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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과 패션만큼이나 비건 열풍이 불고 있는 분야는 화장품이다. 그간 화장품 개발을 위해 많은 동물이 실험으로 희생돼 왔다. 하지만 최근 비건 화장품 덕분에 동물실험을 하지 않거나 동물에게 얻은 원료를 사용하지 않고도 피부를 더 건강하고 아름답게 꾸밀 수 있게 됐다.

 

2019년 국내에서 실험에 사용된 동물은 약 371만 마리다. 대부분 기초 과학기술 연구와 의약품 개발 등에 활용됐다. 실험실에서 생을 마감하는 동물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인류가 과학 지식을 축적하고 의약품과 의료기술을 개발해 과거보다 건강한 생활을 영위할 수 있게 된 데에는 실험동물의 역할이 컸다.


실험동물 중 일부는 현대인의 생활필수품 중 하나가 된 화장품 연구개발을 위해 희생됐다. 의약품이나 의료기술에 비해 사람들의 생명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품목이 아니다 보니 ‘과연 화장품 실험에 꼭 동물실험이 필요할까’라는 의문에 줄곧 부딪혀 왔다.


여기에 최근 동물권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면서 소비자들 사이에서는 동물성 원료를 사용하지 않거나 동물실험을 거치지 않은 ‘비건 화장품’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최근 MZ세대(1980년대~2000년대 중반 출생 세대)를 필두로 비건 라이프 스타일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며 “이들의 소비패턴은 단순히 제품을 구매하는 것을 넘어서 구매 행위를 통해 사회적인 의미를 찾는 것으로 분석할 수 있다”고 말했다.

 

 

기능·안전성 확인 실험실에서 동물 해방


그간 화장품 개발에 동물실험이 필요했던 가장 큰 이유는 안전이다. 화장품은 종류에 따라 피부에 흡수되거나 밀착해야 하는데, 일부 성분은 이 과정에서 피부에 자극이나 염증을 유발할 수 있다. 실제로 일부 소비자들은 화장품에 의한 부작용을 겪기도 한다. 화장품을 사용한 후에 과도한 자극성 반응으로 염증이 일어나거나 발진, 가려움증 등으로 병원을 찾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보고되고 있다.


이런 문제를 확인하기 위해 실시됐던 과거의 동물실험은 동물 복지 측면에서 문제가 있었다. 안구 자극성을 확인하기 위해 실험실에 토끼 수십~수백 마리를 가둬두고 반복적으로 눈에 화장품을 바르는 식이었다. 이에 대한 비판이 많아지고 동물복지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자, 최근에는 유럽연합(EU)을 필두로 대부분의 국가에서 화장품의 동물실험을 금지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2016년 화장품법을 개정하며 동물실험을 한 화장품의 유통과 판매를 금지했다. 다만 동물대체시험법이 없는 경우에는 동물실험을 거쳐야 하는 경우가 여전히 남아있고 화장품을 수출하려면 동물실험을 필수로 거쳐야 하는 국가도 있어 동물실험이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다.


동물실험을 하지 않는 화장품은 대체시험법을 이용한다. 인간의 장기와 비슷하게 배양해 낸 인공조직 모델을 활용한 동물대체시험법이 대표적이다. EU에서는 2011년부터 5년간 동물대체실험법을 개발하는 SEURAT-1 프로젝트를 지원했다. 국내에서도 2009년 한국동물대체시험법검증센터(KoCVAM)가 설립되며 동물대체시험법의 개발과 검증을 돕고 있다.


현재 국내에서 시행 중인 동물대체시험법은 총 24종이다. 이 중 3종은 실험에 필요한 동물 수와 고통을 덜어 주는 시험법이다. 최근에는 세포를 입체(3D) 구조로 배양해 만든 인공장기인 인공피부와 인공각막 기술처럼, 동물의 희생이 전혀 없이 일정 수준 이상의 안전성을 확보하고 비용과 시간까지 줄이는 시험법도 있다. 이렇게 기존 동물실험을 완전히 대체한 것은 광독성, 피부흡수, 피부자극, 안자극 시험 등 21종이다. 임경민 이화여대 약학과 교수는 “동물대체시험법은 실험동물 사용을 줄이는 윤리적인 방법임은 물론 더 빠르고 저렴한 시험법으로 자리잡고 있다”며 “전 세계에서 동물대체시험법 연구가 이뤄지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2019년 임 교수팀은 국내 바이오기업인 바이오솔루션과 함께 인공각막 모델을 개발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동물대체시험법 가이드라인 승인을 받았다. 올해 4월에는 국내에서 개발한 ‘피부자극 동물대체시험법’이 OECD 시험 가이드라인으로 승인받아 6월 공표를 앞두고 있다.


동물실험을 줄이기 위해 인공지능(AI) 기술도 힘을 보태고 있다. 물질의 구조를 분석해 인체 독성을 예상하는 식이다. 안전성 평가 외에도 색조 화장품의 발색 시험과 기초, 기능성 화장품의 효능평가에도 동물대체시험법이 활발히 활용된다.


물론 동물대체시험법이 신뢰성 측면에서 기존의 동물실험을 모두 대체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화장품이 부작용을 일으키는 인체 시스템은 주로 면역계인데, 현재까지 개발된 인공피부 모델 중 그 무엇도 면역 세포에 의한 반응은 재현하지 못하고 있다. 연구자들은 면역 세포를 배양해 시험하는 방법을 병행하는 방법으로 이런 한계를 해결하고 있다. 장기간 관찰이 필요한 생식독성과 유전독성 연구도 동물실험을 완전히 대체할 방법으로 꾸준히 연구되고 있다.

 

 

 

대체 원료 사용 그 무엇도 뺏지 않다


동물실험을 피했다고 다 비건 화장품인 것은 아니다. 동물성 성분이 사용되지 않아야 진정한 의미의 비건 화장품이라고 부를 수 있다. 화장품에는 동물에서 추출한 원료가 수없이 사용된다. 동물성 지방에서 추출하는 글리세린이나 스쿠알란 등이 대표적이다.


넓은 의미로는 동물이 생존을 위해 수집한 물질이나 동물에게 꼭 필요한 물질을 사용하는 것도 동물성 원료에 속한다. 동물의 젖에서 추출한, 보습력이 뛰어나기로 유명한 마유크림, 벌집을 부숴야 채취가 가능한 비즈왁스(밀랍) 등이 동물성 원료다.


동물성 원료를 대체하기 위해서는 크게 두 가지 전략이 있다. 동일한 원료를 식물에서 추출하는 방법과, 효능이 비슷한 다른 원료로 동물성 원료를 대체하는 방법이다. 글리세린과 스쿠알란의 경우 사탕수수나 올리브 등 식물에서 분리, 정제해 얻는다. 색조 화장품에 활용되는 동물성 색소를 대체할 식물성 색소도 속속 개발되고 있다. 붉은색을 나타내는 화장품 원료 중 하나인 카민은 연지벌레라는 동물에서 추출하는 대표적인 동물성 색소다. 붉은색이 자주 쓰이는 립스틱, 아이섀도우 등 색조 화장품에서는 없어서는 안 될 원료이며 의류 염색과 딸기우유, 사탕 등 식품의 색을 내는 데에도 활용된다. 카민 100g을 얻기 위해서는 1만 5000마리의 연지벌레가 필요했는데, 현재는 꽃잎에서 추출한 식물성 색소가 개발돼 있다. 그 외에 채소류 등에서 추출하거나 미생물 대사로 만든 대체 색소가 개발되고 있다. 마유크림과 비즈왁스 또한 히알루론산이나 세라마이드와 같은 다른 보습 성분으로 대체되고 있다.


같은 원료를 동물과 식물 모두에게서 얻을 수 있는 경우, 소비자들이 동물성 원료를 사용한 화장품을 피하고 싶어도 이를 구분하기 힘들때가 있다. 사용하는 화장품이 동물실험으로 연구·개발됐는지를 알려면 논문과 화장품 허가정보를 찾아봐야 하는데 전문가가 아닌 이상 접근하기가 어렵다.
소비자가 진짜 비건 화장품을 쉽게 구분하려면 ‘비건 인증’을 참조하는 방법이 있다. 비건 인증은 화장품과 식품, 생활용품을 만드는 과정에서 동물성 원료가 사용됐는지, 동물실험이 이뤄졌는지 민간기관이 확인해 인증하는 제도다. 서류심사와 완제품 대상 동물성 DNA 검사 등을 거친다. 대표적인 비건 인증 기관으로는 비건 개념을 처음 만든 영국의 비건 소사이어티, 프랑스의 이브 비건 인증, 북미의 리핑 버니 등이 있다. 국내에서는 한국비건인증원이 식약처의 인증·보증을 받아 비건 제품을 인증하고 있다.


이들 단체의 역할은 단지 비건 인증을 부여하는 데만 그치지 않는다. 비건 화장품 업체 교육을 통해 정직한 비건 제품 문화를 만들고 비건 원료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도록 돕는 사업도 진행한다. 한국비건인증원은 “비건 화장품 제조사가 가장 어려워하는 부분이 어떤 원료가 동물성 또는 식물성인지를 구분하는 것인 만큼 협업을 통해 화장품 제조에 쓰일 비건 원료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며 “제조사와 협력해 소비자와 생산자 모두 이익을 얻도록 하는 것이 비건 인증의 목표”라고 설명했다. 

 

내 손으로 배합 누구나 즐기는 비건 라이프


비건 화장품은 전 세계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 미국 시장조사기업 그랜드뷰는 지난해 전세계 비건 화장품 시장 규모가 153억 달러(약 17조 원)에 이른다고 추정했다. 매년 평균 6%에 달하는 성장률을 보이고 있어 2025년에는 약 208억 달러(약 24조 원)까지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국내에서도 다양한 업체가 비건 화장품을 내놓고 있고, 비건 화장품 전문 브랜드도 늘어나는 추세다. 로션, 스킨같은 기초 화장품뿐만 아니라 동물성 색소가 사용되던 색조 화장품, 효능평가를 위해 동물실험을 거치던 기능성 화장품 분야에서도 비건 화장품이 출시되고 있다. 한국비건인증원에 따르면 3월 31일까지 국내에서 인증을 받은 비건 화장품 인증제품은 500여 개에 달한다. 비건 색조 화장품 전문 유통 기업인 언리시아의 이보람 마케터는 “비건 화장품은 일반 화장품보다 시장이 작아 사업성이 떨어지지만, 아름다움을 위해 동물이 희생되면 안 된다는 생각으로 제품을 출시하고 있다”며 “최근 미용 시장에서 비건이라는 키워드가 대두되는 만큼, 언젠가는 시장에서 비건이 아닌 브랜드를 찾기가 오히려 어려워질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비건 라이프를 지향하는 사람들은 비건 제품을 구입, 소비하는 것에서 벗어나서 직접 만들어 사용하기도 한다. 식습관으로 비건 라이프 스타일을 실천하는 이들이 직접 재료를 사서 요리하는 것처럼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로 화장품과 생활용품을 만들 수 있다. 소셜미디어(SNS)와 유튜브에서 활동하고 있는 크리에이터 이청아 씨도 이 중 하나다. 이 씨는 화장품은 물론 치약과 샴푸 등 생활용품까지 직접 홈메이드로 만들어 쓰고 있다. 이 씨는 “대학에 다니던 시절 실험 동물의 사연을 접하고 비건 라이프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며 “유튜브를 통해 비건 라이프를 기록하고 다른 이들과 소통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씨는 비건 원료로 생활용품을 만드는 방법도 소개하고 있다. 이 씨는 “비건 라이프 스타일이 절대선은 아니지만, 관심이 있다면 누구나 시도해볼 수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2021년 06월 과학동아 정보

  • 이병철 기자 기자
  • 사진

    이명희
  • 일러스트

    초식마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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