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귓가에 맴도는 ‘대-한민국’과 ‘오- 필승 코리아’, 그리고 눈에 아른거리는 거대한 붉은 물결. 바로 우리나라 축구대표팀을 응원하는 ‘붉은악마’의 모습이다. 붉은색은 한바탕 유행을 몰고 왔고, 붉은색을 띤 것은 무엇이나 붉은악마처럼 보였다. 그런데 우주에도 우리대표팀을 응원하는 붉은악마가 있었다.

지난해 말 미항공우주국은 허블우주망원경이 찍은 사진 한장을 우주에서 지구로 보낸 연하장이라며 공개한 적이 있다. 사진 속의 주인공은 뜻밖에 납량특집극에나 나올 것 같은 해골을 닮은 성운이었다. ‘유령머리’라는 별칭을 가진 이 성운은 우리은하의 이웃인 대마젤란은하에 있다. 사진을 보면 눈에 도깨비불을 켠 무서운 악마의 모습이 연상된다.

6월 한달을 뜨겁게 달궜던 월드컵에서 붉은악마는 전세계에 주목을 받았다. 미국 휴스턴 크로니클지의 칼럼은 길거리응원에 대해 흥미롭게 표현했다. “똑같이 붉은 옷을 입은 수많은 사람들이 신의 부름이라도 받았다는 듯이 하늘을 향해 팔을 벌리고 ‘이상한 구호’를 외쳐댔는데, 그것은 바로 ‘축구신’을 향한 것이었다”고.

붉은악마에게는 대표팀의 승리를 지켜주는 수호신이 있다. 깃발과 머플러에 그려진 도깨비같이 생긴 치우천왕이다. ‘한단고기’에 따르면 치우천왕은 환인이 다스리던 환국의 뒤를 이어 환웅천왕이 건국했다고 하는 배달국의 14대 천왕으로, 기원전 2707년에 즉위해 1백9년 동안 나라를 다스렸다. 머리는 구리로, 이마는 쇠로 된 치우천왕은 큰 안개를 일으키며 신처럼 용감했다. 광석을 캐 철을 주조하고 병기를 제작하는 기술이 뛰어났다. 우레와 비를 크게 만들어 산과 강을 바꾼다는 뜻인 치우(蚩尤)에 어울리는 능력이다.

치우천왕은 후대에 고구려, 백제, 신라뿐 아니라 중국에서도 전쟁의 신, 군신으로 추앙되기도 했다. 우리나라 역대 왕릉에도 새겨진 도깨비조각이 바로 국가를 수호하는 신인 치우천왕이다. 민담에 전해오는 도깨비도 바로 이 치우천왕이 변형된 모습이다.

유령머리 성운은 어떻게 보면 붉은악마가 한국 축구의 상징으로 내세운 치우천왕의 모습을 닮은 것 같다. 아니면 붉은악마 응원단에 참여한 누군가가 얼굴에 하얗게 칠한 채 머리에 뿔을 달고 목에는 붉은 머플러나 스카프를 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또 자세히 보면 목 주변에 감긴 붉은색 머플러에도 치우천왕의 모습이 언뜻 비치는 것도 같다. 왼쪽에는 그라운드의 잔디와 같은 초록색도 보이니 그럴듯하다.

우주의 붉은악마는 왜 이런 모습일까.
 

하얗게 이글거리는 눈빛의 정체

유령머리 성운은 별이 탄생하는 거대한 성운의 일부분이다. 먼저 유령머리 성운에 다양하게 보이는 색은 수소와 산소에서 나온 빛깔이 빚어낸 작품이다. 머플러의 붉은색과 잘 보이지 않는 파란색은 주변 별에 의해 가열된 수소가스가 내뿜은 빛깔이다. 그라운드를 연상시키는 초록색은 달아오른 산소가스에서 나온 빛깔이다. 산소가스에 가해진 에너지는 강력한 항성풍(별에서 나오는 고속도 입자의 흐름)에서 나온다. 항성풍의 원천은 사진 밖에 있는 무거운 별이다.

얼굴 부분의 하얀색은 이들 세가지 색, 즉 붉은색·파란색·초록색 빛이 합쳐진 결과다. 이 부분에는 별 탄생지역의 뜨겁고 무거운 별들이 숨어있다. 이들 별에서 나온 강한 빛이 주변 가스지역에 얼굴 같이 둥근 모양을 만들어낸 것이다. 또 하얀 얼굴에는 도깨비불처럼 밝게 빛나는 두눈이 보인다. 하얗게 이글거리는 두눈 역시 수소와 산소가 덩어리진 채 빛나는 모습이다. 오른쪽눈은 무거운 별 하나에서 나오는 뜨겁고 강한 빛과 강력한 항성풍이 만들어낸 것이다. 반면 왼쪽눈은 무거운 별 여럿의 합작품인데다 우주먼지까지 가세해 훨씬 복잡하게 보인다. 두눈에 위치한 무거운 별들은 지난 1만년 이내에 형성된 것으로 추측된다. 새롭게 태어난 별들에서 나온 강력한 빛이 자신들이 태어난 가스장막을 아직 걷어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번 월드컵에서 우리나라 축구대표팀이 세계를 놀라게 하는 성적을 거둔 이유가 우주의 붉은악마 때문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