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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러스는 얼마나 다양할까

Chapter 2. 정체

인류가 바이러스라는 존재를 처음 인식한 건 1892년이었다. 이때도 ‘세균보다 작은 어떤 물질이 있다’ 정도의 추측뿐이었다. 


그전까지 인류는 바이러스에 의한 질병으로 수도 없이 고초를 겪었으면서도 그것이 바이러스 때문인지는 까마득히 몰랐다.


천연두는 기원전 3세기 사망한 미라에도 흔적이 남아있다.


놀라운 점은 바이러스의 존재 자체를 모른 채로 바이러스 감염을 예방하는 백신이 만들어졌다는 사실이다. 1798년 영국의 의사 에드워드 제너가 천연두를 예방할 수 있는 우두법을 발표했고, 프랑스 생화학자 루이 파스퇴르는 1879년부터 콜레라, 광견병 등을 예방하는 백신을 연달아 만들어냈다.


백신까지 개발됐지만, 바이러스의 존재는 여전히 불분명했다. 그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 근본적인 원인일 것으로 추측하는 데 그쳤다. 


러시아 생물학자 드미트리 이바노프스키 역시 마찬가지였다. 다만 그는 1892년 담뱃잎의 모자이크병을 일으키는 무언가가 세균을 거를 수 있는 필터도 가뿐하게 통과한다는 사실을 알아내고, 이 질병이 세균보다도 작은 미지의 물질에 의해 일어난다고 결론내렸다.


이후에도 이 미지의 물질 때문에 발생한 질병들이 연이어 보고됐다. 하지만 너무나 작은 그 물질의 정체를 직접 볼 방법은 없었다.


이를 해결한 건 실험장치와 기법의 발전이었다. 특히 1930년대 들어 원심분리기와 전자현미경, 그리고 배양 기술이 크게 발전하면서 바이러스를 관찰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렇게 1939년, 비로소 바이러스로는 최초로 담배모자이크바이러스가 전자현미경을 통해 자신의 모습을 세상에 알렸다.


이후 지금까지 인간이 발견한 바이러스는 6000여 종에 이른다. 이들 바이러스는 몇 가지 특징에 따라 분류할 수 있다. 바이러스는 대부분 단백질 껍질이 유전물질을 감싼 단순한 구조이기 때문에, 단백질 껍질의 형태나 성분 또는 유전물질의 특성에 따라 나뉜다.


국제바이러스분류위원회(ICTV)는 미국 생물학자인 데이비드 볼티모어가 집대성한 ‘볼티모어 분류법’을 모체로 바이러스를 분류하고 있다. 


볼티모어 분류법은 유전물질의 특성에 따라 바이러스를 분류한다. 바이러스의 유전체가 DNA인지 RNA인지, 이 유전체가 단일가닥인지 이중가닥인지, 일체형인지 분절형인지 등에 따라 갈래가 나눠진다. 이에 따라 볼티모어는 바이러스를 일곱 개의 그룹으로 묶었다.


국제바이러스분류위원회는 볼티모어 분류법을 토대로 1971년부터 10년에 두 차례씩 바이러스 분류법을 정비하고 있는데, 2019년에 큰 변화가 있었다. 기본적으로 생물의 분류 체계는 ‘계>문>강>목>과>속>종’을 골자로 한다. 


하지만 바이러스 연구가 충분히 이뤄지지 않았던 분류 초기에는 ‘과>속>종’으로만 단순하게 분류했다. 1991년에 이것이 조금 더 확장돼 ‘목>과>아과>속>종’으로 분류하기에 이르렀고, 2019년 바이러스도 생물 분류와 똑같이 ‘계(realm·생물 분류에서 계는 영어로 kingdom)’부터 ‘종’까지 꽉 채워 분류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분류 체계가 확정된 이유는 정확한 유전자 분석을 통해 각 바이러스 종의 특성을 가르는 유전물질의 특징을 더 세밀하게 파악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그간 바이러스 연구에 가장 중점이 된 기술은 순수배양이었다. 한 종의 바이러스만 분리하고 배양해 다수의 개체를 확보하면 그 바이러스의 구조나 병원성 등의 정보를 정확히 알아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전통적으로 바이러스가 숙주로 삼는 세포를 먼저 배양한 다음, 그 위에 바이러스를 심어 증식시켰다. 과거에는 수십 일이 걸리는 과정이었지만, 현재는 원심분리기를 이용해 바이러스를 세포에 효율적으로 감염시킨다. 이런 ‘쉘 바이알(shell vial)’ 기법으로 바이러스를 2~3일 만에 빠르게 배양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배양할 수 있는 바이러스의 수는 매우 적다. 인위적으로 배양한 세포에서는 증식하지 않는 바이러스가 상당수이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바이러스의 정체를 빠르게 알아내기 위해 유전자 분석부터 시행하기도 한다. 특히 차세대 염기서열 분석(NGS·Next Generation Sequencing) 기술의 개발은 바이러스 검출 속도를 대폭 앞당겼다. 


NGS 기술은 DNA나 RNA 같은 유전물질을 무작위로 잘라 무수히 많은 짧은 조각들로 만든 뒤, 각 조각의 염기서열을 동시에 해독하는 방법이다. 


관심 있는 유전자 부분이 빠져 있거나 위치가 바뀌는 오류가 나타나기도 하지만 짧은 시간에 많은 양의 유전체를 해독할 수 있다는 더 큰 장점이 있다. 


이를 이용해 바이러스의 특성을 분석한 뒤, 그에 맞춰 배양 시스템을 구축해 바이러스의 특성을 더 정확하게 분석할 수 있다.


가령 국내 유전체 분석 기업인 테라젠이텍스는 NGS 기반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유전체 분석 시스템을 개발해 2020년 4월 20일부터 서비스를 시작했는데, 한 번에 수천 건의 검체를 분석할 수 있으며 소요 기간도 2~3일밖에 걸리지 않는다고 밝혔다.


이런 유전자 분석 기술을 바탕으로 분류된 현재의 바이러스 체계에서 최상위 단계인 ‘계’는 총 네 가지가 있다. 


우선 닭, 돼지와 같은 동물에게 전염성 빈혈이나 호흡기 질환, 장 질환 등을 유발하는 써코바이러스처럼 유전물질이 단일가닥 DNA인 바이러스(Monodnaviria)와, 인체 피부에 수포(물집)를 발생시키는 헤르페스바이러스처럼 이중가닥 DNA를 갖는 바이러스(Duplodnaviria)가 있다. 


그리고 유전물질로 RNA를 갖는 바이러스(Riboviria)에는 인플루엔자바이러스, 코로나바이러스 등이 포함돼 있다. 마지막으로 천연두바이러스와 아프리카돼지열병바이러스처럼 유전물질은 DNA인데, 단백질 껍질의 구조가 다른 바이러스(Varidnaviria)도 있다.


이외 약 400종의 바이러스는 아직 체계가 명확히 분류되지 않았다. 인간을 감염시키지만 아직 그 역할을 뚜렷이 알 수 없는 아넬로바이러스나, 열대식물의 성장을 멈추게 하는 바나나타래꼭지바이러스(BBTV) 등이 여기에 포함된다. 이들은 바이러스의 특징이 완전히 밝혀지지 않았거나, 현 분류 체계에서 두 개 이상의 그룹에 해당하는 특징을 동시에 가지기 때문이다. 


국제바이러스분류위원회는 앞으로도 바이러스 연구와 공개 토론에 따라 바이러스의 이름뿐만 아니라 각 분류 체계 역시 수정될 수 있음을 말하고 있다. 첨단 과학기술이 발달한 지금도 바이러스 세계는 아직 명확히 정립되지 않은, 미지의 세계인 셈이다.

 

2020년 07월 과학동아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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