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끄악! 저 진짜 못하겠어요. 뚜껑만이라도 대신 열어봐 주시면 안 될까요?” 조용하던 과학동아 편집실이 시끌시끌해졌습니다.
살아있는 밀웜(갈색거저리 애벌레) 200마리가 꿈틀거리고 있는 택배 상자 때문입니다. 실험을 위해 호기롭게 주문하긴 했지만, 막상 밀웜이 들어있는 상자를 마주하니 뚜껑을 열 엄두도 나지 않았죠. 결국, 지나가던 어린이수학동아의 이채린 기자가 뚜껑을 열었습니다. “생각보다 귀여운데요?”라는 말에 용기를 얻고 겨우 밀웜과 첫인사를 할 수 있었습니다.
밀웜은 단백질이 풍부해 반려동물 사료나 식용으로 사육되곤 합니다. 하지만 막내기자가 밀웜을 준비한 건 먹기 위해서가 아니라 ‘먹이기’ 위해서입니다. 2015년 9월, 국제학술지 ‘환경과학과 기술’에는 밀웜의 독특한 식사 메뉴에 대한 연구결과가 발표됐습니다. 밀웜이 플라스틱의 한 종류인 폴리스타이렌(PS)을 먹이로 삼을 수 있다는 내용이었죠. doi: 10.1021/acs.est.5b02661, doi: 10.1021/acs.est.5b02663
양 준 중국 북경 항공항천대 환경 및 화학과 교수팀은 밀웜 1500마리를 한 달간 PS만 먹여 키웠습니다. 밀웜이 씹어 삼킨 PS의 탄소는 장 내에서 이산화탄소와 바이오매스로 전환돼 대변과 함께 배출되거나 지방산으로 바뀌었습니다. 연구팀은 함께 발표한 다른 논문에서 플라스틱도 소화하는 밀웜의 능력은 장내 미생물 ‘엑시구오박테리움(Exiguobacterium sp. YT2)’ 덕분이라는 사실도 밝혔습니다. 이런 미생물로 플라스틱 폐기물을 분해하려는 시도도 활발합니다(98쪽 기사 참고).
플라스틱 먹는 벌레라니, 가만히 있을 수 없었습니다. 몸길이 약 1.5cm인 밀웜 200마리를 PS만 먹여 키워보기로 마음먹었습니다. 마침 편집실 구석에 우드록이 쌓여 있군요. 우드록은 PS 거품을 납작한 모양으로 굳혀 만듭니다. 훌륭한 먹이가 될 겁니다. 밀웜 사육통 안에 들어있던 먹이를 모두 버리고 5mm 두께 우드록을 가로·세로 1cm인 정사각형 모양으로 자른 조각 20개를 넣었습니다. 수분 공급을 위해 간혹 물을 한두 방울씩 떨어뜨려 주면서 키운 결과, 밀웜 200마리는 9일 만에 우드록 조각 20개를 모두 먹어치우는 데 성공했습니다. 가만히 귀를 기울이면 밀웜이 우드록을 씹는 소리가 마치 빗소리처럼 사각사각 들려옵니다. ‘ASMR’ 못지않게 운치 있는 소리입니다. 밀웜이 정말 귀여워 보이기 시작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