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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직장인에겐 휴가, 학생에겐 방학이 기다리고 있는 계절이다. 답답한 도심을 벗어나 자연과 함께해 보자. 자연의 깊숙한 결을 느끼게 해주는 좋은 과학책 한두 권 함께 하면 더 알찬 여름이 될 것이다.

조홍섭 환경전문기자가 쓴 신간 ‘한반도 자연사 기행(한겨레출판)’은 이런 주제에 첫 번째로 추천할 만한 책이다. 25년 넘게 환경과 생태 관련 기사를 쓰며 전국을 누빈 저자가 정작 ‘우리 자연에 대해 아는 게 없다’며 완전히 초심으로 돌아가 전문가들과 지형, 지질 답사를 한 기록이다. 인천 백령도, 전북 부안 변산, 경북 군위 등 작정하고 찾아가야 하는 곳은 물론, 서울 북한산, 부산 다대포 등 도심과 가까운 곳에서 우리가 몰랐던 지형을 새롭게 읽어내고 있다. 직접 찍은 사진은 여느 여행책 못지 않게 시원하다.

자연의 드러난 모습에 흥미를 느꼈다면 이번에는 안에 숨겨진 패턴을 들여다 보면 어떨까. 마커스 드 사토이 영국 옥스퍼드대 교수가 쓴 ‘대칭(승산)’은 잘 만든 수학책이 어떤 것인지 보여 주는 수작이다. 저자가 직접 학회나 여행지를 다니며 발견한 다양한 대칭 사례를 들려주는 편안한 여행기 형식을 띠고 있다. 단순한 포석의 도형에서부터 알함브라 궁전의 벽돌무늬까지, 저자가 대칭을 발견하는 대상은 끝이 없다.

테마가 있는 색다른 여행을 원한다면 ‘에너지 세계일주(살림)’도 빼놓을 수 없다. 젊은 여성과학자 둘이 오직 세계의 주요 에너지 생산 현장을 직접 보겠다고 배낭을 메고 떠났다. 일본과 홍콩, 중국, 프랑스 등 16개국을 돌며 200명의 전문가를 만난 여행은 꼬박 2년이 걸렸고, 이들은 다른 누구에게서도 듣지 못할 귀한 현장 지식을 모을 수 있었다. 이 지식을 오롯이 모아 펴낸 이 책에는 살아 숨쉬는 지식과 현장에서 느낀 고민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직접 어딘가로 가는 여행이 어렵다면? 가만히 앉아 볼거리를 방 안으로 불러들이는 수집 역시 여름에 시도할 만한 훌륭한 여행이다. 이그노벨상 수상자인 괴짜 화학자 시어도어 그레이 박사의 ‘세상의 모든 원소 118(영림카디널)’은 그 중에서도 특별하다. 주변에서 흔히 구할 수 있는 원소부터 방사성 동위원소처럼 구하기 힘든 원소까지 직접 사진을 찍고 설명을 붙였다. 주기율표대로 화려한 그림을 따라가다 보면 화학의 진풍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휴가인데 너무 머리가 아파온다면 과학소설로 머리를 식혀보자. ‘마이너리티 리포트’로 유명한 미국 SF 작가 필립 딕의 걸작 작품들이 번역돼 나왔다. ‘화성의 타임슬립’, ‘죽음의 미로’ , ‘닥터블러드머니(이상 폴라북스)’가 그 주인공. 차례로 외계 행성을 배경으로 하는 우주 모험과 기계 문명의 미래, 그리고 핵전쟁 이후의 세계를 그리고 있다. 필립 딕 특유의 대범한 상상력과 대중적이면서도 심오한 주제가 여름밤을 잠 못 들게 한다.

이제 과거로 여행을 떠나 보자. 문명과 진화의 관계를 다룬 ‘1만 년의 폭발(글항아리)’은 특이한 관점의 책이다. 오늘날 진화론은 스티븐 제이굴드가 주창한 대로 일정 기간 진화가 정체된 기간이 있다는 ‘단속평형’이 주류다. 하지만 이 책의 저자들은 인류가 실제로는 조금씩 변화를 겪고 있다는 주장을 과감하게 하고 있다. 특히 문명의 발달이 진화에 큰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인류학과 역사학, 생물학이 만나는 기묘한 체험을 할 수 있다.

진화와 유전의 관계를 고찰했다면 유전자의 발견자를 직접 만나는 과거 여행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이타적 유전자’를 쓴 매트 리들리가 DNA 발견자 중 한 명의 일대기를 복원한 전기 ‘프랜시스 크릭-유전부호의 발견자(을유문화사)’가 새로 나왔다. 공동 발견자인 제임스 왓슨의 유명세에 눌려 상대적으로 주목을 덜 받았지만, 크릭 역시 물리학과 생물학 양쪽에서 놀라운 성과를 낸 대기만성형 천재 과학자였다. 왓슨이 ‘이중나선’에서 묘사한 것처럼 열정적이며 외향적이고 감성적이기까지 한 크릭의 면모는 ‘과학자는 외골수다’라는 고정관념을 날려버린다.

전기는 아니지만 굵직한 현대물리학 연구자들을 만나는 여행도 준비돼 있다. 이강영 건국대 교수의 ‘LHC-현대물리학의 최전선(사이언스북스)’은 입자물리학의 역사를 개성 넘치는 인물을 중심으로 감칠맛 나게 소개하고 있다. 거대강입자가속기(LHC)로 대표되는 최신 연구 현황도 빠짐없이 다룬다. 외국 필자에 밀리지 않는 필력을 선보이는 국내 저자가 탄생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여행지의 매력은 새로운 만남과 사람이다. 우연한 만남이 불러오는 낭만적이고 짜릿한 체험이 없는 여행은 심심하다. 이것은 사람의 행동과 이동 경로가 예측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버스트(동아시아)’를 읽은 사람은 이런 생각에 동의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네트워크 과학의 창시자인 저자에 따르면 사람의 행동에는 패턴(규칙)이 있고, 심지어 예측도 가능하다. 아직 초창기 연구이기 때문에 거쳐야 할 산이 많지만, 사람을 보는 관점 자체에 변화를 몰고 올 수 있는 폭발력이 있으니 주목할 만하다.

이제 여행을 정리해야 할 때다. 차분하게 과학과 종교의 400년 역사를 되돌아보며 시간여행을 마무리 짓자. 철학자 버트런드 러셀의 ‘종교와 과학(동녘)’은 근대 과학이 정립되기 시작한 때부터 끊임없이 부딪히고 있는 종교와의 갈등을 조목조목 정리하고 있다. 러셀이 주목한 갈등의 원인은 진리의 문제가 아니다. 권력을 향한 사회, 정치적 싸움이 만들어내는 둘 사이의 끊임없는 긴장이다. 이 긴장을 해결하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2011년 08월 과학동아 정보

  • 윤신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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