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술 읽혀요
“페임랩에 출전하겠습니다!”
모든 일은 3월 24일 5월호 과학동아 기획회의에서 시작됐습니다. 5월호 과학동아에 담을 아이템을 논의하는 자리였지요. 항상 과학기사로 독자들과 소통하는 일에 앞장서야 한다는 사명감에 불타올랐던 기자는 한국과학창의재단이 주관하는 발표대회인 ‘2020 페임랩 코리아’에 나가보겠다고 제안했습니다. 누군가 말려줄 줄 알았는데, 그 말은 곧 현실이 됐습니다.
페임랩(FameLab)은 파워포인트 등 발표자료 없이 과학 연구에 대해 최대 3분 동안 설명하는 과학 소통 경연대회입니다. 2005년 영국 첼트넘 과학축제에서 처음 시작됐습니다. 페임랩의 한국 대회인 페임랩 코리아는 2014년 제1회 대회가 열렸습니다.
페임랩 코리아에서 대상을 받은 1명은 영국에서 열리는 페임랩 국제대회에 한국 대표로 참가합니다. ‘코로나19 때문에 영국은 위험하지 않을까?’ 초반엔 김칫국을 배부르게 마셨더랬습니다. 그만큼 발표 준비가 걱정스럽지는 않았습니다. 우리에겐 1986년부터 35년간 발간된 모든 과학동아 콘텐츠를 온라인에서 볼 수 있는 ‘디라이브러리’가 있으니까요.
실제로 디라이브러리에는 다룰 만한 주제가 넘쳐났습니다. 미국항공우주국(NASA)이 유인 달탐사 프로젝트 ‘아르테미스’에 참가할 우주인을 선발한다는 기사도 있고, 코로나19에 따른 사회적 거리두기의 과학적 효과를 분석한 기사도 찾았습니다.
인간을 달에 보내려는 상황에서 바이러스에 발목이 잡혀 집밖에도 나가지 못하는 아이러니라니.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결심했습니다. 무슨 얘기를 해도 ‘기-승-전-코로나’로 끝나는 요즘 상황에 맞게 코로나19 치료제 얘기를 해보기로요.
코로나 치료제 개발은 대부분 ‘신약재창출’이라는 전략을 활용합니다. 전 세계 감염자가 200만 명을 돌파한 위기상황에서 치료제를 빨리 개발하기 위해 시판되는 약 중에서 적용 가능한 물질을 찾아내는 거죠. 현재 국내외에서 임상 시험이 진행 중인 ‘칼레트라’를 예로 들기로 했습니다. 칼레트라는 원래 후천성면역결핍증(에이즈·AIDS) 치료제입니다.
우리 몸속 세포는 단백질 합성경로에 따라 단백질을 필요한 만큼 만들어서 사용합니다. 반면 바이러스는 숙주세포의 시스템을 이용해 빠르고 효율적으로 단백질 덩어리를 만든 뒤 ‘단백질가위’로 잘게 쪼개 사용합니다.
칼레트라는 에이즈를 유발하는 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HIV)의 단백질가위를 무력화시키는 물질입니다. 이것이 코로나19를 일으키는 사스코로나바이러스-2(SARS-CoV-2)에도 작용할 수 있습니다. 모양은 조금 다를 수 있지만 결국엔 단백질가위니까요.
단백질가위를 설명하려니 바이러스가 단백질을 만드는 과정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했습니다. 특히 세포 내 유전체에서 단백질을 필요한 만큼 ‘쏙쏙’ 만들어내는 모습은 설명하기가 상당히 까다로웠습니다. 머리를 싸매던 그때 책상 위에 놓인 각 티슈(뽑아 쓰는 휴지)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이거다!
접수 마감일인 4월 6일, 회사 한 쪽에 마련된 스튜디오에서 1차 예선에 제출할 영상을 촬영했습니다. 역시 마감일이 닥쳐야 몸이 움직이는 법이죠. 카메라를 셀프 촬영 모드로 놓고, 각 티슈 2개가 놓인 책상 앞에 앉았습니다. 둘 중 한 각 티슈는 들어있는 휴지를 모두 제거하고 이면지를 구겨 넣었습니다.
드디어 촬영 시작. 녹화 버튼을 누르고 각 티슈에서 내용물을 뽑아냈습니다. ‘일반 세포 유전체’라고 써붙인 각 티슈에서는 휴지가 한 장씩 쏙쏙 뽑힙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일반적인 단백질입니다. 반면 다른 각 티슈에서는 긴 종이가 쭉 빨려나옵니다. 바이러스 유전체에서 단백질 덩어리가 나오는 모습입니다. 한 손에 가위를 들고 긴 종이를 자르며 바이러스가 단백질을 만드는 기작을 열심히 설명했습니다. ‘NG’가 계속 나는 바람에 3분짜리 영상을 만드는 데 1시간가량 걸렸습니다.
그로부터 5일 뒤, 결과가 나왔습니다. 믿을 수 없지만 땡, 탈락이었습니다. 1차 예선인 3분 영상은 주제의 참신함, 내용의 정확성, 주제 적절성, 발표력 등 4가지를 평가합니다.
천세원 한국과학창의재단 과학문화산업기반실 연구원은 “간발의 차로 떨어졌다”며 “발표 태도는 좋았으나 내용이 평범한 편이었다”고 위로했습니다. “기본적으로 대학원생들이 많이 지원하기 때문에 다들 전문성을 갖춘 편”이라며 “그중 과학지식을 재밌게 전달한 지원자들이 높은 점수를 받았다”는 말도 전했죠.
그 말 속에서 기자의 패인을 알 수 있었습니다. 한마디로 ‘노잼’이었던 겁니다. 아쉽지만 어쩌겠습니까. 영국엔 내년에 가는 수밖에요. 2차 종합예선은 1차 예선을 통과한 20명이 화상으로 치른다고 합니다. 모두에게 건투를 빌며, ‘사슴기자’의 도전은 앞으로도 계속됩니다. 쭈~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