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마을 어귀 당산나무에는 희고 큰 새가 깃들어 살았다. 끝이 검은 날개를 푸드덕거리면 선비가 도포 자락을 휘날리듯 멋스러웠다. 사람들이 이 새에 붙인 이름은 큰 새라는 의미인 ‘한새’, 오늘날의 황새다. 한반도에서 모습을 감춘 지 50년이 지나 다시 우리 땅에 터를 잡은 새, 황새를 만나러 충남 예산으로 향했다.
2월 4일 오후, 충북 예산군 광시면 예산황새공원. 땅에 갑자기 커다란 그림자가 깔렸다. ‘위에 뭐가 지나가기에?’ 궁금해하며 고개를 들었다. 그때, 본 적 없이 큰 새 한 마리가 노을 진 하늘을 유유히 날아왔다. 놀란 기자가 채 묻기도 전에 하동수 예산황새공원 주임연구원이 이해한다는 듯한 표정으로 답했다. “저 새가 바로 황새입니다.”
이윽고 황새가 손을 뻗으면 닿을 것처럼 낮게 날아 머리 위를 지나갔다. “둥지로 되돌아가나 보네요.” 날갯짓 한번 없이 활강만으로 논을 가로지르는 우아한 뒷모습이었다.
논 생태계와 함께 스러진 마을의 터줏대감
황새 하면 떠오르는 말이 두 개가 있다. ‘아이를 물어다 준다’는 서양 민담과 ‘뱁새가 황새 따라가다 가랑이 찢어진다’는 우리 속담이다. 사실 두 이야기 속 황새는 생김새가 다르다. 한국을 비롯해 중국, 러시아 등 동아시아 지역에 서식하는 황새(Ciconia boyciana)는 유럽황새(Ciconia ciconia)와 근연종이기 때문이다. 둘을 구분하는 특징은 덩치와 부리 색이다. 동아시아의 황새는 유럽황새보다 몸집이 크다. 유럽황새는 부리가 붉은색인 반면, 동아시아의 황새 부리는 검은색이라 언뜻 보면 두루미(학)와 구별하기 어렵다.
실제로 옛 사람들은 굳이 두 새를 구별하지 않고 똑같이 상서롭게 여겼던 것으로 추정된다. 하 연구원은 “고미술품 가운데에는 커다랗고 흰 새가 소나무와 같은 나무에 앉아있는 그림이 심심치 않게 보인다”라며 “두루미를 그린 것으로 추정되는데, 두루미는 나무 위에 앉는 습성이 없으니 그림 속 새는 실제로는 황새였을 것”이라고 말했다.
황새는 한국에 서식하는 텃새 중에서 가장 큰 축에 속한다. 몸길이는 110~150cm, 날개 편 길이는 200~273cm, 부리 길이는 25cm 내외다. 국내에서 관측되는 조류 가운데 황새보다 더 큰 새는 독수리, 큰고니, 두루미 정도로 모두 철새다.
황새는 큰 몸집 덕분에 습지 생태계 최상위 포식자로 꼽힌다. 습지에서 먹이활동을 하고, 둥지는 커다란 나무 꼭대기에 짓는다. 러시아나 중국의 황새는 큰 나무가 드문드문 서 있는 광활한 습지에 서식하기도 한다. 연구진이 황새를 찾아보려면 드론이나 헬기를 동원해야 할 정도다. 이런 환경에서 사는 황새는 사람을 낯설어하며 거리를 두려 한다.
반면 한반도에 텃새로 자리 잡은 황새는 사람이 익숙하다. 황새가 터를 잡은 습지가 다름 아닌 논이기 때문이다. 농약을 치지 않던 과거에 논은 미꾸라지, 드렁허리, 개구리 등 수많은 생명을 품은 황새의 완벽한 사냥터였다. 황새는 논에 부리를 휘휘 저어 부리에 걸리는 동물성 단백질이라면 가리지 않고 잡아먹는 느긋한 사냥법을 쓴다. 사람과 삶의 터전을 공유하는 만큼 황새는 마을과 가까운 존재였다. 마을 사람들은 당산나무처럼 마을 어귀의 큰 나무에 둥지를 튼 황새가 새끼를 낳으면 길조라 여기며 기뻐했다.
1900년대 초까지만 해도 흔했던 황새는 급격히 개체 수가 감소하다가 1971년 4월 충북 음성군에서 한 쌍이 발견된 뒤 모습을 감췄다. 황새가 사라진 이유 중 하나는 농경지 정비와 농약 사용으로 논이 더이상 많은 생명을 품지 못하게 됐기 때문이었다. 그나마 발견된 마지막 한 쌍도 발견 3일 만에 수컷이 밀렵꾼에 의해 사살됐고, 남은 암컷은 ‘과부 황새’라 불리며 홀로 23년을 더 살다가 1994년 과천 서울대공원에서 죽었다.
현재 황새는 한국에서는 천연기념물 199호, 환경부 지정 멸종위기 야생생물 1급으로 지정돼 있다. 세계적으로도 3000~4000마리만 남아있는 희귀 조류로, 세계자연보전연맹(IUCN) 적색목록에서 멸종위기 등급으로 분류돼 있다.
예산황새마을, 황새를 다시 품다
‘과부 황새’가 죽은 지 2년 뒤인 1996년, 황새 복원 연구가 시작됐다. 한반도에서 완전히 절멸됐던 종을 복원한 사례는 황새가 최초다. 초기에는 황새의 개체 수를 늘리는 연구가 이뤄졌다. 한국교원대 내에 마련된 황새생태연구원에서 러시아, 독일, 일본에서 38마리를 도입해 인공증식 연구를 했다. 증식 연구는 크게 성공해 현재 황새의 개체 수는 황새생태연구원에 45마리, 예산황새공원에 107마리, 야생방사 65마리 등 총 217마리로 늘어났다. 이 황새를 야생에 방사하는 연구가 예산황새공원에서 2015년부터 진행 중이다.
예산황새공원은 평화로운 마을 한가운데에 자리잡고 있었다. 넓게 펼쳐진 논 사이로 실개천이 흘렀다. 황새를 방사할 지역으로 이 지역이 선정된 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다. 우선 문헌 조사 결과 예산에 황새가 실제로 살았다는 기록이 발견됐다. 예산군 대술면 궐곡리에는 ‘고새울 황새번식지 비석’이라는 이름으로 1930년경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에서 세운 비석과 1963년경 대한민국 문화재국에서 세운 비석 두 개가 남아 있다.
지리적으로도 황새가 머물기에 최적의 환경이다. 인근에 서해가 있어 먹이가 풍성한 갯벌이 가깝고, 겨울철에도 물이 얼지 않는 얕은 물가도 있다. 예산이 농경지가 많고 난개발의 흔적이 적은 지역이라는 점도 고려됐다.
하 연구원은 “국내에 황새가 다시 자리 잡으려면 사람들이 곁을 내어줘야 한다”며 “예산황새공원 인근 황새마을은 예산에 황새를 복원하기로 결정된 2009년부터 황새가 서식할 수 있도록 친환경 농법을 시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논 생태계가 파괴되며 사라진 황새를 복원하기 위해서는 논 생태계를 다시 풍성하게 만드는 과정이 필수다.
하 연구원과 함께 황새마을을 한 바퀴 돌았다. 논길 가에 둥지탑이 높게 솟아있었다. 둥지탑은 방사한 황새가 둥지를 틀도록 조성한 시설로, 높은 기둥 위에 수레바퀴 모양의 지지대가 있다. 높은 나무에 둥지를 틀길 좋아하는 황새에겐 최적의 집터다.
방사 과정은 이렇다. 사육된 황새 가운데 방사에 적합하다고 판단되는 황새 부부를 단계적 방사장으로 보낸다. 여기서 번식에 성공하면 방사장을 열어 황새 부부와 어린 황새를 방사한다. 귀소본능이 강한 황새 부부가 멀리 떠나지 않고 방사장 근처에 있는 둥지탑에 둥지를 틀도록 유도하기 위해서다. 이 과정을 통해 지금 예산에는 총 네 쌍의 황새가 둥지탑 위에 자리를 잡고 있다.
둥지탑 근처에는 무논을 조성해 황새가 원활히 먹이를 사냥할 수 있게 유도한다. 무논에는 황새가 잡아먹을 수 있는 다양한 습지 생물을 풀어둬 자생적으로 먹이생물이 늘어나도록 했다. 가까이 가보니 청둥오리 몇 마리가 무논에서 헤엄치며 먹이를 찾고 있었다. 논 생태계가 최상위 포식자인 황새를 품을 정도로 회복되자 다른 생물도 논을 다시 찾게 된 것이다.
“저기 위에 한 마리 있네요.” 하 연구원이 가리킨 곳을 봤다. 둥지탑 위에 흰 머리가 빼꼼 보였다. “지금 낯선 사람이 왔다고 경계하는 겁니다. 황새는 원래 둥지에 잘 앉지 않는데 지금 앉아있죠? 알을 낳을 준비를 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황새는 일행과 한참 눈을 맞추다 이내 몸을 일으켜 먼 하늘을 바라봤다. 하 연구원은 “짝이 지금 사냥을 하러 간 것 같다”고 말했다.
다가올 봄을 기다리며 짝을 이루는 황새의 ‘로맨스’
황새의 연애사는 사람과 많이 닮았다. 우선 일부일처제로 한번 짝을 지으면 배우자가 죽기 전에는 배우자 외의 다른 새와 번식하지 않는다. 황새 ‘커플’의 번식기는 2~7월이다. 매해 12~1월엔 둥지를 보수하면서 알을 품기 쉽도록 옴폭한 자리를 만들어 둔다. 이후 2월 초~3월 알을 낳아 품으면 한 달 뒤 새끼 황새가 알을 깨고 나온다. 하 연구원은 “올겨울은 유난히 추워서 아직 알을 낳진 않았지만, 3월 말에는 아기 황새들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예산황새공원에서 사육되는 황새들이 ‘눈이 맞은’ 것을 어떻게 알아보는지 궁금했다. 하 연구원은 “짝을 이룬 황새는 무리와 동떨어져 유대 행동을 보이기 때문에 쉽게 구분할 수 있다”며 “서로 깃털을 다듬어주거나 함께 오랜 시간을 보내면서 주위의 다른 개체를 공격하며 배척한다”라고 설명했다. 황새 커플을 무리와 따로 격리하면 바로 둥지를 짓고 알을 낳기도 한다. 하 연구원의 설명이 끝나기가 무섭게 번식장 속 황새 한 쌍이 서로 목을 비비며 애정행각을 시작했다. ‘닭살커플’이 따로 없는 모습을 보다 보니 괜히 민망해져 다음 장소로 걸음을 옮겼다.
예산황새공원에서 가장 기구한 연애사를 가진 황새는 짝이 세 번 바뀐 ‘만황(A05)’이다. 2013년생인 이 수컷은 2016년, 동갑내기 암컷 민황(A30)이와 함께 국내에서 45년 만의 첫 번식을 시작했다. 기쁨도 잠시, 그해 10월 감전으로 아내를 떠나보냈다. 만황이가 2017년 맞이한 두 번째 아내는 1999년생 승황(A08)이다. 고령의 암컷은 계속 기운이 없는 모습을 보이다가 번식 이후 홀연히 사라져 버렸다.
두 번의 비극적 이별 이후 만황이에게 찾아온 새로운 인연이 바로 미송(A37)이다. 하 연구원은 미송이와 함께 둥지에 앉아있는 만황이를 바라보며 “수컷 황새가 제 짝을 잃으면 한동안 둥지를 지키며 다가오는 다른 암컷 황새를 거부하며 밀어낸다”며 “만황이의 경우는 2018년에 미송이를 둥지탑 근처에 풀어주자마자 바로 짝을 이뤘다”고 말했다. 짝과 함께 둥지 위에서 시간을 보내던 만황이가 ‘따따따따따’하고 부리를 부딪히며 울었다.
황새를 돕는 사람들과 사람을 돕는 황새의 동행
황새생태연구원에서 60마리의 황새를 예산황새공원에 데려온 2014년 6월에는 마을에 잔치가 열렸다. 김수경 예산황새공원 선임연구원은 “이날 주민분들이 모여 부침개도 부치시고 박수치며 신나 하셨다”고 회상했다.
예산황새마을 주민들이 친환경 농업을 시작하게 된 이유는 오로지 황새를 위해서다. 마을 주민들은 제초제를 쓰지 않아 손수 피를 뽑아야 하는 번거로움을 감수하고서라도 황새를 들여오는 데 100% 찬성했다.
김 연구원은 “길조인 황새를 들여오는 반가움과 황새로 인해 마을에 새로운 풍경이 펼쳐질 거라는 희망 때문이었다”라며 “우리 연구자들도 마을 분들 덕분에 황새가 산다는 마음으로 신뢰 관계를 쌓고 있다”고 말했다.
“만황이가 둥지를 튼 광시면 장전리에는 ‘파란 지붕 할머니’라고 부르는 할머니 한 분이 살고 계세요. 이분은 우울증을 앓고 계시는데, 거실 창문을 통해 만황이네 부부가 새끼를 열심히 돌보는 모습을 지켜보시면서 에너지를 많이 받으셨대요. 간혹 할머니가 황새에게 말을 걸 때면 황새도 할머니를 지켜보는 느낌이 들어 위안이 되신대요.” 김 연구원은 “고령화로 쇠퇴하고 있는 농촌 공동체를 황새를 통해 회복하고 치유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품고 있다”며 웃었다.
사람과 황새가 진정한 이웃이 되기 위해서는 앞으로도 풀 숙제가 남아있다. 예산황새마을 주민들이 앞으로도 친환경 농업을 이어갈 실질적 원동력이 필요하다. 황새가 농촌에 성공적으로 자리 잡은 일본 도요오카시가 좋은 사례가 될 수 있다.
도요오카시는 마을 주민들에게 친환경 농업을 장려하는 한편 ‘황새의 춤’이라는 이름으로 친환경 농업 인증 쌀 브랜드를 개발했다. 이 쌀은 일반 농법 쌀보다 고급 쌀로 여겨지며 높은 가격에 판매된다. 농가가 지속적으로 친환경 농업을 할 수 있게 경제적 원동력을 만들어 준 것이다. 황새를 활용한 관광산업이 활발해진 것도 지역 경제가 활기를 찾는 데 도움이 됐다.
예산황새마을의 목표도 비슷하다. 김 연구원은 “올해부터 5년간 지속될 ‘예산 황새고향 친환경생태단지 조성사업’을 통해 예산에서 친환경 농법으로 키워낸 쌀, ‘황새랑 쌀’과 ‘황새의 비상’을 유통하고 황새 복원과 관련한 체험프로그램을 진행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황새는 한 지역의 텃새가 돼 머물러 살기도 하지만, 계절에 따라 서식지를 옮기며 철새로 살아가기도 한다. 유난히 추웠던 이번 겨울, 한반도에선 러시아나 중국 등지에서 월동하러 내려온 황새 100~150마리가 발견됐다. 김 연구원은 “황새는 원래 서로 거리를 두고 독립생활을 하는 새인데, 황새가 마치 오리 떼처럼 모여 추위를 피하는 모습이 관찰됐다”라고 말했다.
해외에서 유입되는 황새는 한국의 텃새 황새와 교배하며 유전적 다양성을 높일 수 있기에 귀하다. 김 연구원은 “황새 서식지에 대한 정보를 모으고, 핵심 월동지역에 대해 특별관리를 하는 등 앞으로 더 많아질 황새를 보호할 수 있는 체계를 잘 설립해두는 것이 중요하다”라고 말했다.
‘큰 새’ 황새는 국내 지역 생태계를 대표하는 깃대종 중 하나다. 황새가 살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건강한 생태계가 조성돼 있다는 증거다. 하 연구원은 “사람의 활동이 황새의 터전을 만든다”라며 “황새복원을 위한 노력은 사람이 자연과 함께 공생하는 법을 배우는 중요한 훈련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