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12월이면 어린이들은 산타할아버지의 선물을 기대하며 착한 아이가 되려고 애를 쓴다. 이런 어린이들에게는 “산타할아버지가 선물을 안 주시면 어떡하냐”는 어른들의 으름장이 잘 통한다. 울며 말썽을 부리다가도 산타할아버지 얘기만 나오면 금세 순한 양으로 변하고 만다.
그런데 산타할아버지는 보지도 않고 어떻게 착한 아이인지 나쁜 아이인지를 아는 걸까. 산타할아버지는 어떻게 크리스마스 이브 하룻밤 만에 세계의 모든 착한 아이들에게 선물을 전해줄 수 있을까. 어떻게 그 많은 선물을 만들어내고 또 썰매에 싣고 다닐 수 있을까. 우리 집엔 굴뚝도 없는데 어떻게 산타할아버지는 선물을 주고 가시는 걸까.
아이들이 이런 질문들을 하기 시작하면 어른들은 골치가 아프다. 그러다가 더이상 어떻게 해도 얘기가 통하지 않으면 아이들은 끝내 이렇게 말한다. “산타할아버지는 세상에 없는 거지?”, “다 지어낸 얘기지?”하고 말이다. 그러면 어른들은 “아, 우리 아이의 유년 시절이 끝이 났구나” 하고 생각하고 만다.
애석하게도 요즘 아이들은 산타할아버지에 대해 의심하는 시기가 빠르고 그에대한 믿음도 더 빨리 잃어버린다. TV와 각종 매체에 일찍부터 노출되는데다 첨단과학기술이 가득한 세상에 살고 있으니 더 이상 마술과 마법이 설 자리가 점점 줄어드는 것도 당연하다. 특히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사람들이라면 쉽게 산타의 존재를 믿기 어렵다.
그러나 전혀 다른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것도 과학을 잘 안다는 이들이말이다. 지난해 ‘산타의 진실(The Truth About Santa)’이라는 책을 낸 미국의 과학저술가 그레고리 몬은 “요즘 아이들이 쉽게 믿음을 포기하는 이유는 산타를 진정 이해하는 데 필요한 기초지식이 부족하기 때문이다”라고 말한다. 그는 이런 말도 덧붙였다. “물리학, 생물학, 재료과학에 대해 잘 아는 사람에게는 산타의 능력이 충분히 일리가 있는 얘기다.”
미국 노스캐롤라이나대의 기계항공공학자 래리 실버버그 교수도 몬과 같은 입장이다. 지난해 12월, 자칭 ‘산타의 북극 실험실 워크숍’에 6개월 동안 연수를 다녀왔다는 실버버그 교수는 “산타는 우리가 아직 실험실에서 만들어낼 수 없는 기술을 이용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런 그는 “산타를 따라잡으려면 공기역학은 물론 열역학, 재료과학 등 다양한 분야에 대해 먼 길을 가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렇다면 산타는 기적을 보여주기 위해 어떤 첨단과학기술을 활용하는 걸까. 몬과 실버버그 교수가 전해주는 위대한 과학기술자 산타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누가 착한 아이일까, 누가 나쁜 아이일까
산타는 보지도 않는데 어떻게 세계의 그 많은 어린이들을 다 아는 걸까. 어디에 사는 어떤 아이가 착한지 나쁜지, 그리고 무슨 장난감을 갖고 싶어 하는지를 어떻게 일일이 다 아는 걸까. 해답은 간단하다. 산타는 아이들의 생각을 읽어내는 기술을 갖고 있다.
실버버그 교수에 따르면 산타는 북극의 눈 아래에수 km2의 거대한 안테나를 감춰 놓았다. 이 거대 안테나는 현재 먼 우주를 들여다볼 때 쓰는 통신기술과 휴대전화 통신기술을 모두 동원해 만들었다. 산타는 이 거대 안테나를 통해 어린이들이 생각을 할 때 나오는 전자기파를 일일이 수신한다.
그 많은 데이터는 컴퓨터가 처리한다. 컴퓨터는 소프트웨어로 방대한 데이터를 정리해 산타에게 어디에 사는 누가 무엇을 원하는지, 나쁜 행동을 하는지, 착한 행동을 했는지를 알려준다. 이 정보는 모두 썰매에 있는컴퓨터로 전송돼 산타가 이동 중에도 볼 수 있다.
몬이 생각하는 산타의 방식은 더욱 치밀하고 적극적이다. 북극에서 가만히 아이들의 생각을 듣는 수준이 아니다. 아이들에게 아예 가까이 접근해 감시하는것이다. 그러기 위해 산타는 꼬마요정들을 동원한다. 꼬마요정들은 전화기를 도청하고 e메일을 들여다본다. 뿐만 아니라 크리스마스트리 장식에도 도청장치를 달아 놓는다.
이뿐만이 아니다. 진짜로 아이들이 착한 행동을 하는지 나쁜 행동을 하는지를 보기 위해서 꼬마요정들은 첨단 스파이로봇 기술도 활용한다. 스파이로봇은 잠자리나 작은 벌레처럼 작고 날아다닌다. 이 스파이 로봇들이 날아다니면서 아이들의 행동을 비디오로 찍는다. 꼬마요정들은 스파이로봇이 보내온 데이터 를 비디오 판독 소프트웨어를 이용해 분석한다. 이를 통해 막대한 데이터 속에서 의심스러운 사건을 골라낸다.
산타 돕는 복제 꼬마요정
몬은 이렇게 반복적이고 지루한 일을 오랫동안 소화해야 하는 꼬마요정을 산타가 특별히 복제했다고 이야기한다. 산타가 매년 크리스마스 이브에 일을 성공적으로 마치려면 막대사탕만 받고도 열심히 일을 하는 꼬마요정들이 필요하다. 꼬마요정들은 볼거리가 별로 없는 북극의 혹독한 환경에서도 비디오 판독 프로그램을 돌리는 것과 같은 반복적인 작업을 장시간 해야 한다. 그러다보면 꼬마요정들이 일을 거부하고 반란을 부릴 수도 있다.
이런 일을 막기 위해 산타는 처음부터 근면하고 온순한 꼬마요정만 골랐다. 그런 다음 산타는 복제를 통해 나머지 꼬마요정들을 만들어냈다. 이뿐만 아니라 산타는 꼬마요정들이 일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독신생활을 강요한다. 이 부분에서 과학저술가이자 소설가인 몬의 면모가 나타났다.
실버버그 교수도 산타가 유전공학기술에 뛰어나다고 보았다. 실버버그 교수의 경우 산타가 유전공학기술을 적용하는 건 사슴이다. 산타의 썰매를 쓰는 유전자 조작 사슴은 하늘을 날 수 있고 뾰족한 지붕에서도 균형을 잡을 수 있으며 어둠 속에서도 앞을 잘 볼 수 있다. 하지만 실버버그 교수는 사슴이 썰매를 끌긴 하지만 아이들의 선물 꾸러미를 끌지는 않는다고 봤다.
산타는 상대성이론의 대가
산타의 가장 놀라운 능력이면서 가장 궁금한 점은 어떻게 하룻밤에 그 많은 선물을 전해줄 수 있느냐다. 실버버그 교수도, 몬도 이 부분에 가장 공을 많이 들였다. 우선 실버버그 교수의 얘기를 들어보자.
산타가 이 문제를 해결하는 데 최소 500년 이상의준비기간이 필요했다. 산타는 하룻밤만에 선물을 모두 전달하기 위해 아인슈타인보다 먼저 상대성이론을 이해해야 했다. 산타는 시간이 고무줄처럼 늘어날 수 있고, 공간은 오렌지처럼 확 찌그러질 수 있으며, 빛은 구부러질 수 있음을 깨달았다. 아인슈타인이 일반상대성이론을 내놓기 훨씬 전에 말이다.
산타가 상대성이론을 이해한 지 500년이 됐지만 우리가 상대성이론을 이해한 지는 고작 100년 정도다. 그래서 산타가 이해하고 있는 상대성이론의 수준은 우리보다 훨씬 높다. 시간과 공간, 그리고 빛을 다룰 줄 알게 된 것이다. 그런 산타는 ‘상대성 구름’이라 는 걸 창조했다.
상대성 구름이란 시공간이 통제되는 공간을 말한다. 상대성 구름에 들어가면 바깥과는 다른 방식으로 시간, 공간, 빛을 인식할 수 있다. 덕분에 산타는 전세계의 어린이들에게 선물을 전달해 줄 시간을 벌 수 있다. 하룻밤을 수개월로 늘릴 수 있는 것이다. 상대성 구름 속에 있는 산타가 보기에 세상은 얼어붙어 있고 아주 고요할 뿐이다.
나노기술로 만드는 선물
그렇다면 산타는 그 많은 선물들을 어떻게 들고 다닐까. 실버버그에 따르면 산타가 하룻밤 전해야 할 선물은 2억 개쯤 된다. 국제연합 산하 유니세프 (UNICEF)에 따르면 선진국에 사는 18세 미만인 인구가 이 정도기 때문이다.
이렇게 많은 선물을 어떻게 다 만들어 일일이 전해줄 수 있을까. 실버버그 교수가 북극을 방문해 얻은 정보에 따르면 산타는 나노기술로 이 문제를 해결한다. 산타는 선물보따리에 일일이 선물을 들고 다니지 않는다. 대신 나노 장난감 제조기라는 발명품을 넣고 다닌다.
나노 장난감 제조기는 착한 아이들이 있는 그곳에서 바로 장난감을 만든다. 나노 장난감 제조기는 굴뚝 안의 검댕이나 먼지, 눈 같은 주변의 분자를 이용해 장난감을 스스로 만들어낸다. 바로 우리 몸 안에서 유기물질이 DNA 정보를 통해 스스로 알아서 장기와 조직을 만들어내듯이 말이다. 몬의 생각도 비슷하다. 산타가 현재 과학자들보다 훨씬 앞선 나노기술을 보유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덕분에 산타는 보따리에 일일이 포장된 장난감을 넣고 다니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몬은 실버버그 교수와 생각이 다르다. 산타의 선물보따리에는 나노 장난감 제조기가 아니라 자가조립 부품이 들어 있는 상자로 채워져 있다. 산타는 이 상자를 아이들에게 전해줄 뿐이다. 그러면 몇시간 동안 상자 안의 조각들이 스스로 알아서 복잡한 구조물을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조각들은 아이들이 원하는 선물을 만들도록 미리 프로그램돼 있다.
최첨단 기술의 집약체, 산타 썰매
한편 실버버그 교수는 산타가 모는 썰매에 대한 비밀도 캐냈다. 산타의 썰매는 항공우주역학, 물리학, 화학등 여러 분야의 첨단 기술이 들어가 있다. 이를 통해 산타는 빠르면서도 에너지 효율이 좋고 부드럽게 나는 썰매를 만들어냈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먼저 산타의 썰매는 뼈대가 벌집 모양의 티타늄합금으로 돼 있다. 티타늄합금은 가볍고 튼튼해 현재도 항공기 부품으로 쓰인다. 산타의 썰매는 현재 기술보다 무려 10~20배 더 튼튼한 티타늄합금 소재로 이뤄져 있다. 덕분에 빨리 날 때 생기는 강한 공기저항을 견딜 수 있다.
썰매의 날도 티타늄합금으로, 기능에 따라 모양이 변한다. 예를 들어 고속으로 달릴 때는 공기저항이 적도록 매끈한 직선형이 됐다가도 경사가 있는 지붕에 주차할 때는 미끄러지지 않도록 표면적이 넓고 거칠게 변한다.
썰매의 뼈대는 ‘다공성 나노구조’ 외피로 덮여 있다. 이 외피는 골프공 표면처럼 작은 구멍이 많이 있다. 이 때문에 구멍마다 작은 소용돌이가 생겨 썰매 전체가 받는 큰 소용돌이(공기저항)를 줄일 수 있다. 나노구조 외피 덕분에 썰매가 받는 공기저항은 최대 90%까지 줄어든다.
썰매의 전조등에도 첨단 기술이 숨어 있다. 전조등에는 레이저 센서가 달려 있어 내비게이션 역할도 한다. 앞으로 다가오는 공기의 온도와 흐름을 측정해 가장 날기 편한 경로로 안내하는 것이다. 그 결과 썰매는 에너지도 적게 들이면서 부드러운 비행을 할 수 있다. 실버버그 교수는 산타가 시공간 구름을 이용해 미래형 썰매를 타고 다니며 하룻밤 사이에 8000만 가구를 돌아다닐 것으로 보고 있다.
집과 집 사이를 이어 주는 웜홀
그렇다면 몬의 생각은 어떨까. 몬에 따르면 산타는 현대 과학자들이 아직 실체를 밝혀내지 못한, 복잡한 물리학 개념을 활용한다. 바로 웜홀과 워프 드라이브다. 몬이 보기에 산타가 혼자서 그 많은 선물들을 전해줄 시간은 없다. 그래서 몬은 산타가 자신의 일을 함께 해 줄 부대를 꾸릴 거라고 생각했다. 이 산타 부대는 썰매를 타고 이동하지 않는다. 대신 시공간의 지름길인 웜홀을 통해 이동한다.
1985년 미국의 천문학자 칼 세이건이 ‘콘택트’란 소설을 쓸 때 캘리포니아공대의 물리학자 킵 손이 웜홀이란 개념을 만들어 줬다. 웜홀은 우주 공간에 존재하는 가상의 물체이자 통로다. 블랙홀과 화이트홀 사이를 이어주는 통로로, 벌레가 사과의 껍질이 아니라 안으로 뚫고 들어가면서 구멍을 만드는 것처럼 시공간 속에서 지름길 역할을 한다. 몬은 바로 산타의 부대가 이론적으로 존재하는 웜홀을 이용해 집과 집 사이를 아주 쉽게 이동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진짜 산타는 어떻게 이동하는 걸까. 몬의 생각에 산타는 워프 드라이브(공간 이동 추진) 썰매를 타고 다닌다. 진짜 산타는 자신을 알리기 위해 세계 곳곳에서 한 번씩 모습을 드러내 보이고 싶어 한다. 하지만 산타의 사슴들은 이 정도로 빠르지 않다. 그래서 산타는 빛보다 빠른 여행을 실현시켜 줄 기술을 활용했다. 바로 워프 드라이브다.
영화 ‘스타트렉’에는 워프 드라이브가 등장하는데, 우주선이 빛보다 빠른 속도로 행성 사이를 오가게 해준다. 산타는 워프 드라이브 썰매를 타고 이동한다. 워프 드라이브 썰매는 시공간을 기이한 방식으로 이동하게 해준다. 앞으로 가야 할 시공간을 줄여 주고, 썰매가 지나간 시공간은 늘려 준다. 워프 드라이브 썰매는 목적지까지 산타를 데려다 주는 게 아니라 목적지를 산타 앞에 끌어다 놓는다고 볼 수 있다.
산타의 비밀을 밝히는 데 이처럼 다양한 분야의 첨단과학기술이 동원됐다. 그렇다면 이제 산타가 존재한다고 믿을 수 있는가. 믿든 말든 그건 독자의 몫이다. 하지만 딱딱하고 빈틈이 없어 보이는 과학기술이 산타의 비밀을 상상해 볼 수 있게 쓰인다는 사실이 흥미롭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