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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 & Issue]당신은 봄수저인가요 겨울수저인가요


최근 젊은 층 사이엔 부모의 경제적 환경에 따라 ‘금수저’와 ‘흙수저’로 서로를 부르는 일이 유행이다. 그런데 태어난 계절에 따라서도 삶이 달라질 수 있다는 연구결과가 최근 나와 주목을 받고 있다. 21세기 판 사주도 아니고, 왜 이런 현상이 생길까. 과학적 원리를 짚어봤다.


“심장이 약하니
잘 관리하세요.” 12월생인 기자는 최근 종합검진 결과를 받아들고 뜨악했다. 혈압이 조금 높으니 조심하라는 말은 예전부터 좀 들었지만, 심장에 문제가 있다니! 그런데 기자뿐 아니라 겨울에 태어난 사람들은 병원에서 이런 말을 들을 확률이 높다. 최근 미국에서 의료기록 빅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겨울생이 다른 계절생보다 심장이 약하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미국 컬럼비아대 니콜라스 타토네티 교수팀은 2015년 6월 ‘미국의학정보학회저널(JAMIA)’에 논문 한편을 발표했다(논문검색 : 구글 창에 ‘ocv046 ’ 입력). 1985년에서 2013년 사이에 컬럼비아대 병원에서 진료 받은 환자 174만9400명의 의료기록을 분석한 결과, 환자들이 태어난 달과 55개 질병 사이에서 특별한 관계를 발견했다는 내용이었다. 예를 들어 천식 환자 중엔 9월생이 많았고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ADHD) 환자 중엔 11월생 비율이 높았다. 고혈압 환자는 1월생을 정점으로 해서 한겨울에 태어난 사람이 많았다.

식습관도 아니고, 체형도 아니고, 태어난 달이 질병의 원인이 될 수 있다니. 추울 때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평생 남들보다 더 고혈압을 조심하며 살아가야 한다는 건 억울한 일이다. 항간에 유행하는 ‘흙수저’라는 말을 빌려, ‘겨울수저’의 괴로움을 토로해야 할 지경이다.


늦겨울~초봄 태생 정신질환 위험, 상대적으로 높아
하지만 ‘봄수저’ 앞에 서면 그런 말을 하기가 미안해진다. 봄 태생은 위험 질병이 많다. 특히 조현병, 우울증, 조울증(양극성장애), 자폐증 등 정신질환은 봄에 태어난 환자 비율이 유난히 높다. 출생 계절이 건강에 미치는 영향 중 현재까지 가장 연구가 많이 된 분야가 정신질환이다.

미국 국립정신건강협회의 에드윈 풀러 토리 박사는 북반구 29개 지역, 남반구 5개 지역에서 이뤄졌던 연구 250개를 분석해서 1997년 리뷰논문으로 발표했다(Schizophr Res. 1997 Nov 7;28(1):1-38). 북반구와 남반구를 가릴 것 없이 늦겨울~초봄 사이에 태어난 사람들이 조현병과 조울증을 앓을 확률이 5~8% 높았다. 예를 들어 북반구에서 조현병과 조울증은 12월과 1~3월생, 자폐증은 3월생, 우울증은 3~5월생이 가장 많았고, 계절이 반대인 남반구에서 조현병은 7~9월생이 가장 많았다.

원인은 아직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두 가지 가설이 있다. 첫 번째는 겨울에 임신 중기를 거치는 동안 산모가 바이러스에 감염될 확률이 높다는 것이다. 임신 중기(4~7개월)는 태아의 뇌와 각종 장기가 발달하는 중요한 시기다. 이 시기가 마침 인플루엔자 바이러스가 활개 치는 시기와 맞아떨어지면서 태아의 뇌 발달에 악영향을 준다는 가설이다. 아직 실험적으로 검증된 적은 없다.



좀 더 정교한 가설은 겨울에 비타민D가 부족해 뇌 발달이 더뎌진다는 가설이다. 북반구에서 봄에 태어나는 아기는 일조량이 가장 적은 동지(12월 22일경)에 엄마 뱃속에서 임신 중기를 거친다. 이때는 태양빛이 적은 탓에 산모의 피부세포에서 비타민D 합성이 줄어든다. 비타민D 합성에는 파장이 280nm에서 315nm 사이인 자외선B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실제 비타민D 부족과 조현병의 상관관계를 밝힌 연구결과도 있다. 호주 연구진이 덴마크에서 1981년부터 2005년 사이에 태어난 848명을 조사해 2010년에 발표한 논문이다(Arch Gen Psychiatry. 2010;67(9):889-894). 덴마크 정부에서 만든 정신질환 자료와 바이오뱅크에 보관된 신생아의 건조혈반을 이용해 조현병 환자 424명과 정상인 424명을 비교했다. 그 결과 혈반 내 비타민D 수치가 낮았던 늦겨울~초봄 신생아가 어른이 돼서 조현병 환자가 된 비율이 높았다. 이런 연구결과들이 알려지면서 ‘임산부에게 꼭 필요한 비타민D’라는 공식이 완성됐다. 온라인을 검색해보면 임산부에게 비타민D 영양제를 권하는 글을 수없이 볼 수 있다.


아냐, 문제는 햇빛이야!
그런데 ‘비타민D’는 정확한 변수가 맞을까. 미국 신시네티 정신분석연구소의 폴 슈바르츠 박사는 2014년 발표한 논문에서 새로운 가설을 제시했다(10.1016/j.mehy.2014.10.014). 폴 박사는 그간 진행된 쥐 실험 결과를 종합해본 결과 조현병과 관계있는 변수는 비타민D가 아니라 ‘햇빛’ 그 자체라고 주장했다.

우리 몸에서 심장박동은 24시간을 주기로 변화하는데, 낮에 밝은 빛을 적게 쪼이면 그 변화 폭이 작아진다. 심장박동의 일주기 진폭이 작아지면 밤에 산모의 혈장에 녹아있는 멜라토닌 농도가 줄어든다. 멜라토닌은 뇌 속 해마의 신경조직을 만드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므로, 농도감소는 태아의 뇌 발달에 악영향이다. 산모가 낮에 햇빛을 적게 쬐면 야간 심부최저체온이 2℃가량 높아지는데, 이 또한 좋지 않은 영향이다. 태아의 뉴런에 세포자살을 촉진시켜 해마 부피를 줄이고, 뉴런의 민감성을 높인다. 폴 박사는 임신 중기에 겨울을 맞는 산모들이 비타민D를 먹을 게 아니라 낮 시간에 햇볕을 더 쬐어야 한다고 논문에 적고 있다.

위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변수를 어떻게 파악하느냐에 따라 대책이 달라진다. 김주한 서울대 의대 교수는 “정확한 인과관계를 파악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한다. 변수를 정확히 파악해야 변화에도 대처할 수 있다. 조현병과 조울증은 1800년대 후반까지 가을에 태어난 사람에게서 많이 발생했다. 그러다 1900년대 초반으로 넘어가면서 지금처럼 봄에 태어난 사람 중심으로 변했다. 미국(1938년)과 스웨덴(1975년), 일본(1980년)에서 독립적으로 진행된 세 연구에서 공통적으로 이런 현상이 발견됐다. 세 연구를 검토한 토리 박사는 1997년 논문에서 “출생계절의 건강영향 패턴은 고정돼 있지 않고 시기에 따라 변한다”고 밝혔다.
 

내 아이는 어느 계절에 낳을까
과학자들이 봄과 여름, 가을과 겨울수저의 운명을 좀 더 자세히 밝히면 내 삶에 어떤 변화가 생길까. 김 교수는 “출생시기와 질병의 관계를 알면 진단, 치료, 예후예측, 예방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질환의 가족력이 있는 경우 자녀의 출생을 조절하는 방법도 있다. 가족 중 고혈압 환자가 많은 집안에선 여름이나 가을에 자녀를 낳는 식이다. 단, 다른 계절에는 다른 위험요인이 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김 교수는 “앞으로 DNA 분석을 통해 개인 맞춤의학이 발전하면 위험인자를 좀 더 정밀하게 알고 피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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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01월 과학동아 정보

  • 변지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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