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M 1557이라는 세계최강의 합금을 개발한 최주박사(한국과학기술원)은 요즘 심기가 언짢다. '과장이다' '아니다'하는 주위의 논쟁이 그의 마음을 크게 흔들어 놓은 것이다.
최박사는 "세계최강이라고 발표된 것은 연구결과에 입각한 것이지, 결코 과대포장된 것은 아니다"라고 반박한다. 그러나 제트엔진이나 우주선의 재료로도 사용될 수 있다는 발표는 성급한 것이었다고 말했다.
"이 합금으로 당장 무엇을 만들 수 있느냐고 묻기에, 간단한 쟁반정도는 만들 수 있다고 대답했다. 한마디로 생명에 직접 관계되는 비행기등의 재료로 쓰이려면 아직 멀었다."
KM 1557은 현재 걸음마 단계의 합금이다. 아직 개발자의 품속에, 즉 재료공학자의 '순수한'기대를 받고 있는 상태인 것이다.
하지만 금속재료는 기계등의 재료로 실제로 활용되어야 빛이 난다. 이때부터는 경제성을 따지는등 수많은 고달픈 관문이 가로놓이게 된다. 그렇다고 애당초 실용성을 제쳐놓고 새로운 합금을 개발한다는 얘기는 아니다.
"새로운 합금이 나왔다고 해서 하루 아침에 재료로 쓰이는 것은 아니다. 쇠는 적어도 5년은 지나봐야 진가를 알 수 있다"고 최박사는 말한다.
실제로 실험실에서 정성들여 만든 합금 15㎏과 공장에서 적당하게 만든 합금 1t은 그 성능에서 별개일 수도 있다. 또 자연상태의 터빈용 합금을 실제로 싱싱 돌아가게 하였을때 어떤 재질의 변화를 보일지도 극히 미지수다.
여기다 시간이라는 변수를 대입하면 문제는 더욱 복잡해진다. 수명도 합금의 우수성을 평가하는데 중요한 인자이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들로 인해 신합금이 시판되는데는 많은 시간이 걸린다. 신약이 시판 직전단계인 임상실험까지 통과하려면 대개 10년 정도 걸리는데, 신합금의 경우도 엇비슷하다. 1982년에 일본의 히다치가 개발한 당시 세계최강이라고 발표되었던 합금이 아직 시판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좋은 예다.
어떤 금속이 우수한 금속일까? 강하고 잘 녹슬지 않은 금속이 여기 해당할 것이다. 그러나 금속은 심술장이다. 강도를 높일수록 반대로 내식성은 떨어지게 돼 있다.
따라서 합금을 연구하는 학자들의 소망은 강하고 내식성도 우수한 합금을 제조하는 일이다. 다시 말해 모순을 깨는 작업인 것이다. 과거에는 순전히 관련학자나 기술자들의 경험에 의존, 이 일을 해냈다. 그러나 지금은 컴퓨터를 적극 활용하고 있다. 각 연구소에서 자체적으로 개발한 합금설계법이라는 소프트웨어를 통해 신금속을 찾는 것.
모순을 깨는 작업을 통해
마치 성능좋은 컴퓨터 한대만 있으면 만사가 해결될 듯이 보인다. 그러나 컴퓨터만으로는 어림없다. 학자들의 금속에 대한 축적된 지식이 없으면 한강에서 모래알 하나를 찾는 격이 되고 마는 것이다.
아무튼 이 작업은 확률을 점차 줄여가는 작업이다. 뭔가 물건이 될성부르지 않은 금속조합들을 하나씩 배제해 나가다보면 뜻밖의 '월척'을 낚을 수 있다. 그것중의 하나가 바로 KM 1557.
월척이 붕어인지 잉어인지는 강도측정시험과 부식시험을 해봐야 알 수 있다. 합금의 강도는 크립(creep)실험을 통해 알 수 있다. 즉 4㎏의 추가 달린 합금선을 1천℃의 온도에 노출시키면 언젠가는 끊어진다는 것을 활용한다.
이 크립실험결과, 직전 챔피언이었던 히다치사의 금속이 6백시간을 버틴 데 비해 KM 1557은 7백64시간을 버팀으로써 새 챔피언으로 등장한 것.
한편 내식성의 측정은 상당히 주관적이다. 합금에 염산 질산 황산등 강산과 불화취소가스를 주입한 후 그 결과를 살피는 것이다. 현재 이 내식성 부문에서 세계 최고로 알려진 합금은 하스텔로이와 인코넬 617인데 놀랍게도 둘다 1940~50년대에 개발된 것들이다. 이 내식성에서도 KM 1557은 최고의 수준을 과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