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통난이도 | 식용 곤충
“한 번 먹어 보세요. 고소하고 맛있어요.”
1월 31일 전북 완주군에 있는 국립농업과학원. 방혜선 곤충산업과 과장이 태연하게 갈색거저리 유충을 입에 넣어 씹어 먹더니 기자에게도 맛을 보라고 권했다.
평소 ‘못 먹는 것 빼고 다 먹는’ 기자였지만, 형태가 그대로 보존된 곤충 시식은 거부감부터 들었다. 결국 그의 권유를 거절할 수 없어 눈을 질끈 감고 갈색거저리 유충을 입으로 가져갔는데, 어랏, 막상 입에 넣으니 괜찮다. 말린 새우 맛, 달지 않은 과자 ‘새우X’ 맛에 가까웠다.
“생김새 때문에 거부감이 있을 뿐 맛도 나쁘지 않고 단백질 함량도 풍부한 데다 최근에는 건강에도 좋다는 사실까지 밝혀졌어요.”
국내에서 식품원료로 등록된 곤충은 총 8종이다. 2014년 벼메뚜기, 누에 번데기, 백강잠 등 3종에 이어 2016년 고소애(갈색거저리 유충), 쌍별이(쌍별귀뚜라미), 꽃벵이(흰점박이꽃무지 유충), 장수애(장수풍뎅이 유충) 등 4종이 추가됐고, 1월 16일 아메리카왕거저리 유충 분말까지 식품원료로 등록되며 총 8종으로 늘었다. 아메리카왕거저리는 딱정벌레목 거저리과로 갈색거저리의 먼 사촌 격이다.
가축 사료에서 밥상 위를 넘보다
초창기 곤충 연구는 사람의 식량이 아닌 가축 사료를 대체하기 위해 연구됐다. 가축 사료인 어분의 주성분은 멸치인데, 멸치 어획량이 줄면서 대체재 개발에 대한 논의가 이뤄졌다. 그런데 막상 연구가 진행되면서 곤충은 사람이 섭취하기에도 영양성분이 풍부하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2013년 유엔식량농업기구(FAO)가 미래 식량으로 곤충을 꼽은 이후에는 식용 재료로 쓰기 위한 곤충 연구가 가속화됐다.
곤충이 미래 식재료로 촉망받는 이유는 한마디로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다. 소, 돼지와 같은 다른 가축과 비교하면 사육할 때 단위 무게 대비 필요한 사료가 매우 적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가 2013년 발간한 ‘식량 안보를 위한 곤충의 식량 및 사료화 잠재성’에 따르면 소가 몸무게 1kg당 필요한 사료가 10kg이라고 할 때, 돼지와 닭은 각각 5kg, 2.5kg을 소비한다. 그런데 곤충은 1.7kg이면 충분하다. doi: 10.1146/annurev-ento-120811-153704
그러면서도 단위 무게 대비 단백질량은 오히려 곤충이 많다. 1g당 단백질 함유량이 소는 20.8g, 돼지는 15.8g인데, 갈색거저리 유충은 50.3g, 벼메뚜기는 70.4g에 이른다. 또 곤충 지방의 70%는 ‘좋은 지방’으로 불리는 불포화지방산이다.
온실가스 배출량도 적다. 몸무게 1kg당 소와 돼지가 이산화탄소를 각각 2800g과 80g을 배출할 때 갈색거저리 유충은 고작 8g을 내뿜는 수준이다. 이 외에 사육에 필요한 물의 양도 적고, 차지하는 면적도 훨씬 좁아 사육하기 쉽다.
더군다나 최근 곤충의 약리적인 효과가 밝혀지면서 곤충은 식용으로 더욱 주목받기 시작했다.
2018년 조나단 파츠 미국 매디슨 위스콘신대 교수와 티파니 와이어 콜로라도주립대 교수가 이끄는 연구팀은 귀뚜라미가 장내 미생물 증진에 효과적이라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연구팀은 성인 20명을 두 그룹으로 나눠 2주 동안 한 그룹에만 귀뚜라미를 이용한 아침 식사를 제공했다. 이후 2주 동안은 귀뚜라미 식단을 제공하는 그룹을 바꿨다. 그 결과 귀뚜라미 식단을 먹었을 때 면연력을 높인다고 알려진 장내 미생물이 5.7배 증가했다. doi: 10.1038/s41598-018-29032-2
국내에서는 2016년 농촌진흥청과 박준성 강남세브란스병원 간담췌외과 교수팀이 공동으로 고소애가 수술 후 환자의 영양 상태를 개선하고 근육증가에도 효과가 있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doi: 10.14373/JKDA.2016.22.4.292
또 농촌진흥청은 2019년에는 이 연구를 토대로 고소애의 장기 복용 효과를 확인해 발표했다. 연구팀은 암 수술을 받은 환자 109명 중 49명은 3주 동안 고소애 환자식을, 나머지 60명은 일반식을 섭취하도록 했다.
그 결과 고소애 환자식을 먹은 환자가 일반식을 먹은 환자보다 제지방량(체중에서 체지방량을 뺀 양)은 4.8% 늘고, 근육량도 3.7% 늘었다. 암세포에 대항하는 면역세포 중 자연살상세포(NK cell)와 암세포의 전이를 막는 세포독성 T세포(Cytotoxic T cell) 활성도 각각 16.9%, 7.5% 늘었다.
곤충 사육 농가는 2015년 724호에서 2018년 2318호로 크게 늘었다. 국립농업과학원은 올해 수벌번데기와 풀무치 2종을 식품원료로 추가 등록해 식용 곤충을 총 10종으로 늘릴 계획이다. 방 과장은 “식용 곤충 산업을 키우기 위해서는 새로운 곤충을 식용으로 개발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식용 곤충에 대한 대중의 거부감을 없애는 인식 개선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식용 곤충 선정 결과 1등은 ‘쌍별귀뚜라미’
전 세계에는 곤충이 약 130만 종 서식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수많은 곤충 중 밥상에 올라올 수 있는 곤충은 어떻게 간택(?)되는 걸까. 김선영 국립농업과학원 곤충산업과 농업연구사는 “직접 먹는 음식인 만큼 선정부터 안전성 검증까지 까다로운 절차를 거쳐야 한다”며 “식품의약품안전처의 승인을 획득한 곤충은 걱정 없이 먹어도 된다”고 말했다.
식용 곤충 후보는 생산자 측면에서 12개 항목과 소비자 측면에서 3개 항목으로 나눠 평가한다. 우선 선행 연구를 토대로 곤충의 생리와 생태, 그리고 생산 및 관리에 대한 지표를 평가한다. 이후 식용 친화성, 건강성 등을 고려한 소비자 측면 항목에서 점수를 매긴다.
현재 국내에서 식품으로 등록된 곤충 8종을 포함해 지금까지 국립농업과학원이 후보군에 올린 25개의 곤충 가운데 최고 점수를 받은 식용 곤충은 2016년 선정된 쌍별귀뚜라미다. 쌍별귀뚜라미는 소비자 점수에 가중치를 둔 종합 54점으로 지금까지도 최고점으로 기록돼 있다. 쌍별귀뚜라미 분말이 단백질바에 함유된 경우가 많고, 간 기능 증진에 효과가 있어 숙취해소 음료에도 쓰인다.
물론 평가 점수가 높다고 식용으로 바로 채택되는 것은 아니다. 적절한 사육법을 통해 대량 생산이 가능하도록 시장경쟁력을 갖춰야 한다. 곤충마다 사육에 적합한 온도나 광(光)주기 등이 조금씩 다른 만큼 사육법이 중요하다.
가령 넓적배사마귀는 식용 곤충인 흰점박이꽃무지와 소비자 점수가 같지만, 사육기술과 사육 규모화 등에서 점수가 낮아 최종 평가 점수가 낮다. 곤충은 동족을 잡아먹는 특성이 있어 넓은 사육공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반면 아메리카왕거저리의 경우 알에서 깬 지 40일 정도 지난 유충 200마리를 사육하는 데 215cm2 이상 면적이면 충분하다. 가로세로가 각각 10cm, 20cm 정도인 직사각형을 생각하면 된다.
곤충 알은 5~7일이 지나면 애벌레가 되고, 여러 번 탈피를 거치면서 몸집이 커진다. 국립농업과학원은 번데기가 되기 전에 일부는 식용 유충으로 이용하고, 일부는 성충으로 키워 알을 낳게 한다. 곤충사육법 체계를 연구하는 윤형주 국립농업과학원 곤충산업과 연구관은 “곤충마다 사육하는 적정 온도와 습도가 다른데, 아메리카왕거저리는 온도 30도, 습도 65%가 최적의 환경”이라며 “온도와 습도 유지만큼 환기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형태 그대로 동결건조 후 탈지 분말 만들어
선별 과정을 무사히 통과했더라도 마지막 관문인 안전성 평가가 남아 있다. 이 단계에서는 유충의 경우 영양성분 함량 비율과 독소 여부 등을 따진다. 이번에 식용 곤충으로 승인된 아메리카왕거저리 유충은 대부분의 식용 곤충이 유충 형태로 등록되는 것과 달리 탈지화된 분말 형태로 등록됐는데,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식용으로 이용하는 곤충은 10령~16령(1령은 부화 후 한 번 탈피까지의 기간)이다. 어린 유충은 단백질 함량은 높지만 상품화하기에 작고, 더 큰 유충은 표피가 딱딱해서 식용으로 적합하지 않다. 이 시기에 해당하는 아메리카왕거저리 유충의 지방 함량은 36~40%로 다른 곤충보다 지방이 많아 산패가 빨리 될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 김 연구관은 착유기를 이용해 유충을 탈지 분말 형태로 만들어 지방 함량을 21%로 낮췄다. 김 연구관은 “지방을 줄이자 단위 무게(g)당 낼 수 있는 열량은 줄었지만, 탄수화물, 단백질, 식이섬유 함량 비율은 갈색거저리 유충보다 훨씬 높았다”고 말했다.
곤충이 인간의 입속으로 들어가기 위해 거쳐야하는 최종 관문은 체내에 있는 노폐물을 빼내고, 세척 및 멸균 과정을 거쳐 건조시키는 것이다. 건조 과정에는 열풍건조, 마이크로파건조, 그리고 동결건조 등 일반적으로 3가지 방식이 사용된다.
실험실에서는 모양과 색에 변화가 거의 없는 동결건조를 이용하지만, 실제 농가에서는 동결건조 단가가 비싸 열풍건조나 마이크로파건조를 이용한다. 어떤 건조 방식이든 곤충 성분상의 변화는 거의 없다.
다만 열풍건조를 하면 곤충이 색이 거무스름해지고 원래 크기보다 줄어든다는 단점이 있다. 마이크로파건조는 마치 튀겨지듯 크기가 늘어나 쪼갰을 때 속이 빈 형태라는 것이 단점이다.
건조까지 마치면 유충 형태 그대로 섭취하거나, 분말로 갈아서 식품으로 이용한다. 물론 아메리카왕거저리 유충의 경우 건조 후 탈지 과정이 한 번 더 필요하다. 분말 형태는 멸치 가루처럼 찌개에 넣어 먹거나 선식이나 밀가루에 섞어 요리에 쓴다.
김 연구관은 “곤충 단백질을 흡수가 빠른 저분자 단백질로 만드는 방법과 곤충 특유의 냄새를 줄이는 방법 등을 연구하고 있다”며 “아직 다른 산업에 비해 규모는 미미하지만, 식용 곤충에 대한 인식이 개선되면 5~10년 뒤에는 곤충 식품이 보편화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