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를 새해 목표로 정해놓고 지키지 못할까봐 전전긍긍하고 있는가! 목표 성취로 가는 초지름길, ‘숙녀들의 수첩: 수학이 여자의 것이었을 때’로 시작하자. 만화 반, 글 반이라 분량이 적당하고 ‘이것도 책’이라며 으스댈 수 있다. 그래도 망설일 사람들을 위해 저자 두 명이 만났다. 만화를 그렸고 ‘만화로 보는 곤충의 진화’로도 유명한 갈로아 작가, 만화를 기획하고 책 속 취재 뒷담을 쓴 전 수학동아, 현 어린이과학동아 이다솔 기자다. 2018년 수학동아에 연재한 만화에 다량의 4컷 만화와 글을 추가해 책으로 엮은 것을 기념해 ‘책수다’를 열었다.
다솔 작가님께 처음 만화를 하자고 했을 땐 여러 기획이 있었어요. 그중에서 ‘숙녀들의 수첩’을 하자고 한 이유가 있나요?
갈로아 만화를 그리는 게 힘드니까 기왕 하는 거 메시지가 확실한 걸 하고 싶었어요. 두 주인공 중 하나인 마리아 아녜시는 세계 최초 여성 수학 교수고, 만화의 제목이기도 한 ‘숙녀들의 수첩’은 18세기에 처음 발간된 영국 최초의 여성잡지이자, 100년 넘게 발행된 여성을 위한 수학잡지잖아요. 사례가 워낙 신기해 조명해주고 싶었어요. 만화를 그리면서 수학과 과학은 남자가 잘한다는 말이 사실 오래지 않은 고정관념이라는 걸 알게 됐고요.
다솔 맞아요. 18세기 초에 수학은 오히려 여성과 어울리는 학문이라는 고정관념이 있었거든요. 수학은 종이와 펜만 있으면 할 수 있어서 여행을 가거나 실험실을 만들지 못하는 여성도 즐길 수 있다고 생각한 거죠. 사실은 성차별적인 배경 탓에 여성에게 수학 공부가 권장됐지만, 여성들이 작은 틈새를 놓치지 않고 기회를 잡았기에 숙녀들의 수첩과 마리아 아녜시도 탄생했던 것 같아요.
기자의 기획을 가차없이 뜯어고치다
다솔 만화에서는 10대 소녀 엘리가 가난이라는 장애물을 딛고 수학을 공부하려고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그려요. 잡지 ‘숙녀들의 수첩’ 편집부의 조수로 일하면서 이탈리아에서 온 여성 수학자 아녜시의 도움도 받지요. 그런데 처음 제가 제안한 내용은 수학을 싫어하는 21세기 소녀가 18세기로 시간 여행을 하는 내용이었어요. 왜 바꾸셨나요?
갈로아 사실 그 이야기를 하실 때 그린 그림이 있어요. 교복을 입고 단발머리인 21세기 여자애예요. 하지만 과거로 떠나는 이야기는 어디서 많이 본 이야기인데다 어떤 서사를 만들어내든 여행에서 돌아오는 것으로 끝을 맺어야 하거든요. 그 안에서 재밌고 새로운 이야기를 만드는 게 쉽지 않았죠. 아녜시도 요조숙녀에서 ‘츤데레’ 캐릭터로 바꿨어요.
다솔 전 처음엔 아녜시를 집안의 도움으로 수학 공부를 한 학자로만 생각했어요. 조사하다 보니 아녜시는 어려운 사람과 젊은이를 돕는 게 삶의 목표였고, 이를 위해 청년을 위한 수학책을 썼다는 것도 알게 됐죠.
작가님은 각 캐릭터를 그리시면서 어려웠던 점은 없었나요?
갈로아 당시 사람들의 옷차림과 머리 스타일을 몰라 캐릭터를 잡는 게 어려웠어요. 찾아보니 남자는 초상화 속 뉴턴, 여자는 중전마마 같은 머리 스타일이라 영 멋이 없었어요. 역사 만화가에게 고충을 털어놨더니 머리는 당시와 달라도 괜찮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안심하고 엘리의 양갈래 머리와 앞머리를 그렸죠. 그리고 엘리의 결말은 철학자 스피노자의 생애에서 따왔어요. 아직 만화를 못 본 독자 분들은 책에서 확인해보세요!
책이 자아 탐색을 위한 무기가 되길
갈로아 단행본으로 만들면서 새로 추가한 것들이 많아요. 특히 4컷 만화를 20편이나 그렸다는 것은 정말…. 여성 과학자와 수학자도 12명이나 소개하고 그 분들의 모습도 새로 그렸죠. 흑인 여성 최초의 우주인인 메이 제미슨은 처음 알았어요. 드라마 ‘스타트렉’의 흑인 여성 우주인을 보고 꿈을 가졌다는 게 마음에 들었어요. 저도 생물학을 전공한 게 그냥 나비 날개가 예뻐서라는 단순한 이유거든요. 언젠가 우리 만화를 보고 수학자가 됐다는 친구를 만나면 정말 좋겠어요.
다솔 전 취재 뒷담을 13편이나 쓰느라 힘들었지만 작가님과 의논하며 만화를 진행하던 생각이 나 재밌었어요. 작가님이 아녜시 생가를 방문한 것도 빼먹지 않고 담았죠.
갈로아 거기 정말 힘들게 갔어요. 아녜시 생가가 이탈리아 밀라노 시골의 산 꼭대기에 있었거든요. 기차역부터 물도 없이 4시간을 걸었어요. 그 덕분에 아녜시가 살던 동네 분위기를 알았죠. 산을 따라 포도밭이 쭉 있다가 집이 막 나오더니 꼭대기에 아녜시 생가와 성당이 있더라고요.
다솔 이렇게 열심히 만들었으니 책이 많이 알려졌으면 좋겠어요. 저는 진로 고민을 하는 이들에게 도움이 됐으면 해요. 문과를 갈지, 이과를 갈지 선택할 때 성별 고정관념에 따라 결정하는 경우가 많잖아요.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도, 좋아하는 걸 직업으로 삼아도 괜찮을지도 모르니까 세간의 목소리에 기대게 되죠. 이 책이 그런 목소리 대신 자신을 진지하게 들여다 보는 계기가 되길 바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