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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를 바꾼 아인슈타인의 논문3

특수상대론, 브라운운동, 광양자가설


막스 플랑크(왼쪽)와 아인슈타인. 1929년 플랑크는 아인슈타인에게 플랑크 메달을 수여했다.


1905년은 아인슈타인(1879-1955)이 특수상대성이론, 광양자가설, 브라운운동이론 등 물리학사에 길이 남을 3편의 논문을 발표한 해다. 당시 그는 세상에 전혀 알려지지 않은 26세의 무명 과학자에 불과했다.

아인슈타인은 1879년 3월 14일 독일 울름에서 태어났다. 그는 학교생활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해 고등학교를 중퇴했다. 그 뒤 사업에 실패한 아버지를 따라 이탈리아, 스위스 등으로 떠돌다가 아버지와 같은 전기공학자가 되겠다고 결심하고 재수 끝에 취리히공과대학에 입학했다. 물리학에 흠뻑 빠지기 시작한 것은 그때부터였다.

대학을 졸업한 아인슈타인에게 앞길은 그리 평탄하지 못했다. 일자리가 없어 고등학교 임시교사와 가정교사를 전전하면서 겨우 입에 풀칠이나 하는 형편이었다. 이 와중에 그를 따뜻하게 품어준 이는 같은 과 친구인 밀레바 마리치였다. 그녀는 가난한 아인슈타인과 동거하며 딸 리제를 낳았다. 아인슈타인은 대학을 졸업한 2년 뒤에야 스위스연방특허국에 일자리를 얻었다. 친구인 수학자 마르셀 그로스만이 아버지의 연줄을 동원했던 것이다. 그곳에서 3년간 아인슈타인은 조용한 사색을 통해 3개의 논문을 준비한 후 1905년에 발표했다. 그런데 이 3편의 논문이 세상을 흔들어 놓을 줄이야.


사촌이자 두번째 부인인 엘자와 함께


특수상대성이론

당시 물리학계는 몇가지 딜레마에 빠져 있었다. 우선 뉴턴 물리학을 설명하는데 절대적으로 필요한 에테르를 찾지 못했다. 또 19세기 말 발견된 X선, 베크렐선 등과 같은 고에너지 방사선들이 어디서 나오는지를 알지 못했다. 그리고 광전효과의 원리를 설명하지 못했다.

20세기 초까지 물리학자들은 빛을 파동이라고 생각했다. 1873년 영국의 물리학자 맥스웰(1831-1879)은 빛이 전자기파의 일종이라는 것을 밝혀냈다. 또 빛은 회절(빛이 모서리를 돌아 구부러지는 성질)과 간섭(두개의 빛이 서로 만날 때 서로 보강되거나 상쇄되는 성질) 현상을 보이기 때문에, 빛이 파동이라는 사실은 추호도 의심할 수 없었다.

그래서 물리학자들은 파동인 빛을 전달할 매질을 찾아 나섰다. 마치 소리가 공기라는 매질을 통해 전달되듯이. 그런데 빛을 전달한다고 생각된 에테르(그리스어로 ‘불꽃’이라는 뜻)가 1887년 미국의 두 과학자 앨버트 마이컬슨(1852-1931)과 에드워드 몰리(1838-1923)의 실험을 통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밝혀졌다. 그들은 빛의 속도가 언제나 일정하다는 사실만 알아냈을 뿐이다.

에테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은 절대좌표가 없다는 것을 뜻한다. 이는 절대운동을 기술할 좌표가 필요했던 당시의 물리학자들을 당황하게 만들었다. 기차가 달릴 때 움직이지 않는 배경이 절대좌표가 돼 기차의 속도를 결정한다. 그런데 배경인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돌고, 또 태양이 은하 주위를 돌기 때문에 사실상 절대좌표란 존재하지 않는다. 결국 절대좌표로 활용하려고 했던 에테르의 존재가 부정되자 지금까지 절대좌표를 기준으로 서술해온 뉴턴(1642-1727)의 운동법칙이 설자리를 잃었다.

그런데 혜성처럼 나타난 아인슈타인의 특수상대성이론이 뉴턴물리학이 안고 있는 숙제를 풀어냈다. 즉 등속운동할 경우 관찰자에 관계없이 물리법칙은 항상 동일하다는 것을 설명함으로써 뉴턴물리학에서 내세웠던 절대좌표의 필요성을 없앴다. 또 빛의 속도는 항상 일정하며, 어떤 물질도 빛의 속도보다 빨리 달릴 수 없음도 증명했다.

특수상대성이론은 2백여년 동안 물리학계를 지배해온 뉴턴 물리학을 무너뜨렸다. 또 지금까지 전혀 별개의 것으로 생각됐던 시간과 공간이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음을 밝혀냈으며, 우리에게 4차원의 시공간을 일깨워주었다.

하지만 이보다 일반인들에게 더욱 잘 알려진 것은 특수상대성이론에서 유도된 질량에너지등가원리(E=mc²)이다. 이것은 질량은 곧 에너지라는 것을 밝힘으로써 방사성물질에서 나오는 에너지가 어떻게 생기는지를 설명해주었다. 외부에서 에너지가 공급되지 않더라도 질량이 붕괴되면 엄청난 에너지가 만들어진다는 것을 알려준 것이다. 결국 파괴될 위기에 처했던 에너지보존법칙은 질량에너지보존법칙으로 되살아났다. 게다가 질량에너지등가원리는 원자력에너지를 끄집어냄으로써 20세기 운명을 바꾸어놓았고, 태양과 별의 에너지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를 설명해주었다.

광양자가설

빛이 파동이라는 믿음은 또 하나의 현상을 설명하는데 걸림돌이 되고 있었다. 빛을 쬐면 금속판에서 전자가 튀어나온다. 이때 빛의 세기를 증가시키면 전자가 많이 나오고, 진동수를 증가시키면 방출되는 전자의 에너지가 커진다. 이를 광전효과라고 한다. 그런데 빛이 파동이라고 생각하면 빛의 세기를 크게 할 때 튀어나오는 전자의 에너지가 증가해야 한다. 현상과 맞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아인슈타인이 빛을 입자(광자)라고 가정함으로써 광전효과의 원리를 말끔하게 설명해냈다. 그 공로로 아인슈타인은 1921년 노벨물리학상을 받았다.

아인슈타인 이전에 빛을 입자와 비슷한 에너지 덩어리(양자)로 본 사람이 있었다. 독일의 물리학자 플랑크(1858-1947)였다. 그는 1900년 빛이 진동수에 비례하는 에너지 덩어리로 방출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그러나 양자물리학의 세계를 처음으로 연 그의 연구는 아인슈타인이 광전효과를 설명하기 전까지 주목받지 못했다. 결국 플랑크는 아인슈타인 덕분에 빛을 보았고, 1918년 양자론으로 아인슈타인보다 먼저 노벨물리학상을 받았다.

아인슈타인의 광양자가설은 양자론을 꽃피우고 수많은 발명품들이 태어나는데 밑거름이 됐다. 텔레비전, 태양전지, 사진 노출계, 도난경보기, 자동문 등은 빛이 전기로 전환되는 광전효과를 이용한 것이다.

그러나 아인슈타인은 빛이 입자이면서 어떻게 파동의 성질을 가질 수 있는지를 설명하진 못했다. 빛(전자기파를 포함해)이 입자와 파동의 이중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1924년 프랑스 물리학자 루이 드 브로이(1892-1987)에 의해 풀렸다.

1905년 아인슈타인이 발표했던 또 하나의 논문은 브라운운동이론이다. 1827년 영국의 식물학자 로버트 브라운(1773-1858)은 꽃가루를 물 위에 띄우고 현미경으로 그 움직임을 관찰한 결과 꽃가루가 매우 무질서하게 움직인다는 것을 알아냈다. 이것이 브라운운동이다. 그런데 그 원리를 아인슈타인이 수학적으로 설명해낸 것이다.

1905년 아인슈타인이 발표한 광양자가설(3월), 브라운운동이론(5월), 특수상대성이론(6월) 등의 논문은 불과 몇개월 만에 완성됐다. 마치 계시를 받은 것처럼 그는 밤을 지새우며 논문들을 줄줄이 썼고, 논문이 완성된 후 기진맥진했다고 한다. 그래서 과학사가들은 1905년을 ‘아인슈타인의 기적의 해’라고 부르기도 한다. 하지만 이것은 아인슈타인의 출발에 불과했다. 그는 제2의 혁명을 준비하고 있었다. 1916년 발표된 일반상대성이론이 바로 그것이다.

1999년 02월 과학동아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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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아일보사 조사연구팀
  • 홍대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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