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기합성 연구는 아주 작은 로봇을 설계하는 과정과 비슷합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무언가를 설계하고 조금씩 바꿔가며 우리가 원하는 기능을 수행하게 만드니까요.”
9월 30일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 유기합성 및 촉매연구실에서 만난 이성기 DGIST 교수는 자신의 연구를 로봇설계에 비유했다. 화학반응을 촉진하는 물질인 촉매를 만드는 과정이 로봇을 디자인하는 과정과 닮았다는 뜻이다. 이렇게 설계된 촉매는 세상에 없던 유기물을 합성하는 데 사용된다.
유기합성의 핵심, 촉매의 변신
촉매는 화학반응에 필요한 에너지를 낮춰 반응이 더 쉽게 이뤄지도록 한다. 일반적인 반응을 매개하기도 하지만, 구조를 잘 조절하면 일반적인 조건에서는 일어나기 어려운 반응을 일으키는 데도 활용할 수 있다. 유기합성 학자들이 새로운 촉매를 찾아 나서는 이유다.
촉매가 화학반응을 조절할 수 있는 비결은 구조에 있다. 촉매의 미세구조는 물리적으로 반응물이 더 쉽게 만나게 하거나, 원하는 위치에서 정확히 만날 수 있도록 배열하는 역할을 한다. 자동차 모양으로 점토를 빚을 때 손으로 하나하나 빚으면 시간이 오래 걸리고 완성도도 떨어지지만, 틀을 만들어 찍어내면 빠르고 쉽게 만들 수 있는 것과 비슷한 원리다. 이때 틀의 역할을 하는 게 촉매다.
이 교수는 올해 노벨화학상 수상자인 베냐민 리스트 독일 막스플랑크연구소 교수의 실험실에서 박사후연구원으로 근무했다. 당시인 2017년과 2018년 그는 국제학술지 ‘미국화학회지’와 ‘독일화학회지’에 유기 촉매를 이용해 광학이성질체 중 단 한 종류의 유기화합물을 합성하는 비대칭합성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광학이성질체는 마치 거울에 비춘 것처럼 좌우대칭을 이룬 두 종류의 구조를 말한다. 합성 과정에서 같은 양이 만들어지지만, 의약품 등에 사용되면 치명적인 부작용을 일으키는 경우가 있어 반드시 한 종류는 걸러내야 한다. 이 교수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촉매의 구조를 설계했고, 인이 포함된 유기 촉매를 활용해 단 한 종류의 광학이성질체를 우세하게 합성할 수 있는 비대칭 반응을 유도하는 데 성공했다. doi: 10.1021/jacs.6b11993, doi: 10.1002/anie.201806312
이 교수는 “과거에는 촉매에 중금속을 주로 사용했는데, 반응이 끝난 후에는 반드시 이를 정제하는 과정을 거쳐야 했다”며 “황, 인 등을 사용한 유기 촉매는 이런 문제를 해결할 수 있고 친환경적이며 생체 분자 등과 유사해 반응을 더 쉽게 유도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고 설명했다.
최근 이 교수는 두 가지 이상의 기능을 갖는 촉매를 만드는 연구를 하고 있다. 이 교수는 “촉매의 구조를 잘 설계하면 촉매의 여러 곳에 다양한 기능을 넣을 수 있다”며 “실험을 반복하며 눈에 보이지 않는 분자 구조의 문제점을 찾고 이를 개선해나가는 과정이 유기합성 연구의 가장 큰 재미”라고 말했다.
유기합성에 부는 새로운 바람
“유기합성의 역사는 100년에 가까울 정도로 길지만, 다양한 합성법들이 최근까지 개발되고 있습니다. 그간 불가능하다고 여겨졌던 것들이 가능해졌기 때문이죠.”
올해 노벨화학상은 유기 촉매 개발에 앞장선 두 명의 과학자가 수상했다. 유기합성은 유기 촉매의 개발과 함께 급격히 발전했다. 이 교수는 “리스트 교수가 유기 촉매 연구를 시작했을 때만 해도 주변에서 큰 기대가 없었다”며 “하지만 복잡했던 촉매의 구조를 단순화하고 다양한 기능을 동시에 수행할 수 있는 유기 촉매의 개발이 유기합성에 활용되며 우리 생활에 큰 역할을 했다고 평가받는다”고 말했다.
유기합성 과정은 촉매뿐만 아니라 어떤 반응에너지를 사용하느냐에 따라서도 바뀔 수 있다. 과거에는 열에너지를 사용했다면, 최근에는 빛에너지나 전기에너지를 활용한 유기합성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이 교수는 “친환경적인 에너지를 활용한 유기합성법이 최근 주목받고 있다”며 “유기합성에 사용하는 에너지의 종류에 따라 다양한 합성경로를 보이기도 해 새로운 반응을 끌어낼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외에도 과거에는 결합력이 너무 강해 도저히 깰 수 없다는 탄소-수소(C-H) 결합을 끊어 작용기를 붙이는 기술이나, 변이성이 큰 전이금속을 활용한 촉매를 개발하는 등 유기합성 분야에서 혁신은 계속되고 있다. 덕분에 기존에는 존재하지 않던 새로운 유기화합물 합성법도 계속 등장하고 있다.
“유기합성은 촉매와 더불어 시약, 반응 조건 등 아주 많은 변수를 조절해야 하는 만큼 고려해야 할 요소가 많은 분야죠. 하지만 그 덕분에 여전히 방대한 연구가 가능합니다. 아직 밝혀지지 않은 새로운 반응의 길을 찾아가는 탐험가의 마음으로 연구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