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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우 꽃순이의 독백

방귀로 하루 350리터 메탄 방출한다고요?

안녕하세요. 꽃순이예요.
저를 모르시겠다고요? 인기리에 방송중인 ‘식객’을 안보시나 보죠?
7월 15일자에 제가 주연으로 나왔었는데…. 뭐 쇠고기 납품 경합을 한다나 해서
주인공 성찬 아저씨(김래원 분)가 전국방방곡곡을 뒤져서 찾아낸 소가 저예요.
대단하죠. 전 지금 세 살밖에 안 됐지만 여러분 같은 사람하고 비교하면 사춘기가 지나 ‘활짝 꽃핀’ 아가씨랍니다. 아직 남친은 없고요, 대신 어릴 때부터 호태 오빠(여진구 분)가 애지중지 키워줬어요. 이름도 꽃순이라고 지어줬죠. 예쁜 이름이죠?

어제 성찬 아저씨가 절 발견하고 우리집에까지 찾아와 하룻밤 묵더니 기어코 저를 데려가기로 했다는군요. 호태 오빠는 안 된다고 울었지만 결국 절 보내기로 했어요.
사실 오빠가 많이 아프거든요. 저를 판 돈으로 심장수술을 하게 될 거예요.
오빠, 꼭 건강해져야 해요!

13억 마리나 살고 있어요
지금은 트럭 짐칸에 올라 도축장이란 데로 가고 있어요. 도축장이 뭐하는 곳이냐고요? 아시잖아요. 우울한 얘긴 그만하고…. 참, 이 세상에 소가 몇 마리나 살고 있는지 아세요? 힌트가 필요하다고요? 사람은 67억 명이 살고 있어요. 잘 모르시겠다고요? 설마 저희가 사람보다 많겠어요? 힌트로는 약한가…^^.

대략 13억 마리라는군요. 대단하죠? 30년 만에 두 배가 된 거라네요. 소를 숭배하는 인도에 2억 마리가 넘게 살고요, 한국에 쇠고기를 못 팔아 안달인 미국에도 1억 마리쯤 살죠. 한국은요? 인도에 비하면 얼마 안 되지만 290만 마리쯤 된다네요. 사실 소 한 마리 몸무게면 사람 10명은 되니까 무게로 따지면 저희가 최고인 셈이죠. (앗, 돼지가 있었나?) 축하한다고요?

글쎄요. 축하받을 일인지…. 어떤 분들은 이유야 어쨌든 개체수를 많이 퍼뜨릴수록 성공한 종이라면서 저희 같은 가축이나 농작물을 대표적인 예로 들기도 하지만…. 아시잖아요? 왜 저희가 이렇게 많은지! 사람들은 고기를 참 좋아하나 봐요? 그것도 쇠고기를. 뭐 꽃등심의 마블링을 보면 입에 침이 고인다면서요? 저희야 씹으면 씁쓸한 액이 나오는 풀 아니면 사료만 먹으니 고기 맛을 알 턱이 있나요? 아, 저희도 육식을 했다고요? 물론 잠깐 동안 육골분 같은 동물성 재료가 첨가된 사료를 먹은 아저씨 아줌마들도 있다지만 여럿 미쳐서 화장됐다면서요? 광우병이라나 뭐라나. 아무튼 그분들도 고기 맛은 몰랐을 거예요.

사실 지구에서 저희가 이렇게 많이 살게 된 게 그리 오래되지는 않았어요. 예전에 동네 할머니한테 들어보니(제가 살던 데가 워낙 시골이라 그분은 10년이 되도록 주인댁 농사일을 돕고 있었거든요.) 사람들이 들에서 살던 저희 조상을 구슬려 가축으로 만든 게 8000년 전 쯤이라네요. 그런데 있잖아요, 아무 들짐승이나 다 가축이 될 수 있는 건 아니라네요. 습성이나 성격이 맞아야하는데 무슨 말이냐면 무리지어 사는 걸 좋아하고 온순해야 한다는 거죠. 저희 소가 딱 그랬다는군요.
거 왜 ‘동물의 세계’ 같은 프로그램을 보면 아프리카에 사는 물소가 나오잖아요? 생긴 건 저희랑 비슷하지만 다른 종이죠. 이 친구들은 가축이 아니에요. 사람들이 길들이는데 실패했다는군요.

아무튼 저희는 사람들과 살게 되면서 크게 두 갈래 길을 걷게 됐죠. 하나는 저희 직계 조상들처럼 사람을 도와 농사일을 했던 일소였고 또 하나는 사람들과 초원을 이동하며 우유와 유제품을 공급해주던 젖소였죠. 인도에 있는 제부(Zebu) 품종같이 양쪽 다 제공해주는 소도 있어요.

한국에 자리 잡은 저희 한우는 농경사회가 필요로 하는 일소였죠. 쟁기를 맨 누런 소를 농사꾼이 “이랴, 이랴”하면서 모는 모습 TV에서 본 적 있죠? 지금은 농사도 기계가 하는 시대라 저희 역할이 많이 줄었지만 아직도 시골에서는 쟁기를 끄는 친구들이 있답니다.

아무튼 옛날 농경사회 때는 사람들이 소를 잘 먹을 수 없었다는군요. 사람 먹고 살 곡식도 부족하고 그렇다고 소 먹이 풀 전용으로 내줄 땅도 마땅치 않은데서 고기만을 목적으로 한 소를 키울 수는 없었죠. 그래서인지 나라에서 소를 잡는 걸 금지하기도 했다는군요. 서민들은 마을에 큰 잔치가 있거나 명절 때나 돼야 쇠고기를 맛볼 수 있었죠.

여기서 한 걸음 더 나가 종교의 힘을 빌려 저희를 잡아먹지 못하게 하는 곳도 있었죠. 힌두교의 나라 인도 말이에요. 생각해보세요. 인도 같이 거대한 나라가 쇠고기에 맛을 들이면 어떻게 될지. 인도에 소가 이렇게 많은 건 집집마다 한두 마리씩 키우기 때문이라네요. 사람들은 소젖을 짜 먹고 농사일도 같이 하고 짐수레 끄는데도 소 힘을 빌린다는 군요. 말 그대로 한 가족인 셈이죠. 아, 인도에 사는 소들이 부럽다! 마하트마 간디가 남긴 말이 제 심금을 울리네요.

인도에서 소는 최고의 친구다. 소는 많은 걸 준다. 젖을 줄 뿐 아니라 농사가 가능하게 한다. 소는 동정심의 시(詩)다. 우리는 이 점잖은 동물을 보면서 동정심을 읽는다. 소는 인류에게 두 번째 어머니다. 소를 지키는 건 말없는 신의 창조물 전부를 지키는 걸 뜻한다.

고기 1kg 얻으려면 물 10t 있어야 해요
아무튼 수천 년 동안 먹을거리 걱정이 떠날 날 없고 만성적인 단백질 결핍에 시달리던 여러분 조상들이 한세대 전부터 이런 궁핍에서 해방됐다면서요? 어쨌든 지금은 대부분 사람들이 영양섭취가 지나쳐서 고민이라니 별일이네요.

농협중앙회에서 낸 자료를 보니 한국인의 연간 고기소비량은 1986년 14.4kg에서 20년 뒤인 2006년에는 33.6kg으로 늘었군요. 쇠고기가 6.8kg, 돼지고기가 18.1kg, 닭고기가 8.6kg이네요. 돼지고기랑 닭고기 소비는 꾸준히 늘었는데 쇠고기는 2000년 8.5kg를 기점으로 약간 떨어지는 추세네요. 안 그래도 비싼데다 광우병이다 구제역이다 해서 소비량이 줄었나 봐요.

아무튼 잘 살게 될수록 고기소비량도 비례하는 건 한국만의 경우는 아닌가 봐요. 13억 인구를 자랑하는 중국도 지금 쇠고기소비량이 급증하고 있다네요. 중국 사람들은 돼지고기만 좋아하는줄 알았는데 이제 쇠고기 맛을 알았으니 큰일이네요. 왜냐고요? 돼지고기 1kg과 쇠고기 1kg를 만드는데 들어가는 사료 양이 다르기 때문이죠. 돼지고기는 사료가 3kg이면 되지만 쇠고기는 9kg나 필요하답니다. 차로 치면 저희가 연비가 훨씬 낮은 셈이죠. 세계 경작지의 24%가 소를 키우는 데 쓰인다는 거 아세요?

그런데 가축을 키우려면 사료만 들어가는 게 아니에요. 물도 많이 필요하죠. 저희가 직접 먹는 것도 있지만 사료가 될 농작물을 키우는데도 물이 있어야하니까요. 흥미로운 연구결과가 있네요. 사람들이 1년 동안 먹을거리를 얻는데 필요한 물의 양을 조사한 내용인데 중국사람들은 2003년에 1인당 연간 860t을 썼다는군요. 그런데 1961년에는 255t이었다네요. 42년 만에 3.4배나 늘어난 거죠. 왜 그런지 아세요? 고기를 많이 먹게 돼서 그렇다네요. 중국의 경우 고기 1kg을 얻는데 물 2.4~12.6t이 필요한데 곡식의 경우는 1kg에 0.8~1.3t이면 된다는 군요. 대여섯 배가 필요한 셈이죠.

그런데 문제는 이런 경향이 앞으로도 계속될 거라는 거죠. 고기를 많이 먹는 미국사람들은 한사람이 1년 동안 먹을 걸 장만하는데 물 1820t을 쓴답니다. 13억 중국인구가 미국 수준이 된다면 한사람 당 물을 매년 1000t씩 더 써야하므로 지금보다 1조3000억t이 더 필요한 셈이죠. 소양강댐 저수량이 29억t이니 엄청난 양이죠. 안 그래도 물 부족이 심각한데 중국 사람들, 정신 바짝 차리세요!

그냥 넘어가려고 했는데 아무래도 찔리네요. 저희가 환경오염의 주범이란 걸 고백해야겠어요. 소 방귀가 지구온난화를 부추긴다는 말 들어보셨을 거예요. 웃지 마세요. 심각한 이야기랍니다. 메탄 아시죠? CH4. 메탄은 지구온난화 효과가 이산화탄소의 24배나 된다는 군요. 근데 소 한마리가 하루에 메탄을 350L나 내보내거든요. 한 연구결과에 따르면 저희가 먹는 풀이나 사료에 들어있는 탄소의 6%가 메탄으로 빠져나간다고 합니다. 지구에서 생기는 메탄의 15%는 저희가 내보낸 거라는군요.

이렇게 메탄을 만드는 건 사실 저희 탓이 아니랍니다. 소 위가 4개라는 건 아시죠? 첫 번째 위를 제1위 또는 혹위라고 부르는데 여기에 수많은 미생물이 살면서 소화를 돕지요. 그 가운데 풀의 섬유질을 소화하고 메탄을 내보내는 녀석이 살기 때문에 이런 일이 발생하죠. 아참, 소가 만들어내는 메탄의 95%는 혹위에서 발생해 입으로 나간답니다. 방귀나 똥에서 나오는 메탄은 5%에 불과해요. 소 방귀가 아니라 소 트림이 문제인 셈이죠. 아무튼요.

한국 사람들이 그동안 체격도 많이 좋아지고 얼굴도 훤해진 게 사실이잖아요. 이게 다 충분한 영양섭취가 됐기 때문이겠죠. 여기에 육류 소비도 한 몫을 했을 거예요. 이런 걸 보고 식생활의 서구화에 따른 체형의 서구화라고 그러더군요. 그런데 이제는 지나쳐서 탈이라네요. 체형 뿐 아니라 질병도 서구화가 됐으니까요. 육류 소비 증가와 맞물려 동맥경화, 비만, 대장암 같은 성인병도 급증한 게 단지 우연은 아니겠죠? ‘과유불급’(過猶不及)이란 말이 있잖아요. 지나침은 모자람만 못하다. 뭐 꼭 채식주의자가 되라고 까지는 얘기하지 않겠지만 건강과 환경을 생각해 지나친 육식은 자제해주세요.

젖 안 짜주면 죽을 수도 있다구요
그러고 보니 주로 저희 고기소 얘기만 했네요. 사실 저희야 2~3년 잘 먹다가 가면 되지만 평생 고생하다가 삶을 마치는 친구들도 있죠. 젖소 말이에요. 원래 우리나라에는 젖소가 없었어요. 전통식품 가운데 유제품이 없는 이유죠. 아기 때 엄마 젖 먹는게 사실상 전부였죠. 그런데 홀스타인이라는 네덜란드에서 개발한 젖소 품종을 들여와 우유를 생산하기 시작했죠. ‘엄마소도 얼룩소 엄마 닮았네~’의 얼룩소가 홀스타인이죠. 그러고 보면 지난 세대동안 우리나라 사람들 식성이 참 많이 바뀐 거네요. 최근 한국인 1인당 연간 유제품 소비량이 63kg 정도라는군요. 물론 목축문화가 뿌리 깊은 서구에 비하면 한참 적은 양이지만요.

홀스타인 같은 젖소는 사람들이 오랜 세월동안 우유를 대량으로 생산할 수 있는 방향으로 개량됐다는군요. 젖소가 하루에 얼마나 젖을 만드는 줄 아세요? 50L 쯤 된다네요. 젖소 한 마리에서 나온 젖으로 200ml 우유 250개 분량을 생산하는 셈이죠. 대단하죠?

젖소의 삶은 무척 고단하답니다. 젖이 나오려면 새끼를 나아야하니까 젖소는 어느 정도 자라면 바로 임신을 해야 하죠. 그래도 수컷이랑 짝짓기도 해보고 육우에 비하면 좋은 것 아니냐고요? 글쎄요, 제가 알기론 대부분 인공수정으로 임신한다던데….

짝짓기 얘기가 나온 김에 하나 더 얘길 하면 수컷들이 안 됐다는 생각이 들어요. 몸짱인 소수를 선별하고 나머지는 거세를 시키니까요. 그래야 소가 얌전해지고 살도 잘 붙어 경제성이 높다는 군요. 고기도 연하고요. 이 친구들은 저같이 예쁜 암소를 봐도 ‘소 닭 보듯’ 해요. 하기야 암컷들에 둘러싸여 있던 씨수소를 부러워하던 시절도 지났죠. 지금은 사람들이 정기적으로 정액을 채취해가니까요.

임신하고 9개월간 고생해서 새끼를 낳아도 아기와 즐거움은 잠시 뿐, 면역성분이 들어있는 초유를 며칠 먹이고 나서는 생이별을 해야 하죠. 사람들을 위해 다시 젖꼭지는 송아지 입 대신 착유기 몫이 되죠. 새끼를 떠나보내는 마음도 아프지만 몸도 아쉽답니다. 얼마 전 젖소 아줌마랑 얘기할 기회가 있었는데 거칠게 우유를 짜내는 착유기에 비하면 젖꼭지를 쪽쪽 빨아대는 송아지 입의 힘은 간지러울 지경이었다나요.

참, 젖소는 사람이 하루라도 돌봐주지 않으면 위험한 것 아시죠? 보통 하루에 두 번 젖을 짜는데 이걸 빼먹으면 젖통에 젖이 꽉 차 큰일 난다고해요. 사람이라면 자기 손으로 짜내면 되겠지만 네발 다린 저희야 (그것도 발가락이 퇴화돼 끝에 뭉뚝한 발굽을 달고 있으니!) 속수무책이지요. 잘못 방치하면 죽을 수도 있다네요. 보통 젖소는 5년 정도 젖을 짭니다. 새끼를 낳으면 9~10개월 정도 젖이 나오므로 이 기간 동안 서너 번 새끼를 낳죠. 그리고 나서는요? 뭐 저희랑 똑같은 운명이죠. 미국산 소 수입 논란의 핵심인 3년 이상 된 고기 있잖아요? 주로 젖소 얘기랍니다. 저희 같은 육우야 어차피 2~2년 반 정도면 거의 다 자라 그 뒤로는 키워봤자 사료비만 나가니까 바로 도축하죠. 읍! 이야기를 하다 보니 결국 도축이란 말이 나왔네요. 불길한데요….

어, 차가 멈추고 시동이 꺼졌습니다. 성찬 아저씨가 내려 제 쪽으로 걸어오는군요. 음… 이곳에는 공포와 불안의 그림자가 길게 드리워져 있군요. 저야 뭐 각오는 했으니까. 제 한 몸 희생해서 호태 오빠가 수술을 받아 건강을 찾을 수 있으면 됐죠 뭐. 성찬 아저씨(그러고 보니 저한테는 저승사자이시네요!)도 경합에서 좋은 결과 있길 바래요. 아, 드디어 도축장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들어섰어요. 길이 좁아서 몸을 뒤로 돌릴 수도 없네요. ‘막다른 골목’이란 게 이런 건가 봐요. 성찬 아저씨, 너무 미안해 하지 마세요. 어차피 저희 운명인 걸요.
안녕~.

PS. 식객 15회가 방송된 뒤 현실에서 꽃순이가 정말 도축될지도 모른다는 시청자들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자 SBS의 한 프로그램이 7월 30일 꽃순이의 근황을 소개했다. 다행히 꽃순이는 건강한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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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09월 과학동아 정보

  • 강석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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