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 수 6만 개, 누적 다운로드 수 15억 건, 월 매출액 3000만 달러(약 360억 원). 서비스를 시작한 지 1년 만에 애플의 앱스토어가 낸 성적표다. 앱스토어는 애플리케이션 스토어(Application Store)의 준말로 애플리케이션 을 자유롭게 사고 팔 수 있는 모바일 장터를 말한다. 애플이 아이폰을 출시하며 지난해 최초의 가상 상점인 앱스토어를 열었으며, 여기에서 누구라도 자신이 개발한 애플리케이션을 전 세계 아이폰 사용자에게 팔 수 있다.
국내 업체들도 앞다퉈 앱스토어 서비스에 뛰어들고 있다. 삼성전자는 9월 중순 서비스를 시작했고 SK텔레콤도 9월 말 서비스를 시작할 예정이다. LG전자와 KT도 올해 안에 앱스토어 서비스를 시작한다.
스마트폰 시장에 분 돌풍의 핵
국내에 열리는 앱스토어는 어떤 모습일까. 애플의 앱스토어를 벤치마킹한 만큼 운영 방식은 크게 다르지 않다. 개인이 개발한 애플리케이션을 앱스토어에 올려놓으면 소비자는 무선통신에 접속해 휴대전화로 내려 받거나 PC에 내려 받은 뒤 휴대전화로 옮기는 방식이다. 판매 수익은 애플의 앱스토어처럼 개발자와 운영사가 7대3의 비율로 나눠 갖는 방식이 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개발자들의 도전의식을 자극할 것으로 보인다.
SK텔레콤의 네이트(nate)나 KT의 ez-i가 대형 업체가 개발하고 이동통신사가 판매하는 일종의 백화점이라면, 앱스토어는 옥션이나 지마켓처럼 개인 판매자가 직접 다양한 제품을 판매하는 오픈마켓이다. 앱스토어 운영사에서 공개한 ‘소프트웨어 개발 키트(SDK)’라는 프로그램으로 누구나 자유롭게 애플리케이션을 만들 수 있다.
기존 서비스보다 애플리케이션을 등록하는 데 걸리는 시간도 짧고 판매도 빠르게 이뤄진다. 애플 앱스토어에서는 저작권을 침해하거나 불건전한 내용을 포함하는 문제가 없고 오류를 일으키지 않는 애플리케이션은 대부분 1주일 이내에 등록된다.
앱스토어는 단말기 제조업체에도 매력적인 시장이다. 호남대 인터넷 소프트웨어학과 윤천균 교수는 “휴대전화가 고사양으로 평준화되면서 단말기 자체를 차별화하는 일이 어려워졌다”며 “제조업체들이 새로운 수익모델을 앱스토어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상대적으로 투자가 적었던 콘텐츠 부분에서 기능을 업그레이드하거나 차별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삼성전자 측은 “앱스토어가 활성화되면 스마트폰의 수요도 늘 것”이라며 “애플리케이션 같은 소프트웨어의 경쟁력이 곧 하드웨어의 경쟁력으로 이어질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지난 4월부터 국내산 모바일 플랫폼인 위피(WIPI)를 단말기에 의무로 탑재해야 하는 규정이 폐지된 것도 앱스토어 열풍에 영향을 미쳤다. 국책사업으로 개발한 위피는 콘텐츠 서비스 방식을 통일해 초기에 국내 무선 인터넷 시장을 활성화시키는 데 기여했지만 성능의 한계로 인해 다양한 콘텐츠나 서비스를 개발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본격적으로 앱스토어 서비스가 시작되면 사용자들도 좋은 콘텐츠를 더 싼 가격에 제공받을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앱스토어 성공의 열쇠는 OS 호환
애플의 아이폰처럼 주력 제품이 없는 상황에서 국내 업체들이 선보이는 앱스토어가 성공하려면 스마트폰마다 제각각인 운영체제(OS) 사이의 장벽을 허물어야 한다. MP3파일, 동영상 재생부터 스케줄 관리, 인터넷 접속까지 다양한 기능을 하는 스마트폰은 PC처럼 OS가 필요하다.
그런데 일반 PC용 프로그램이 매킨토시에서 작동하지 않듯 스마트폰의 애플리케이션은 OS
종류에 따라 호환되지 않는다. 스마트폰이 제각각의 OS를 사용할 경우 개발자는 그에 맞는 애플리케이션을 따로 만들어야 한다. 애플의 앱스토어에는 그들이 제공한 SDK를 이용한 애플리케이션만 등록할 수 있다.
전문가들은 이런 폐쇄성이 앱스토어 활성화에 찬물을 끼얹을 수 있다고 지적한다. 그래서 국내 업체들은 스마트폰 간 장벽을 허물 방법을 고민 중이다. SK텔레콤의 김대웅 매니저는 “T스토어 오픈에 맞춰 OS나 단말기 종류에 상관없이 콘텐츠를 제작할 수 있는 ‘SK표준플랫폼(SKAF)’과 ‘크로스 플랫폼’을 공개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삼성전자 측도 “현재 심비안과 윈도 모바일을 지원하는 애플리케이션만 앱스토어에 업로드할 수 있지만 점차 모든 OS를 지원할 수 있도록 서비스를 확장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애플리케이션은 개발에 쓰인 SDK에 따라 조금씩 다르지만 표준플랫폼을 사용할 경우 액티비티, 콘텐츠 프로바이더, 브로드캐스트 리시버와 이들을 호출하는 신호인 인텐트로 구성된다. 예를 들어 다이어리를 만든다고 가정할 때 초기화면이나 일정을 입력하는 화면, 다이어리 속지처럼 사용자가 정보를 입력하고 그 결과를 나타내는 화면을 액티비티라고 한다.
콘텐츠 프로바이더는 애플리케이션의 데이터를 다른 애플리케이션에 전달한다. 일반적으로 개별 애플리케이션이 가진 데이터는 해당 애플리케이션만 접근할 수 있다. 만약 다이어리에 사진을 넣으려면 포토앨범 애플리케이션에서, 전화번호를 입력하려면 전화번호부 애플리케이션에서 데이터를 불러와야 하는데, 이때 콘텐츠 프로바이더가 데이터를 전달한다.
브로드캐스트 리시버는 배터리 방전, 문자메시지 수신처럼 시스템의 변화를 감지한 뒤 휴대전화의 벨소리를 울리거나 진동을 일으켜 사용자에게 알린다.
전자서명으로 악성코드, 바이러스 잡는다
스마트폰은 PC보다 보안체계가 취약하다. 만약 누군가 고의로 바이러스나 악성코드가 포함된 애플리케이션을 올릴 경우 앱스토어는 바이러스 전파의 근원지가 될 수 있다. 사용자는 프로그램을 내려 받기 전까지, 혹은 내려 받아 실행시키더라도 각 프로그램이 바이러스를 포함하진 않았는지, 해킹 프로그램은 아닌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SK텔레콤을 비롯한 국내 업체들은 이런 문제를 막기 위해 해시함수를 이용한 ‘코드 사이닝(Code Signing)’을 앱스토어에 도입한다. 코드 사이닝은 일종의 전자서명 기술로 문서의 위조나 변조를 막기 위해 서명을 하듯이 애플리케이션의 데이터에 서명한다는 뜻이다.
해시함수는 애플리케이션의 원 데이터에서 무작위로 데이터를 추출한 뒤 압축해 ‘해시값’이라는 암호를 만든다. 모든 애플리케이션에는 송신자가 보낸 해시값이 포함된다. 수신자의 단말기는 애플리케이션을 내려 받은 뒤 해시값을 구해 송신자가 보낸 값과 비교한다.
만약 두 값이 다르면 중간에 애플리케이션에 변화가 생겼다는 뜻이다. 이때 코드 사이닝은 사용자에게 경고 메시지를 띄워 애플리케이션의 실행을 막는다. 해시함수는 역함수를 구할 수 없기 때문에 해시값에서 원 데이터를 재현할 수 없다. 같은 해시값을 갖는 바이러스나 악성코드를 중간에 교묘히 끼워 넣는 일이 불가능하다는 뜻이다.
해시값의 위조나 변조를 막기 위해 공개키 암호방식의 서명도 쓰인다. 이는 암호를 생성할 때 쓰는 암호화 키와 암호를 해독할 때 쓰는 복호화 키가 서로 다른 방식이다. 수신자는 자신의 암호화 키를 공개하지만 복호화 키는 수신자만 알고 있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은 암호문을 해독할 수 없다. 예를 들어 A가 B에게 암호화된 정보를 전달할 때 A는 B가 공개한 암호화 키를 이용해 암호로 만든 메시지를 보낸다. B는 자신의 복호화 키로 암호문을 해독하기 때문에 중간에 해킹당하는 일을 막을 수 있다.
킬러 콘텐츠를 개발하려면
NHN의 자회사인 엔플루토 소속의 게임 개발자였던 변해준 씨는 지난 2월 애플의 앱스토어에 아이폰용 게임 ‘헤비 마크(Heavy Mach)’를 올렸다. 이 게임은 순식간에 북미 게임순위 3위까지 오르며 수십만 달러를 벌어들였다. 변 씨는 앱스토어에서 성공한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이제 막 서비스를 시작하는 앱스토어가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되려면 변 씨와 같은 개발자들의 지속적인 관심이 필요할 뿐 아니라 헤비 마크 같은 킬러콘텐츠를 개발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돼야 한다. 동시에 스마트폰 사용자가 늘어야 한다. 하지만 아직까지 국내에서 스마트폰 보급률은 10%에도 미치지 못한다.
업체들은 앱스토어를 활성화하기 위해 포상금 지급, 개발자 교육 등 다양한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SK텔레콤은 우수 개발자를 발굴하기 위해 게임 심의 수수료를 지원하고 애플리케이션을 직접 홍보해주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매주 인기 애플리케이션을 선정해 포상금도 지급한다. 삼성전자는 개발자들에게 기술을 지원하고 정보를 제공하는 홈페이지(innovator.samsungmobile.com)도 개설했다.
SK텔레콤은 애플리케이션 개발자 지원 프로그램도 열고 있다. 올해 12월까지 SK텔레콤 본사 및 남산그린빌딩에서 매월 개설되는 상설 교육 과정으로 누구나 무료로 참여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