  • 에디터

    이영혜

🎓️ 진로 추천

  • 환경학·환경공학
  • 화학·화학공학
  • 도시공학
이 기사를 읽은 분이 본
다른 인기기사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