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지는 기사 바로가기 ☞ 미생 과학자들의 '망한 실험'
기존의 통념을 뒤엎고 새로운 개념을 제시한 과학자, 뛰어난 기술로 사회를 풍족하고 안전하게 만든 과학자까지, 인류의 역사에 이름을 새긴 위대한 과학자들은 수없이 많다. 사실 그들의 업적 뒤에는 우리가 알지 못했던 실패담인 ‘흑역사’ 또한 가득하다. 중국 물리학자가 전 세계 과학자 26인의 실패담을 모은 책 ‘과학자의 흑역사’에 따르면, 과학자의 흑역사는 몇 가지 유형으로 나뉜다. 한때 망한 실험 결과에 망연자실했지만 결국 딛고 일어나 위대한 역사를 낳은 경우도 있지만, 오만함에 빠진 나머지 진실을 외면한 경우도 있다.
상대성이론을 못믿은 아인슈타인
첫 유형은 자신의 신념에 갇혀 잘못된 연구 결과를 내는 과학자들이다. 가장 유명한 천재 과학자도 그 덫을 피해가진 못했다. 1917년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은 ‘일반상대성이론에 근거한 우주론 고찰’이라는 제목의 논문을 발표했다. 그의 첫 번째 우주론 논문이자, 우주론 분야에서 처음으로 일반상대성이론을 적용한 논문이었다. 이 논문에서 아인슈타인은 기존 상대성이론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우주항과 우주상수를 도입했다.
상대성이론에 따라 우주 공간을 해석하면 우주는 팽창하거나 수축한다는 결과가 나온다. 하지만 당시의 천문 관측 결과에 따르면 우주는 정적인 공간이었다. 아인슈타인은 자신의 이론을 관측 결과에 맞추기 위해 우주항과 우주상수를 도입했다.
논문은 곧 반박에 부딪혔다. 러시아의 수학자 알렉산드르 프리드만이 아인슈타인의 논문에서 치명적인 결함을 발견했다. 특정 조건에서 아인슈타인의 수식을 0으로 나눠야 하는 경우가 발생한 것이다. 0으로는 그 어떤 수식도 나눌 수 없다는 것은 당시에도 아주 기초적인 상식이었다. 그리고 이 내용을 담은 논문을 1922년 발표했다.
프리드만은 아인슈타인 논문의 모순을 지적하며, 우주는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대로 팽창하리라 주장했다. 우주 공간이 정적이라는 전통적인 믿음을 깨뜨린 기념비적인 논문이었다. 아인슈타인은 이듬해에 프리드만의 논문에 대한 비판을 같은 학술지에 제출하며 수차례 논쟁을 펼쳤으나, 끝내 프리드만의 해석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이후 미국의 천문학자 에드윈 허블에 의해 우주 팽창의 증거가 관측되면서 결국 아인슈타인의 실수가 입증됐다. 그는 “우주항을 도입한 것은 이론적으로 어떻게 해도 만족스럽지 못하다”며 “다시는 이 멍청한 짓을 언급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진화론 증거 찾은 종 불변론자
생물학에서 가장 위대한 발견 중 하나인 진화론의 증거를 찰스 다윈보다 먼저 발견했으면서 오히려 이를 흑역사로 장식한 한 과학자도 있다. 19세기 프랑스의 생물학자로 당시 ‘생물학계의 독재자’라고 불리던 조르주 퀴비에다.
비교해부학자이자 박물학자였던 퀴비에는 형태를 바탕으로 생물 분류체계를 정립했다. 그는 생물을 분류하기 위해 신체 기관의 상관관계를 이용했는데, 신체 기관의 해부학적 특징, 위치, 기능 등을 주로 살폈다. 예를 들어 현대 진화학에서는 같은 문(phylum)에 속하면 공통 조상에서 유래했다고 보는데, 신체기관의 해부학적 특징을 광범위하게 비교·분석한 그의 업적은 진화론을 뒷받침하고 있다. 1965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한 프랑스의 생물학자 자크 모노가 “퀴비에의 업적 덕분에 진화론이 옳다는 사실이 증명됐다”고 말했을 정도다.
하지만 정작 퀴비에는 종의 ‘불변’을 열렬히 주장했다. 그는 자신의 저서에서 “각종 생물간 고유한 차이점이 외부 요인에 의해서 유발됐을 가능성을 보여주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고 말했다. 심지어 화석의 지층 연대가 오래될수록 단순한 구조의 생물이, 현대에 가까워질수록 복잡한 구조의 생물이 나타난다는 사실을 다윈보다 앞서 발견했지만, 그는 지구가 몇 차례 대재난을 겪었고 이때마다 신이 새로운 생물을 창조했기 때문이라고 해석했다. 과학사가들은 그를 이렇게 평가했다. “퀴비에는 낡은 것을 답습하며 현재에 안주했다. 그는 박학다식하고 뛰어난 지성을 갖췄지만, 혁명가는 아니었다.”
사실 흑역사라는 단어는 과학자들에게 썩 어울리지는 않는다. 과학사는 언제나 논쟁과 실패 끝에 찾아온 합의의 역사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과학자들도 인간인지라 통념에 갇혀 잘못된 해석을 하기도 하고, 가끔은 성격적인 결점으로 경쟁자를 깎아내리거나 맹목적인 애국심으로 인류애에 반하는 살상무기 개발에 참여하는 등 잘못을 저지르기도 한다. 애국심에 맹독성 화학병기를 제조한 프리츠 하버, 저서에서 젊은 연구자의 독자적인 업적을 마치 자신의 업적을 가로챈 양 깎아내린 스티븐 호킹 등 흑역사를 피해가지 못한 위대한 과학자는 수두룩하다.
현대과학은 과거보다 더욱 복잡하고 넓어졌다. 과학자들은 이전보다 더 복잡하고 어려운 상황을 마주하고 있고, 실패 가능성도 높아졌다. 오늘날의 과학자는 어떤 흑역사를 쓰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