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0°C를 웃도는 날씨였다. 개인보호장구를 착용한 채 땀에 젖어 땅을 파던 사람들의 시선이 모두 땅속의 작은 물체로 향했다. 이번엔 꼭 필자 입에서 뼈가 맞다는 말이 나오길 기대하는 눈빛이 느껴졌다. 일단 뼈처럼 보이는 물체를 발견했을 때 손으로 바로 집지 않고 필자를 불러야 한다는 규칙을 지킨 걸 칭찬한 뒤, 붓으로 주변 흙을 털어내고 물체를 자세히 살폈다. 아쉽게도 나무조각이었다. 사람들은 허탈해하면서도 즐거워했다. 나무조각이 사람 뼈와 얼마나 비슷해 보이는지 배웠다는 것이다.
법의인류학자, 현장에 나가다!
시체농장에서는 매년 미국 연방수사국(FBI) 등 여러 범죄 수사 기관의 요원들을 대상으로 훈련을 한다. 보통 일주일씩 진행되는 이 훈련의 핵심은 땅속에 암매장 됐거나 땅 위에 흩어져 있는 시체를 정해진 절차에 따라 탐색하고 수습하는 것이다.
필자가 팀장으로서 처음 이 훈련에 참여했을 땐 이미 경험이 많은 요원들을 상대로 뭘 가르쳐야 할지 막막한 마음이었다. 그런데 훈련을 하다 보니 많은 사람들이 특별한 원칙 없이 자신의 경험에만 근거해서 현장을 파악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이런 경우 경험해보지 못한 상황이 발생했을 때 유연하게 대처하기 힘들다. 이들은 실제 현장에서 반드시 지켜야 할 원칙을 체계적으로 배우길 원했다. 자신의 경험들을 꿰어줄 실이 필요했던 것이다.
예전엔 법의인류학자가 실제 사건 현장에 나가는 경우가 드물었다. 사건에 비해 법의인류학자의 수가 턱없이 부족하다는 현실적인 이유도 있었지만, 범죄 현장은 경찰과 수사관이 통제해야 한다는 인식 때문이었다. 하지만 법의인류학적 훈련을 받지 않은 수사관들은 종종 사건 당시의 상황을 재구성하는 데 필요한 중요한 단서를 놓치곤 했다. 예컨대 백골화된 시체의 뼈를 빠뜨리고 온다거나 시체가 발견된 현장의 상황을 충분히 기록하지 않는 일도 많았다. 시체농장의 설립자인 윌리엄 배스 박사의 책에도 그런 사례가 나와있다. 어느 여름날 경찰이 변사체를 비닐 가방에 담아 실험실로 옮겨왔다. 그런데 운반하는 동안 시체에 있던 구더기들이 변사체를 백골화시킨 것이다. 더 이상의 수사가 힘들었다. 현장에서 볼 수 있는 것을 실험실에선 다 볼 수 없다는 인식이 퍼지면서, 최근 미국에서는 법의인류학자들이 범죄 현장에 나가 수사관들과 공조하는 일이 많아졌다.
법의인류학자들은 범죄 현장에서 탐색 범위를 합리적으로 정하고, 시체와 증거물을 효율적으로 찾을 수 있도록 훈련 받는다. 만약 시체가 백골화됐다면 현장의 지형은 물론 현장 주변에 서식하는 동물의 종류를 고려해 뼈가 흩어진 범위와 방향을 예상할 수 있다. 또 암매장된 시체를 찾는 경우라면 지형이 비정상적으로 패이거나 솟아오른 정도, 혹은 주변 식물의 성장 정도를 비교해 암매장지를 찾아낸다. 필요하다면 금속탐지기나 지표면 투과 레이더를 이용하기도 한다.
물속의 시체도 체계적으로 탐색해야 한다. 많은 경우 시체가 물속에 빠지면 바닥까지 가라앉았다가 몸 속에 부패 가스가 차면서 다시 물 위로 올라온다. 부패가 더 진행돼 부패 가스가 몸에서 빠져 나가면 시체는 다시 물속으로 가라앉는데, 이후에는 다시 물 위로 떠오르지 않는다. 이런 정보를 이용하면 시체를 좀 더 효율적으로 탐색할 수 있다. 2013년 여름, 한 남성이 마포대교에서 뛰어내린 사건이 있었다. 입수할 당시 주변에는 경찰을 비롯해 많은 사람들이 있었음에도 그의 시체는 3일이 지나서야 서강대교 근처에서 발견됐다. 물의 깊이에 따라 유속이 얼마나 빠른지, 그리고 물속에서 시체가 어떻게 움직이는지에 대한 법의인류학자의 자문이 있었다면 탐색에 들인 인력과 시간을 줄일 수 있었을 것이다.

조사를 마친 현장은 기록으로만 존재한다
범죄 현장을 조사하고 시체를 수습한다는 건 다른 말로 ‘가해자가 만들어 놓은 상태’ 혹은 ‘범죄 행위의 결과물’을 훼손한다는 말이다. 조사를 마치고 나면 현장을 원래대로 복구하는 건 불가능하다. 그때부터 현장은 기록으로만 존재한다.
그렇기 때문에 기록의 목적은 분명하다. 현장을 조사할 당시에 그곳에 없었던 사람이 현장에 있던 사람과 같은 정보를 얻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범죄와 연관 있어 보이는 모든 정보는 기록의 대상이다. 시체의 발견 위치나 자세, 부패 상태, 물건의 위치는 물론이고, 주변 동식물의 현황, 토양, 기후 등 모든 정황을 정해진 양식에 따라 기록해야 한다.
기록하는 순서를 대략 소개하면 암매장지로 추정되는 곳의 지면을 정리한 뒤 직사각형 모양으로 발굴 범위를 구획한다(왼쪽 사진➊). 이 직사각형을 ‘그리드(grid)’라고 한다. 이제 그리드를 발굴하기 시작하는데, 주의할 점이 있다. 그리드 내 지면의 높이를 일정하게 유지하는 게 좋다. 예를 들어 한번에 30cm씩 내려가겠다고 계획을 세웠으면 그리드 안의 땅이 모두 기준점으로부터 30cm 낮아질 수 있게 발굴한다. 그리드 주변의 땅은 훼손하지 않아야 구덩이의 크기와 모양을 확인할 수 있다. 발굴 도중 증거물이 발견되면 물건의 위치와 종류를 도면에 기록한다(➋). 구덩이 또한 사건 당시의 정황을 알려주는 중요한 증거물이므로 구덩이의 크기와 형태도 기록한다(➌). 뼈가 발견돼도 발굴을 이어나가고, 뼈 전체가 노출된 뒤, 시체의 자세 및 특이점을 기록하고 뼈를 수습한다(➍). 수습 도중 새로운 증거물이 발견될 수 있으니 기록 담당자는 수습이 완료될 때까지 현장에 남아야 하고, 지면에 남은 게 없다는 사실도 사진으로 기록해야 한다.
이렇게 복잡한 절차를 거쳐 철저하게 기록을 남겨야 사소한 단서도 놓치지 않을 수 있다. 적절한 절차를 따르지 않은 기록은 나중에 재판 과정에서 증거로 인정받을 수 없다는 점도 유념해야 한다. 추가 분석을 위해 곤충이나 토양 샘플을 채취하기도 한다. 현장을 탐색하고 시체를 수습하는 과정 역시 모두 기록해야 한다. 만에 하나 실수가 발생할 경우 바로잡기 위해서다. 필드 노트와 같은 전통적인 방법 외에 최근에는 동영상이나 3차원 스캐너도 이용한다.

‘유기물’을 다루는 고고학
시체나 증거물을 발굴, 수습하는 과정엔 고고학적 방법론이 적용된다. 하지만 법의인류학자가 고고학자와 다른 점은 다루는 대상이 뼈와 같은 ‘유기물’이라는 점이다. 유기물은 주변 환경에 따라 보존 상태에 크게 달라진다. 특히 땅에 묻혀 있던 뼈가 공기 중에 노출되면 급속도로 손상될 수 있다. 고고학 현장에서처럼 뼈를 공기 중에 장시간 방치시키면 뼈에 남은 중요한 흔적이 사라질 수 있다. 사진 기록엔 큰 뼈가 보이는데 막상 실험실에는 아주 작은 뼛조각만 들어오는 안타까운 경우를 필자도 종종 경험했다.
우리 사회엔 많은 사건 사고가 발생한다. 범죄에 의한 경우는 물론 화재가 나거나 비행기가 추락해서, 혹은 배가 가라앉아 안타까운 인명 피해가 발생하기도 한다. 피해자를 찾고 현장을 기록해 사건의 진실에 다가가는 열쇠가 우리 사회에선 아직도 생소한 법의인류학자, 혹은 시체농장에 숨겨져 있을 수도 있다.
정양승(yangseung77 @gmail.com)
서울대 인류학과에 서 학부와 석사를 마 치고 미국 테네시대 인류학과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박사 과정 동안 시체농장 에서 시신 230구의 부패 과정을 매일 사 진으로 촬영해 데이 터베이스를 구축했 고 다양한 연구를 진 행했다. 현재 미 국 방성 소속 전쟁포 로 및 실종자 확인국 (DPAA) 감식소에서 법의인류학자로 근 무하고 있다.
서울대 인류학과에 서 학부와 석사를 마 치고 미국 테네시대 인류학과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박사 과정 동안 시체농장 에서 시신 230구의 부패 과정을 매일 사 진으로 촬영해 데이 터베이스를 구축했 고 다양한 연구를 진 행했다. 현재 미 국 방성 소속 전쟁포 로 및 실종자 확인국 (DPAA) 감식소에서 법의인류학자로 근 무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