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수 기초과학연구원(IBS) 유전체교정연구단장 연구팀은 슈크라트 미탈리포프 미국 오리건보건과학대 교수팀과 공동으로 유전자 가위 ‘크리스퍼-캐스9(CRSPRCas9)’으로 인간 배아에서 심장 질환을 야기하는 돌연변이 유전자를 교정하는 데 성공했다. 이 내용은 올해 8월 2일 과학학술지 ‘네이처’ 온라인판에 처음 공개됐다.
인간 배아에서 유전자 가위 기술을 최초로 성공시킨 사례는 올해 3월 중국 연구진이다. 여기에는 인간 배아 6개가 사용됐다. 김 단장과 미탈리포프 교수 공동연구팀은 인간 배아를 54개로 대폭 늘렸다. 때문에 논문이 공개되자 학계의 관심이 쏠렸다.
그런데 8월 28일 생명과학 분야 논문 초고 온라인 등록 사이트인 ‘바이오아카이브(bioRxiv.org)’에 이들의 연구 결과에 의문을 제기하는 논문이 올라왔다. 게놈 연구로 유명한 조지 처치 미국 하버드대 의대 교수, 디터 에글리 컬럼비아대 의대 교수 등 유전자 분야의 권위자 6명이 논문 저자로 이름을 올렸다. 이들은 2005년 황우석 박사의 배아줄기세포 논문 조작 사건의 핵심이었던 처녀생식 가능성까지 거론하며 강한 의구심을 나타냈다.
‘네이처’ 논문, 무슨 내용 담았나
미탈리포프 교수를 필두로 한 공동연구팀은 크리스퍼를 이용해 인간 배아에서 비후성 심근증의 원인이 되는 돌연변이 유전자를 정상 유전자로 교정했다. 비후성 심근증은 선천적으로 좌심실 벽이 두꺼워지는 심장질환으로, 자녀에게 대물림 될 확률이 50%인 유전병이다.
문제가 되는 유전자는 ‘MYBPC3’로 이 유전자에 변이가 일어나면 비후성 심근증이 발병한다. 500명에 1명 꼴로 나타날 만큼 비교적 흔한 질병이며, 심부전 증상으로 돌연사를 일으키는 주요 원인 중 하나로 꼽힌다.
이번 논란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이번 연구가 기존의 유전자 교정과 어떻게 다른지 알아야 한다. 우선 연구진은 크리스퍼 교정 기술의 가장 큰 골칫거리였던 ‘모자이크 현상’을 해결해 유전자 교정 성공률을 높였다.
모자이크 현상이란 돌연변이 유전자를 가진 세포와 정상 유전자를 가진 세포가 공존하고 있는 상태를 말한다. 세포 분열이 활발한 배아에서 모자이크 현상이 생기면 그만큼 돌연변이 세포가 많이 생긴다. 연구진은 이 문제를 해결해 비후성 심근증 변이 유전자가 자녀에 게 유전될 확률을 50%에서 27.6%까지 대폭 낮췄다.
해법은 크리스퍼를 주입하는 시점을 앞당긴 것이었다. 기존에는 정자와 난자가 수정을 한 뒤 크리스퍼를 주입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연구팀은 수정하기 전 돌연변이 유전자를 가진 정자와 크리스퍼를 함께 정상 난자에 주입했다(위 그림).
크리스퍼를 넣는 시점이 중요한 이유는 정자와 난자가 수정한 뒤 세포 분열을 시작하기 때문이다. 정자의 염색체 한 쌍(n)과 난자의 염색체 한 쌍(n)이 만나 두 쌍(2n)의 염색체를 이루고 나면, 세포 분열을 위해 각각의 염색체는 복제를 시작한다. 총 네 쌍(4n)의 염색체가 만들어지고, 곧 두 개의 세포로 나눠진다. 이 시기를 2세포기라고 한다. 세포는 계속 분열하며 4세포기, 8세포기, 16세포기를 지나 수억 개의 세포로 이뤄진 포배기에 이른다.
정자에 돌연변이 유전자가 있다고 가정해보자. 난자에서 온 정상 염색체 한 쌍과 정자에서 온 돌연변이 염색체 한 쌍이 만나 하나의 세포가 된다. 분열을 위해 네쌍의 염색체가 존재하는 시기에 크리스퍼가 정자의 유전자를 교정하게 되면, 정자의 염색체 두 쌍(2n) 중 한 쌍(n)만 교정이 이뤄질 수 있다. 한 쌍은 정상, 한 쌍은 돌연변이 유전자를 가진 세포가 된다. 이 세포가 다시 분열을 하게 되면 정상 염색체 두 쌍을 가진 세포와 돌연변이 염색체 두 쌍을 가진 세포가 하나씩 만들어진다. 즉, 모자이크 현상이 발생하는 것이다.
반면 수정을 하기 전, 염색체의 복제가 일어나기 전에 크리스퍼가 유전자를 교정한다면 정상 염색체 두 쌍을 가진 세포 하나가 만들어진다. 이 세포가 분열을 거듭하면 모든 세포가 정상 유전자를 가진 배아가 탄생하게 된다.
이번 연구에서 또 한 가지 특이한 점은 정상 유전자를 추가로 도입하지 않고도 유전자 교정에 성공했다는 점이다. 크리스퍼-캐스9은 캐스9 단백질, 캐스9을 표적 DNA로 안내하는 가이드 RNA(gRNA), DNA 가닥을 끊어내는 크리스퍼 RNA(crRNA) 등으로 구성돼 있다. 크리스퍼-캐스9이 표적 DNA를 자르고 나면, 세포내에 있는 시스템에 의해 DNA가 다시 복구된다. 생물학에서 ‘DNA 수선’이라고 부르는 작업이다.
이때 변이된 DNA를 잘라내고 정상 DNA를 도입하기 위해서, 주형이 될 수 있는 외부 DNA를 함께 넣어준다. 이 외부 DNA(Donor DNA)는 표적 DNA와 유사한 염기서열을 가지고 있어, DNA가 잘리고 나면 그 부분에 자연스럽게 붙는다. 이를 ‘상동직접수선’이라고 부른다(아래 그림). 그러면 DNA가 잘린 부분을 수선할 때 변이가 없는 외부 DNA를 주형으로 복제하게 돼 정상 DNA로 교정된다.
그런데 이번 연구에서는 이 외부 DNA 없이 정자의 변이 유전자가 교정됐다. 외부 DNA가 없다면 주형으로 사용할 수 있는 DNA는 난자의 정상 DNA뿐이다. 크리스퍼가 정자의 MYBPC3 변이 유전자를 자르고, 난자의 MYBPC3 정상 유전자가 상동재조합을 통해 정자의 잘려진 유전자 부위에 삽입된 것이다.
지금까지 이런 현상은 학계에 한 번도 보고된 바가 없다. 김진수 단장 역시 이 부분에 대해 “연구진도 예상하지 못한 결과였다”며 “외부 DNA를 도입하는 것보다 교정의 정확성이 더 높았다”고 말했다.
논란1: 난자의 유전자 교정? 발달생물학에 위배
외부 DNA 대신 난자의 유전자를 기반으로 유전자 교정이 이뤄졌다는 내용은 가장 먼저 의혹의 대상이 됐다. 에글리 교수는 논문에서 “이는 기존의 발달생물학에 위배되는 것이며, 이 부분에 대한 생물학적 메커니즘을 제시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부계와 모계의 염색체 한 쌍이 만나 온전한 하나의 세포를 이루기 전까지 정자와 난자는 각각 막에 둘러싸여 있다. 미탈리포프 교수팀의 연구 결과처럼 난자의 유전자가 정자의 유전자에 삽입되기 위해서는 정자와 난자의 물리적인 거리가 매우 가까워야 한다. 즉, 막이 사라지고 하나의 세포로 합쳐졌을 때에만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이렇게 되면 크리스퍼가 정자의 변이 유전자를 자른 시점이 애매해진다. 정자와 함께 주입된 크리스퍼가 수정 전에 정자의 변이 유전자를 잘라냈다면, 정자와 난자를 둘러싼 막 때문에 난자의 DNA를 이용해 수선할 수 없다.
두 유전자가 만난 이후에 정자의 변이 유전자가 잘렸다면, 수정 뒤에 크리스퍼를 주입하는 이전의 유전자 교정과 다를 바가 없어진다. 그렇다면 줄어든 모자이크 현상을 설명할 수 없다. 미탈리포프 교수팀은 논문에서 배아 54개 중 66.7%에 해당하는 36개 배아에서 모자이크 현상이 나타나지 않았다고 밝혔다. 수정 뒤 크리스퍼를 주입한 이전 연구에서는 과반수 이상의 배아에서 모자이크 현상이 발견됐다.
이번 논문의 제3저자인 박상욱 IBS 유전체교정연구단 연구위원은 “정자와 난자의 염색체가 만나는 시기에 크리스퍼가 작동해 정자의 유전자를 자르고, 난자의 유전자와 상동재조합이 일어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며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추정일 뿐 정확한 메커니즘이 밝혀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말했다.
이를 증명하기 위해서는 2세포기 이전의 배아를 관찰해야 한다. 박 연구위원은 “크리스퍼가 유전자를 자르는 순간이나, 난자 DNA가 잘려진 정자 DNA에 붙는 순간을 포착하기가 쉽지는 않을 것 같다”며 “난자 DNA를 이용하는 생물학적 메커니즘을 밝히는 일은 새로운 연구 주제로 다뤄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논란2: 처녀생식 가능성 고려했나?
미탈리포프 교수팀이 실험 결과를 잘못 해석한 것은 아닐까. 처치 교수 측에서는 이 경우를 가정하고 두 가지 시나리오를 제시했다. 그 중 하나가 처녀생식 가능성이다. 정자와 난자가 아예 만나지 못했고, 외부 자극에 의해 난자가 혼자 분열을 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자연적인 처녀생식은 일부 무척추동물, 파충류, 어류 등에서만 발견된다. 모체의 유전자만 가지기 때문에 처녀생식을 하는 종은 개체가 다양하지 못해 환경 변화에 취약하다. 진화적으로 고등한 생물일수록 처녀생식을 찾아보기 어렵다.
인간을 포함한 대다수의 포유류는 처녀생식을 하지 않지만, 실험실에서 인위적으로 발생시킬 수는 있다. 주사로 제2난모세포(난자로 성숙하기 이전의 세포로 제2난모세포 상태로 정자와 만난 뒤 난자가 된다)의 막을 건드려 자극을 주거나, 난자를 체외성숙 시킨 뒤 전류를 흘려주면 된다. 그럼 난자는 정자가 들어와서 발생하는 전류라고 착각해 스스로 분열을 시작한다.
처녀생식은 2005년 황우석 박사(현 에이치바이온 대표이사)의 배아줄기세포 논문 조작 사건에서 문제가 됐던 부분이다. 황 박사는 배아줄기세포를 만들어내는데 성공했다는 연구 결과를 과학 저널 ‘사이언스’에 발표 했으나, 이 세포가 처녀생식을 한 난자세포였음이 밝혀지면서 논문을 조작한 사실이 드러났다.
에글리 교수는 ‘네이처’와의 인터뷰에서 “미탈리포프 연구팀은 유전자 교정을 진행한 6개 배아줄기세포주 중 2개에서만 부계 유전자가 존재함을 보였다”며 “연구팀이 처녀생식의 가능성을 배제하고 데이터를 해석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든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에 대한 미탈리포프 교수팀의 태도는 강경하다. 박 연구위원은 “사람의 세포에서 처녀생식이 일어나는 것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나, 결코 쉽게 일어나는 일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실제 황우석 박사의 논문조작 사건 당시에도 학계에서는 “인간의 세포에서 처녀생식이 일어났다는 사실만 가지고 논문을 발표했어도 큰 주목을 받았을 것”이라는 의견이 많았다. 그만큼 드문 현상이라는 의미다.
박 연구위원은 “유전자 교정을 한 배아에서 정자의 단일염기다형성(SNP)을 찾으면 처녀생식이 아니라는 점을 증명할 수 있다”며 “현재 그에 대한 실험 데이터를 확인하는 중”이라고 말했다. 단일염기다형성은 염색체 일부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염기서열로, 사람마다 고유한 패턴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진수 단장 역시 “처녀생식이 아니라는 증거를 곧 공개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논란3: ‘삭제’를 ‘교정’으로 착각했나?
에글리 교수 등은 ‘대립형질 결실(Allele dropout)’이 일어났을 가능성도 제시했다. 크리스퍼가 DNA를 부수고 이를 수선하는 과정에서 유전자 결실이 일어날 수 있다. 이는 유전자 교정 실험에서 보편적으로 발견되는 문제점 중 하나다.
에글리 교수가 말한 대립형질 결실은 1000개 이상의 염기가 사라지는 큰 결실을 의미한다. 이 정도로 큰 결실이 일어나면 정자의 유전자는 작은 조각으로 부서지게 되고, 결국 난자의 유전자만 남게 된다. 즉, 남겨진 난자의 유전자를 보고, 정자의 변이 유전자를 교정했다고 착각했을 수 있다는 의미다.
박 연구위원은 “유전자 교정을 할 때 발생하는 결실은 대부분 염기 10~20쌍(베이스페어·bp) 정도”라며 “하지만 큰 결실이 발생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기 때문에 현재 큰 결실이 있었는지를 추가로 확인하는 중”이라고 말했다.
이번 논란에 대해 김진수 단장은 “과학 연구에 있어 의문점을 제기하고, 추가 연구와 실험을 통해 의문을 해결하는 과정은 매우 흔하고 자연스럽다”며 “우리 연구팀 역시 충분한 실험 자료를 토대로 반박 논문을 발표할 것”이라고 말했다.
‘네이처’ 측은 논란이 불거지자 10월 2일 미탈리포프 교수팀의 논문 온라인판을 업데이트하면서 편집자주를 추가하고 “이 논문의 일부 결과에 대해서 논란이 있다”며 “향후 이 논란에 대한 네이처 편집부의 입장을 밝히겠다”고 발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