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 물러가기 시작하는 9월의 밤하늘. 백조 한마리가 유유히 가을 밤하늘에서 날고 있다. 계절이 바뀌어 겨울이 되면 이 백조는 거대한 십자가가 돼 서쪽 지평선을 밝힌다. 백조에서 십자가로 변신하는 이 별자리의 정체를 쫓아가보자.
서쪽하늘에 출현한 갈보리 십자가
여름부터 초겨울까지 밤하늘에서 가장 눈에 띄는 대상은 단연 ‘여름철 대(大)삼각형’이다. 거문고자리 베가, 독수리자리 알타이르, 백조자리 데네브가 밤하늘에 만드는 거대한 삼각형은 공식적인 하나의 별자리는 아니지만 세 별 모두 밝기가 1등급인데다 은하수가 감싸고 있어서 다른 별자리를 찾는 길잡이 역할을 한다.
하늘에서 19번째로 밝은 별인 데네브를 포함한 백조자리는 여름철 대삼각형을 이루는 세 별자리 중 가장 찾기 쉽다. 큰 날개를 펼치고 남쪽으로 날아가는 새의 모습이 매우 뚜렷해 예로부터 전 세계에서 이 별자리를 새의 모습으로 그렸다.
그리스에서는 이 별자리를 최고의 신인 제우스가 스파르타의 왕비 레다를 유혹하기 위해 백조로 변신한 모습으로 그렸고,고대 이집트와 바빌로니아에서는 비둘기나 독수리로 묘사했다.
백조자리는 초저녁 동쪽에서 떠오를 무렵 남쪽으로 머리를 향하고 지평선을 스쳐 나는 듯한 모습이다. 그러다가 한밤중에 머리 위로 떠오르면 큰 날개를 펼치고 은하수 위를 유유히 떠다니는 장관을 연출한다.
하지만 새벽녘 서쪽하늘로 저무는 때가 되면 백조자리는 품위를 잃고 만다. 백조의 머리에 위치하는 알비레오가 지평선을 향하고 꼬리에 해당하는 데네브가 가장 높이 떠올라, 백조가 날다가 지평선으로 처박히는 이상한 모습이기 때문이다.
이때는 백조자리에서 새의 모습을 떠올리기가 대단히 어렵다. 하지만 흥미롭게도 6세기경 북유럽 사람들은 이때 볼 수 있는 백조자리를 숭고한 정신세계를 상징하는 별자리로 받아들였다.
당시 사람들은 크리스마스 전야가 되면 초저녁 무렵에 예수의 탄생을 축하하러 성당에 갔다. 성당으로 가던 이들은 무심코 서쪽 하늘을 바라보고 그 자리에서 얼어붙고 말았다. 밝은 별 다섯 개가 정확히 십자가를 그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이 십자가를 홀린 듯 쳐다보다가 이 별자리에 ‘갈보리의 십자가’(Cross of Calvary)라는 이름을 붙였다. 갈보리는 그리스도가 십자가형에 처해진 예루살렘의 골고다 언덕의 영어식 이름이다.
크리스마스 무렵 초저녁 서쪽 하늘에 드리워진 갈보리의 십자가는 당시 사람들에게 매우 극적인 영감을 주었다. 해가 지고 난 뒤 서쪽 하늘에 낮게 떠 있어서 그 모습을 보는 사람들은 이를 그리스도의 죽음을 알리는 종교적 메시지로 받아들였고, 십자가의 맨위쪽 가장 밝은 별(데네브)을 그리스도 정신의 상징이라 여겼다.
그 뒤 17세기 들어 탐험가들이 남반구 하늘에서 밝기가 1~2등급인 별 4개로 이뤄진 남십자자리를 발견해 ‘남천의 십자가’라고 불렀다. 그러자 사람들은 남천의 십자가에 빗대 갈보리의 십자가에 ‘북천의 십자가’라는 새로운 별명을 붙였다.
미국의 유명한 시인인 제임스 로웰은 1844년 ‘새해 전야’라는 시에서 백조자리와 데네브를 ‘하늘에 매달려 온세상을 비추는 밝은 십자가와 왕관’이라고 찬양하는 시를 짓기도 했다.
날아다니는 별
은하수 위를 두둥실 날고 있는 밤하늘의 백조는 지구가 하루 한 바퀴 자전함에 따라 천구를 하루에 한 바퀴씩 돈다. 하지만 백조자리에는 지구의 자전과 상관없이 정말 날아다니는 별이 있다.
알파(α)별인 데네브, 백조 몸통 중심에 있는 감마(γ)별, 그리고 왼쪽 날개에 있는 엡실론(ε)별과 직사각형을 이루는 위치에 오렌지색을 띠는 5등성의 희미한 별이 주인공이다. 이 별에는 ‘백조자리 61번별’(61 Cygni)이라는 이름이 붙어있다.
모든 별은 천구에 항상 고정돼 있어 예나 지금이나 별자리 모양이 변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사실 별들은 눈으로 확인할 정도는 아니지만 그 위치가 미미하게나마 조금씩 변하고 있다. 별마다 움직이는 방향이나 속도가 다른데 이를‘고유운동’이라고 부른다. 백조자리 61번별은 전성기에 강속구 투수로 이름을 날렸던 메이저리그의 박찬호 선수의 등번호인 61번을 떠올리게 할 만큼 하늘에서 움직이는 속도가 남다르다.
1792년 이탈리아의 천문학자 주세피 피아치는 백조자리 61번별이 다른 별에 비해 대단히 빨리 움직인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날아다니는 별’(The Flying Star)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피아치가 61번별을 발견했던 당시 1년에 무려 5.22˝를 움직이고 있었다.
1838년 독일의 천문학자 프리드리히 베셀은 이 별의 고유운동이 크다는 사실에 착안해 이 별이 매우 가까이 있다고 생각했다. 내친김에 그는 이 별이 지구에서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지 거리를 측정하기로 했다.
베셀이 시도한 방법은 연주시차를 이용한 방법이다. 시차란 한 물체를 서로 다른 위치에서 봤을 때 생기는 방향의 차이에 따라 생기는 각을 말한다. 지구는 공전을 하므로 가까이 있는 별은 6개월마다 배경별들에 대해 위치에 변화가 생긴다.
그가 측정한 61번별의 연주시차는 0.29″였다. 이 값과 지구 공전궤도의 반지름을 삼각함수에 대입해 계산한 결과 지구에서 이 별까지의 거리가 약 10광년이라는 결론을 얻었다.
이는 지구에서 별까지의 거리를 알아낸 최초의 사건이다. 또 천체의 거리를 재는 기준자가 탄생했음을 의미하기도 했다.현재 지구에서 별까지의 거리를 재는 단위로 흔히 쓰는 파섹(pc, 1pc=3.26광년)은 연주시차(″)의 역수로 계산한다. 오늘날 연구에 따르면 백조자리 61번 별은 육안으로 볼 수 있는 별 중에서 4번째로 가까우며 태양계에서 약 11광년 떨어졌다.
이달의 천문현상
맨눈으로 천왕성을 찾아보자
화성, 수성, 목성, 금성, 토성은 맨눈으로 쉽게 볼 수 있어 현재 우리가 요일의 이름으로 사용하고 있을 만큼 친숙하다.하지만 토성 바깥 궤도에서 태양을 돌고 있는 천왕성은 망원경으로 발견한 첫 행성으로 기록될 만큼 어두워 맨눈으로 보기가 쉽지 않다.
맑은 날 별자리지도를 가지고 어두운 곳에 나가 천왕성을 찾아보자. 물병자리 근처에서 별자리지도에 나타나 있지 않는데 맨눈으로 볼 수 있을 정도로 밝은 천체가 있다면 그 천체가 바로 천왕성이다.
천왕성을 낮은 배율의 망원경으로 보면 다른 별과 크게 다르지 않지만 배율이 100배가 넘는 망원경을 사용하면 행성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배율이 200배 이상인 망원경이라면 초록색 원판 모양까지 볼 수 있다. 하지만 아마추어 수준의 소형 망원경으로는 천왕성의 표면에 있는 짙은 파란색의 무늬를 확인하는 일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쌍안경이 있다면 천왕성보다 태양에서 더 멀리 떨어져 있는 해왕성을 함께 찾아보자. 8월 중순에 충을 맞이한 해왕성은 9월에 염소자리에서 7.8등급의 밝기로 빛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