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하게 보이는 첫 인상. 문을 열고 들어오는 모습이 조심스럽다. P학생은 이제 곧 3학년이 된다. 2학년 때까지는 전체 학생 271명 중 전교 1, 2등을 해왔다.
“성실하구나. 문과와 이과 중에 뭘 선택하고 싶어?”
“저는 과학이 좋아요. 그래서 이과에 가고 싶어요.”
“이과를 가고 싶다면 수학이나 과학은 성적이 잘 나오는 편이니?”
“학교 성적은 잘 나와요. 그렇다고 수학이나 과학을 독보적으로 잘하는 건 아닌 것 같아요.”
P학생은 비교적 자신의 성적을 잘 파악하고 있는 편이었다. 전교 등수가 높고 수학이나 과학 내신성적이 매우 좋지만 경시대회나 올림피아드 수학·과학 문제를 잘 풀 정도의 특별한 재능이 있다고 할 수는 없다. 과학고를 준비하기에 충분한 내신성적이지만 수학·과학에 크게 자신감이 없어서 자립형 사립고(이하 자사고)를 목표로 공부하고 있다.
그렇지만 시간이 남아 있기 때문에 문과와 이과를 결정하는 것은 좀 더 신중하게 고민해도 좋다. 꿈이나 관심 분야가 얼마든지 바뀔 수 있는 때이다. 문과에 갈지, 이과에 갈지를 결정하려면 자신이 좋아하는 과목, 성적이 잘 나오는 과목을 모두 고려해야 한다.
“국어는 시나 소설, 수필 쪽이 좋으니, 아니면 논설문 쪽이 좋으니?”
“논설문이요.”
“사회는 좋아하니?”
“역사는 좋아요. 그렇지만 세계사나 지리 분야는 별로 관심이 안 가요.”
P학생은 수학, 과학 성적이 좋은 편이고 좋아하는 과목도 수학과 과학이기 때문에 이과를 준비하는 것이 좋다.
문제는 P학생이 욕심이 없다는 것이다. 욕심이라는 것은 자신이 세운 목표에 대해 애착을 갖고 열정적으로 공부를 하거나 연구해서 목표를 이루려는 마음가짐을 말한다. ‘공부를 더 열심히 해야지’ 하고 생각은 하지만 친구들이 옆에서 같이 놀자고 하면 거절하지 못하고 함께 논다.
“8명의 친구가 뭉쳐 다녀요. 같이 매점도 가고 학교 마치고 친구 집에 모여서 놀기도 해요. 친구가 놀자고 하면 거절하지 못하겠어요. 마음이 상할까봐요.”
“욕심, 의지가 없구나. 적당히 성적이 잘 나오고 혼나지 않는 선까지만 공부를 하게 되지. 그럼 그 선을 넘어서 너만의 특기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성적이 올라가지는 않아. 특기는 계획을 칼같이 지켜야 가질 수 있어. 친구가 놀자 그래도 네가 할 것이 있다면 거절해야 하는 거야.”
거절하지 않고 놀면 친구들과의 사이는 좋을 수 있겠지만 길게 봤을 때 좋지 않다.
“지금은 벼락치기를 해도 점수를 받을 수 있지만, 앞으로 학년이 올라갈수록 한계를 느낄 거야. 네 자신이 느끼고 있잖아. 남은 1년 잘 준비해서 고등학교 때 힘들지 않게 해야 해. 이제는 친구들에게 ‘No!’라고 할 수 있어야 해. 너를 생각해야지, 불안함이 마음속에 있잖아.”
P학생은 자사고를 목표로 공부를 하고 있다. 지금 당장 경시대회에 나가거나 올림피아드에 나가지 않더라도 고등학교 진학 후를 생각해서 일단 방학 때는 경시대회나 올림피아드 기출문제를 공부하는 것이 좋다. 경시대회 문제를 공부하면 중학교에서 배운 것을 심화할 수 있고 고등학교 선행학습도 할 수 있다.
“앞으로는 점점 융합과학이 중요해. 고등학교 1학년 과학 교과서를 보면 물리, 화학, 생물, 지구과학이 섞여 있단다. 지금까지는 이 네 과목을 따로따로 생각했지만, 지금부터 연결해서 생각하는 연습을 미리 해보는 거야. 공부하면서 ‘재미있겠다’ 싶은 분야의 책은 따로 찾아서 읽어. 과학동아를 읽는 것도 좋아”
“저…. 책읽는 것 좋아하지 않아요.”
이과를 희망하는 중학생이라면 과학에 관련된 책을 되도록 많이 읽어 두는 게 좋다. 고등학교 입학 후에는 책을 읽을 시간이 더 줄어든다. 요즘 10대 청소년은 첨단 영상기기와 영상매체에 익숙한 세대이기 때문에 책을 많이 읽는 학생이 귀하다. 그런 P학생에게 상담선생님은 다큐멘터리를 보는 것을 권했다.
“영상독서를 하는 거야. 영상으로라도 봐. 다큐멘터리는 책 이상으로 깊은 내용을 담고 있는 작품이 꽤 많아. 우주, 환경, 생물에 관한 것들 여러 종류가 있지. 신기하게도 이런 영상을 보고 관련된 책을 읽으면 영상이 떠오르면서 책이 더 이해가 잘돼. 직접 경험해본 분야에 관한 글은 읽을 때 이해가 더 잘 되듯이 다큐멘터리로 간접경험을 한 분야도 책을 읽으면 더 재밌어.”
4년 후면 대학에 들어간다. 지금부터 준비해야 4년 후에 웃을 수 있다. 영상독서이건 실제 책을 읽는 것이건 책을 많이 읽는 것이 좋다.
“특별히 꿈은 없어요.”
“꿈도 공부를 해야 찾을 수 있어. 공부를 해보니 ‘생물, 화학, 지구과학 모두 좋더라’면 그럼 환경공학을 할 수 있지, 그런데 공부를 더 하다보니 ‘건축, 디자인도 재밌는 것 같다’면 환경디자인 건축과를 가면 되지. ‘이 공부가 나한테 맞을까’ 생각하면서 공부하면 재밌을 거야.”
“이제 3학년이 되는구나. 꿈이 뭐야?”
“잘 모르겠어요. 아직….”
꿈이 아직 없다고 대답하는 M학생의 목소리가 어쩐지 씩씩하고 밝다. 쾌활한 성격의 M학생은 친구들과도 사이가 좋다. 1, 2학년 모두 내신성적이 평균 2등급이다.
“꿈이 있어야 해. 꿈이 있으면 달라질 것들이 많아. 하고 싶은 게 있으면 열정이 생기는 거야. 그 열정으로 공부하는 거지. 그런데 열정이 없이 그냥 ‘열심히 해서 좋은 대학에 가야겠다’ 하는 건 한계가 있어. ‘좋은 대학에 왜 가야하지? 좋은 대학은 어디지? 거기 나오면 뭐하지? 취업하면 정말 행복할까?’ 그런 생각이 들거야.”
“들죠. 그런데 저 꿈은 있었는데 부모님이 반대를 좀 하셨어요. 그 꿈을 따라가면 ‘벌이’가 없어진다고 하셨어요.”
M학생의 꿈은 생물학자였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꿈꿨다. 한동안 잊고 지내다가 1학년 때 문과, 이과를 선택할 때 확실히 생물학자가 되고 싶다고 느꼈다. 그렇지만 부모님께 말씀 드렸더니 생물학을 하면 할 게 아무 것도 없다는 말이 돌아왔다. 부모도 진학이나 진로의 전문가는 아니다. 그러다 보니 학생들의 꿈을 꺾는 잘못된 판단을 하기도 한다. 학생이 뭔가를 하고 싶다고 말한다면 잘 모르면서 반대하는 것은 금물이다. 되도록 용기를 북돋아 주고 격려하면 학생들은 자신의 목표를 세우고 열심히 공부할 수 있다. 진학, 진로 정보가 궁금한 학부모는 교육청을 이용해 보자. 인천서부교육지원청은 현직교사들이 사이버 상담코너를 통해 학부모들의 진로, 진학 관련 질문에 답을 하는 서비스를 제공한다. 경남교육청도 경남학부모지원센터를 마련해 학부모강좌, 자녀교육 역량 강화를 위한 학부모교실 등을 운영한다. 이밖에도 충남교육청 등 교육청별로 학부모지원서비스를 하고 있다.
“사람이 방향을 잃고 가만히 있으면 미래가 걱정스럽지. 그러니 아무 생각도 하기 싫어서 게임에 빠지기도 하지. 그렇지만 게임을 끝내는 순간 밀린 숙제와 공부에 대한 불안감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을 수밖에 없어.”
그렇다고 M학생이 꿈을 잃은 것은 완전히 부모의 책임은 아니다. 대부분의 부모가 그렇다. 그런 반대 속에서도 자신의 꿈을 잃지 않고 키워가는 학생도 있다. 꿈을 지키지 못한 자신에게 화가 나면 부모를 원망하게 된다. 하지만 자신의 책임도 있다는 것을 명심하자.
“그럼 지금부터 네 꿈을 이루는 길을 찾아보자. 네가 좋아하는 학문이 생물학이잖아. 생물학을 전공하고 대학원에 가서 특별한 연구를 하는 교수가 될 수도 있고, 생물학을 해서 아이들에게 즐거운 생물학을 가르치고 싶다면 사범대나 교대에 가면 돼. 공부하다 보니 동물에 대해 관심이 생긴다면 수의학과에 갈 수 있지. ‘요즘 보니 신종 바이러스 때문에 동물들이 죽는데 내가 해결하고 싶다’ 그러면 예방의학을 공부할 수도 있고 바이러스를 연구해도 되지. 굶어 죽지 않아.”
“저 이제부터라도 열심히 공부할래요.”
시원시원한 성격의 M학생답게 대답도 시원하다. 성격이 좋은 만큼 성적도 좋아야 한다. 상담선생님은 M학생에게 “늦게 깨달았으면 더 늦게까지 공부하면 된다”며 “남들이 공부할 때 놀았으니 이제 남들 놀 때 공부하면 된다”고 격려했다.
지금 목표학과를 바꾸는 것은 좋지 않다. 최상위권 대학을 가지 않더라도 그 학교에서 독보적인 학생이 된 뒤, 더 좋은 학교의 대학원을 가면 된다. 좋은 대학원에 가면 좋은 연구소에 들어가 연구할 수 있다. 본격적인 연구는 대학원 과정에서 하기 때문에 대학원도 중요하다.
현행 입시의 여러 전형, 그 중에서도 특히 입학사정관전형은 성적이 점차 오르는 변화를 보이는 학생을 선호한다. 따라서 1~2학년 때 점수가 높지 않더라도 포기하지 말고 성적을 조금씩이라도 올리는 것이 좋다.
“너는 이과이기 때문에 특히 탐구영역과 수리영역이 중요해. 내신도 마찬가지야. 수학과 과학에 가산점이 있는 곳이 많아. 이제 곧 3월 학력평가를 보게 될 거야. 아마 점수가 잘 나올 거야. 중요한 건 재수생들이 함께 시험을 보기 시작하는 6월 학력평가야.”
M학생은 학력평가에서 수리영역 2~3점짜리 문제를 다풀지 못했다. 그러다 보니 2~3등급을 오간다. 하지만 배점이 높은 문제를 다 푼 과학은 1등급을 유지하고 있다.
“수학, 과학 할 것 없이 배점 높은 문제를 풀고 틀린 문제는 인쇄해서 벽에 붙여두는 거야. 문제가 해결되면 떼고 다른 문제를 붙이고 하면 자주 볼 수도 있으니 머릿속에 새겨질 거야.”
고등학교 2학년 겨울방학과 2월은 매우 중요하다. 자신이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부분을 메울 수 있는 마지막 기회다. M학생은 수학 중에서도 적분을 어려워한다. 그렇다면 방학 때 EBS강의나 학원 강의를 들어서라도 공부를 해야한다. 문제집을 사서 3월 전까지 완전히 끝낸다는 생각으로 공부해야 한다. 그렇게 하고 3월 학력평가를 보면 성적이 잘 나올 수 있다. 3월의 성적을 6월에도 유지하는 것이 관건이다.
“수학, 과학이 중요해. 수학에서 약한 부분을 알고 있다면 그 부분 내용정리를 해보자. 문제집을 놓으면 안 돼. 어려운 문제집도 풀어. 각 단원별로 배점이 높은 문제를 2~3문제씩 뽑아서 푸는 것도 좋아. 그리고 일주일에 한번씩은 꼭 전과목 모의고사 한 회를 풀어 보는 거야. 언어, 외국어, 수리, 탐구 모두 풀어봐.”
학생들은 공부를 할 때 불안한 마음에 여러권의 문제집을 사서 풀려고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여러 권을 푸는것보다 2, 3권을 반복해서 푸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다. 한번 풀고, 틀린 것은 해답을 보고 풀었다면 그 문제를 벽에 붙여 놓고 해답 없이 풀 수 있을 때까지 반복해서 풀어 자신의 것으로 만들자.
M학생은 상위권 대학 수시 지원을 희망하고 있다. 최저등급을 맞추기 위해서는 수능 성적도 신경써야 한다. 따라서 수학과 과학은 1등급을 받도록 공부해야 한다. 그리고 M학생이 목표로 하는 학교는 수리·과학 논술을 보는 학교이기 때문에 수리·과학 논술도 준비해야 한다.
“6월 학력평가가 끝나면 수리논술 준비를 시작하면 좋아. 일단 수리논술을 열심히 하고 수능을 잘 받으면 성공할 거야.”
언어는 2~3등급, 외국어는 3~4등급으로 탐구나 수리에 비해 상대적으로 성적이 잘 나오지 않는다. 역시 3월 전에 실력을 만들어야 한다. 지금부터는 시간관리가 중요하다. 3월 전에는 언어:수리:외국어:탐구=1:5:1:3정도로 시간 분배하는 것을 권한다. 언어는 EBS의 인터넷 강의를 적극적으로 이용하자. 틈틈이 시간을 내서 들으면 시간 관리에도 좋다. 여러 강의를 들어보고 자신과 잘 맞는 강의를 찾아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