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학 생활 중에는 어쩔 수 없이 돈이 절대적인 존재가 된다. 간혹 패기 넘치는 열정만으로 모든 생활비는 아르바이트로 해결하겠다는 ‘열정맨’이 있을지 모르나, 독일의 언어와 문화 모두에 익숙하지 않은 유학생에게는 비현실적인 이야기다. 꼭 써야 하는 생활비에서 더 아낄 방법을 찾는 게 빠르다.
유학생들이 거금의 생활비를 들이는 곳은 대략 세 군데다. 등록금, 주거비와 공과금, 그리고 식비.
독일 유학의 최대 장점은 학비가 저렴하다는 것이다. 독일은 16개 주로 이뤄진 연방 국가로, 주마다 행정법과 교육법 등이 서로 다르다. 그런데 2005년부터 독일의 모든 주에서 대학 등록금을 없애는 분위기로 정책이 흘러갔고, 2013년 니더작센주를 마지막으로 독일에서 대학 등록금은 사실상 사라졌다. 개인의 경제력에 상관없이 교육의 기회만큼은 누구에게나 동등하게 주어져야 한다는 이유였다.
학교마다 한 학기에 170~450유로(약 23만~60만 원) 정도 내긴 하는데, 이 중 절반은 학기 중 독일의 16개 주 전체를 마음껏 다닐 수 있는 기차표, 교통비 명목이다. 이를 제외한 나머지도 대개 학생식당, 공연장 등 행정 운영비로 쓰여 사실상 등록금을 내지 않는 것과 다름없다.
독일 등록금이 ‘사실상 공짜’가 된 데는 독일 대학생들의 입김도 한 몫 했다. 한 예로 2017년 바덴-뷔르템베르크주에서 대학 등록금을 인상한다는 이야기가 나온 적이 있었는데, 학생들은 곧바로 캠퍼스에 모여 반대 시위를 감행했다.
유럽연합(EU) 출신이 아닌 유학생들은 몇몇 주만 등록금 일부(학기 당 1500유로, 약 200만 원)를 내기도 한다. 그러나 모든 주가 외국인 등록금을 받는 것은 아니다. 또 외국인이어도 만18세 이전에 독일에서 교육을 받고, 독일에서 수능을 보면 외국인 등록금이 면제다. 나는 고등학교 때 독일로 이민을 와서 독일 수능을 본 경우라 외국인 등록금을 내지 않는다.
등록금 문제가 원활히 해결됐다면 두 번째로 고려해야 할 것은 주거비용, 집세다. 당연한 말이지만, 어디서 사느냐에 따라 집세는 천차만별로 다르다. 가장 저렴한 방법은 학교 기숙사를 이용하는 것이다. 기숙사 비용은 한 달에 30만 원 내외다.
학교 밖에서 살 때는 원룸을 빌리거나 여럿이 함께 집을 빌려 공유하는 방식을 주로 쓴다. 원룸에 살면 월세가 70만~100만 원, 전기 요금이 약 7만 원, 인터넷 요금과 방송수신료 약 5만 원 정도가 추가로 든다. 집을 공유할 경우 월세와 공과금 등을 공동생활비에서 나누면 되니 원룸보다 생활비를 아낄 수 있다.
마지막으로 유학 생활비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식비다. 유럽의 물가, 특히 식비는 생각보다 비싸지 않다. 막연하게 유럽 물가가 한국보다 높다는 인식이 있는 이유는 인건비 차이 때문이다. 유럽에 여행을 갔을 때는 주로 외식을 하니 식비가 비싸다고 느낄 수 있는데, 이는 음식 재료값 때문이 아니라 인건비가 높아서다. 참고로 현재 독일의 최저시급은 9.35유로(약 1만3000원)로 한국의 최저시급(8590원)보다 1.5배가량 높다.
그래서 집에서 음식을 해 먹는다면 한국에서의 식비와 거의 비슷하다. 심지어 더 싼 재료도 많다. 독일은 감자나 유제품 등이 종류가 다양하고 저렴하다. 또 독일은 한국과 다르게 국가에서 농산물 생산량을 조절하기 때문에 농산물 가격이 폭등하거나 폭락하는 일 없이 안정적으로 유지된다. 매번 비슷한 종류의 식품을 산다면 생활비 변동이 없다는 뜻이다. 외식을 최소로 하고 주로 집에서 밥을 해 먹는다면 한 달 기준 50만 원 정도면 그럭저럭 식비가 충당된다.
여기에서 가격이 저렴한 마트를 이용하면 생활비를 훨씬 더 아낄 수 있다. ‘알디(Aldi)’나 ‘리들(Lidl)’ 같은 독일계 저가형 슈퍼마켓이 대표적이다. 이런 마트에선 저렴한 요금제의 선불 유심칩도 판매한다. 처음 유학와서 통신서비스를 계약하고 해지하는 일이 복잡할 수 있는데, 선불 유심칩을 사용하면 해결된다.
정리하면, 기숙사에 살며 주거비를 아끼면 학비, 공과금 등을 포함해도 한 달에 100만 원 정도의 생활비로 생활할 수 있다. 또 집을 여러 명이 공유하며 식사를 집에서 주로 먹으면 역시 한 달에 100만 원 정도로 충분히 생활 가능하다.
한국에서 자취를 하는 대학생들의 생활비와 비교하면 조금 높은 수준일 수 있으나, 독일은 학비 부담이 거의 없다는 점을 고려하면 도전해볼 만한 유학생활이지 않나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