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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석생물-신비의 삶

수억년 전 지구생태계 산증인

화석생물이나 현생생물 모두 알려진 종류보다 알려지지 않은 종류가 훨씬 더 많기 때문에 새로운 종이 발견됐다는 소식은 어찌 보면 놀랍다기 보다 당연한 것처럼 생각할 수도 있다.

최근 지금으로부터 약 1억6천만년 전인 중생대에 서식했다가 멸종된 것으로 알려진 '쥐라기소나무'의 자생지가 오스트레일리아의 울레미(Wollemi) 국립공원에서 발견됐다는 보도가 있었다. 여기에서 '쥐라기 소나무'라 함은 현재까지 쥐라기의 지층에서 화석으로만 알려졌던 종류라는 뜻이다.

중생대의 소나무가 현재 살아 있는 상태로 발견된 것은 학술적으로 매우 놀라운 사실이 아닐 수 없다. 이처럼 화석으로만 알려졌던 생물이 현재 살아 있는 것으로 밝혀졌을 때 우리는 그러한 생물을 화석 생물(化石生物:living fossils)이라고 부른다.
 

최근 오스트레일리아의 올레미 국립공원에서 발견된 쥐라기 소나무


보고된 화석생물 20여만 종

우리의 주변에는 많은 종류의 동·식물들이 살고 있다. 현재까지 학계에 보고된 현생 생물의 종수는 대략 1백50만종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학자들은 학술적으로 알려지지 않은 종류의 수는 이 수치의 3배 내지 5배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현재 지구상에는 6백-9백만종의 생물이 살고 있다는 뜻이다.

한편 화석으로 보고된 생물의 종 수도 20여만 종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 수치 또한 과거 지질시대 동안에 살았던 생물종 수의 10분의 1정도밖에 안될 것으로 추측하고 있으므로 지질 시대 동안에 살았던 생물의 총수는 2백만종에 달했다는 추정이 가능하다.

오늘날 생물학자들에 의해 보고되는 새로운 생물종의 수가 매년 1만여 종을 넘고 있고, 화석의 경우도 고생물학자들에 의해 매년 새로운 종들이 추가되고 있다. 위에서 알아본 것처럼 화석이나 현생 생물 모두 알려진 종류보다 알려지지 않은 종류가 훨씬 더 많기 때문에 새로운 종이 발견됐다는 소식은 어찌 보면 놀랍다기보다 당연한 것처럼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래 전에 멸종된 것으로 알려졌던 종류가 현재 살아 있는 것으로 밝혀졌을 때 우리는 무척 놀라게 된다. 화석 생물에는 '쥐라기 소나무' 외에도 상당히 많은 종류가 있다.

4억년 동안 생존해온 시일라캔스

화석 생물의 예로 가장 유명한 것은 시일라캔스(coelacanth)라고 불리는 어류다. 1938년 남아프리카의 한 어부는 자신이 그때까지 전혀 본 적이 없는 크고 기묘한 물고기를 낚았다. 호기심이 많았던 어부는 물고기를 지방 박물관의 연구원에게 보였고, 그 연구원은 이 물고기가 당시에 화석으로만 알려졌던 시일라캔스의 한 종류라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 발견은 당시 학계에 큰 충격을 주었다. 왜냐하면 시일라캔스는 데본기 중엽(약 3억8천만년 전)에 출현해 후기 고생대동안 크게 번성했던 어류였고, 고생대 말의 대멸종(약 2억5천만년 전;당시 생물종의 약 95% 멸종한 것으로 알려진 생물의 역사상 가장 격렬 했던 멸종시기임)에서 살아 남아 중생대 동안에도 다양한 발전을 한 후, 마침내 백악기 말의 대멸종 시기(약 6천5백만년전;공룡이나 암모나이트 등 중생대를 대표하는 생물들이 멸종하였던 시기)에 지구상에서 사라졌던 것으로 알려진 화석이었기 때문이다.

앞에서 필자는 화석 생물이란 화석으로만 알려졌던 생물이 현재 살아 있는 것으로 밝혀졌을 때 쓰는 용어라고 소개하였지만, 이는 엄격한 의미에서 옳은 표현은 아니다. 일찌기 다윈(C. Darwin)은 화석 생물이란 용어를 단순히 진화 속도가 매우 느리고 오랜 지질시대 동안 생존했던 생물이라는 의미로 사용했었다. 그 후 화석 생물이란 용어에 대해 학술적으로 명확히 정의된 적은 없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화석 생물이란 용어는 어떤 생물이 오랜 지질 시대동안 그 생물의 형태가 크게 변하지 않은 상태로 현재까지 살고 있는 경우에 사용돼 왔다. 앞에서 예로 든 시일라캔스와 생물학적으로 가까운 어류로 데본기에 출현해 현재까지 그 형태를 유지하고 있는 생물로 폐어(lungfish;肺魚)가 있다.

이 폐어는 현재 전세계적으로 3종(오스트레일리아, 남아메리카, 아프리카에 각각 1종씩 분포함)이 남아 있어 화석 생물로 취급되고 있긴 하지만 시일라캔스처럼 유명하지는 않다. 그 이유는 폐어는 화석으로 보고되기 이전에 이미 현생 생물로 잘 알려졌던 종류이기 때문이다.

반면 시일라캔스는 남아프리카의 어부에 의해 잡히기 전까지 오직 화석으로만 알려졌던 점에서 마치 화석이 돌 속에서 살아난 것과 같은 신비감을 주었던 것이다. 그러나 시일라캔스에 대한 이야기가 널리 알려지면서 사람들이 시일라캔스를 남획해 오늘날 이 어류의 멸종이 임박했다는 우려의 소리가 들려오고 있다. 지난 4억년 동안 생존을 이어온 시일라캔스가 약 4백만년 전 출현한 인류에 의해 멸종의 위기에 직면해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역설적인가?
 

브라질의 백악기 지층(약 1억 1천 5백만년 전)에서 발견된 시일라캔스 화석


멸종위기에서 되살아난 은행나무

한편 멸종 위기에 있던 생물이 인류의 노력에 의해 멸종으로부터 벗어났을 뿐만 아니라 현재 전세계적으로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화석 생물이 있는데, 우리 나라에서도 널리 자라고 있는 은행(銀杏)나무가 바로 그 예다. 현재 전세계적으로 은행은 오직 한 종(Ginkgo biloba) 밖에 없다.

은행나무의 조상은 고생대 말에 출현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은행류가 가장 번성했던 시기는 공룡이 번성했던 쥐라기 이후의 중생대였다. 그러나 제3기 이후 크게 쇠퇴해 거의 멸종 위기에 처해 있던 은행은 중국의 한 절에서 수 천년 전부터 재배되고 번석됨으로써 우리나라와 일본 등 아시아 지역으로 확산됐다. 그리고 18세기 초에는 유럽으로, 20세기에 들어와서는 북아메리카까지 전파돼 지금은 세계 곳곳에서 자라는 대표적 식물이 됐다.

생물의 역사를 추적해 보면 긴 지질 시대를 통해 다양한 종류의 생물들이 지구상에 출현, 한동안 번성하다가 결국은 멸종해 버린 것을 알 수 있다. 어떤 생물은 비교적 짧은 기간 동안 생존하다가 멸종하는가 하면 앞에서 알아본 화석 생물의 경우처럼 거의 형태적 변화없이 오랫 동안 생존하는 종류도 있다.

일반적으로 전자의 경우는 진화 속도가 빠르다고 하며, 후자의 경우는 진화 속도가 느리다고 말한다. 왜 어떤 종류는 진화속도가 빠르고, 또 어떤 종류는 진화 속도가 느릴까? 여기서 또 다른 대표적 화석 생물인 투구게(horseshoe crab;창게라고도 함)를 예로 들어 생각해 보기로 하자.

3억년 동안 진화 멈춘 투구게

투구게는 이름과 달리 생물학적으로 게보다 거미나 전갈에 더 가깝다. 그러나 투구게는 바다에 사는 반면 거미나 전갈은 육상에 서식하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투구게는 현재 4종이 알려져 있으며, 이들은 공교롭게도 모두 아시아 대륙과 북아메리카 대륙의 동쪽 해안을 따라 분포하고 있는 점에서 이채롭다.

투구게의 조상은 지금으로부터 4억5천만년 전인 오르도비스기의 지층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 후 고생대 기간 중 다양하게 번성했던 투구게의 조상 생물 중 어떤 종류는 데본기와 석탄기 때 육지에 형성된 울창한 수풀 주변의 습지에 살기도 했고 때로는 물 밖으로 기어 올라가기도 했다.

쉽게 예상할 수 있겠지만, 담수의 육상 환경에 적응한 종류들은 결국 거미나 전갈 등으로 발전했고, 바다에서 계속 살고 있던 종류는 현생 투구게의 직계 조상이 됐다. 이 석탄기의 투구게는 크기가 작다는 것을 제외하면 오늘날의 투구게와 차이점이 거의 없으므로 대략 3억년 동안 진화가 정지했다고 말할 수 있겠다.

왜 투구게는 3억년 이상 진화를 하지 않았을까? 이에 대한 해답은 투구게의 생태학적 측면에서 찾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인간의 활동에 의해 심하게 오염된 강어귀에서 대부분의 생물들이 사라지고 난 후에도 끝까지 남아 있는 종류가 투구게로 알려져 있다. 바로 이 점이 중요하다. 즉 투구게는 상당히 넓은 범위의 생태적 조건 아래에서 서식할 수 있는 생물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투구게는 염도가 매우 높은 환경에서도 살 수 있고, 강어귀처럼 염도가 낮은 환경에서도 잘 지탱한다. 또 알을 낳을 때는 모래사장 위로 올라와야 하기 때문에 한동안은 물 밖에서 지내기도 한다.

투구게는 온도의 변화가 극심한 상태에서도 잘 견디어 낼 뿐만 아니라 먹이 섭취도 가리는 것이 없는 생물로 알려져 있다. 싱싱한 것이나 썩은 것, 그리고 부드러운 것이나 단단한 것을 전혀 가리지 않고 먹어 치운다. 이처럼 환경에 대한 강한 적응력, 그리고 무엇이나 먹어치우는 습성이 아마도 투구게를 그렇게 오랫동안 살아 남게 한 원인인지도 모른다.

이외에도 우리 주변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화석 생물로는 고생대의 오르도비스기 이후 현재까지 생존하고 있는 개맛(Lingula)이나 고생대말에 출현해 현재까지 이어져 내려온 속새(Equisetum) 등이 있다.

일반적으로 화석생물은 생태학적으로 넓은 범위에 적응해 살았던 생물들로 알려져 있다. 즉 환경이 바뀌어도 그들의 생존에 큰 영향을 받지 않았다는 뜻이다. 이처럼 화석 생물은 자신의 모습을 오랫동안 유지하면서 생존했던 반면 환경의 변화에 민감한 종류들은 환경이 바뀌게 되면 쉽게 멸종해 버리거나 또는 바뀐 환경에 적응한 새로운 후손종을 탄생시켜 생물계가 진화해 온 모습을 뚜렷하게 보여주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여기에서 우리가 기억해야 할 일은 생물의 진화는 생물과 환경의 상호작용에 의해 일어난 결과이며, 이러한 측면에서 생물의 진화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과거의 환경 변화도 함께 추적해야 한다는 점이다. 또 그동안 생물의 역사에서 항상 주역으로 등장했던 빠른 진화를 보여 주는 생물 못지 않게 화석 생물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지고 연구함으로써 생물의 진화 과정을 밝히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북아메리카의 동부 해안에서 잡힌 투구게
 

1995년 02월 과학동아 정보

  • 최덕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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