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을 열어 보라, 방충망도 열고 내다보라. 새해 하늘이 새파랗다. 이렇게 새파란 존재를 집안에서 본 적이나 있니. 벽에 붙인 포스터의 물감이 이렇게 파랗던가, 모니터 속 하늘이 이렇게 크던가. 춥다고 나가지 않으면 짧은 겨울의 볕을 다 쬐지도 못하고 계절성 우울증에 걸리기 쉬워. 원룸 안에서 토, 일을 다 보내면 출근해 주말에 대해 아름다운 기억은 하나 없을 게 아닌가.
구구절절한 시구를 보내어 친구 하나를 기어코 밖으로 불러냈다. 나와 내 친구 서재하는 서울 토박이는 못 되고 돈 주는 회사라면 다 좋다고 서울에 답삭 붙어 있던 외지인들로, 주말에 누군가를 만날 기력이 바닥을 치는 1인 가구였다. 직장인이 자신의 작고 소중한 집을 떠나지 않으려는 힘은 양성자와 중성자 간의 핵력만큼 강했으나 내 문자의 위력인지, 우리 우정의 힘인지도 제법 강해서, 재하를 성수동에 있는 한 카페로 불러내는 데 가까스로 성공하고야 말았던 것이다.
풍경소리가 팅-티딩 들려 고개를 들었다. 칼바람에 귀와 코끝이 빨개진 재하는 노트북 파우치를 옆구리에 끼고 팔자걸음으로 카페에 들어와 내 맞은편에 앉았다.
“야, 노트북 안 들고 오기로 했잖아.”
“근데 메일이 와서…. 월요일 아침에 곧바로 회신하려면 지금 써야 해.”
“누가 메일을 금요일 저녁에 보내니.”
“정치인들은 직장인 생각을 안 해요.”
“응? 정치인 누구?”
“아니야. 나 커피 사 올게.”
재하는 말을 끊고 급하게 일어섰다. 얘는 무슨 일을 한다는 말을 요새 잘 안 했다. 우후죽순처럼 늘어난 AI 회사 중에서도 요새 잘나가는 곳에 입사한 재하는 입사 직후에는 오늘은 어떤 프로젝트를 한다, 오늘은 누구를 만났다 하더니 요새는 통 전해 주는 소식이 없다.
파우치만 올려 두고 다시 음료수를 주문하러 간 재하를 바라보면서 입안이 떫어서 마시던 흑차를 고이 내려 두었다. 손을 슬금슬금 가방으로 뻗었다. 나도 요만큼 줄어든 죄책감으로 노트북을 꺼냈다. 재하가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들고 오면서 눈썹을 올렸다.
“너도 노트북 들고 왔잖아.”
내가 엄지와 검지로 동그라미를 만들어 보였다.
“주말엔 부업 해야지요…….”
“회사가 부업 해도 된대?”
“응. 사이드 프로젝트 장려해.”
재하는 업무상 비밀 유지 서약서 같은 걸 매달 갱신하면서 사는 몸이라 나처럼 출근도 하고 아르바이트도 하는 게 별세계 이야기일 터다. 그는 눈을 느리게 몇 번 깜빡이다가 말했다.
“또 이상한 거?”
“평범한 거.”
“데이터 라벨링 아르바이트야?”
“하다 보면 데이터 전처리도 해야 할 것 같긴 한데. 누가 따로 전처리 해 주는 게 아니고 그냥 뭉텅이로 가져와서.”
나는 일은 안 하고 메일에 회신 대신 키보드 엔터 키를 여러 번 쳤다. 탁, 탁, 탁.
“의뢰가 왔어. 같이 읽을래?”
“무슨 일인데.”
“손녀가 할머니 음성, 영상기록이랑 메시지 보낸 기록으로 AI를 만들고 싶대.”
“음, 평범하네. 데이터는 어때.”
“모르겠어. 다 안 열어봤거든. 데이터양은 제법 되는데 데이터 질이 중요하니까.”
“할머니는 최근에 돌아가셨어? 손녀가 할머니가 아주 그리웠나 보다.”
“이게… 곤란한 점이야.”
“뭔데?”
“할머니가 안 돌아가셨어.”
고인의 AI를 요청하는 경우는 꽤 잦았지만, 생전에 고인을 추모하기 위한 AI를 미리 제작하는 건 확실히 드문 일이었다. 재하는 귀 뒤쪽을 만지작거리다가 어깨를 으쓱했다.
“네 말 하나만 정정하면, 일단 할머니가 살아 계시면 좋은 일이지. 나는 할머니가 어릴 때 돌아가셨거든.”
“아, 미안. 그 할머니가 살아 계신 건 당연히 다행이고 감사드릴 일이지….”
나는 머리카락을 헤집으며 말을 골랐다. 재하는 내 접시의 마들렌을 포크의 날로 조심스럽게 반 가르며 생각에 빠졌다.
“생각해 보면 영정사진도 정정하실 때 찍네. AI 영정사진이라고 생각하면, 생전에 만들어 두는 것도 별로 어색하지 않을걸. 살아 계시니까, 만들어 놓고 모델 검증할 기준도 있는 거고. 그럼 데이터 검토해 보고 부족하면 필요한 데이터 수집하는 건 그 손녀분 할머님 찾아가면 되니까 어렵지 않겠다.”
“할머니가 살아 계신 게 문제인 게 아니라, 손녀가 부탁하는 게 곤란해서.”
재하가 내 레몬 마들렌을 포크로 찍으며 재촉했다.
“뭔데.”
“할머니가 치매인데, 치매가 안 걸린 AI 할머니를 만들고 싶대.”
재하가 마들렌을 입안에 둔 채로 씹지 못하고 있었다. 침묵 끝에 재하가 볼 한쪽에 마들렌을 욱여넣고 말했다.
“…그거는.”
“그거는?”
“그거는….”
침묵이 이어졌다. 상세 내용을 받기 전에 수락했고, 이제 와 착수하기 위해 좀 더 문의할 것이든, 거절할 것이든 빨리 답을 해야 예의였다. 기분이 이상했다. 치매가 걸리지 않은 할머니가 보고 싶어요. 라는 손녀의 요청. 그리고 거절하기에는 많은 돈.
그냥 일은 일인데 하면 될 것을. 내 할머니가 생각났다. 우리 할머니도 알츠하이머가 있다. 우리 할머니는 아흔 살이 넘었고, 그때 태어난 사람들이 다 글을 읽고 쓸 줄 아는 건 아니다. 그래서 이번 의뢰인처럼 할머니와 나눈 문자 기록이 있는 것도 아니고, 할머니와 통화할 때마다 목소리를 남겨놓은 것도 아니어서 우리 할머니를 재현한 AI는 데이터 부족으로 만들기 어렵다.
하지만, 만들 수 있다면 나는 우리 할머니를 AI로 남겨 놓았을까? 응. 내 사진첩에 할머니 사진이 많은 것처럼. 우리 엄마 아빠 영상을 시간 될 때 내가 종종 찍어 놓은 것처럼. 보고 싶은 사람을 기억하기 위해 그럴 수 있다는 생각은 해 봤다. 그런데 AI로 할머니를 재현할 때 할머니의 치매는 빼놓는다는 건 어떤 기분일까.
재하는 일단 연락을 해 보라고 했다.
“어차피 네가 거절해도 의뢰인은 다른 사람 구할걸.”
“그렇기는 한데, 그렇다고 해서 내가 이걸 꼭 해야 하나. 이 애매한 감정을 뭐라고 해야 할지 잘 모르겠어.”
“일단 만나면 의뢰인이 어떤 사람인지 알겠지. 어떤 사람인지 알면 네가 갖고 있던 고민도 좀 풀릴 거고. 넌 사람이 좋으면 일하고 싶어 하고, 사람이 나쁘면 괜히 같이 일하기 싫어 하잖아.”
그 또한 맞는 말이로세. 재하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다시 마우스에 손을 얹었다. 창을 열었다. 약속을 잡기 위해서 메일에 회신했다.
*
의뢰인의 집은 경기도 평택에 있었는데, 만나고 싶다 하니 흔쾌히 서울에서 약속을 잡았다. 마침 평일에 서울에서 일이 있다는 것이다. 온라인 미팅 주소는 보내기만 하면 되는데, 고객이랑 서울에서 만나는 건 회사도 아니고 어디서 만나야 하나. 고민하다 공유오피스 일일 회원권을 끊었다.
평일 저녁에 퇴근하고 뛰고 달려서 공유오피스에 도착했다. 중앙의 긴 원목 테이블에 노트북 파우치, 가방, 회사 카드키, 음료수 컵 등을 마구 올려놓고 앞사람에게 사과했다. 죄송합니다. 조금 있다 치울게요. 입으로는 앞자리 분에게 사과하며 문자를 빠르게 보냈다.
[안녕하세요, 박차연 님. 저는 방금 OO 공유오피스에 도착했어요. 오시면 B 라운지를 찾아주세요.]
문자를 보낸 게 3초만에 전화로 돌아왔다. 당황하며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여보세요?’
전화를 받은 귀와 안 받은 귀. 양쪽 귀에서 시간차를 두고 들리는 목소리에 어정쩡하게 고개를 들었다. 바로 같은 테이블 앞에 내내 앉아 있었던 분이 의뢰인이었다. 저런.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유지원 님 맞으시죠?”
“네. 하하… 일단 둘만 앉을 수 있는 곳으로 옮길까요? 아니요. 제 짐은 안 들어 주셔도 되는데. 아이고, 감사합니다. 많이 기다리셨죠?”
“아니요. 저도 방금 왔어요.”
손녀의 이름은 박차연이다. 할머니의 이름은 신길자라고 했다. 내 이름은 유지원이고. 우리는 거기서부터 시작하기로 했다. 우유거품만 좀 남아 있고 바닥이 보이는 라떼 잔과 새로 나온 아이스티를 사이에 두고 우리는 간단한 통성명을 거듭한 뒤에, 서로 궁금한 것들을 물었다. 나는 아이스 브레이킹에는 결코 소질이 없었다.
“제 할머니도 알츠하이머예요.”
“아 그러시군요.”
“…”
“…”
AI 할머니의 이용을 사적인 용도로 제한할 건가요, 공적인 목적으로 사용할 여지가 있는지 궁금한데요, 아니. 나는 횡설수설할 것 같은 입을 열었다가 닫았다가, 뻐끔뻐끔 반복했다. 이게 내가 하고 싶은 말이 아니었는데.
결국 의뢰인이 먼저 입을 열었다.
“그, 지원 님이 먼저 만나고 싶다고 연락해 주신 거잖아요. 그래서 제가 하고 싶은 말을 먼저 하는 것보다 지원 님이 저와 만나려고 한 목적을 좀 더 잘 알면 제가 대답하기에 편할 것 같아요.”
“그, 뭐냐, 그, 약속을 기다리는 새에 생각이 너무 많아져서 중요한 게 뭐였는지 잊어버렸는데요….”
“아.”
“죄송합니다.”
“괜찮아요.”
허둥지둥의 연속. 대금을 치르지도 않은 사이니 계약을 취소하고 다른 머신러닝 엔지니어와 계약해도 할 말이 없었다. 나는 눈을 꾹 감았다가 뜨며 메일을 받고 가장 궁금했던 생각이 뭐였는지를 떠올렸다.
“아.”
“생각나셨나요?”
“왜 치매가 없는 버전의 할머니를 보고 싶어하시는 건가요?”
차연 씨의 눈이 왼쪽 아래로 도로록 굴러갔다. 의뢰인이 할 말을 찾는 동안 나는 너무 무례했나, 무례함의 정의는 뭐지, 검색해 보면 실례인가, 실례란 무엇인가 따위의 생각을 하면서 시간을 죽였다.
“그, 지원 님 할머니도 알츠하이머라고 하셨잖아요.”
“네.”
“생각해 보셨어요? 할머니 돌아가신 다음에, 할머니 기억을 가진 AI랑 대화하는 거요.”
엄밀히 말하면 할머니의 기억을 가지는 게 아니라, 할머니가 한 말과 행동 기록의 패턴을 모델이 학습해서 출력하는 거지만….
“네. 의뢰를 받고 나서 생각하게 됐어요.”
“요즘 세상에는 그래도 꽤 있는 일이지요. 돌아가신 분들 AI로 한 번 더 만나는 거. 남은 가족들이 우는 거 참 많이 봤어요.”
“네.”
“우리 엄마는 지금도 종종 우세요. AI 때문이 아니라요.”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말을 할지 알 것 같았다. 도시와 시골, 저녁에 불이 켜진 집, 가정마다 다 다른 것 같은 삶들도 이리저리 어딘가 닮은 구석이 있기 마련이다.
“알츠하이머 환자를 가족들이 돌보는 것도 매우 힘들죠.”
“우리 엄마는 외할머니가 치매에 걸려서, 했던 말 또 해야 하고, 또 해야 할 때마다 우시거든요. ‘엄마 한 시간 전에 식사했었잖아. 지금 세 번째 점심 먹겠다고 하는 거잖아.’ ‘화장실 가고 싶거나 외출하고 싶으면 간병인 부르랬잖아.’ ‘감 말린 거랑 겨울 옷 침대 밑에 숨겨두지 말라고 했잖아.’”
우리 엄마가 엄마를 찾을 때. 엄마 왜 자꾸 그러냐고, 엄마 제발이라고 할 때. 알지. 잘 알았다.
“치매 없는 할머니를 원한다는 게 철없는 말처럼 들렸을 거 알아요. 아마 그래서 지원 님도 절 만나고 싶다고 했겠죠?”
“아니요, 그건 아니었어요.”
“살아 있는 할머니를 부정하는 것 같겠죠. 할머니 인생을요. 저희도 고민했어요. 그런데 할머니 기억을 가진 AI가 자꾸 아무것도 기억해내지 못할 때, 기억하지 못해 혼란에 빠져 있고, 화내고 고통에 찬 걸 고스란히 내버려두고 우리가 지켜봐야 한다는 게, 그것도 못할 짓이더라고요.”
“사진도 추억하기 위해서 가장 예쁜 모습을 남겨 놓죠.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나서 추억할 수 있는 AI가 필요할 때, 우리 할머니가 될 수 있는 최선의 모습을 상상하는 게 그렇게 나쁜 걸까요.”
차연 씨는 말을 마치고 나를 쳐다봤다.
맞았다. 지금 신길자 씨의 데이터로 AI챗봇을 만든 후에 할머니, 라고 문자를 보내게 되면 처음은 그래도 몇 가지 손녀를 찾는 할머니의 평범한 안부인사가 나오겠지. 하지만 대화를 이어 나갈수록, 원래의 대화 패턴이 일정하지 않아서 더욱 대화가 깨진 거울 조각처럼 보일 거다. 치매는 수십 년 동안 천천히 사람을 변화시키고, 박차연 씨가 보내 준 데이터는 대부분 삶의 후반기에 집중돼 있었다. 데이터 대부분은 중증 치매노인의 행동 패턴을 다루고 있었다. 위로를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상처를 받기 위해 AI 할머니에게 말 거는 가족. 상처를 줄 수밖에 없는 AI. 내가 윤리는 잘 모르지만 그런 걸 만들기 위해서 일하는 건 아니었다.
목소리를 가다듬고 대답했다.
“진행하다가 종종 연락 드릴게요.”
“감사합니다.”
“제가 잘 못할 수도 있어요. 이 작업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연락해 주세요. 유지원 님 본업이 별개로 있으신 거 알아요. 기간도 상관없어요.”
그렇게 덜컥 의뢰를 수락했다. 만남의 의도와는 다른 결과였다. 얼음과 함께 볼 안쪽을 깨물었다.
창을 내다보니 눈이 내린다. 곧 봄인데.
겨울의 첫눈은 누구나 기억하는데, 어느 게 봄 되기 전에 내리는 마지막 눈일지는 아무도 세어 보지 않는다. 오늘 내린 눈이 마지막 내린 눈일지도 알 수 없다. 처음은 셀 수 있지만, 마지막인지 아닌지는 다음이 있어 봐야 아는 거니까. 죽음도 그렇다.
그래서 우리는 스노우 볼을 만든 걸지도 몰라. 매번 그게 마지막 눈인지 걱정하며 밤을 새우지 않아도 되니까.
**
우리는 공전을 주기로 반복되는 온도 패턴에 의미를 부여했다.
꽃샘추위라는 말에는 그런 의미가 몇 개 들어가 있지. 여명이 밝아 오기 직전이 가장 어둡다던 말처럼 봄이 곧 다가오기 전이 가장 춥다든가. 자연과 계절도 거대한 하나의 인격체여서 자신을 대체하는 계절에 샘이 난다든가. 국밥집 TV에서는 대선후보들이 온라인으로 만나 생중계되는 대선 토론이 한창이었고, 국밥집에 삼삼오오 모여 식사하는 아저씨들은 오프라인에서 입방아가 한창이었다. 나는 술도 마시지 않았는데 콩나물 해장국을 먹었다. 코가 매웠다. 밖은 더 매서운 추위였고, 나는 날씨를 모르고 후드 티에 얇은 블루종 하나만 걸치고 나온 용감한 시민이었으므로 콩나물 국밥으로 배를 든든히 채워야 다시 날을 뚫고 회사로 돌아갈 수 있었다.
이 부업이란 놈은 블랙홀 같아서, 회사 일을 하다가도 점심 식사 때 같이 느슨한 시간이 되면, 종종 생각이 스르르 저기로 빠지곤 했다. 개인의 AI 데이터 전처리도 의뢰받는 B2C회사에 맡겼던 데이터가 도착했고, 지난주부터 폴더별로 열어 보고 조금 작업하다가 난항에 빠졌다. 페이스북 커뮤니티에 그냥 올려서 물어볼 수도 없는 노릇이고. 뒷머리를 벅벅 긁었다.
“야, 더럽게 밥 먹다 머리 긁지 마.”
“이건 신성한 고민의 의식이야.”
재하는 들은 척도 하지 않고선 뚝배기에 코를 박았다.
“재하야.”
“밥 먹을 때 말하지 말자.”
“나 밥 다 먹었어. 나 모르는 거 있는데 좀 도와 주라.”
“텐서플로우 가.”
“그게 아님.”
“파이토치. 아님 논문 좀 읽어. 일하는 사람이 공부도 안하고 맨날 물어봐서 해결하려고 하는 심보.”
“그 답이 없는 게 아니고 미묘해서 그래. 저번에 카페에서 말했던 부업 하고 있는데,”
“그거 거절하려고 고객님이랑 만나는 거 아니었어?”
“그게 그렇게 됐다. 고객님이 말을 너무 잘하셔서 생각이 바뀌었어.”
“데이터에서 치매는 어떻게 기술적으로 없애려고.”
“내 말이. 그게 문제.”
“네 업보지.”
일어나는 친구를 다시 붙잡아 앉혔다. 얘네 회사 점심시간이 우리보다 삼십 분 더 길다. 나는 시간이 없지만 얘는 복귀까지 시간이 있다.
“너나 나나, 직장이니까. 데이터 전처리 하든, 모델 학습시키든, AI 학습할 때 결과물에 인간 개입이 계속 있는 걸 알지. 근데 그 차연 씨는 그걸 잘 몰라.”
“차연 씨가 의뢰인인 거지?”
“맞아. 좋은 분인데… AI가 기억을 보존할 수 있는 어떤 장치라고 생각하는 분이거든. 내가 그 부분을 놓친 것 같아.”
“처음부터 잘 설명하지 않은 게 문제 같은데. 그 할머니 데이터에서 어떤 건 알츠하이머 때문에 나타난 변화고, 어떤 건 본래 그 의뢰자 할머니의 원래 성격이나 삶에서 나온 행동과 말인지 타인인 너는 구분할 수가 없다고. 그걸 그냥 타인이자 한낱 인간인 유지원이 하나하나 선택하고 바꾸다 보면 거기에는 유지원이 이해하고 각색한 치매 없는 할머니가 되는 거지, 의뢰자 할머니의 원본 데이터랑은 거리가 멀다고 말해야 했어.”
“그때 내가 생각이 짧아서 대화가 짧았다.”
“그렇지. 원래라면 거절해야 옳지. 네가 지금 만들려는 건 가상인물이 아니라고. 왜 그게 위험한지 몰라. 네가 제대로 만들 수 있는 건 그 의뢰자가 준 데이터를 활용한 할머니의 껍질을 쓴 가상인물이거나, 치매를 앓고 있는 그 상태 그대로의 의뢰자 할머니의 재현이거나 둘 중 하나인데.”
“날이 갈수록 더 나빠지는 할머니의 질환을 단지 할머니가 가지고 있는 부분이라고 해서 그 가족들 보고 온전히 받아들이고 사랑하라고 해야 할까? 그건 그 할머니의 일부이기도 하지만 고통이기도 해. 누군가의 고통을 존재한다고 해서 계속 재현하는 게 꼭 옳은 일인 것 같지도 않아.”
“난 그거 거짓말이라고 생각한다. 기술적으로 그 할머니 AI 데이터 전체를 유지원이 손봐야 하는데, 공수가 너무 많이 드는 거 이전에 그 AI는 유지원이 해석한 AI 할머니가 되는 거야. 네가 그 가족한테 해 주고 싶은 말을 해당 AI 프로젝트를 통해서 할 뿐인 거지. 인형극이라고.”
“내가 없는 데이터를 만드는 건 아닐 거잖아. 나는 그런 해석의 선이 필요한 거라고. 최소한도만 개입하는 선.”
“모델 학습시키면서 아무리 조금씩 바뀐다지만 이건 그냥 싹 다 새로 쓰자는 거고, 기만이야. 너 이렇게 하면 누구하고 똑같은지 알아? 저기 화면 좀 봐라. 인형극 한다.”
“나라면 데이터가 좀 원본이랑 달라져도 원했을 것 같아. 난 할머니 할아버지와 새로운 기억을 갖고 싶었을 것 같거든.”
“마음대로 해. 난 간다.”
이때의 난 내 말이 ‘넌 할머니 할아버지와 AI로라도 다시 만나고 싶지도 않느냐’로 재하에게 들렸을 줄 몰랐다. 친구가 나와 의견이 다르다고 해서 말없이 박차고 나가버린 게 너무하다고만 생각했다. 그 후 재하는 회사가 기밀 프로젝트를 하고 있다는 이유로 점심에 나와 식사하지 않았다. 사과할 타이밍을 놓쳐서, 문자를 썼다 지웠다 반복했다.
***
재하 없이 고민하던 나는 부업 때문에 두 번째 미팅을 잡았다. 이번엔 내가 평택으로 향했다. 평일에 야근해야 했지만, 주말을 이 일을 위해 싹 비워 놨으니 괜찮았다. 조금 예민한 대화를 하고 싶었고, 이럴 때는 온라인 미팅보다는 직접 만나는 전통적인 관습이 내 마음을 좀 더 편하게 했다.
박차연 씨와 둘이서 평택에 있는 배다리 호수 공원을 산책할 때는 벌써 매화가 피기 시작했고, 목련 봉우리가 점점 여물어갈 즈음이었다. 호수 둘레를 한참 빙 둘러 걷다가 내가 먼저 물었다.
“이번 의뢰는 가족에게서 온 의뢰였잖아요. 본인이 살아 있고요. 원래 처음부터 물었어야 하는데, AI로 신길자 님의 모습을 재현하는 것과 관련해서 신길자 님 본인의 생각은 어떠신지 묻고 싶어요.”
텀블러에 따뜻한 커피를 담아서 두 손으로 꼭 쥔 차연 씨가 조용히 대답했다.
“지원 님이 생각하시는 것만큼, 명확한 답변을 기대하기 어려운 상태세요. 우리 할머니는.”
“제가 왜 또 연락 드렸는지 궁금하시죠.”
“네.”
“제가 기술적으로 차연 님의 할머니를 재현하는 데 고민이 있어요. 돈이나 기술 자체에 대한 건 아니고요. 치매에 관한 이야기예요.”
“오늘 오면서 각오했어요.”
“치매는 숫자로 환원되기에 쉬운 게 아니라서. 일정한 속도와 패턴을 갖고 악화된다고 해도 제가 그걸 다른 패턴을 가진 수치들을, 예를 들면 기후라던가 회사 매출액, 바이러스 감염자 수를 예측하듯이 시계열 예측을 할 수가 없어요.”
차연 씨는 고개를 끄덕였다. 상세한 걸 다 설명할 수는 없어도 과정을 이해시킬 수 있을 정도로만 설명하면 될 것이다.
“그러면 저는 원래 데이터에서 합당한 기준을 가지고 변수 제거, 그러니까 여기까지는 치매의 영역이고 여기까지는 원래 신길자 님의 행동 패턴이고, 이런 걸 구분하면서 데이터를 거르거나 수정하기 어려워져요.”
“그렇군요.”
“결국 ‘우리가 조정을 많이 거쳐서 할머니를 AI로 재현하게 되면 그 사람이 그 사람일까’ 하는 문제에 빠지게 돼요. 게다가 저는 차연 님의 할머니를 잘 몰라요. 데이터를 읽고 봤다고 해서 그 사람을 다 알 수 있는 건 아니니까요.”
“요점은 기술적으로도 어렵고, 노력해도 제가 기대하는 할머니와는 다르다는 거죠.”
“‘기대하는 할머니’라는 게 참, 정의하기 쉽지 않죠.”
사람의 가치관도, 성격도, 살아가면서 처음부터 그대로는 아니라고 말하지 않던가. 우리는 태어나고, 자라고, 삶을 살고, 늙어가면서 많은 변화를 거치고, 그때마다 추하기도 하고 아름답기도 하다. 그중 어느 순간을 재현할 것 인지조차 선택이다.
“저도 실은 지원 님이 제 의뢰 맡아 주시고 나서 이리저리 고민을 좀 해봤어요. 그러다가 최근에는 미술관에 갔는데.”
“갔는데?”
“조선시대 초상화 전시였어요.”
나는 이렇게 돌려 말하는 것도 미술도 잘 모른다. 내가 아이스 아메리카노만 홀짝이자 차연 씨가 말을 이었다.
“초상화는 미화할 수도 있고, 드러내고 싶은 걸 과장되게 드러낼 수도 있어요. 가장 아름다운 시절을 남기고 싶어서도 그리고요. 그런데 조선시대 초상화들은 항상 그대로 그렸거든요. 점, 기미, 화상 자국, 백반증… 다요. 생각해 보면 나는 보고 싶은 것을 보고 싶은가, 있는 것을 보고 싶은가, 이런 생각을 하게 되더라고요.”
“말이 어렵네요.”
“우리가 원하는 것이 곧 우리에게 옳은 것은 아니야 그런 생각이 들었다고요.”
이미 나는 처음에 차연 씨에게 의뢰를 받던 순간에 했던 고민이었다. 누군가를 AI로 재현할 때 그의 질병-치매-까지도 재현할지, 말지를 선택하는 순간 당연히 내가 가졌던 고민. 돌고 돌아 다시 상대 의뢰인은 그 질문으로 왔다니. 눈가를 꾹꾹 눌렀다.
“제가 한참 전에 했던 생각이랑 똑같네요.”
“저에게 메일을 받을 때부터 그 생각을 하셨군요. 몰랐어요.”
“네.”
“그럼 왜 그때 만나서 거절하지 않고, 해 보겠다고 하셨나요?”
차연 씨는 내게 벤치 자리를 가리켰고 우리는 자연스레 벤치에 앉았다. 호수 표면에 잔잔히 바람 따라 규칙적인 파동이 번졌다.
“미술은 모르는데 또 그 미화하고 싶은 마음도 이해 가거든요. 사람들이 인터넷상에서 활동하는 걸 생각해 봐요. 완벽히 나랑 다른 건 이질감을 느껴요. 내가 투영된 것에 좀 더 친밀감과 애착을 느끼고 나라고 생각하고요. 그런데 또 자기 아바타를 꾸밀 때는 좀 더 멋있는 나, 전성기 시절의 나, 필터가 들어간 나를 원해요.”
“그렇죠.”
“조금 다른 이야기인데, 차연 님은 할머니의 얼굴 말이에요. AI로 재현한다면 미화하고 싶어요? 몇십 년 젊어졌으면 좋겠거나, 훨씬 필터와 보정이 들어가길 원하나요?”
“아뇨. 그런 생각은 해 본 적이 없어요.”
“이게 또 재밌더라고요. 자기 자신을 꾸밀 때는 미화하고 싶어하는데,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 대해서 묘사할 때는 단점까지 묘사되길 원해요. 사람들은 그 얼굴이 어떻든 자신에게 가장 익숙한 그 모습 그대로 사랑하는 것 같아요.”
“그런 점들이 사람의 행동과 말을 묘사하는 데도 포함될까요?”
할머니의 아픈 모습까지 포함해서 묘사했을 때야말로, 우리가 진정으로 사랑할 수 있는 모습일 거냐는 물음이었다. 고개를 저었다.
“잘 모르겠네요. 알츠하이머는 질병이니까요. 한 사람에게 닥친 재난을 그리지 않는 것이 미화라고 볼 수는 없을 것 같아요. 소망이지.”
나는 차연 씨가 비유했던 사진 이야기를 기억했다. 우리는 아름다웠던 시절을 기억하려고 사진을 찍는다. 영정사진도, 반듯한 모습으로 찍지. 당신을 존엄성 있는 모습으로 기억하기 위해서. 소망이라는 말을 듣고는 곰곰이 생각하던 차연 씨는 다 마신 텀블러 잔의 뚜껑을 열어 보다 다시 닫으면서 말했다.
“알타미라 벽화 이후부터 AI로 사랑하는 사람을 재현하는 것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반복하는 건 도구의 차이지 결국 비슷한 것 같아요.”
“알파 미라가 뭔가요.”
“스페인에 있는 구석기 시대 동굴 벽화예요.”
“학교에서 배웠는데 까먹었어요. 근데 동굴 벽화는 알아요.”
차연 씨는 난감한 웃음을 지었다. 나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선택한 자신을 비난하며 손을 비볐다. 얼음이 컵 안에서 주사위들이 부딪히듯이 달그락댔다. 나는 가만히 기다리고 있었고, 차연 씨가 입을 열기까지는 조금 시간이 걸렸다.
“지금까지 지원 님이 작업하신 시간이 있으니 돈을 회수하겠다는 건 아니에요.”
“일단 제 작업은 방향이 결정되기 전까지 보류군요.”
“앞으로 어떻게 할지는 생각해 봐야 할 것 같아요. 저도 AI는 모르지만, 알츠하이머는 찾아봤는데 알츠하이머가 진전될수록 뇌의 상태도 변하는 거라서 성격도 변한다고 하더라고요. 질병이 사람의 뇌와 성격을 변화시킨다는 건….”
“누군가의 원래 삶을 따라가면서 추적하고, 더듬어서 어느 건 알츠하이머의 영향 탓이고, 어느 건 아닌지 알기가 훨씬 어려워졌다는 거죠.”
“네. 그리고 우리 할머니는 진단 받으신 지 11년이 됐어요. 이미 진행되고 나서 발견했고요.”
구두 코로 벤치 아래 흙에 11을 죽죽 긋다가, 지웠다가 했다. 이 사이드 프로젝트가 이렇게 흘러올 줄 몰랐고, 앞으로도 어떻게 흘러갈지 솔직히 알 수 없었다. 내가 무엇을 만들고 있는지 자신이 없으면서, 포기하기 아쉬웠다. 이것도 저것도 아닌 흙탕물 같은 마음이 천천히 가라앉을 때까지, 우리는 바닥을 보다가, 호수 풍경을 보기를 반복했다. 흰 매화 잎이 머리에 떨어졌다. 꽃이 질 때도 남는 것들이 있네.
“알츠하이머 진단을 받은 후에, 할머니와의 추억은 없나요.”
“항상 쌓고 있죠. 지원 님은요.”
“저도 좀 더 많았어야 했는데.”
“후회할 시간에 움직이는 게 좋아요.”
박차연 씨는 나를 일으켜 세웠다. 평택은 내가 아는 동네가 아니었다. 그냥 길을 아는 자의 옆에 서서 같이 걸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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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택에 들른 김에 차연 씨의 할머니를 뵙기로 했다. 어쩌다 내가 우리 할머니도 아닌 다른 사람의 가족을 위해 요양원까지 들리게 된 걸까? 액수가 큰 돈이라고 해도 말이다.
우리 할머니를 만나러 간 지도 한 달이 넘었는데. 그런 생각을 하면서 입구에 들어섰다. 요양원에는 항상 노약자가 짚을 수 있게 된 핸드레일이 어느 복도든 붙어 있었다. 요양원의 공기는 피부 온도와 같아 느낄 수 없는 온도였지만 벽에 붙은 기다란 핸드레일은 손을 대면 서늘한 온도였다. 그 서늘함은 죄책감과 그리움 어느 사이의 감정일 것이다.
우리 할머니. 프로젝트를 하면서 못내 마음에 걸려 이틀 걸러 전화를 드렸지만 찾아가진 않았다. KTX가 비싸서? 시간이 없어서? 주말에는 부업을, 주중에는 일해야 해서? 자꾸 변명을 떠올리는 까닭은 한 변명으로 충분하지 않을 죄책감 때문이었다.
요양원의 베이지색 문은 옆으로 소리 없이 스르르 열렸다. 올해 여든 다섯의 신길자 씨는 침대에서 창처럼 커다란 TV 화면을 보고 계셨다. 어른들을 위해서 자막도 크고, 화면해설 음량도 큰 TV 화면이었다.
[대선 기간 동안 바이러스 감염으로 대면 활동을 중단한 채, 온라인을 통해 대선 기간을 끝까지 완주한 모 후보. 대선 기간 동안 모 후보는 사망했고, AI가 모 후보를 차지했다는 루머가 한동안 인터넷 상에서 돌기도 했는데, 이것이 사실로 밝혀졌습니다. 이미 투표가 끝난 상황. 현재 모 후보에게 투표한 표를 모두 사표로 봐야 할지, 전례 없던 일에….]
지하철에서든, 요양원에서든, 세상에 할머니는 많지만, 그 할머니들이 누군가의 할머니란 생각을 아주 구체적으로 해 본 적은 없어서, 한 가족의 삶에 대각선으로 비스듬히 끼어들어 관찰하는 시선이 된 것이 못내 어색했다. 신발 안의 발가락을 꼼지락거렸다.
차연 씨는 신길자 씨의 침대에 다가가 쭈그려 앉아 눈 위치를 맞추었다. 신길자 씨가 고개를 돌렸다.
“안녕하세요, 할머니. 손녀 왔어요. 박차연이요.”
“…”
“할머니 딸 최영희네 손녀요.”
“순심이?”
“영희. 최영희. 딸 박차연.”
“영희 딸? 언제 이렇게 컸나.”
“네 할머니 손녀 왔어요.”
“영희 어디 있니?”
“엄마 오늘 아침에 왔었대요. 아빠랑. 신길자 사위랑.”
“안 왔어.”
“왔어요.”
“안 왔어.”
차연 씨는 할머니 손등을 쓰다듬다가, TV 화면을 보는 할머니의 침대 옆에 앉아서 할머니의 깃털처럼 가볍고 마른 어깨에 자기 머리를 기울였다. 기대지는 못하고 깃털보다 가볍게 갖다 대기만 했다.
[AI를 얼마나 본인 인격체로 인정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는 다시 화두로 떠올랐습니다.]
“할머니 나 누구?”
“몰라.”
“TV에서는 뭐가 나와요?”
“뉴스.”
“그러네. 뉴스 나오네.”
신길자 씨는 말없이 다시 TV를 바라보았다. 최영희 씨의 딸 박차연 씨는 엄마의 엄마를 바라보았다. 긴 세월이 사이에 있었다.
[모 후보가 의식불명이 된 직후부터 모 후보를 재현한 AI를 만들 수 있게 도운 혐의로 Z기업 대표와 주요 인물들이 오늘 검찰에 긴급 구속됐습니다.]
“할머니, 사랑해요.”
TV에서 나오는 아나운서의 말에 비해 차연 씨의 속삭임은 아주 작아서 내가 들은 건지, 환청이었을지 알 수 없었다.
재하의 회사 빌딩이 TV 화면에 스치듯 지나갔다. 재하가 내게 화를 낸 건 이런 이유 때문이었을까. 데이터에 내 판단이 개입되는 순간, 더 이상 실존 인물의 재현이라고 볼 수 없다고 말이다. 아니면 이런 일 자체가 싫었던 걸까. 저 후보의 AI를 만들면서, 나와 차연 씨가 겪은 고민을 후보의 가족과 재하의 회사는 했을까. 작은 요양실에 넓은 창처럼 놓인 TV가 흘러가는 세상을 비췄다. 빨갛고 파란 바탕에 하얗고 커다란 글씨와 함께. 쩌렁쩌렁한 화면해설과 함께. 느리고 천천히…. 그리고 멈추지 않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